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6. 1. 3. 14:48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평원과 물결치듯 미끄러지는 모래언덕, 석양의 모래사막을 지나가는 대상의 긴 행렬, 가끔 회오리치는 모래폭풍. 이들은 우리가 사막을 연상하는 낭만적 기호들이다. 올해 유엔은 사막과 사막화를 올해의 화두로 삼았다. 지구촌의 지친 시민들에게 낭만을 안겨주려는 의도였을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가장 위급한 환경재앙으로 꼽은 사막화, 해마다 1200만 헥타아르의 땅이 불모지로 바뀌어 100개 국 10억 인구의 삶을 위협하는 사막화의 피해 범위에서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해마다 그 빈도와 강도를 갱신하는 황사현상은 중국의 사막화와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이 지나면서 불어칠 황사는 작년 가을에도 우리나라를 덮쳤다. 지구촌의 가난한 이들을 더욱 궁핍하게 하는 사막과 사막화는 그 범위를 계속 확산한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거세어진 황사와 더불어, 피해는 사막화의 범위를 넘어선다.

 

초겨울부터 매섭게 몰아치는 이번 추위는 기상 관측 이래 최대의 눈을 서해안 일대에 쌓아 쌀 개방 이후 시름에 찬 농민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강요했다. 전문가가 아니므로 조심스레 진단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 눈, 혹시 중국의 사막화와 관련 있는 건 아닐까. 북경 일대의 사막화는 삼협댐을 축조하게 했고, 그 물은 북경으로 보낸다 한다. 그 양자강의 따뜻한 물기는 구름을 타서 한반도로 향하고, 마침 남하하는 찬 시베리아 대륙성 고기압과 만나 우리 서해안에 ‘눈풍선’을 터뜨린 건 아닐까. 일기예보 시간에 기상 캐스터가 보여주는 지도를 살펴보니 의심스럽다. 장마철 지나자마자 양자강에서 오는 ‘물풍선’이 한반도에서 터져 국지성호우를 연발하는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사막이 는다면 믿지 않을 사람이 많겠지만, 우리나라도 도시를 중심으로 사막이 많이 늘어났다. 도시화의 확장으로 녹지와 근교농업단지가 아파트와 상가로 잠식되고 농경지에 들어선 비닐하우스도 시멘트와 아스팔트처럼 내리는 눈과 비를 잠시도 머금지 못한다. 모래는 없지만 일종의 분명한 사막이다. 사막에 내리는 거센 빗물은 삽시간에 낮은 곳으로 흘러 저지대 사람들에게 감당 못할 수해를 강요하고, 내리는 눈은 도시에서 교통사고를 빈발하게 하고, 농촌에서 비닐하우스를 거침없이 내려앉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좁은 비닐하우스에서 겨울을 나는 가축들은 느닷없이 때죽음을 맞는다.

 

한 여름, 몸을 지치게 하던 뙤약볕은 이내 뭉게구름을 만들어 쏴-, 한바탕 시원한 소나기를 뿌려주었다. 사막화되기 전, 우리나라에서 자주 만다던 풍경이다. 요즘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아래, 뭉게구름과 소나기는 아주 드물어졌다. 도시화 확장으로 천지사방이 사막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민들은 하나 불편하지 않다. 냉온수가 보장되는 수돗물, 중앙난방, 에어컨들이 완비된 까닭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런 문명의 이기는 지금처럼 사막화가 진행되는 와중에서 언제까지 시민들의 안락한 삶을 보장할 수 있을까. 자원 낭비를 전제하는 안락한 삶은 한시적이고, 우리의 가없는 소비는 사막화를 부추기는데.

 

유엔은 후손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현재 우리가 구가하는 맹목적인 낭비적 삶을 반성하자고 올해를 사막과 사막화의 해로 정했을 텐데, 도로와 스키장으로 육지의 숲은 물론, 마구잡이로 바다의 숲인 갯벌을 매립하는 우리네 삶은 어떤가.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후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생태계를 사막으로 절딴 내지 않던가. 끝 모르는 에너지 낭비는 기상이변 속출로 이어지건만 전쟁을 불사하는 한이 있어도 낭비적 삶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다. 유권자들 보는 앞에서 어깨띠 걸고 심는 묘목보다 해제된 그린벨트와 근교 산림지대에서 사라지는 나무와 숲은 얼마나 되나. 바다의 숲인 갯벌은 우리 시대에 다 사라질 지경이 아닌가. 타는 갈증을 느낀 사람은 한 모금의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눈앞의 생태계를 허무는 사막화만이 아니다. 후손을 위해, 마음속의 사막화도 막아야 한다. (요즘세상, 2006.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