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09. 12. 26. 23:30

 

21세기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지난 20세기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10년이 시작될 때마다 언론은 ‘대망’의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맞았다고 기대를 잔뜩 부풀렸다. 그저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것이 시간인데, 시간에 매듭이 있는 듯, 우리는 자신이 정한 시간 단위에 억매,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쓴다. 이제 2010년을 맞았다. 대망의 10년대를 다시 시작하려나.

 

2010년은 국가나 시민이나, 단체나 개인이나, 21세기를 시작할 때 봇물 같았던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되새기며 신발 끈을 조이는 계기로 시작하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지난날을 반성하기보다 합리화하는데 익숙할 따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실적과 과오를 냉정하게 평가하는데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일의 약속을 다시 늘어놓기 바쁘다. 여름에 지방자치 선거로 뜨거울 올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게 분명하다. 선량을 꿈꾸는 자마다 ‘발전’을 목 놓아 외치며 개발을 부르짖을 텐데, 어쩌면 이번에는 예년에 비해 조금은 다를 개연성도 있다. 범세계적인 추세, 지구온난화를 염두에 둔 개발, 다시 말해 후보들은 ‘친환경’ 개발을 외쳐댈 공산이 크다는 거다.

 

그렇다면 무엇이 친환경인가. 아쉽게 공감할 개념은 시민사회에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온실가스 배출이 적으면 친환경인가. 하지만 생각해보자.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인 자동차가 나와도 그런 자동차가 두 배 이상 늘어난다면 대기는 좋아지지 않는다. 하면 온실가스가 아예 나오지 않는 자동차를 개발하면 친환경인가. 예를 들어 물 이외에 배기가스가 없다고 홍보하는 수소 자동차라면 친환경이라는 칭호를 부여해도 되는 걸까. 수소 자동차의 위험성이나 비용은 여기에서 따지지 말고, 부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일단 접어두고, 자동차 자체만 놓고 볼 때 친환경이라 상찬하고 싶겠지만, 아니다. 연료 없는 자동차는 없는 법. 수소를 자동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분리 저장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추가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다면 수소 자동차는 미안하지만 친환경과 거리가 한참 멀다.

 

작년 12월 1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녀온 이명박 대통령은 성탄절 다음날 급히 아람에미리트연합을 다녀왔다.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이어 대규모 핵발전소 입찰에 참여하는 우리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긴급히 마련한 2010년 이전의 마지막 해외출장이라고 정부는 전했는데 과연 성과가 있었다. 대통령이 친히 찾아간 덕분인지 우리가 무려 400억 달러의 핵발전소 플랜트를 수주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코펜하겐에서 ‘다 함께 행동을’ 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2020년까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4퍼센트 줄이겠다고 선언하며 “포스트-2012 기후체제의 성공적인 출범을 지원하고자 오는 2012년 제1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한국 개최를 희망한다.” 밝힌 대통령은 지구를 구해내는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부터라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던데, 아랍에미리트연합 출장도 환경과 연관이 있었던 걸까. 나부터라, 좋은 취지의 발언이긴 하다.

 

이른바 ‘MB형 실용외교’의 결정판이라고 청와대에서 자평한 연말의 출장은 한국행 원자력발전의 첫 해외진출임에도 그 규모가 자그마치 수 십 조원 대에 이른다는 데 경제적 의미가 크지만 원자력산업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지향하는 국가비전과 잘 부합하는 것이기에 거는 기대가 각별하다고 정부는 자화자찬했다. “원자력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대기오염 물질이 생성되지 않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최적의 대안이 되고 있다.”고 평가한 청와대 관계자는 “세계 원전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여서 우리의 첨단 원자력기술은 향후 반도체, 조선, 자동차에 이어 또 다른 주요 수출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덧붙여 기대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니 그래야 할까.

 

흔히 아무 생각 없이 ‘원자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원자 사이의 반응으로 실용이 가능한 에너지를 거대하게 얻을 수 없다. 원자를 구성하는 물질의 핵이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우리는 전기로 이용하는 것이다. 전에는 민이나 관은 물론, 교과사도 ‘핵에너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반핵운동이 거세지면서 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겼고 핵산업 관계자들은 은근슬쩍 핵을 원자력으로 고쳤다.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원자력이든 핵이든, 사용하는 언어가 어떻던, 에너지를 얻는 방식에 근본 변화가 없고 위험성 역시 그다지 변하지 않았건만, 핵에너지는 기후변화 위기를 맞자 우리 정부에 의해 친환경의 지위를 받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으면 친환경일까.

 

이산화탄소는 가장 중요한 온실가스에 해당하니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으면 그만큼 친환경인 것은 틀림없겠는데, 사리판단에 앞서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핵발전 자체만 놓고 볼 때, 이산화탄소 배출은 화력발전에 비해 40에서 100분의1에 불과한 건 사실이다. 그러므로 핵발전을 친환경이라 말하고 싶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핵발전소 자체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적을지 모르지만, 모든 발전은 연료가 있어야 가동되므로,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하기 때문이다. 연료를 채굴해서 운송, 정제, 이동, 사용, 폐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에너지의 총량을 상정해보라. 그렇다면 핵발전은 감히 화력발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적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원자력발전 의존도를 높여 나부터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대내외에 자랑하고 싶은 모양인데, 어처구니없다. 생각 있는 나라 대부분의 의식 있는 시민들은 우려나 조롱이라면 모를까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일개 국가의 노력만으로 결실을 보는 게 아니라는 것, 누구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핵발전소를 집중시켜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였다고 깨어 있는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칭송할 리 없다. 우리나라와 아랍권에 늘어난 핵에너지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먼저 받는 국가도 선원을 보낼 리 만무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세계 원전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라고 주장했지만 그 근거를 살피는 순간 쑥스러워질 것이다. OECD국가 중에서 핵발전소를 확대하는 국가가 우리 말고 또 있다던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은 어느 나라나 핵발전에 미련을 갖는다. 그걸 추세라고 이야기하기 민망한 노릇인데, 대부분의 OECD국가는 핵발전소의 증설을 물론 중단했고, 수명을 마친 발전소는 당연히 폐쇄할 뿐 아니라 수명이 남은 발전소의 운영까지 조기에 단축하겠다고 발표한 적도 있다. 물론 핵발전을 옹호하는 일부 인사의 목소리가 진보언론에도 간간이 소개되지만 그건 자식 키우는 시민의 대다수 목소리와 거리가 멀다. 유권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국가는 시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기업과 정권의 의지를 밀어붙여 핵발전소를 새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핵발전소를 늘리려는 국가들은 한결같이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가 민주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국가일수록 핵발전소가 늘어난다는 거다. 그런 걸 추세라고 했으니, 청와대의 의도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승전보를 속히 올리자마자 우려나 고민 없이 용비어천가부터 불러댄 우리 언론들의 태도가 더욱 큰 걱정거리를 안길 것이다. 벌써 과거의 국사독재 시절로 회귀하는 행보를 보이는 공안당국에서 핵발전에 대한 비판을 국가 발전을 방해하는 언동으로 몰아붙일 공산이 그만큼 높아지지 않겠는가.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핵발전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핵발전 관련 산업의 위험성에 있다. 많은 관리인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낮다. 물론 안전을 확신하고 방심하다 1986년 4월에 사고가 난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예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핵발전소는 5중 안전장치를 세심히 들여다보며 안전을 감시한다 하므로 체르노빌 이외의 발전소에서 폭발까지 연결된 사고는 없었다. 그렇다고 폭발 직전까지 간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1979년 미국 드리마일 핵발전소는 원자로가 녹아 폭발로 이어지기 직전에 운 좋게 사고가 멈췄다. 증기발생로가 파열된 1991년 일본 미하마 핵발전소도 마찬가지로 폭발로 연결되지 않았다. 제 정신이라면 운에 안전을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발전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거대한 기계장치는 설계 잘못이든, 관리 상 부주의든,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의 사고에도 최대한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설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핵산업은 어떤가. 단 한 건의 사고가 발생해도 핵폭탄처럼 걷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핵발전소 이외에 없다. 그게 핵산업의 치명적 결함인데, 정작 피부로 느끼는 문제는 핵발전소가 아니라 그 주변, 다시 말해 여론의 사각지대에서 나온다. 1999년 일본 도카이무라 핵연료 가공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워낙 규모가 커서 세계에 알려졌으나 대부분의 사고는 감춰지고 만다. 세계 발전소에 핵연료를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호주의 광산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가 알 수 있을까. 주목해주는 언론이 있을까. 거대한 폭발로 드러나지 않는 사고는 쉬쉬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렇다고 현장을 감시하는 반핵운동가들은 목이 쉬게 증언한다.

 

시민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핵발전을 주저하는 이유는 그 에너지의 본질적인 비윤리성에 있다. 우리 정부는 후손에게 물려주는 깨끗한 에너지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광고하지만 핵처럼 후손에게 부담을 치명적으로 안기는 에너지는 없다. 지금까지 많은 국가에서 수십 년 동안 연구를 거듭해도 현재 기술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 핵폐기물인데, 그 폐기물이 감당할 수 없게 발생하지 않던가. 위험과 운영비용의 증가를 무릅쓰고 수명을 아무리 연장해도 40여 년에 불과한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최소 300년, 최대 수백만 년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핵에너지는 당대에 다 소비하고 그 뒤처리는 후손에게 대대로 떠넘겨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고도 후손을 위한 청정에너지라고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주장할 수 있겠나.

 

핵폐기물은 크게 중저준위와 고준위로 나뉜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300년 지나면 안전하게 된다고 관련자들은 주장하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반핵 연구자의 주장에 대해 명확한 반론을 그들은 제시하지 못한다. 치명적인 문제는 당장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고준위핵폐기물, 다시 말해 사용 후 핵연료다. 고준위핵폐기물에 포함되는 물질 중 ‘지옥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플루토늄은 반감기가 2만4천 년인데 그 독성은 무지막대하다. 1그램이면 60억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가 아닌가. 고준위핵폐기물은 매우 뜨겁다. 그냥 놔둬 냉각수가 마르면 엄청난 방사능을 내뿜으며 핵폭탄처럼 폭발할 수 있다. 1957년 구소련에서 그랬다. 그러므로 방사능이 남아 있는 동안, 우리 후손은 핵폐기물들을 식히면서 철두철미하게 감시해야 한다. 그래서 핵에너지는 비윤리적이라는 거다.

 

어떤 이는 고준위핵폐기물을 핵연료로 가공해 재활용하면 핵발전 수명이 길어지므로 좋다고 단순하게 주장한다. 얼핏 그럴 듯한데, 그럴수록 위험성은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은 애써 감춘다. 많은 국가에서 안전한 재활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장에 적용할 만큼 믿을만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런 연구를 거듭해야 관련 연구자들이 직위를 유지할 수 있어서 그런지, 연봉 수준이 높은 연구자들이 가능성을 계속 타진하고 있기는 하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연구가 성공해 고준위핵폐기물을 연료로 반복 재사용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럴 경우, 위험성이 커지고 그만큼 고준위핵폐기물을 포함한 치명적인 핵폐기물이 계속 누적되어 발생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대책도 연구해낼까. 하지만 불가능할 것이다. 재처리하기 전, 그러니까 고준위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잡지 못하는 현실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이제까지 핵산업 종사자들의 행태를 감안할 때, 진실을 감출 것이다. 언론을 통제하고 시민들의 접근을 물리적으로 막으려 할 텐데, 자식 키우는 시민이라면 아무리 진실을 통제해도 위험성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늘 그래왔듯, 민주주의가 허약한 국가일수록 시민의 눈과 귀와 입을 통제하겠지만 어느 성격의 국가든, 핵산업의 안전관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저 무책임하게 후손에게 떠넘길 따름이다.

 

한데, 핵연료 자원은 석탄 이상 충분히 매장돼 있다던가. 핵발전 관계자들은 그런 정보는 꼭 생략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지금처럼 사용한다면 앞으로 두 세대 이후에는 경제성 있는 자원은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핵산업 종사자들도 동의한다. 그래서 고준위핵폐기물을 재활용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솔직히 실천에 옮길 자신은 없을 것이다. 이미 언급한 위험성도 어쩔 도리가 없을 테지만 재활용하는 과정과 과정마다 요구되는 에너지는 얼마나 막대한가. 그 에너지를 감당하면서 경제성 있는 에너지를 생산하기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핵에너지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지도 않고, 친환경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워낙에 거대하고 위험한 에너지 산업이니 중앙에서 통제하며 공급할 수밖에 없다고 할 테고, 위험한 만큼 기밀이 많을 거고, 그러므로 접근이 봉쇄될 게 아닌가. 다만 핵발전은 독점이나 독재를 지향하는 거대 권력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실어주는데 긴밀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에게 핵에너지를 친환경으로 설득할 수 있는 민주 정권은 이 세상 아무데도 없다. 다만, 핵에너지로 수소에너지를 얻는다면 그 측면만큼 친환경이 아니냐며 너스레떨고 싶을지 모른다. 만일 그런 너스레를 못 들은 척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다면, 그는 수소에너지 사업과 관련이 있는 직종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후손의 안전을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핵에너지를 원천으로 얻는 수소에너지를 친환경으로 치장하는데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을 다녀온 후, 대망을 부르짖을 2010년 이후가 더욱 불안하다. 밑도 끝도 없이 “저탄소 녹색성장” 이나 “친환경”을 찾는 자들의 기고만장하고 독선적인 태도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사뭇 멀지 않은가. 2010년에는 친환경 핵발전으로 대망의 발전을 이루는 원년이 되는 걸까? 이러다 내가 아니라 우리 후손의 삶부터 크게 망치게 되는 게 아닐까. (인천IN, 2010년 1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