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4. 4. 16. 18:22


 겨우내 저장식품만 먹다 입맛 잃은 조상은 봄철 논둑에서 머위를 뜯어 된장에 버무려 나물로 무쳤다. 머위로 입맛을 되찾았다지만 먹을거리가 풍성해 그런가? 요즘 젊은이들은 쓰디쓴 머위나물을 대체로 외면한다. 여러 식물과 자리를 다퉈야 하는 자연에서 잎사귀가 쓰다면 초식동물의 접근을 예방하는데 아무래도 유리하다. 입맛을 기억하는 동안 접근하지 않을 것인데, 사람은 예외다. 그 쓴 머위까지 뜯어 먹는다.


요즘은 머위까지 재배하는 걸까?, 얼마 전, 식탁에 올라온 머위나물은 예전보다 덜 썼다. 씨를 받아 여러 차례 재배하면 더덕의 향기가 약해지듯 시장에서 파는 머위도 재배한지 오래된 건지 모른다. 머위가 봄철 별미라 해도 젊은이들 입맛을 유혹하긴 어렵다. 지독하게 쓴 머위는 잘 팔릴 수 없다. 잘 팔리는 머위의 씨를 선택해 재배한다면 쓴맛은 많이 약해질 것이다. 잘 팔릴 수 있지만 그 머위를 뿌리면 초식동물이 꺼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건 아닐까? 안심해도 좋겠다. 요즘 가축은 목장에 갇혀 GMO 사료만 축내므로.


자연에서 선발된 농작물은 농부들의 품종개량을 거치며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크게 잃는다. 그 결과 같은 농작물을 심으면 덤벼드는 곤충이 늘어나게 된다. 사이짓기로 곤충의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만 기계로 농사를 짓는다면 곤충을 피할 정도의 사이짓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살충제에 의존하는 농부가 늘어나는데, 곤충이 내성을 키우면서 농부는 더욱 강력한 살충제를 뿌려야했다. 그러자 땅을 기름지게 하던 다른 생물들이 사라지더니 살충제를 뿌리는 농부의 건강을 위협했다. 급기야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했다.


GMO, 다시 말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유기농인가? 농작물의 유전자 안에 살충 성분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살충제를 따로 뿌리지 않아도 된다고 그 씨앗을 파는 회사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기농이라고 규정해도 좋을까?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 팔려나가는 GMO 농작물에는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종류가 살충 성분을 가진 농작물보다 더 많다.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도 점점 강해지고 자주 뿌려야 하는 까닭에 이젠 농부와 소비자를 위협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므로 제초제를 조금만 뿌려도 된다고 광고하는 GMO는 유기농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서 GMO 씨앗에 조작돼 들어간 제초제 내성 유전자가 심각하게 퍼지고 있다. 제초제를 뿌려도 끄떡없게 하는 콩 속의 유전자가 옮겨가 잡초까지 제초제를 이겨내는 사례가 확산되는 중이다. 살충 성분을 발현하는 유전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죽어야 할 곤충이 버젓이 살아서 목화 열매 속에 꿈틀대는 현상이 인도에서 늘어난다. GMO에 조작돼 들어간 유전자가 엉뚱한 식물로 이동하고 곤충이 GMO의 살충 성분에 내성을 가진다면 농부는 더욱 강력한 살충제와 제초제를 더욱 많이, 그리고 자주 뿌리고 싶어질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그러므로 광고와 달리 GMO는 유기농일 수 없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제초제나 살충제, 그리고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으면 유기농으로 생각한다. 물론 유기농에 그런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는 포함되면 안 된다. 하지만 유기농 기준은 화학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여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비자와 농부의 건강 뿐 아니라 생태계의 건강까지 두루 살피는 것은 물론이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다는 의미다. 유기농은 땅과 하늘과 사람과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먹고 재배하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파종하고 재배하는 농산물 때문에 땅속과 생태계의 동식물에 피해가 생기면 유기농의 자격은 사라진다. 유기적이지 않는 까닭이다.


GMO 농작물을 심고 제초제와 살충제, 그리고 화학비료를 전혀 뿌리지 않는다고 해도 유기농일 수 없다. 특히 살충 성분을 가진 GMO을 실험동물과 가축에 먹이자 수명이 눈에 띄게 줄어들거나 여러 암이 발생하고, 심지어 심장과 뇌와 같은 장기가 위축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그런 농작물은 그 씨앗을 파는 기업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지만 전혀 유기적일 수 없다. 사람에게 가려움증 이상의 징후가 발생하지 않았다지만 앞으로 어떤 치명적 부작용이 발생할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책도 세울 수 없다.


GMO 씨앗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주 단순하다.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그 농작물은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거의 잃고 말았다. 살충 성분을 가진 GMO도 마찬가지다.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독점 공급하는 GMO 씨앗은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없는 만큼 환경변화에 이겨낼 힘이 아주 약할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농산물에 치명적일 수 있다. GMO 농작물이 바뀐 환경에서 작황이 떨어지거나 심각하게 줄어든다면 인류는 식량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식량위기는 지구촌의 평화에 위협이 된다. GMO가 유기농일 수 없는 이유가 추가된다.


정부는 우리의 유기농 기준을 미국과 동일하게 바꾸려고 애를 쓰고 있다. GMO를 독점 공급하는 다국적기업의 근거지인 미국은 유럽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보다 기준이 느슨하다. 미국은 GMO5% 이내로 섞여도 유기농으로 인정한다. 순전히 GMO 씨앗 생산업체를 위한 배려다. 한미FTA가 체결된 상황에서 우리의 유기농 기준이 느슨해지면 미국의 유기농산물 판매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우리 농부와 유기농 매장의 불이익은 불 보듯 뻔하다. 나중에 기준을 바꾸거나 규제하려고 하면 미국 기업은 우리 정부를 고발할 테고, 우리는 막대한 세금으로 보상해야 할 게 틀림없다.


아직 우리 농토에 GMO 씨앗은 파종하지 못하지만, 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받아 허용하게 된다면 우리 농토도 미국처럼 GMO의 조작된 유전자로 돌이키기 어렵게 오염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기농을 아예 잃어버리고 말 수도 있다. 우리의 유기농 기준을 지켜야하는 것을 물론, GMO의 농토 파종을 생존을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나아가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이동거리를 따져 유기농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GMO로 오염된 미국 농산물을 배제할 수 있다. 그를 위한 행동이 점점 시급해진다. (지금여기, 2014415)

GMO도 약됨. 간장으로ㅋㅋ http://pann.nate.com/talk/320596037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1. 4. 3. 00:08

 

1

 

이른 3월 눈 덮인 산하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복수초는 봄을 기약하고 늦은 3월 산기슭을 노랗게 수채화처럼 물들이는 산수유는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알린다면 4월 중순 흐드러진 하얀 벚꽃은 봄이 무르익었다는 걸 선언한다. 추위를 무릅쓰고 복수초와 산수유를 기웃거리던 꿀벌들이 분봉을 앞두고 열심히 꿀을 모을 즈음인데, 웬걸! 길게 이어지는 벚나무 주위에서 꿀벌 한 마리 알현하기 어렵다. 떠들썩한 상춘객 때문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나타났다는데, 우리의 꿀벌에도 무슨 변고가 생긴 게 분명하다.

 

원고를 쓰는 야심한 밤에 출출하다고 아내를 깨울 수 없으니 얼마 남지 않은 땅콩을 한 움큼 집어든다. 시중에서 파는 중국산 땅콩이 꺼림칙해 유기농 국산을 찾는데 생활협동조합에 가도 없을 때가 많으니 이따금 가까운 양판점에서 아몬드를 구입하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80퍼센트를 책임진다니 이 밤중, 인천의 한 방구석에서 깨물어먹는 아몬드 역시 캘리포니아 산임에 틀림없을 텐데, 바로 이 아몬드는 미국의 꿀벌집단붕괴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어떤 과학평론가는 주장했다.

 

과육을 먹는 살구와 비슷한 종류인 아몬드는 씨를 먹는다. 따라서 실한 열매를 위해 가는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피는 꽃을 상당히 떼어내는 살구와 달리 아몬드는 그 꽃들이 모두 꽃가루에 수정되어야 하는데, 꿀벌이 그 역할을 맡는다. 거듭된 품종개량으로 많은 꽃이 같은 계절에 한꺼번에 피는 아몬드나무들이 한 지역에 집중돼 있지만 그때 그 지역의 양봉업자가 모든 꽃의 수정을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전 미국에서 벌통이 모여든다. 미국 벌통으로 모자라 캐나다와 멕시코의 벌통이 모이고 중남미는 물론 유럽의 벌통도 대환영이다. 그렇게 한 보름동안 집중적으로 꽃가루 수정을 받는데, 그 아몬드나무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폭이 아주 좁다. 열매를 많이 맺는 품종끼리 거듭 근친교배하자 조상의 다양성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벌꿀을 남보다 많이 빨리 채취하고 싶은 양봉업자도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크게 좁혔다.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협애하면 어느 생물이나 환경변화에 이겨낼 능력이 떨어진다. 그런 개체들이 밀집돼 있을 경우, 천적에게 쉽게 희생될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질병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 꿀벌이 그랬다. 손실을 막아보고 싶은 양봉업자는 천적을 막을 살충제와 병균을 차단하는 항생제를 남발했고 꿀벌의 면역력은 그만큼 약화됐는데, 천지사방의 꿀벌이 모여드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농장은 짧은 기간에 꿀벌의 질병을 유럽과 북중미로 퍼뜨리는 진앙이 되고 말았다.

 

벌과 나비가 없는 꽃에서 향기를 느낄 수 없다고 허난설헌이 말했다던가. 4월 중순 여의도 윤중로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향기가 없는 건 아닐 텐데, 벚나무 아래 어깨를 부딪치는 인파는 꿀벌 한 마리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생물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집단붕괴현상이 꿀벌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태학자들의 경고가 신문과 방송에 무게 있게 보도되지 않는 실상에서 경각심을 가질 리 없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4년을 견딜 수 없다고 아인슈타인이 경고했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을까.

 

 

2

 

심각에서 경계로 한 단계 낮춰서 그런지 전국의 구제역 방역 초소들이 일제히 철수했고, 텅 비었던 축사들이 다시 활발해졌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창궐할 때마다 주춤하긴 해도 고기를 즐기는 소비자층이 두터운 만큼 수익을 보장되므로 축산업은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다. 문을 닫지 않은 식당들도 그리 믿을 텐데, “가족 같은 가축들을 매몰하는 농부의 안타까움을 강조한 언론들은 생매장되는 현장을 고발하는 동영상에 왜 어린 돼지가 없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진정 가족 같이 여겼다면 태어나는 돼지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을 붙이고 애지중지 키웠을 텐데, 눈물짓는 농부가 왜 살처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가족 같다면 어미와 새끼가 어울려야 맞는데, 굴삭기 삽날에 밀려 10미터 아래 구덩이에 떨어진 돼지들은 왜 덩치가 한결같았을까. 이상하지 않은가.

 

내다 팔 목적만으로 가축 서너 마리를 키우는 농가도 가축 한 마리 한 마리에 함부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이름이 붙은 녀석을 도축장에 넘길 때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가축을 키우는 산업축산은 이름을 붙일 리 없다. 가족? 어림없다. 이름 대신 쇠귀에 인식표를 달거나 돼지는 아예 귀를 톱니처럼 잘라 표시할 따름이다. 그런 가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정 규모를 가진 개별 축사에 가축을 공급하는 종축장에서 죽어라고 새끼만 낳는 암컷 일부와 죽을 때까지 정액만 쏟아내야 하는 수컷 극소수, 그리고 분양된 축사에서 부지런히 살을 키워 성숙하기 전에 일제히 도살될 운명을 지닌 나머지 대부분의 개체들이다. 예외도 있다. 아주 어려 거세되는 살코기용 돼지나 소와 달리 산란용 병아리의 수컷은 부화되자마자 쓰레기가 되고 젖소 수컷은 고기용으로 냉큼 전환된다. 가축의 본성은커녕 최소한의 복지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은 어느 경우나 같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볼 수 있는 목장은 대개 일정 규모 이상을 차지하고 종축장에서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어린 가축을 한꺼번에 가져와 획일적으로 사육한다. 발정기를 맞은 암컷을 마을의 든든한 수컷과 만나게 해 임신시키는 일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구제역에 감염된 종축장이 아니라면 살처분 현장에 어린 돼지와 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린 가축들을 공장처럼 쉼 없이 생산하는 종축장에서 사육하는 다수의 암컷은 유전자가 거의 유사하다. 수컷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태어나는 가축의 유전자가 일정할 것이고, 그런 가축을 예정된 기간 동안 획일적인 조건으로 사육하면 예측 가능한 살코기를 갖는 비슷한 크기의 가축을 집단으로 도살장에 넘길 수 있다. 가축들이 도살장 기계의 오차범위 내에 들어가야 기계가 고장 나지 않으니 많은 수익을 노리는 축산업자는 들쭉날쭉 자라는 가축을 기피한다.

 

어떤 사료를 어떻게 먹여야 살코기가 가장 빨리 불어나는지 축산과학은 진작 밝혀냈다. 같은 사료를 똑같이 먹여도 빨리 자라는 개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개체도 있었지만 축산과학은 천천히 자라도 온순한 개체들은 도태시켰다. 빨리 자라는 개체들끼리 거듭 교배시켜 유전적 다양성을 잃는 개체들만을 종축장에 공급했다. 한데 그런 가축들은 환경변화에 취약하고 그만큼 사육조건이 까다롭다. 그래서 살코기 생산 공장처럼 많은 가축을 예측 가능하게 사육하려는 업자는 큰돈을 투자해야 하고,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들여야 한다.

 

비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동시에 밀어넣은 공장식 축산은 가축 한 마리 한 마리에 신경을 쓸 시간도 마음도 없다. 어서 몸집이 불어나기만 바랄 따름이므로 성장호르몬을 주입하고, 질병이 돌지 않도록 항생제를 미리 투여할 따름이다. 덕분에 감당할 수 없게 불어나는 몸집은 생존에 부담을 줄 정도지만 도살장에 넘길 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뿐이다. 고기 생산기계인 가축은 정붙일 생명체가 아니다. 한없이 키울 이유가 없다. 사료 먹는 양에 비해 살코기가 불어나는 속도가 쳐지는 순간, 넓은 축사에 움직일 틈이 없는 축사에서 시간이 갈수록 부대끼던 가축들은 일제히 도살장으로 향할 것이다. 사람 나이로 뼈가 아직 약한 7살 전후에 불과하지만 덩치는 청소년기에 육박한다.

 

발굽이 달린 가축은 들판을 뛰어 돌아다녀야 건강하지만 성장호르몬을 처리한 가축에게 체질에 맞지 않는 유전자조작 곡물 사료만 집중적으로 먹이는 공장식 축산은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과학축산이 권장하는 사육조건에 뛰어다닐 공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종축장에서 사온 어린 가축은 넓은 공간을 잠시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허락된 시간은 짧다. 무럭무럭 자라 앞뒤와 좌우에 다른 개체들로 꽉 차 옴짝달싹 못할 지경이 되면, 만원버스에 이리저리 밀리는 러시아워의 승객들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 답답한 돼지는 앞 돼지의 꼬리를 물고 닭은 쫀다. 그래서 입는 상처가 깊으면 진작 처방한 항생제도 소용없이 감염될 수 있고, 질병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 공장식 축산은 돼지의 꼬리를 미리 자르고 닭의 부리를 뭉툭하게 자르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런다고 감염이나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어린 가축의 일부가 죽지만 약간의 손실은 어쩔 수 없다. 그뿐인가. 제때 치워지지 않는 배설물로 인한 암모니아 가스가 폐를 파괴하지만 도살장에 넘길 때까지 대부분 살아남을 것이다. 영악한 과학축산은 일찌감치 그리 계산했다.

 

 

3

 

조류독감을 철새가 전파한다고? 그런데 철새는 왜 떼로 죽어 자빠지지 않는 걸까. 지극히 일부의 철새가 죽는 것으로 보아 유전적 다양성을 집단 내에 확보하고 있는 철새와 우리 강산의 텃새들은 사람이 그렇듯, 독감 따위에 쉽게 제 생명을 놓는 건 아닌 모양인데, 삼계탕용으로, 통닭용으로 도살장에 일제히 넘겨야 하는 닭, 아니 병아리에게 대개의 독감은 치명적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결여한 개체들로 빼곡하니 양계장에 바이러스가 스며드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퍼질 테니까. 한번 스며든 조류독감이 양계장의 닭을 모조리 죽이는 건 아니다. 더러 끄떡없이 살아 널브러진 사체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카메라를 피하는 대견한 녀석의 모습이 뉴스 화면이 이따금 방영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의 신뢰를 먼저 생각하는 공장식 축산은 안전반경을 정해 그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를 남김없이 살처분한다. 그렇게 면역력을 가질 기회를 차단당한 가금류들은 이듬해 창궐하는 같은 바이러스에 여전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조류독감이 이따금 사람을 공격하지만 양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몸을 감염시킨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못한다. 종 특이성이 있기 때문인데, 만일 돼지가 그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매개할 경우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돼지의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사람과 닭의 독감 바이러스까지 수용할 수 있는 돼지의 몸에 들어간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돼지에서 사람으로 옮겨간 뒤 사람에서 사람 사이로 퍼져나갈 수 있는 까닭이다. 조상의 유전적 다양성을 충실하게 간직한 멧돼지에게 구제역이 쉽게 전파되지 않듯, 돼지독감도 멧돼지를 위협하지 못하는데, 축사 안의 돼지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가금류와 달리 감염되어도 증세가 금방 드러나지 않고 독감의 종류에 따라 증세가 미약할 수 있지만 주변의 사람과 가금류를 쉽게 감염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조류독감이 돌면 안전반경 이내의 돼지들도 불문곡직 죽인다. 재작년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의 한 농장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진 신종플루가 그랬을 것이다. 미국계 다국적 축산기업, ‘스미스필드푸드에서 공장식으로 돼지 수백만 마리를 사육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바이러스 외부의 항원이 다양하고 내부 8개 가닥의 RNA 유전자가 환경변화에 따라 현란하게 서열구조를 바꾸는 독감 바이러스는 사람의 첨단의학을 비웃는다. 거듭 개발하는 항생제나 치료제를 차례로 무력화시킨다. DNA 유전자로 구성된 일반 바이러스보다 100만 배나 빨리 변화하는 까닭에 많은 연구자의 노력으로 어렵사리 개발한 백신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다. 그 사이 유전자가 변했기 때문이다. 다만 가축의 면역이 강하다면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처럼 웬만한 독감을 견디거나 끄떡없을 수 있다. 과거 농촌에 조류독감으로 가금류와 돼지가 떼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없었던 이유의 설명이기도 한데, 공장식 축산을 개발해서 확산시킨 자본은 문제의 근본을 헤아리길 거부한다.

 

공장식 축산이 소비하는 사료의 양은 실로 막대하다. 내장이나 뼈와 같은 도축 부산물도 엄청나다. 공업용으로 값싸게 팔리는 내장과 뼈를 갈아 사료로 준다면 목장주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초식동물인 소는 건강이 악화될 수 있지만 도살할 때까지 살아 있으면 그만이다. 그 결과 광우병이 발생했다. 때늦은 후회로 소 도축 부산물을 소에 주는 행위는 제한되었지만 미국은 잡식동물인 돼지와 닭에게 소 도축 부산물을 준다. 문제는 돼지와 닭 도축 부산물을 초식동물인 소에 준다는 거다.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남는다. 수백 명의 사람과 수백만 마리의 소가 희생된 이후 어떤 도축 부산물도 소에 먹이지 않은 유럽은 소 광우병 발생을 성공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미국의 축사와 도축장의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쇠고기는 어떨까. 우린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다.

 

아무리 숨긴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를 먹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법으로 차단하자니 음성화될 터. 이참에 도축을 합법화하자는 목소리가 집요하다. 개 사육은 불법이 아니다. 어떤 법적 규제나 지침이 없으니 도축은 분명히 불법이 아니다. 만일 제도로 합법화한다면 개도 당장 품종개량해 공장식으로 사육하고 도축할 게 틀림없다. 그리 벼르는 이가 있다. 돼지는 꼬리를, 닭은 부리를 미리 자르는데, 늑대의 후손답게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개는 어떻게 사육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을까. 스트레스 받으면 주위의 약한 개를 다짜고짜 물어 죽이는 개는 요즘 도시 변두리의 사육장에서 자행하듯 고막만 뚫는다고 얌전해지지 않을 텐데. 공장식 축산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는 개에 만연하게 될 질병의 목록 중에 사람도 끔찍하게 감염시키는 광견병이 추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텐데, 도축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는 국제적 망신 따위에 주눅들지 말자고 소비자와 권력자들을 설득하느라 여념이 없다.

 

구제역은 정부의 주장처럼 진정 사람을 감염시키지 못할까. 그 방면 전문가는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감염되지 않겠지만 드물게 감염돼 가벼운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공장식 축산으로 전에 없이 늘어나는 인수공통전염병을 주목한다.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 그리고 광우병이나 광견병만이 아니다. 페스트와 에이즈도 동물에서 왔다. 환경변화에 적응해 다시 나타나는 질병이 전에 없이 강력해지는 현상도 걱정한다. 공장식 축산이 몰고올 인수공통전염병의 병원균을 사람의 의료과학이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지 않은가. 만일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공학으로 인수공통질병을 막겠다고 호언한다면? 우리는 가축을 매개로 사람에게 퍼져나갈 조작된 유전자까지 걱정해야 하는 비극을 추가해야 할지 모른다.

 

 

4

 

구제역 발생이 소강상태로 들어가면서 방역체계의 획기적 개편과 체계적인 예방접종 계획을 밝힌 정부는 허가제를 주축으로 하는 축산업 선진화 기반 구축을 천명했다. 2012년부터 실시할 예정의 허가제는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교육을 마친 대규모 농가에 우선 허가를 내주겠다는 것, 그리고 소규모 농가는 현재 실시하고 있는 축산업 등록제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원칙을 아울러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지칭한 대규모 농가는 농가라기보다 사실상 축산자본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결국 지금보다 규모가 큰 축산자본에게 축산업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이제까지 검토한 공장식 축산의 문제는 어찌될 것인가. 근본문제를 방치하기보다 부추기는 만큼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킬 수밖에 없을 텐데.

 

적정한 축사 면적을 위해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고 청결 유지를 위해 소독시설과 축산폐수 배출시설을 두어야 하는 우리 축산업 등록제는 위반하면 징역과 상응하는 벌금을 여지없이 부과한다. 따라서 우리 축산업 등록제는 사실상 허가제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수의학 관련 전문가는 허울뿐인 허가제 전환이 아니라, 축산업의 대규모화 및 집중화를 완화하고 지역의 다양한 농장들을 지원함으로써 동물의 건강과 식량안보 및 식품안전을 증진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편 옳은 지적인데, 공장식 축산으로 그 전문가의 조언이 실현될 리 없다. 분명한 것은 허가제든 등록제든, 제도가 불필요했던 시절에는 구제역도 조류독감도 살처분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위가 왔을 때 씨암탉 잡고 모내기 마치고 돼지 잡으며 마을 잔치 때 소 잡던 시절, 다시 말해 공장식 축산이 없었던 시절에는 요즘과 같은 가축의 질병 창궐과 그에 이은 살처분 같은 불경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근본대책을 세우기 전에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벌어진 구제역 사태는 매뉴얼이나 농민의 탓이 아니라 무능한 정부에 있었다는 한 전문가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지금과 같은 공장식 축산이 아무 반성 없이 이어진다면, 숱한 경험을 미루어볼 때,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뿐 아니라 광우병 이상 긴장하게 만들 인수공통전염병이 거듭 창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대안은 더욱 큰 자본을 끌어들이는 공장식 축산일 수 없다. 다시 숱한 경험을 상기해보자. 공장식 축산과 도살이 빚는 추악한 탐욕과 불결한 위생은 가축의 본성을 보장하는 유기축산으로 크게 완화할 수 있다는 거,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모색하는 허가제는 문제를 오히려 증폭시킬 게 틀림없다. 예전처럼 농촌에 살면서 외양간에서 한두 마리 키우는 농가를 적극 지원하지 않는 한,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반복되는 우리 축산업의 문제의 해결에 접근조차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구제역과 광우병 따위로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채식에 자신이 없는 이가 많은 이상, 현실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가축으로 인한 대부분의 질병이 사육하는 이와 고기를 먹는 이가 분리되면서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대안으로 소비자가 직접 가축을 사육하자고 제안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가축을 건강하게 키우는 농가를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지만 2012년부터 추진하려는 정부의 허가제나 강화된 등록제일 수 없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신뢰로 거래하는 협동조합이 현실적 대안일 수 있겠다.

 

한층 더 근본적인 대안은 송곳니가 어금니보다 작은 만큼 고기를 자제하는 식습관이다. 가축의 복지와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는 유기농 계란과 우유, 지나치게 어린 개체를 제외한 물고기, 남획과 거리가 먼 조개와 오징어 같은 해산 무척추동물까지 포함하는 육식이 채식의 4분의1이 넘지 않는다면 가축과 사람, 그리고 생태계까지 지금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사료로 전용하는 미국산 유전자 조작 옥수수와 감자의 수입도 크게 줄어들어 우리 농촌과 도시의 경제도 그만큼 건강해질 것이다. (, 3, 20126)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2. 1. 21:06

 

물리학자들은 변수가 많아도 그걸 모두 염두에 두고 결과를 계산할 능력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20세기 물리학자의 최고봉이라는데 생각을 일치하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4년을 버티기 어렵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근거가 궁금한데, 분명한 것은 사람이 먹는 수많은 과일과 채소들은 꿀벌이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주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낯익은 견과일이 된 아몬드. 대부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하는 그 아몬드가 일종의 살구 씨라고? 하긴 오돌토돌한 모습이 살구 씨와 비슷하기는 하다. 3월 말이면 살구나무는 배드민턴공의 날개처럼 퍼진 가는 가지마다 연분홍빛이 감도는 꽃을 가득 피워내는데, 그 화사한 꽃들은 꿀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꿀벌이 찾아와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일 텐데, 꿀벌을 기다리는 건 살구나무의 꽃만은 아니다. 복숭아도 사과와 배도도 꿀벌이 없으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한데 캘리포니아는 얼마나 많은 아몬드나무를 심었기에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많은 아몬드를 수출할 수 있을까. 열매 하나에 겨우 아몬드 하나 나올 텐데.

 

젊은 시절의 신사임당이 아름다운 꽃 그림을 보고 벌과 나비가 없어 향기를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던가. 꿀벌과 꽃의 관계는 그들이 진화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앞으로 변함없을 텐데, 꿀벌이 급속히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과 유럽발 외신은 꿀벌이 예년에 비해 70퍼센트 이상 줄었다고 전하는데, 우리나라도 전 같지 않다고 한다. 한 신문은 사람이 벌을 대신해 과수원에서 붓으로 일일이 가루수정을 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벌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라는 건조한 설명과 함께.

 

꿀벌이 사라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꿀벌집단붕괴’라 하는데,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하는 외신은 농약도 무시할 수 없지만,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광범위한 파종과 이동전화를 의심한다. 해충 방제 목적으로 조작한 농작물의 유전자가 수평이동해 꿀벌의 유전자를 교란했을 가능성과 더불어 세계를 뒤덮은 이동전화와 그 기지국에서 내보내는 전자파가 꿀벌 사이의 정보교환을 방해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건데,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의 저자 로완 제이콥슨은 집단 붕괴를 일으킬 정도로 영향이 큰 건 아니라고 전문가의 연구를 근거로 주장한다. 제주왕나비를 죽이는 것으로 드러난 해충 저항성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꿀벌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이동전화 기지국과 꿀벌집단붕괴는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동전화 전자파와 관계가 없다니 다행이긴 하다. 만일 관계가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해도 사람들이 이동전화를 당장 포기할 것 같지 않고, 관련 기업이 순순히 사업을 접을 가능성이 아주 낮을 테니까. 유전자조작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다. 인과관계가 정확하게 밝혀질 때까지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양봉업자들은 일단 꿀벌 애벌레의 몸에 알을 낳는 응애를 의심했다. 응애가 들어와 벌통을 버린 경험이 많기 때문인데, 응애 피해 없는 벌통의 꿀벌도 붕괴되는 거로 보아 아니었다. 다음으로 바이러스를 의심했지만 비슷한 이유로 아니었다. 결국 농약일까. 농약의 독성이 강해지고 꿀벌이 농약에 약한 건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거의 동시에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로완 제이콥슨은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든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사납지 않고 꿀을 많이 가져오는 종류로 세계가 획일화되면서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이 크게 위축되었다는 주장인데,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란다. 그런 꿀벌이 한 지역으로 모였다 퍼지며 질병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걸 주목한다. 바로 아몬드를 보자. 세계 소비량의 80퍼센트를 떠맡을 정도로 아몬드 과수원이 밀집된 캘리포니아는 꽃이 피는 2월이면 미국 전역에서 벌통이 몰려와 북적인다고 한다. 아몬드를 많이 생산하는 나무로 획일화되어 동시에 핀 꽃을 한꺼번에 꽃가루 수정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그 과정에서 꿀벌들이 바이러스나 곰팡이에 쉽게 감염된다는 게 아닌가. 중국에서 벌꿀이 수입되면서 수익이 낮아진 양봉업자들은 아몬드 꽃을 수정시키는 대가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포기할 수 없겠지만 그를 위해 미국의 전역에서 덜컹거리며 달려온 꿀벌들은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는 거다.

 

아카시아 꽃이 피는 시기를 따라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벌통이 몰려다니는 우리나라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다. 과수원에 심은 나무의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 한꺼번에 꽃봉오리를 여니 그때마다 벌통을 옮겨와야 한다. 꿀벌에게 피해주지 않고 오로지 응애만 죽이는 살충제는 결국 응애의 내성을 높였고 꿀벌의 병원균과 바이러스도 백신을 거듭 이겨내는데, 벌통 속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은 좁아지기만 했다. 그런 벌통이 한 군데 모였다 퍼지면 질병은 급속히 확산될 수밖에 없다. 낯선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기력이 떨어진 만큼 농약에 맥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다. 꿀벌이 집단적으로 붕괴하는 현상은 결국 사람의 탐욕이 원인을 제공한 것인데, 꿀벌이 없으면 4년을 버틸 수 없는 사람은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역시 자연스러움이다. 자연 속의 다양한 꽃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아 먹으며 꿀벌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획일적인 양봉산업과 관계없는 개체를 찾아 교배시키며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을 넓혀야 한다. 로완 제이콥슨은 극동아시아의 꿀벌을 지목했다. 바로 우리의 토종벌을 의미한다. 벌통을 고정시켜 한해에 딱 한 차례 벌꿀을 따는 우리 시골의 토종벌은 사납지만 활발하고, 모으는 꿀의 양은 적어도 건강하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양봉벌과 달리 여왕벌이 자연에 나가 많은 수벌과 교미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꿀벌이든 아몬드든, 과일이든 채소든, 자연스러울 때 가장 건강한 것은 상식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학원에 틀어박혀 국어, 영어, 수학, 과학과 사회탐구 시험문제에 몰입하면 좋은 대학과 월급이 많은 기업에 잘 들어갈지 모르지만 창의력은 그만큼 위축된다. 길들어진 만큼 시키는 일을 잘하겠지만 거기까지다.

 

꿀벌이 줄어들자 꿀이 잘 든 남의 벌통을 빼돌리는 양봉업자가 늘어난다는 뉴스가 등장하건만 우리는 조용하다. 로완 제이콥슨의 기대와 달리 우리 토종벌도 전 같지 않다는데, 대책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사람보다 먼저 진화한 꿀벌은 사람이 없어도 잘 살아가지만 사람은 아니다. 꿀벌 덕분에 밥 먹고 사는 우리는 꿀벌이 사라지기 전에 지나친 꿀벌 착취부터 반성해야 옳지 않을까. (사이언스올,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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