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12. 13. 15:19
 

이번에는 뿔논병아리가 스타덤에 올랐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걸프전 이후 이게 몇 년 만인가. 실로 오랜만에 시커먼 원유를 뒤집어 쓴 철새가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시 세계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20007년 12월 8월, 환경운동연합의 카메라 오디션에 통과한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의 뿔논병아리는 전날 아침 만리포 서북쪽 10킬로미터 해상에 정박 중인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HEBEI SPIRIT, 14만6800톤급)에서 흘러나온 원유를 엉겁결에 뒤집어썼다. 수의사이기도 한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촬영한 후 구조한 뿔논병아리를 치료하려 서둘렀지만, 원유에 포함된 독성물질이 스며들고 그로 인한 탈수현상으로 끝내 죽고 말았다고 애통해 했다.

 

머리 위의 깃이 뿔처럼 솟은 뿔논병아리는 비교적 흔한 겨울철새다. 다리가 배 뒷부분에 있어 중심 잡으며 걷기 불편해 보이지만 수면에서 유영하기 편한 체형을 가진다. 그래서 그런지, 멀리 날아오르는 경우를 제외하고 물결이 없는 호수나 바다에 떠다니다 별안간 물속으로 들어가 먹이를 잡는데, 대부분의 잠수성 조류가 그렇듯이 뿔논병아리도 물에 젖지 않도록 깃털을 관리한다. 피부 샘에서 분비하는 기름을 부리에 묻혀 깃털에 비벼 수시로 바른다. 한데 원유가 몸에 묻으면 호흡과 날갯짓이 곤란할 뿐 아니라 기름 분비가 차단된다.

 

여름이면 시베리아 남부에서 몽골 일원에서 번식하고 겨울철 한국과 일본에서 버마 일원까지 날아가는 뿔논병아리는 논병아리 무리 중 체구가 가장 커 50센티미터가 넘는다. 오리 종류와 달리 물갈퀴는 없어도 잠수에 능해 나뭇잎 닮은 발로 수심 6미터까지 들어가 30초 이상 머물며 물고기를 낚아채는 습성을 물려받았다. 그런 면에서 얼음이 없거나 얇은 천수만이나 인근의 방조제로 막힌 대호는 뿔논병아리가 겨울 지내기에 이상적인데, 왜 신두리까지 원정 나섰다 참변을 당했을까.

 

서산 간척지 인근에 위치한 천수만은 안면도가 서편에서 바람을 막아주어 물결이 잔잔하니 겨우내 쉬기 적당하고 먹을거리가 많다. 기계로 농사짓는 드넓은 간척지에 떨어진 이삭도 풍부하지 않던가. 겨울철새에게 안성맞춤이다. 귀찮은 탐조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안내인을 따라 지정된 장소에서 질서 있게 관찰한다. 다른 호수나 습지에 비해 오염 정도가 낮고 개발 현장과 멀어 겨울철새가 대거 운집하는데, 그 밀도가 지나칠 정도다. 그러니 두세 마리로 분산돼 생활하는 뿔논병아리에게 천수만은 성가실 수 있겠다. 한갓진 곳을 찾아 인적 드문 신두리로 날아왔건만 원유를 뒤집어 쓸 줄이야. 잠수하고 올라왔다가 봉변을 당했으리라.

 

1995년 전남 소리도 앞바다에서 좌초된 시프린스호는 자체 연료인 벙커C유 5천 톤을 200킬로미터의 해상에 흘렸고 12년이 지난 현재에도 소리도 부근 바다의 생태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해수면 기름을 제거하려고 살포한 유처리제가 바닥에 가라앉아 독성을 내보내는 게 원인이라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태안 앞바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심할 가능성이 높다. 유출된 양이 시프린스호의 두 배에 달하지만 그 독성은 벙커C유에 비할 수 없다. 가솔린에서 찌꺼기인 아스팔트 원료까지 포함된 원유는 벙커C유와 질적으로 다르다. 언론은 오일볼(oil ball)을 걱정한다. 끈적끈적한 원유가 다양한 크기의 오일볼(oil ball)이 되어 바다 속을 돌다 떠올라 터지면 피해 범위와 기간을 종잡을 수 없다는 거다.

 

정부는 12월 11일 오후, 피해가 확산되는 태안군 일원을 포함하여 보령, 서천, 홍성, 당진 일원의 해안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 세제와 금융은 물론 인력과 장비의 지원을 약속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텐데, 속속 도착하는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의 노력에 따라 복구 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1989년 액손발데스호가 알라스카 해안에 흘린 3만 6천 톤의 원유의 흔적도 거의 사라졌다. 호흡곤란과 어지럼증과 두통이 심하고 피부병이 발생하는 자원봉사자도 휴식을 취하고 원유 독성에 대한 치료를 병행하면 회복될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뿔논병아리도 가마우지나 괭이갈매기와 더불어 다시 태안을 찾을 것이다. 양식사업도 활기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원유 뒤집어쓰고 죽은 뿔논병아리는 사람들이 덕담처럼 말하는 복원 가능성에 위안을 구할 리 없다.

 

겨우 100년 전부터 뽑아 쓰기 시작해 50년 내에 거덜내려는 석유. 햇빛발전 전도사인 박승옥은 얼마 전에 출간한 책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살까》 그 책의 한 페이지, 10센티미터 폭에 4000년을 나눈 그래프를 그린 박승옥은 서기 2000년 전후에 잠시 치솟다 사라지는 석유 소비량을 표시하면서 의미 있는 주석을 붙였다. “석유 생성 시기까지 연장해서 그리면 왼쪽으로 17킬로미터나 더 종이가 필요”하다고. 뿔논병아리는 단지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원유 때문에 죽었을까. 눈에 드러난 현상은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그 이유뿐인가.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광적인 소비풍조 때문에 죽은 건 아닐까.

 

수면에 떠다니다 위험을 느끼면 물속으로 획 들어가고, 잠망경처럼 머리만 쏙 내밀어 주위를 살피는 뿔논병아리는 기후변화 시대에 부응했는지 한반도에 남아 둥지를 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대호에서 처음 관찰된 이후 전국 호수에서 드물게 번식 사례가 보고된다는 것이다. 반갑다 해야 할까. 지구온난화를 부추길 가스전을 개발하느라 부산한 시베리아보다 즐겨 먹는 물고기와 올챙이와 곤충의 유충이 많은 한국 호수의 갈대밭에 정착해 암수와 가족을 지키는 편이 차라리 견딜 만했을지 모른다.

 

5월 이후 물풀로 접시 모양의 둥지를 틀어 알을 네댓 개를 3에서 4주 품는 뿔논병아리는 여름철 깃이 화려하다. 머리 뒤에 분홍 깃을 멋지게 두르고 머리와 목과 사이에 진한 갈색 목도리를 감싸, 눈 주변에서 뺨과 앞가슴까지 온통 흰 겨울 깃과 구별된다. 수초를 입에 물고 구애하는 모습이 수중발레 같다는 뿔논병아리는 당분간 태안 앞바다를 외면할 것이다. 원유 세례 없어도 멋진 뿔논병아리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어떤 행동에 나서야 하나. 원인공방과 보상협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속가능해야 할 후손의 내일을 위해 지금의 낭비를 반성하고 조상이 물려준 ‘삶의 방식’을 회복해야 한다. 걸프와 알라스카에서 먼저 죽은 가마우지처럼 신두리의 뿔논병아리도 그 점을 신신당부하고 싶을 게 틀림없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