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2. 18. 15:37

 

우리나라 바둑의 기반을 닦은 당대의 최고수 고 조남철 국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겼다. 정계의 실력자를 포함해 만나는 이마다 어떻게 해야 바둑 실력을 높일 수 있는가묻는다면서 자신도 그 게 가장 궁금한데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면 자신의 일에 천착할수록 어려워지나 본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이어지는 이른바 ‘MB화법은 그 원리를 부정한다.

 

MB화법은 측근에 쉽게 전염되는 모양이다. 1월의 유래 없던 엄동설한이 위력을 잃자 구제역 전파가 주춤해진 2월 중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인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위 위원장 정운천 최고위원은 농사를 20년 지어봐서 아는데, 침출수는 화학적 폐기물이 아니라 유기물이므로 잘 활용하면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게 아닌가. 정치 입문 전에 키위 재배로 재미를 본 그가 죽은 가축의 침출수로 농사를 지었다는 소문은 없었다.

 

구제역에 감염된 농장은 물론이고 거기와 가깝다는 이유로 멀쩡한 상태에서 살처분된 돼지와 소들이 전국 4000군데에 매립되었다. 소는 알락사가 아니라 근육이완제로 죽인 뒤 매립했고 대부분의 돼지는 생매장했다. 그러자 썩어가는 사체가 침출수를 내놓는데 그치지 않았다. 혹한이 불리자 생매장된 돼지의 사체 내부에서 가스가 차오르며 부풀었고, 급기야 표층을 뚫으며 튀어나와 인간이 저지른 만행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50년 이래 최악의 전파속도를 보인 한국의 구제역에 대한 경계령을 세계 각국에 전했다. 50년 전에도 발굽이 두개인 가축 사이에 발생하는 구제역이 있어도 그리 무섭지 않았으니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이번 한국의 구제역을 사상 최악으로 판단한 것인데, 그도 그럴 게, 허둥대다 전국에 전파한 초동대처의 실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침출수가 식수원을 오염시킬 정도로 엉망인 매립과 그 관리, 썩어 노출된 가축을 먹자고 덤벼드는 독수리가 전파할 바이러스와 세균은 얼마나 들끓었겠는가.

 

한 국회의원은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의 양을 500밀리리터 생수병 12천만 개라고 계산했다. 그 매립지의 절반 이상이 하천과 가까운데, 해빙기 이후 흉흉하게 발생할 일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안일하기만 했다. 엄동설한에 허둥대며 매립한 돼지 300만 마리, 15만 마리, 그리고 조류독감으로 400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까지 생매장한 매립지를 해빙기에 한꺼번에 안전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1997년 대만과 2001년 영국에서 살처분된 가축이 우리보다 많았는데, 우리나라 구제역의 감염속도가 더 빨랐던 이유는 뭘까. 바이러스의 특징일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우리 농정당국의 어설픈 대처가 크게 작용했을 터. 하지만 다른 데에서 더 큰 원인을 찾아야 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가축들을 좁은 축사에 밀집시켜 사육하는 농장들이 근접해 있지 않았나. 일단 한 농장에 감염되면 순식간에 주변으로 전파될 조건이므로 끔찍한 결과를 빚었을 것이다. ‘공장식 축산의 필연적인 부작용이었다.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고 많은 가축을 난폭하게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은 가축의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한 뒤 새끼를 낳고 키우는 일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그저 종축장에서 자돈을 사와 특수 배합사료로 살을 찌울 따름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돼지는 3가지로 구별한다. 죽어라고 정액만 쏟아내는 종돈과 하염없이 임신만 거듭하는 모돈, 그리고 사육장에서 금세 몸이 불어나면 도살장으로 직행하는 자돈이 그것인데, 소와 닭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과학축산이 그리 빚었다.

 

우리는 시방 어느 지역의 역대 황제보다 잘 먹는다. 한겨울에 계란만큼 큰 딸기를 먹고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쇠고기를 언제든 즐길 수 있다. 그를 위해 화학비료를 막대하게 뿌리는 광활한 농토에 끝 간 데 없이 옥수수를 심었고, 잡초와 해충을 죽이려고 농약을 듬뿍 뿌려야 했다. 그 뿐인가. 옥수수의 유전자까지 조작했다. 그런 옥수수는 석유를 마구 들이키는 농기계를 사용해야 하고 거대한 트럭과 선박에 실려 오대양 육대주를 달려야 한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전문가는 옥수수에서 1칼로리를 얻기 위해 석유 10칼로리를 부어야 한다고 분석한다. 그런 옥수수 16킬로그램을 먹이면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는다. 돼지고기는 9킬로그램, 닭은 4킬로그램의 옥수수를 먹어야 1킬로그램의 살코기를 내준다.

 

기상이변을 연출하는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식량위기를 예고하는 요즘, 전문가들은 석유위기가 멀지 않았다고 걱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기를 지나치게 먹는다. 어린이 성인병과 젊은이의 퇴행성질환이 증가하는 원인이기도 한데, 10억 인구는 여전히 굶주린다. 가축은 넘치지만 자연의 동식물은 연실 절종된다. 지독한 역설이다. 이번 구제역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강력한 경고다. 늦기 전에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철 제고장 농산물을 유기적으로 재배해 이웃과 나누고 고기를 특별할 날에만 먹던 시절로. (야곱의우물, 2011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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