생태계·동물

디딤돌 2005. 10. 3. 10:51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오.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콩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나희덕 시인의 살가운 언어를 가사에 담은 가수 안치환은 화려한 도시의 구석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귀뚜라미’의 조용한 외침을 노래한다.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고, 계단을 타고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소리,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오.” 아직 뜨거운 늦여름, 매미 소리가 화려한 회색도시의 삭막한 시멘트 공간 한 구석에서 귀뚜라미의 ‘우우~ 우우~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 ‘타전 소리’는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 위로 실려갈 수 있을까.” 나희덕 시인은 묻고, 집회 현장에서 더 알려진 안치환은 단순하면서 쓸쓸한 음률로 가을을 맞으려 한다.


열띤 논쟁으로 기진맥진한 대기업 연수원 회의실, 기계가 쏟아내는 찬바람을 피하려 시스템 창호를 활짝 열면 창밖 키 큰 조경수는 죽을힘을 다해 울어제치는 매미소리를 경쟁적으로 토해낸다. 회의실의 긴장은 풀어지지만 귀는 이내 성가셔지고 자료를 들여다보기 불편하게 회의실은 온통 시끄러워진다. 눈치챈 실무자는 얼른 창호를 닫고 에어컨을 차게 가동시켜야 한다. 사생결딴 울어대던 매미가 맥 빠질 무렵이면 어느덧 가을이다. 철지난 바닷가처럼, 관객이 물러간 관중석처럼, 사방에서 흩어지이던 “축하한다!” 소리가 사라진 졸업식장처럼, 가을이 쓸쓸하게 다가올 때 귀뚜라미는 운다. 남은 일이 기다리는 연구실을 향해 밤이 길어진 도시를 천천히 움직일 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귀뚜라미는 지금부터 가을이라고 조용하지만 다부지게 선언한다.


마지막 지하철을 빠져나와 지친 발을 끌고 천천히 집을 향할 때, 아파트 현관 앞, 콘크리트 벽체 옆 엉성한 잔디 속 어느 구석은 귀뚜라미가 숨어 우는 곳이다. 작년도 재작년도 올해도 가을이면 그 자리를 고수한다. 귀뚜라미도 제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나. 독촉되는 원고가 풀리지 않아 텔레비전 소리 새들어오는 책상머리에서 공연히 머리 쥐어뜯을 때 밖으로 나가 어둠이 내려앉은 놀이터를 서성이면, 근처 나무벤치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웃들 정담 사이로 살금살금 귀뚜라미가 운다. 가을이라는 거다. 바쁘기만 했지 뭐 이렇다 하게 해 놓은 일 없는 내게, 뭔가 채근하는 것 같다.


차창 밖 신록을 아무리 가리켜도 시큰둥하니 엠피쓰리만 듣던 아이들은 가을을 어떻게 느낄까. 예전에, “귀뚜라미 귀뚤귀뚤 고요한 밤에, 귀뚜라미 귀뚤귀뚤 글을 읽는다. 가을이라 즐거운 밤 달이 밝아서, 귀뚜라미 귀뚤귀뚤 글을 읽는다.”하고 불렀던 동요 ‘가을밤’이 요즘도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를 지키고 있을까. “귀뚜라미 귀뚤귀뚤 서늘한 밤에, 귀뚜라미 귀뚤귀뚤 노래를 한다. 가을이라 즐거운 밤 달이 밝아서, 귀뚜라미 귀뚤귀뚤 노래를 한다.”고 즐거워했던 아이가 어느덧 어른이 되어 귀뚜라미 소리에서 가을을 타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가을은 중간고사의 계절일 뿐이다. 단풍이 설악산을 내려오건 말건, 엄마 감독 하에 학습장 줄긋기 바쁘다.


“특허 제 10-2004-16180번!” “저희 귀뚜라미농장에서는 토종 왕귀뚜라미를 애완이나 학습용으로 판매합니다. 환경오염으로 주위에서 곤충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현실에서 울음소리가 조용하고 은은한 왕귀뚜라미는 공부에 지친 댁의 아이의 정서교육에 한몫을 할 것입니다.” 인터넷의 한 사이트는 아열대산보다 수명이 긴 토종 왕귀뚜라미의 사육과 인공 산란에 대한 특허를 필한 후, 광고에 열중한다. 애완용 ‘왕귀뚜라미’는 등록된 상표라면서, 상업적인 사용을 금한다고 못 박는 그 사이트는 사육방법도 친절하게 안내하는데, 발명 명칭이 ‘귀뚜라미’다. 야외에서 귀뚜라미를 채집해 학교나 집에서 사육하면 법에 저촉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어처구니없다. 인간보다 먼저 진화한 귀뚜라미와 그 생활습성에 특허를 걸고 돈을 벌어도 좋은 것일까.


흙속에서 동면한 알을 뚫고 새싹이 풍부한 5월에 세상에 나온 어린 귀뚜라미는 숫한 천적을 용케 피한 9월이 돼야 짝을 찾을 정도로 성숙한다. 여린 풀과 풀섶의 작은 벌레도 먹지만 사람이 버린 음식찌꺼기도 마다하지 않으며, 다 자란 수컷은 오른쪽 앞날개 안쪽과 왼쪽 앞날개 바깥쪽을 마치 바이올린 켜듯 비벼 꼬리 사이에 산란관을 늘어뜨린 암컷을 집요하게 유인한다. 한밤중 네 시간 여 울어대는 동안 4만 번이나 반복한다고 하니, 여간 끈질긴 세레나데가 아닐 수 없다. 한 가수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노래하지만, 귀뚜라미에게 10월의 마지막 밤은 없다. 중순에 낳은 알에 제 생명을 넘긴다.


눈이 녹으며 오던 봄이 여성의 화사한 노출로 시작되는 요즘, 도시의 가을은 어떻게 시작될까. 인터넷은 시민들의 핸드폰이 가을을 알린다고 광고한다. 아침에 연실 시계 들여다보고 저녁에 술콰한 지하철 승객에게 귀뚜라미 컬러링이 가을 정취를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업자가 메뉴로 제공하는 컬러링은 ‘귀뚤 귀뚜리’하고 우는 왕귀뚜라미일까, ‘후이리리리’하고 우는 풀종다리일까. 어쩌면 ‘귀또 리리’하고 우는 보통 귀뚜라미일지 모른다. 귀뚜라미 종류가 세계적으로 3천종이라는데, 광고로 들리는 개구리처럼 설마 미국 귀뚜라미 소리는 아니겠지. 아직 다른 이의 핸드폰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본 적 없지만, 귀청을 찢는 최신 유행가나 숨넘어가듯 “자기 전화받어!”하는 컬러링보다 훨씬 낮겠지.


가을을 더욱 쓸쓸하게 하는 귀뚜라미를 옛사람들은 영리하게 보았다. 모르는 게 없이 일마다 한 마디 거드는 사람에 비유하곤 했다. 가을철 긴긴 밤을 함께 지낼 연인이나 친구가 없어 어느 구석에서 고독을 씹을 때, 가까운 곳에서 사분사분 말벗 돼주는 귀뚜라미에게 조상은 우정의 감정을 느꼈나보다. 깊어가는 밤, 귀뚜라미라도 있어 고맙다. 막힌 원고를 혼자 해결해야 할 때는 물론, 회색도시에서 고독한 이웃들에게 거꾸로 타는 보일러나 특허가 아닌 우정이라는 지혜를 나누어주지 않을까. 귀뚜라미마저 줄어드는 요즘, 내일의 가을이 벌써부터 적적하다. (물푸레골에서, 2005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