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1. 8. 15. 19:19

 

홍대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 예술가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욕망이라는 괴물이 가득 채웠어요.” 최근 한 언론에서 언급한 홍익대학교 주변의 현주소다. 미술과 음악세계의 실험정신이 독특한 문화를 꽃피워내던 홍대 앞은 예술의 거리또는 문화 해방구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그런 문화를 향유하려 사람들이 운집하자 탐욕스런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치솟은 임대료를 등에 업고 독버섯처럼 돋아나면서 정작 가난하지만 실험정신이 강했던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거다. 홍대 앞의 정체성은 안타깝게 탐욕에 스러지고 만 셈이다.

 

인천 도심에서 수월하게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월미도는 어떤가. 슬금슬금 호객 행위 넘치는 횟집이 차지하면서 바다내음을 맡고자 했던 이들이 외면하는 공간이 되었다. 웬만한 인천시민은 멀리서 온 친구와 여간해서 찾지 않았다. 눈살 찌푸려야 하는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건데, 얼마 전부터 시민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민 접근금지를 명했던 군부대가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가 공원으로 탈바꿈한 이후의 일이다. 군에서 월미도의 자연경관과 지형을 거의 그대로 보전한 덕분에 온갖 새들이 모여들고 이른 여름이면 맹꽁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인천시민들은 친지들에게 월미산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이것 참! 인천시민들이 월미도마저 포기해야 하는가. 회부터 찾는 이들은 주변 식당으로 스며들 테지만 월미산은 다르다. 자연경관을 느끼며 정산으로 올라 개항의 역사를 품은 앞바다의 전경을 바라볼 테고, 세계적으로 드문 인천내항의 갑문을 바라보며 내려와 역사와 문화를 맛보게 될 터다. 수도권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복원한 공원에서 전통을 만끽하면서 이민박물관에서 월미도에서 오래 전에 이민 떠난 조상의 아련한 기대와 고통을 감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주말이면 많은 이용객이 모이고, 떠나는 아쉬움으로 주변 식당을 찾을 테지만, 순서가 뒤집히면 월미산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인천시에서 마련했다는 엘리베이터 계획은 월미산에 자부심을 갖는 시민을 허망하게 만든다. 이용객은 비바람 맞는 경사형 엘리베이터로 정상에 얼른 올랐다 횟집으로 직행하려고 모여든 게 아니다. 이용객들이 늘어나는 건, 월미산에 대한 기억이 긍정적으로 남았다는 걸 반증한다. 다시 찾는 이가 많기에 활성화된 것이다. 월미도 주변의 식당이나 찻집에 손님이 늘어난 건 월미산이 보전되었기 때문인데, 엘리베이터로 정취를 망친다면 이용객은 월미도를 외면하고 말 터. 자연과 경관, 그리고 문화와 역사 대신 탐욕이 지배하는 월미산을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을 테니까.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 자연의 처지에서 바라볼수록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에 젖어들고 보전의 가치를 더욱 각인하게 되는데, 엘리베이터라니! 새들이 알을 낳고 품을 때 경사면의 오솔길 이용을 자제하던 시민들은 자연을 찢은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경사를 삐걱거리며 오르내리며 시민들을 실망시킬 엘리베이터는 역사와 경관을 느끼려던 이용객들의 비웃음을 사는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무자비한 공사로 기껏 보전한 월미도마저 보습력을 잃으면 얼마 전 우면산에서 본 끔찍한 산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월미도의 엘리베이터 계획은 천박하다 못해 추악하다. 갯벌을 잃은 인천시민들은 도심에서 가까운 월미산에서 시민의 자부심을 모처럼 키울 수 있었는데,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찾아오는 이가 늘었다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면 결국 월미도 상가의 활성화마저 망칠 게 분명하다. 실험정신이 탐욕으로 스러진 뒤 홍대 앞의 정체성마저 의심스럽게 되었다. 이제 생각 있는 이는 홍대 앞을 외면할 텐데, 월미산는 어떤 정체성을 남길 것인가. 탐욕인가. 시민의 정주의식인가.

 

월미도의 풍광을 해치는 모노레일보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엘리베이터 계획은 당장 반려되어야 옳다. 여론수렴조차 없이 민간업자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면 두고두고 인천의 멍에로 남을 테고, 그 지탄은 두고두고 현 인천시 당국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호일보, 201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