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5. 3. 31. 22:47


 올 화이트데이는 하필 토요일이었다. 화이트데이가 다가오자 대학가 제과점마다 잔뜩 쌓은 사탕을 팔려고 안간힘이었는데 모르긴 해도 재고가 상당할 듯하다. 상하는 물건이 아니니 두고두고 팔면 되겠지만 할인행사도 이어질 테지.


언제부터 연인 사이에 사탕을 주고받는 날이 학기 초 대학가를 달궜는지 알 수 없는데, 어려서 까까 사주겠다는 어른이 있을 때 단거주세요!” 말했겠지? 사탕과 같이 단거를 소리 그대로 영어로 바꾸면 ‘danger’가 된다. 그 단어는 단거는 위험하다고 외친다. 누군가 설탕은 위험한 거라며 그런 우스개를 꺼냈는데, 설탕을 입에 털어넣는 일은 드물지만 설탕이 들어가는 식품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커피도 그중 하나겠지.


잠을 방해한다고 믿어 한동안 피했던 커피. 이젠 하루 한 잔 정도는 마시지만 원두의 깊은 맛을 모른다. 어떤 커피는 그저 쓰다. 얼마나 볶았는지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끼는 처지에 단거를 섞어야 아무래도 커피가 잘 넘어가겠지만 웬만하면 사양한다. 단거가 위험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설탕 대신 내놓는 커피 전문점의 시럽을 의심하는 까닭이다. 유전자를 조작한 옥수수로 가공한 게 거의 틀림없지 않겠나. 한데, 설탕도 유전자조작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단거는 사람만 좋아하지 않는다. 사탕수수를 심으면 같이 먹자고 덤벼드는 곤충이 적지 않을 텐데, 오롯이 한 가지 품종의 사탕수수를 드넓게 심는 만큼 농부는 해충구제에 어려움을 겪을 게 틀림없다. 적지 않은 살충제를 뿌릴 테지만 곤충들은 이내 그 살충제의 내성을 확보하겠지. 독성을 더 높여도 내성을 더 높이니 소용없다 느낄 즈음, 농부는 강력해진 살충제 중독으로 쓰러지기 직전이겠지. 그때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독점 판매하는 유전자조작 씨앗이 광고를 앞세워 고개를 내민다.


해충을 죽이는 옥수수 씨앗이라면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도 된단다. 비용도 줄어들고 생산량은 늘어난단다. 그런 광고를 내세워 유전자 조작 옥수수의 종자 시장을 석권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다국적기업이 사탕수수 분야를 외면할 리 없다는 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설탕의 97%가 유전자조작이라고 한다.


옥수수와 사탕수수밭을 기웃거리는 곤충이 조작된 유전자의 독성마저 물리칠 거라는 상상은 왜 하지 않았을까?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사탕수수를 먹은 곤충은 새나 도마뱀과 같은 동물이 먹을 텐데 그런 동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먹이사슬로 생태계는 어떻게 변할지 왜 진작 살피지 않았을까? 꽃가루가 퍼지면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옥수수와 사탕수수밭을 오염시킬 가능성은 무시할 걸까?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사온 사탕의 원료가 옥수수 시럽인지 설탕인지 모르고, 그 재료가 유전자를 조작한 건지 모른다. 도무지 표시가 없다. 커피는 유전자조작이 아니라 믿고 마시지만 공정무역 제품이라면 마음이 편하다. 공정무역으로 수입해 가공한 옥수수 시럽은 본 적 없는데 설탕은 있다. 그렇다면 공정무역 설탕으로 만드는 사탕은 불가능할까? 진정한 사랑의 징표가 되지 않을까? 화이트데이를 보내면서 몸 뿐 아니라 생태계까지 안전하게 하는 단거를 상상해본다. (푸른두레생협 소식지, 2015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