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4. 4. 16. 18:22


 겨우내 저장식품만 먹다 입맛 잃은 조상은 봄철 논둑에서 머위를 뜯어 된장에 버무려 나물로 무쳤다. 머위로 입맛을 되찾았다지만 먹을거리가 풍성해 그런가? 요즘 젊은이들은 쓰디쓴 머위나물을 대체로 외면한다. 여러 식물과 자리를 다퉈야 하는 자연에서 잎사귀가 쓰다면 초식동물의 접근을 예방하는데 아무래도 유리하다. 입맛을 기억하는 동안 접근하지 않을 것인데, 사람은 예외다. 그 쓴 머위까지 뜯어 먹는다.


요즘은 머위까지 재배하는 걸까?, 얼마 전, 식탁에 올라온 머위나물은 예전보다 덜 썼다. 씨를 받아 여러 차례 재배하면 더덕의 향기가 약해지듯 시장에서 파는 머위도 재배한지 오래된 건지 모른다. 머위가 봄철 별미라 해도 젊은이들 입맛을 유혹하긴 어렵다. 지독하게 쓴 머위는 잘 팔릴 수 없다. 잘 팔리는 머위의 씨를 선택해 재배한다면 쓴맛은 많이 약해질 것이다. 잘 팔릴 수 있지만 그 머위를 뿌리면 초식동물이 꺼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건 아닐까? 안심해도 좋겠다. 요즘 가축은 목장에 갇혀 GMO 사료만 축내므로.


자연에서 선발된 농작물은 농부들의 품종개량을 거치며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크게 잃는다. 그 결과 같은 농작물을 심으면 덤벼드는 곤충이 늘어나게 된다. 사이짓기로 곤충의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만 기계로 농사를 짓는다면 곤충을 피할 정도의 사이짓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살충제에 의존하는 농부가 늘어나는데, 곤충이 내성을 키우면서 농부는 더욱 강력한 살충제를 뿌려야했다. 그러자 땅을 기름지게 하던 다른 생물들이 사라지더니 살충제를 뿌리는 농부의 건강을 위협했다. 급기야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했다.


GMO, 다시 말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유기농인가? 농작물의 유전자 안에 살충 성분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살충제를 따로 뿌리지 않아도 된다고 그 씨앗을 파는 회사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기농이라고 규정해도 좋을까?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 팔려나가는 GMO 농작물에는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종류가 살충 성분을 가진 농작물보다 더 많다.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도 점점 강해지고 자주 뿌려야 하는 까닭에 이젠 농부와 소비자를 위협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므로 제초제를 조금만 뿌려도 된다고 광고하는 GMO는 유기농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서 GMO 씨앗에 조작돼 들어간 제초제 내성 유전자가 심각하게 퍼지고 있다. 제초제를 뿌려도 끄떡없게 하는 콩 속의 유전자가 옮겨가 잡초까지 제초제를 이겨내는 사례가 확산되는 중이다. 살충 성분을 발현하는 유전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죽어야 할 곤충이 버젓이 살아서 목화 열매 속에 꿈틀대는 현상이 인도에서 늘어난다. GMO에 조작돼 들어간 유전자가 엉뚱한 식물로 이동하고 곤충이 GMO의 살충 성분에 내성을 가진다면 농부는 더욱 강력한 살충제와 제초제를 더욱 많이, 그리고 자주 뿌리고 싶어질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그러므로 광고와 달리 GMO는 유기농일 수 없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제초제나 살충제, 그리고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으면 유기농으로 생각한다. 물론 유기농에 그런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는 포함되면 안 된다. 하지만 유기농 기준은 화학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여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비자와 농부의 건강 뿐 아니라 생태계의 건강까지 두루 살피는 것은 물론이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다는 의미다. 유기농은 땅과 하늘과 사람과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먹고 재배하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파종하고 재배하는 농산물 때문에 땅속과 생태계의 동식물에 피해가 생기면 유기농의 자격은 사라진다. 유기적이지 않는 까닭이다.


GMO 농작물을 심고 제초제와 살충제, 그리고 화학비료를 전혀 뿌리지 않는다고 해도 유기농일 수 없다. 특히 살충 성분을 가진 GMO을 실험동물과 가축에 먹이자 수명이 눈에 띄게 줄어들거나 여러 암이 발생하고, 심지어 심장과 뇌와 같은 장기가 위축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그런 농작물은 그 씨앗을 파는 기업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지만 전혀 유기적일 수 없다. 사람에게 가려움증 이상의 징후가 발생하지 않았다지만 앞으로 어떤 치명적 부작용이 발생할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책도 세울 수 없다.


GMO 씨앗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주 단순하다.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그 농작물은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거의 잃고 말았다. 살충 성분을 가진 GMO도 마찬가지다.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독점 공급하는 GMO 씨앗은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없는 만큼 환경변화에 이겨낼 힘이 아주 약할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농산물에 치명적일 수 있다. GMO 농작물이 바뀐 환경에서 작황이 떨어지거나 심각하게 줄어든다면 인류는 식량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식량위기는 지구촌의 평화에 위협이 된다. GMO가 유기농일 수 없는 이유가 추가된다.


정부는 우리의 유기농 기준을 미국과 동일하게 바꾸려고 애를 쓰고 있다. GMO를 독점 공급하는 다국적기업의 근거지인 미국은 유럽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보다 기준이 느슨하다. 미국은 GMO5% 이내로 섞여도 유기농으로 인정한다. 순전히 GMO 씨앗 생산업체를 위한 배려다. 한미FTA가 체결된 상황에서 우리의 유기농 기준이 느슨해지면 미국의 유기농산물 판매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우리 농부와 유기농 매장의 불이익은 불 보듯 뻔하다. 나중에 기준을 바꾸거나 규제하려고 하면 미국 기업은 우리 정부를 고발할 테고, 우리는 막대한 세금으로 보상해야 할 게 틀림없다.


아직 우리 농토에 GMO 씨앗은 파종하지 못하지만, 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받아 허용하게 된다면 우리 농토도 미국처럼 GMO의 조작된 유전자로 돌이키기 어렵게 오염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기농을 아예 잃어버리고 말 수도 있다. 우리의 유기농 기준을 지켜야하는 것을 물론, GMO의 농토 파종을 생존을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나아가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이동거리를 따져 유기농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GMO로 오염된 미국 농산물을 배제할 수 있다. 그를 위한 행동이 점점 시급해진다. (지금여기, 2014415)

GMO도 약됨. 간장으로ㅋㅋ http://pann.nate.com/talk/320596037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3. 20. 08:58

 

올해도 북극해가 완전히 얼지 않았는지 2월 하순의 냉기가 범상치 않다. 북극권 상층의 제트기류가 느슨해지면 냉기가 남쪽 위도로 내려간다던데, 한파가 엄습한 유럽에 사망자가 빈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주로 가난한 계층일 텐데, 우리나라도 춥다. 그래서 그런가. 친지의 부고장이 하루가 멀다고 발송된다. 그래도 봄은 곧 시작된다. 둥근 지구는 무한하다는 우주에서 둥근 태양을 돌고 돈다. 언제나 그랬듯, 봄이 온다. 새 생명도 꽃피겠지.

 

봄은 언제 오는지 묻자 한 어린이가 눈이 녹으면이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막바지 한파가 물러가면 응달의 잔설도 모두 녹을 것이다. 이제 산골의 비탈진 밭도 봄을 기다릴 텐데, 까치들이 짝을 짓고 작년에 사용한 둥지를 수선하는 계절이 다가오자, 근교의 밭마다 유기질 비료 부대들이 잔뜩 쌓였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머지않아 녹을 테니 봄비가 내리기 전에 밭고랑마다 거무튀튀한 비료를 뿌릴 것이다. 그때 근교의 개성 있는 식당을 찾은 식도락가는 유기질 비료 특유의 냄새에 잠시 코를 찡그릴지 모른다. 그래도 비료가 땅에 스며야 싱싱한 채소가 식탁에 오른다는 걸 잘 알기에 냄새를 크게 탓할 리 없다.

 

입춘이 지나 춘분이 다가오면서 대지는 봄을 기다린다. 태양의 입사각은 어느새 양지에 온기를 보내고, 근교 시멘트 포장길 옆의 흙에 파릇파릇 새순이 보인다. 호미를 든 아주머니들이 냉이와 쑥을 캘 날도 머지않았는데, 말리고 싶다. 비록 자동차가 빈번한 도심에서 떨어졌을지언정 먼지와 소음이 날아드는데, 냉이와 쑥인들 안전하겠나. 장일순 선생은 일찍이 좁쌀 한 알에 세상이 다 담겼다 일렀다. 근교의 길가를 파릇하게 장식하는 냉이와 쑥에 도시의 독이 스몄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만, 밭 가장자리에 쌓아놓거나 고랑 가까이 늘어놓은 유기질 비료는 괜찮을까.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판매하는 유기질 비료인 만큼 눈에 띄는 문제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비료의 출처는 양해할만할까.

 

대구에서 유기농산물 직거래운동을 개척한 천규석 선생은 대규모 축산단지에서 배출돼 가공한 요즘의 유기질 비료를 불신한다. 미국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사료로 먹인 가축의 배설물이라면 자연의 순환을 방해한 축산의 부산물이라는 이유로. 비록 석유를 직접 가공한 화학비료는 아닐지라도 엄격한 기준으로 따지자면 유기질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엄격하다 힐난하는 이 없지 않지만, 수긍이 간다. 해마다 양을 늘리며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리지 않으면 아예 경작이 불가능한 녹색혁명은 식량이 사람에게 전하는 자연의 순환을 저버리게 했다. 그런 농업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사람에게 피해를 안겼는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녹색혁명의 폐해를 훨씬 능가한다. 지역적 단작이 녹색혁명이라면 유전자 조작은 다국적 기업에 의한 세계적 단작을 강요한다. 석유는 훨씬 더 들어가야 한다.

 

유기적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라. 삼라만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붙일 수 있는 용어를 석유 마구 퍼부어야 생산과 가공이 가능한 미국산 가축사료에 선사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런 사료는 국제 석유 가격이 오르는 한, 값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석유 정점’, 다시 말해 석유를 퍼올리는 양이 소비하는 양보다 줄어들면서 투기자본의 영향권에 놓인 석유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젖소 송아지 수컷을 만원에 팔아넘기거나 굶겨 죽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 우리 목장은 문을 닫거나 과거 꼴을 베거나 방죽의 풀로 끓인 쇠죽으로 한두 마리 유기적으로 키우던 시절로 돌아가야 할 텐데, 상경투쟁하는 모습을 보니, 그럴 의사는 없어 보인다. 대책을 세우겠다는 정부는 경쟁력 운운하며 규모를 더욱 키우려 드는데, 효과가 있든 없든, 그런 목장에서 발생하는 축산분뇨를 유기질 비료로 포장할 수 없다는 천규석 선생의 주장을 부정하기 어렵다.

 

근교 농촌에 쌓인 유기질 비료의 냄새로 보아 가축분뇨를 발효시켰을 것으로 능히 짐작하게 하는데, 가끔 음식물 쓰레기를 가공한 비료도 유기질로 포장된다. 그 비료는 천규석 선생이 인정할 만큼 유기적인가. 우리가 시방 먹는 음식의 정체를 알면 쉽게 판단이 갈 테지만, 역시 회의적이다. 한 사람이 평생 320킬로그램 먹는다는 첨가물과 색소는 과자를 먹는 아이에게 아토피를 안기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연의 순환을 방해한다. 석유를 과소비해야 생산이 가능한 비닐하우스의 농작물들이 대형매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현실은 무엇을 반영하나. 게다가 요즘 농작물은 먼 거리를 달려 식탁에 오른다. 그 점에서 유기농산물 전문매장도 고심해야 한다. 수입하는 과일과 채소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재료까지 따진다면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지 모른다.

 

어떤 엄격한 이는 손수레로 옮기지 못할 거리에서 운송해온 농작물은 재배 방식과 관계없이 유기농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 전시된 열대과일은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에서 날아온 농작물과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유기농산물은 수출하는 순간 그 자격을 잃는다는 건데, 미국과 유럽하고 FTA를 체결했으니 우리는 유기농산물의 기준을 자본에 맡겨야 한단다. 이미 광고로 국내시장 진입을 선언한 외국의 유기농산물, 화학물질을 뿌리지 않았을 뿐 무거운 농기계를 사용하는 재배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석유를 소비했을 그 농산물이 도시의 식품매장에서 생활협동조합의 생존을 위협하더라도 저항하기 어렵다. 유권자의 지지로 선출된 대표든 의원이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투자자 정부 제소가 보장되지 않았던가. 자연의 순환을 방해하는 셈이다.

 

간혹 낙엽을 발효시킨 유기질 비료가 텃밭이나 화원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건 유기질인가. 모르긴 해도, 천규석 선생은 고개를 흔들 것 같다. 걸핏하면 벌레 낀다며 가로수와 공원에 살충제를 퍼붓지 않았나. 그런 곳에서 모은 낙엽을 가을 내내 발효시키려 해도 예전 같지 않다는 양묘장 관리원의 하소연, 들은 적 있다. 나무는 애벌레에게 뜯겨도 생장에 지장이 없을 만큼 잎사귀를 펼친다. 새들이 날아와 조절할 것이라는 걸 오랜 세월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텐데, 살충제는 새들을 쫓아냈다. 새들이 풀과 나무의 씨앗을 떨어뜨려주지 않는 숲은 수명이 짧다. 가로수와 공원처럼 사람이 나무를 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인가. 살충제에 금세 내성을 갖는 애벌레는 순식간에 공원과 가로수의 잎을 갉아낸다. 그래서 더욱 흥건한 농약 세례를 받은 낙엽이 자연 속에서 순환되기 쉽겠나.

 

참 어렵다. 순수성을 따지자면 유기질이라 판단할 비료는 드물거나 거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 노력하면 유기질의 순수성 간격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천규석 선생에게 양해를 구하자. 사람은 제 탐욕을 한순간에 버리지 못하므로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한 품종의 농작물을 거대하게 심어 큰돈을 벌어들이려는 탐욕은 자연의 순환을 거부해왔다. 순환을 잃자 땅은 황폐화되고 사람은 아토피로 고통스러우며 기후는 변화했다. 이대로 지속가능한 내일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면, 이제 복원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발은 머리보다 느리다. 의지 있는 자의 솔선수범과 설득이 농촌은 물론 도시까지 번져야 한다.

 

인천의 한 근교에서 본 유기질 비료에서 파생된 상념이 여기까지 왔다. 어떤 특별한 묘책이 있으랴. 자연의 순환에 순응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일이겠지. 서서히 공감대를 늘리면서. 농약과 화학비료에 찌들어 황폐화된 농토에 더는 화학농업을 지속할 수 없으니, 우선 유기농업을 고민하는 농부를 위해 대규모 축산단지에서 나온 분뇨를 가공한 비료라도 뿌려, 땅을 회복시킬 필요는 있겠다. 그만큼 땅에서 생산된 농작물은 유기적인 관계가 전보다 나아질 게 아닌가. 근교의 밭이 그렇다. 그 땅에서 재배한 농작물의 찌꺼기나 그 농산물을 조리한 음식의 쓰레기를 가공한 비료를 뿌린다면 이후의 유기적인 순수성은 더 좋아지겠지. 그 농작물을 먹은 시민도 건강해지겠지. 나아가 공원과 가로수에 곤충 애벌레가 생겨도 그냥 둔다면 새들이 날아와 처리할 테니, 농약이 묻지 않은 낙엽으로 만든 비료는 유기질이겠지.

 

3월은 영어로 마치(march). 시작한다는 의미다. 동창이 밝아 노고지리가 우지지는 봄이면 농부는 농구를 챙겨 들에 나가 한 해를 시작한다. 씨 뿌려 새싹이 돋으면 벌레가 끼겠지만, 마당에 닭과 개구리가 있다면 자연에서 모두 공존 가능할 정도로 처리할 것이다. 쥐불놀이로 벌레를 쫓아내던 우리 조상은 벌레의 씨는 남겨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벌레가 있어야 새도 개구리도 가까이 온다는 걸 잘 아는 까닭일 텐데, 순환이 보장되는 농토에 가을이 오면 사람도, 닭과 개구리도, 그리고 곤충도, 내년을 기약할 식량을 받을 것이다. 자연은 오랜 세월 그렇게 너그러웠다. 덕분에 도시에 사는 소비자도 건강했다.

 

자연의 순환을 독점하려고 농약을 퍼부으니 부메랑이 되었지만, 자연은 아직 순환한다. 너른 품을 가진 자연은 탕아에게 기댈 언덕을 여전히 제공한다. 유기질 비료를 쌓아둔 인천 근교의 농부와 그 농토에서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사먹는 시민도 파릇파릇 새순을 무던히도 올리는 자연처럼 유기적 관계를 회복했으면 좋겠다. 곧 봄이다. (푸른생협, 20123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8. 7. 00:27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젊은이의 체형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늘씬한 8등신이라기보다 몸에 군살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를 위해 밥을 덜 먹거나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해 꾸준히 운동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그건 서구의 여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왜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날씬한 편일까. 음식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굶주림에 지친 어린이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죽어가는 지역의 시각으로 지독한 역설이지만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비만이 가난의 상징으로 바뀐 지 오래 되었다.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하거나 다이어트에 돌입할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이기 이전에 눈과 코를 자극하는 저렴한 음식이 지천에 널려있는 까닭일 텐데, 가난한 이에게 비만을 일으키는 요인은 음식의 양보다 질과 관련이 있다. 먹는 이와 땅의 건강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무슨 가축을 어떻게 사육해 어떤 방식으로 가공했는지 전혀 모르는 음식에 도덕은 깃들 틈이 없다. 이웃과 나누는 ‘밥’이라기보다 요란한 광고를 앞세우고 나 몰라라 파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량에 양심은 대체로 절연되었다.

 

어느 한쪽에선 차려낸 음식의 40퍼센트 정도를 버리고 어느 한쪽은 한 국자의 음식도 접시에 나눌 수 없는 지구촌의 현실은 식량에 얽힌 역설을 발판으로 한다.

 

 

1. 지역을 떠난 식량

 

평화(平和)는 공평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사람은 예로부터 자신이 속한 마을에서 재배하는 농산물로 밥을 지어 먹었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오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나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제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농산물을 즐겨 먹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에 비해 지위가 우월하다. 농사는 이웃과 함께 땀 흘리며 상부상조하며 짓는다. 마을에서 함께 농사지은 이웃이 서로 나누는 농작물은 갈등을 일으킬 리 없지만 먼 마을의 낯선 농산물은 그렇지 않다. 재배하는 데 누구의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농산물은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

 

1)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식량

 

가공식품에 익숙해진 요즘, 농작물이 식량의 원천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사람이 농작물을 재배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사람은 진화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대부분의 세월을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사냥하거나 수집해 해결했다. 경작이 지금부터 대략 1만 5백 년 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다이아몬드(2005)는 무수한 식물과 동물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사람의 울타리 안에서 재배하거나 사육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길들이기 대단히 어려웠다는 거다.

 

오래 전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은 요즘 하와이와 이스터 섬까지 퍼졌지만 대부분 농사를 지어 식량을 구한다. 지역에 따라 독특한 농산물이 없지 않지만 재배하는 종류는 엇비슷한데 겉보기 같아도 지역에 따라 품종의 차이는 있다. 지역에 따라 쌀과 콩의 종류가 다르고 소와 돼지 품종이 다르다. 선조에게 물려받은 종자의 품종, 그리고 경작과 사육 기술을 환경에 맞게 개량하면서 다채로워진 결과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의 농작물을 맛볼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은 지역의 식량에 만족했을 것이다.

 

해마다 비슷한 수확을 기대하지만 어쩌다 뜻하지 않은 흉작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이웃과 식량을 나눠 해결했을 테지만 식솔이 늘거나 수확량이 줄어든다면 마을의 이웃 일부가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마을은 늘 자급자족했고 이웃의 식성도 대체로 비슷했을 것이다. 한데 높은 산이나 넓은 강, 바다로 분리된 지역은 환경이 사뭇 다르다. 따라서 재배하거나 사육하는 농작물과 가축의 종류가 다를 수 있다. 재배하는 농작물이 다른 산마을과 들마을과 갯마을도 식성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형성된 식성은 문화가 되었는데, 문화는 차이일 뿐 우열일 수 없다.

 

2) 식량의 상품화

 

옥수수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주민의 오랜 주식은 또르띨라다. 옥수수를 갈아 반죽해 둥글게 펴서 화덕에 구은 또르띨라에 취향에 따라 으깬 풋고추나 양파나 토마토를 얹고 말아 먹거나 여유가 있다면 볶은 고기를 넣기도 한다. 가축을 사육하고 옥수수와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라면 식구의 밥상을 차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없을 것이다. 화덕은 물려받았고 땔감은 주변에서 구할 테니 식구 수에 맞게 그릇 몇 가지만 구하면 충분했다.

 

1990년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산 옥수수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값싼 또르띨라가 조리하는 수고를 덜자 주민들은 화덕을 버리는데 그치지 않은 것이다. 싫든 좋든 화폐 경제권으로 편입된 것인데, 일단 편입되자 돈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자급자족할 때 요긴했던 정도의 돈으로 쪼들릴 수밖에 없는 농민은 돈벌이를 위한 농작물을 ‘상품’으로, 다시 말해 ‘농산품’으로 심어야했고 그것도 모자라면 더 많은 돈을 위해 미국의 공장이 몰려 있는 국경도시로 옮겨야 했다.

 

멕시코에 제한된 사정일 리 없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여러 차례 추진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도시의 공장에 농민을 보내야 했듯, 어느 나라나 산업사회 초기에는 농촌의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었다. 이른바 향도이촌(向都移村)이다. 정부는 노동자가 된 농민이 낮은 임금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농산품의 가격을 통제했고, 젊은이가 대거 빠져나간 농촌은 농촌대로 돈벌이를 위해 상품가치가 높은 농산품을 집중 재배하게 되었다. 그런 농업은 경쟁을 부추겼고 경쟁은 이웃과 지역을 넘어 국가 사이로 번졌다.

 

청송군과 영양군의 고추는 순창군과 경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값싸게 들어오는 고추와 생존권을 놓고 경쟁한다. 가공식품은 더하다. 영국이 수입하는 치즈는 영국에서 수출하는 치즈와 경쟁한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쇠고기는 미국산만이 아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들어오지만 캐나다의 쇠고기도 한우와 경쟁을 선언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엇비슷한 사정이다. 농수축산물이 경쟁 상품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익은 생산자나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부분 기업과 관련 자본에 돌아간다(보베 외, 2002).

 

 

2. 다양성을 잃은 농업

 

추석이면 굳이 승용차로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고향에 다녀오는 이가 있다. 귀경길에 나설 때마다 부모는 트렁크에 하나 가득 수확한 한해 농작물을 가지가지 실어준다는 게 아닌가.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아도 자식들에 대한 부모님의 애틋한 정성을 몸으로 느낄 뿐 아니라 그 농작물로 밥 지어 먹을 때마다 고향 땅의 정취에 흠뻑 젖을 수 있다고 그는 고마워한다. 돈벌이를 위해 한두 가지 농산품만 심는 농촌이라면 언감생심 생각할 수 없는 호강이 아닐 수 없다.

 

1) 씨앗 주권이 사라지다

 

멀지 않은 과거, 적어도 농부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갈무리해둔 씨앗은 절대 먹지 않았지만 더 많은 수확을 보장한다는 씨앗을 종묘상에서 일괄 구입하는 요즘, 사정이 달라졌다. 수확한 농산품을 전량 시장에 내놓아야 하고 그렇게 하여 벌어들인 돈을 쥐고 끼니때마다 슈퍼마켓 식품 코너를 기웃거려야 한다. 내 땅에서 내가 농사지은 ‘농작물’은 팔아야 할 ‘농산품’이므로 먹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 거다. 농촌은 시방 늙었다. 여러 농산물을 재배하기 벅찬 농촌에서 ‘환금작물’, 다시 말해 돈이 될 농산품만 한둘 심는 일은 이제 이상스럽지 않다. 이른바 ‘소품종 다량생산’의 ‘단작’이다.

 

한 농산품만 재배하면 생태계가 단순해져 환경변화에 대한 완충력이 줄어든다. 홍수와 가뭄 피해는 물론, 해충의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식물이 몰려있으니 해충은 급속히 늘어나는데 해충을 구제하는 천적이 없으니 상품가치를 잃고 싶지 않은 농부는 살충제로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단일 작물이 요구하는 영양분이 금방 부족해지니 농부는 비료를 뿌려야하는데 그 비료는 잡초까지 불러들인다. 살충제의 편의에 익숙해진 농부는 제초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환금작물의 씨앗은 자급자족할 때 뿌렸던 씨앗과 여러모로 다르다. 종묘상에게 구입해야 하는 씨앗은 다수확에 맞게 육종한 까닭에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다. 따라서 다수확을 기대하려면 씨앗이 요구하는 조건을 잘 맞춰야 한다. 맞지 않으면 수확이 보잘것없게 된다. 마을의 어른에게 물어 재배해도 소용없다. 종자회사에서 권고하는 매뉴얼을 참조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매뉴얼대로 농사지어도 실패했을 경우 종묘상이나 종자회사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 논리로 보아, 수확량이 늘면 시장에서 가격은 떨어진다. 내 수확량이 늘어나는 대신 다른 농부는 형편없어야 큰돈을 차지할 텐데, 그러려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투자가 절실하게 된다는 거다.

 

1960년대 초 세상에 등장한 녹색혁명은 단작을 세계화했다. 다양한 씨앗을 여기저기 심던 농촌은 녹색혁명 품종의 씨앗에 맞게 농토를 획일적으로 다듬었고 씨앗이 요구하는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적기에 적량 살포해야하는 농부는 관개농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가격이 떨어지는 걸 막고 싶은 농부는 농산품을 구입하는 정부 또는 상인의 권고에 따라 재배 면적을 줄여야 했고 지역에 따라 농산품의 종류를제한하게 되었다. 이른바 ‘비교우위 농업’이 권장된 것이다.

 

비교우위 농업은 지역을 넘어 국가 단위로 넓어졌다. 고추와 마늘 주산지가 감자와 배추 주산지와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옥수수와 콩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옥수수와 콩만이 아니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대신 멀쩡한 농토에 공장을 지어 외화를 벌어들인다. 우리만이 아니다.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쌀농사의 적지인 필리핀도 농토에 공장을 지었다. 그런데 벌어들이는 외화보다 국제 곡물의 수입 부담이 크자 식량 위기가 심화되었고 사회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벨로, 2010).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기대 자국의 식량기지를 없앤 혹독한 대가를 치룬 것인데, 국제 농산품 재고가 모자라는 시기가 온다면 우리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녹색혁명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학농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땅이 황폐화된 것이다. 이제 농부는 감산을 피하기 위해 농약과 비료를 뿌린다. 그러자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감언이설로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농산물이므로 그 제초제를 뿌려도 끄떡없을 것이니 제초제로 잡초를 모두 죽인 농토에서 우리가 개발한 콩과 유채와 같은 농산품을 심으라고 세계의 농부들을 유혹하고 나선 것이다. 살충 효과를 가진 유전자조작 면화나 옥수수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씨앗은 오래지 않아 부작용을 드러냈다. 씨앗에 포함된 조작된 유전자가 주위의 엉뚱한 식물로 옮겨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사료로 먹는 가축이나 심지어 사람에게 예측 못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김은진, 2009).

 

이제 다수확 품종을 심는 농촌은 씨앗을 갈무리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하면 안 된다. 계약 위반이므로 적발되면 적지 않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종자기업이 통폐합되면서 농부는 그 나라 농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계 기업의 씨앗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주권을 잃은 것이다.

 

2) 다국적기업 등장

 

비교우위 농업은 다국적기업의 전횡을 낳았다. 막대하게 수확한 농산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팔 수 없는 농부는 결국 다국적기업에 넘기게 되고, 다국적기업은 농산품의 국제교역에 주도권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들이 농산품의 구입과 판매 시의 가격을 통제하는 만큼, 생산자나 소비자는 다국적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다국적기업들은 서로 경쟁한다. 통폐합해 규모를 키우는 다국적기업은 농산품 생산과 가공, 운송에 적극 개입할 뿐 아니라 관련 산업을 수직 계열화했다. 농산품과 사료, 축산과 육가공을 지배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제 교역에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다국적기업에 좌지우지되는 국제 곡물은 이제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상품이 소비자에게 인도되기도 전에 대금을 주고받는 선물거래는 소문에 민감하다. 수출국의 흉작 소식은 재고와 관계없이 가격을 치솟게 만드는 것이다.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른 가격으로 식량을 구입해야 한다. 외화가 부족하다면 폭동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데, 투자자의 이익에 우선해야 하는 다국적기업은 생산자와 소비자, 외화가 없어 굶주리는 지역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3) 공장식 축산업의 등장

 

다수확 품종을 집중 재배하면서 남아도는 농산품을 사료로 가공하면서 축산업이 거대하게 변했다. 방목하던 목장은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공장식 축산업이 차지한 것이다. 공장식 축산도 가축을 다수확 품종으로 획일화시켰다. 소, 돼지, 양, 닭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지고, 그 만큼 사육 환경이 획일화되었다. 이제 모든 가축은 예측 가능한 시간 내에 몸집이 어느 이상 늘어나야 한다. 그를 위해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콩을 가공한 사료를 먹이며 성장호르몬을 주입한다. 그래야 어려도 덩치가 커지는 가축을 빨리 도살해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좁은 사육장에 유전자가 단순한 가축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 질병이 창궐하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 따라서 항생제를 사전에 처방하는 농부는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상처를 입히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서로 쪼지 못하도록 병아리의 뾰족한 부리를 진작 뭉툭하게 자르거나 서로 물어뜯지 못하도록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렇듯, 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의 생명은 종중되지 않고 오로지 상품으로 취급될 따름이다.

 

가축들은 습성에 맞지 않는 사료에 의존하면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지만 그 전에 도살할 테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인수공통 질병이 인간에게 만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류독감을 비롯해 구제역과 수족구병 만이 아니다.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를 긴장시키는 광우병도 공장식 축산이 원인을 제공했다.

 

4) 문화를 잃은 식량

 

요즘 돼지고기는 세계가 똑같다. 미국산 삼겹살이 우리 삼겹살과 맛이 같다. 품종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계란도 우유도 마찬가지고 쇠고기와 닭고기도 그렇다. 농산품만이 아니다. 그 가공식품도 세계가 똑같다. 식재료와 식단 뿐 아니라 조리방법까지 세계가 공통인 까닭에 다국적기업이 공급하는 패스트푸드는 물론이다. 식성의 세계화라기보다 음식에 깃든 문화마저 상품으로 획일화된 것이다.

 

슈퍼마켓에 전시된 수많은 가공식품의 상표는 제각각이지만 재료는 엇비슷하다. 쇠고기는 옥수수의 가공식품이고 계란과 소시지도 마찬가지라고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마이클 폴란(2008)은 주장한다. 그 뿐이 아니다. 설탕을 대신하는 당분으로 옥수수가 가공돼 음료수에 들어간 이후, 비만 인구가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옥수수 덕분에 값싼 육류가 흔해지고 칼로리가 높은 음료수를 거푸 마시면서 여유가 없는 계층의 몸이 불어난 것이다. 이제 서구사회에서 비만은 가난의 상징이 되었다. 식량에 칼로리는 지나치게 높지만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게 되면서 성인병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아비만과 소아당뇨병도 전에 없이 늘었다.

 

 

3. 황폐화된 식량 환경

 

최근 미국과 유럽은 꿀벌이 사라진다고 아우성이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그리 밝지 않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많은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 어쩌면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 꿀벌의 집단이 붕괴하는 현상은 사람의 욕심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많은 꿀을 빨리 모으는 품종을 양봉농가에 집중 보급한 결과,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진 꿀벌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벌통 관리에 애를 먹는 양봉농가가 애벌레에 알을 낳는 응애의 공격을 차단하고자 살충제를 뿌렸건만 살충제가 오히려 꿀벌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피해는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가루수정을 위해 꿀벌을 필요로 하는 아몬드 농업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대하게 밀집되면서 꿀벌 집단 붕괴 현상이 커진 것으로 제이콥슨(2009)은 주장한다. 많은 아몬드를 빨리 여는 나무를 넓은 면적에 획일적으로 심자 꽃이 피는 2주일 동안 미국은 물론 유럽의 꿀벌까지 총동원해야 했는데, 그때 질병을 공유한 벌들이 가루수정을 마치고 다시 퍼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수입하는 세계 아몬드 수요의 80퍼센트를 캘리포니아에서 떠맡고 있다.

 

1) 전용되는 식량기지

 

우리 정부는 농토 확보 명분으로 매립한 새만금 일원의 갯벌을 다시 도시로 개발하려고 한다. 개발로 사라지는 농토를 대신하겠다던 그 갯벌은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일 뿐 아니라 자연스런 식량보고였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칼로리와 영양분은 물론이고 가격으로 볼 때 육지의 어떤 농토보다 경제적 가치가 높지만 한시적 개발 이익을 위해 선조가 물려준 갯벌을 매립하고 만 것이다. 막대한 플랑크톤의 탄소동화작용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상승된 해수면을 타고 넘어오는 파고를 완충하는 조간대를 우리는 당대에 잃었다. 후손의 생명은 그만큼 위협받을 것이다.

 

바다와 같던 중국의 황하가 갈수기에 마르는 것은 농토를 도시와 공업단지로 전용하면서 강물을 돌렸기 때문이다. 어디 황하 만이랴. 식량기지를 개발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 아니다. 이제 화학농업의 한계가 드러나는데 세계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앞으로 늘어난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외채에 시달리는 국가는 기존 농토에 헐값으로 수출되는 화훼작물이나 기호식품을 재배한다.

 

2) 석유위기 앞의 농업

 

지금은 석유 농업이다.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살충제와 제초제도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기계화된 현대농업은 석유 없이 파종, 경작, 수확, 건조, 운반이 불가능하다. 1000칼로리의 옥수수를 수확하려면 그 10배의 석유를 쏟아야 하고, 그렇게 재배한 옥수수를 10킬로그램 먹여야 쇠고기 1킬로그램을 겨우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고기로 배불리면 그 10배의 옥수수를 소비하는 셈이고 다시 그 10배의 석유를 낭비하는 꼴이다.

 

최근 석유위기를 극복하려는 수단의 일환으로 바이오연료를 공급하려는 정책이 지구촌의 일각에서 섣불리 추진되고 있다. 옥수수나 사탕수수로 디젤과 에탄올을 정제하겠다는 건데, 그를 위해 소비되는 석유는 둘째 치고, 자동차 한 대에 주유하는데 들어가는 에탄올은 한 사람이 1년 소비할 곡물을 가공해야 한다고 환경운동가는 주장한다(마슬린, 2010: 141). 지구온난화를 대비해 도시에 ‘농장건물’을 짓겠다는 사람도 있다. 에너지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LED와 태양빛을 실내로 끌어들여 농산품을 수경재배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경향신문, 2009.7.1). 뉴욕 맨해튼에서 경제성 있다는 농장빌딩을 우리나라에 추진하고 있는데 과연 타당할까. 제안자는 30층 높이의 건물을 짓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물론이고 수경재배를 위해 들어가는 화학물질도 에너지 투입 없이 공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땅에 뿌리 내리지 않은 농산품이 먹는 이에게 장차 안전할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3) 식품 첨가물의 확산

 

다국적기업의 거대한 화물선에 실려 오대양과 육대주를 장시간 누벼야하는 농산품은 중간에 상하면 상품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수확 후 농약 살포는 필수적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공장식으로 밀집시켜 사육하는 가축처럼 바다나 호수에서 양식하는 어류도 항생제와 호르몬을 비롯한 많은 화학약품을 투여한다. 또한 한 번 가공하면 오래 유통시켜야 하는 가공식품은 맛과 색이 변하지 않은 상태로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많은 화학약품을 첨가하고 세계 곳곳에 지점을 확보한 패스트푸드 역시 동일한 맛과 향을 유지하려고 합성 첨가물을 넣는다.

 

넨시 드빌(2008)은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고 경고하고 안병준(2005)은 “아이에게 과자 대신 차라리 담배를 주는 게 낫다.”고 어처구니없어 한다. 아토피는 오염된 대기만 원인이 아니다. 우리 몸의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식품 속의 첨가물과 무관하지 않다. 한 사람이 평생 320킬로그램을 섭취한다고 야마모토 히로토(2006)가 주장하는 화학물질이 그것이다.

 

4) 음식 쓰레기, 해양오염, 그리고 남획

 

늘어나는 음식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바다에 버려 해양오염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어장의 물고기들이 허겁지겁 버리는 그 쓰레기를 먹기도 한다. 결국 우리 식탁에 오를 물고기들이다. 미국은 음식 쓰레기가 전체 쓰레기의 40퍼센트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미국이나 우리나 단지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건드리지 않은 멀쩡한 식품이 쓰레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버리는 식품으로 굶주리는 세계의 인구를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양이다.

 

남획으로 인한 해양어류의 고갈은 양식업의 규모를 키우고 있으나 그로 인한 해안의 파괴는 쓰나미의 피해를 키울 뿐 아니라 어족자원 보전에도 역행한다. 많은 양식장이 어패류의 산란장을 파괴하고 들어서는데, 항생제에 찌들거나 세균에 감염된 오폐수가 걷잡을 수 없게 배출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와 캐나다 일원의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비정상적으로 덩치를 키운 유전자조작 어류의 양식을 연구하고 있다. 만일 그런 어류가 양식장을 빠져나가 조작된 유전자를 퍼뜨릴 경우 어떤 생태적 피해가 확산될까. 사전에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대책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5)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

 

지난 100년 동안 섭씨 0.7도 정도 상승한 지구촌의 기온은 태풍과 허리케인의 강도와 횟수를 늘렸고 경작지를 메마르게 했을 뿐 아니라 사막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세계 평균보다 정도가 심해 1.4도 높아진 우리나라의 해역은 이미 아열대화 되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보라문어와 같은 난대성 어류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명태와 대구와 같은 한대성 어류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해초가 우거졌던 바위에 백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늘어나는데, 육지도 마찬가지다. 감나무의 남방한계선이 북상하면서 사과의 재배지가 높은 위도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온난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열대과일을 재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농작물의 경작은 기온만이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온난화되면서 토양미생물의 종류와 분포 상황이 바뀌고 강우의 양과 시기가 변하면 당장 기존의 농작물부터 잃게 될 테지만 그렇다고 아열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이 쉽게 조성될 리 없다. 열대과일은커녕 식량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막화도 걱정이다. 많은 예산과 인력으로 나무를 심고 초지를 조성하는 중국도 내몽고 일원에 확산되는 사막화를 진정시키지 못하는데 몽골의 사정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앞으로 사막화되는 초원은 가축 방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해양 곳곳의 어장 역시 전에 없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해수 이동이 변하기 때문인데 그 뿐이 아니다. 다수확 품종 위주의 지나친 품종개량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줄어든 농산품이 온난화된 기후에 견딜 수 없다면 내일의 식량 사정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4. 다시 지역으로

 

기아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라고 해서 기름진 경작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외채가 국가를 짓누르고 해외 기업이 경작지를 독차지하는 탓에 굶주린다. 부정한 정권에 제공된 외채였고 그 외채에 대한 이자를 어느 정도 챙겼다면 이제 탕감할 때가 되었다고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 출신인 지글러(2008)는 주장한다. 굶주리는 지역에 그때그때 식량을 공급하는 자선은 한시적 대책에 불과하다. 지글러의 주장처럼 떳떳하지 못한 외채였다면 탕감하여 수출용 농산품 재배에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도록 배려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땅에서 평화롭게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안을 모색하는 편이 근본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지역의 식량을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식량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 그를 위해 식량은 안보가 아닌 주권 차원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면 모를까, 제 나라의 사정이 어두워져도 식량을 수출하는 국가는 드물다. 다국적기업이라면 국제시장에 식량이 부족할 때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안정된 식량을 확보하려면 각국 정부는 식량기지를 해외에 마련하기보다 국내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토를 확보하는 게 안정적이다. 바로 ‘식량주권’이다.

 

식량이 무기 또는 투기화 된 마당에 축적한 외화로 식량을 수입하려는 자세는 석유위기가 멀지 않은 시대의 대안일 수 없다. 분배의 불균형이 있는 세계 식량은 위기의 경계에 있을지언정 뿐 모자라지 않는다. 위기는 위험과 기화를 동시에 제공한다. 우리는 위기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이때, 예측할 수 없는 환경변화에 최대한 견딜 수 있도록 농산물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 지역은 제철 제 고장 농산물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다품종 소량 생산의 가능성을 타진해야 하고 그를 전제로 농토를 확보해야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자면 농사에 종사하는 인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할 텐데 당장 어렵다면 지역의 자치단체는 유럽과 일본처럼 도시 근교에 텃밭을 조성해 분양하는 방법을 선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식량은 자신이 농사지은 농작물이나 사육한 가축이지만 당장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신뢰할 수 있는 이가 생산했거나 키운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를 알지 못한다면 그런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서구의 유기농 마켓이나 우리나라의 생활협동조합이 그런 상점의 예가 된다. 생활협동조합의 소비자 조합원이 되어 생산자 조합원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힘겹게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내놓은 제철 제 고장의 농산물과 축산물을 흔쾌히 구입하며 가족과 밥을 지어 먹는다면 땅도 살리고 농민도 살리고 나와 가족의 내일도 살릴 수 있다. 가격이 비싼 만큼 넘치지 않게 구입해 다 먹는다면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고 비만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진정한 유기농산물의 자격은 제철 제 고장에서 생산해야 얻을 수 있다. 운송 과정에서 많은 석유를 소비한 수입 농산물은 유기농산물의 자격을 잃는다. 유기농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이나 운송 과정에서 농약을 뿌리지 않은 유기농 열대과일은 먹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다만 아직 피할 수 없다면 생산자의 권리를 수용한 ‘공정무역’ 농산물을 구입하는 편이 바람직하리라. 폴란(2009)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 상품이 아니라 음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덧붙여 음식 쓰레기를 되도록 줄이고 몸이 비대해지지 않도록 과식을 삼가하고 주로 채식을 하자라고 제안한다. 아무래도 가축을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과정에서 식량이 낭비되고 물과 에너지가 과소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인심과 환경이 지금보다 좋았던 시절, 우리 조상의 식성이다. 우리나 세계나 자연스런 식단에 언제나 답이 있다. (방송대 교재, <세계의 정치와 경제> 중, 2010년 12월 발행 예정)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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