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11. 29. 16:46

 

2008년 10월 제10차 람사총회, 다시 말해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총회가 열린 경남 창원의 우포늪은 용늪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지정된 람사습지이고 1973년 전까지 천연기념물이었다. 일제가 1933년 지정했으나 철새가 줄어들었다며 취소했다 천연기념물로 다시 등극될 찰라, 초대받지 않는 손님 때문에 난감해진 모양이다. 노랑부리저어새와 큰고니 같은 겨울철새가 답지할 순간, ‘늪너구리’가 출몰한다는 게 아닌가.

 

늪너구리? 너구리가 늪에 적응해 나타나는 건 아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일원에 분포하는 뉴트리아를 우리말로 그리 부르는 모양인데, 사실 너구리와 많이 다르다. 흙탕물과 같은 연갈색의 통통한 몸은 50센티미터 이상 자라지만 기다란 앞니를 드려낸 머리는 영락없이 쥐를 떠올리게 하는 뉴트리아는 40센티미터까지 자라는 꼬리가 쥐처럼 가늘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런가. ‘뉴트리아쥐’라고 칭하는 이도 있다.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지만 일단 물에 들어가면 발가락 사이의 물갈퀴로 제 세상을 만끽한다.

 

어쩌다 모습을 드러내던 뉴트리아가 어느새 우포늪 전역에서 활개를 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황소개구리나 배스가 퍼져나간 시나리오와 비슷할 것이다. 사육으로 한 밑천 잡으려다 시들해지자 관리가 소홀해졌고, 그러자 몇 마리가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급격히 퍼져나간 거다. 1985년 프랑스에서 모피와 고기를 위해 100여 마리 수입해 경상남도 일원에서 사육한지 이제 25년. 수명 10년인 뉴트리아는 천적이 없는 늪에서 마음껏 증식, 그 주변의 습지를 거의 잠식했다. 머지않아 금강과 한강으로 세력을 넓힐 태센데, 아직 거긴 춥다.

 

우리 생태계에 없었으므로 첫인상이 호감가지 않아도 장점이 한두 가지 아니라고 했다. 습지의 척추동물답게 털이 치밀하고 고와 모피의 길이 좋을 뿐 아니라 적은 기름기에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고기가 부드러우며 쫄깃쫄깃하다니 일석이조다. 면역이 강해 질병이 거의 없고 아무 사료도 잘 먹으며 마구 자라는 늪의 수초를 거뜬히 먹어치우는 뉴트리아는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1년에 두세 차례, 한 배에 서너 마리 이상 새끼들을 낳아 잘 자란다는 게 아닌가. 그러니 축산 실패로 시름에 잠긴 이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육장에 악취가 발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설물은 양질의 비료가 되어 수초와 벼 생산에 도움이 된다니 들여놓기만 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을 게다.

 

광고는 언제나 한쪽 면만 조명할 따름이라는 건 대개 나중에 안다. 2000년 무렵 8천 마리 이상 증식된 뉴트리아는 모피와 고기가 아무리 좋아도 남미나 유럽과 같은 각광을 받지 못했다. 혐오스런 모습 때문에 모피와 고기마저 외면된 건데, 물고기의 산란장인 수초를 마구 뜯어먹을 뿐 아니라 우포늪의 멸종위기종인 가시연을 뜯다 철새의 다리를 물고 잠수, 질식시킨 뒤 게걸스레 먹어치워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인근의 밭으로 들어가 감자요 당근을 거덜내더니 급기야 논으로 들어가 벼마저 훑어내는 게 아닌가.

 

제 몸무게의 4분의1을 하루에 먹어치우는 뉴트리아에 대응하는 천적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악어가 없는 우리나라에 있는 수달은 맑은 하천을 떠나려 들지 않는다. 물수리는 태화강에서 숭어 잡는데 여념이 없고 참매는 늪까지 염탐하지 않는다. 뉴트리아는 늪을 외면하는 삵이나 오소리마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영하로 치닫는 겨울 추위만이 두려웠을 테지만 호수 가장자리에 20미터 이상의 굴을 파면서 극복했다. 한겨울에도 따뜻하면 굴에서 나와 철새를 물어뜯으니 우포늪 관계자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우포늪만이 아니다. 밀양시도 부산시도 포상금을 걸고 포획에 나섰다. 민원에 호응한 환경부가 2009년 6월 유해조수로 지정했으니 뉴트리아가 눈에 잘 띄는 계절을 맞아 대대적인 퇴치 작전에 돌입한 것인데, 효과는 높지 않다. 그런 사정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일찌감치 수입해 사육하다 모피산업이 시들해지자 숲으로 내버린 미국에서 뉴트리아가 루이지애나 늪지대에 퍼지며 수중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기에 이른 것이다. 꼬리 하나에 5달러를 내걸었지만 실패했고, 소시지와 버거 같은 메뉴를 개발해 식용을 위한 사냥을 유도했지만 워낙 뛰어난 번식력 때문에 소용없었다고 한다.

 

남부 미국보다 쌀쌀하고 늪도 넓지 않지만 앞으로 미국 이상 퍼질 가능성이 높다. 지구온난화로 호수의 얼음이 겨울에도 오래 지속되지 않으니 우리 겨울에 완전히 적응하면 4대강 사업으로 대구 언저리까지 호수로 이어질 낙동강 주변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민원이 유발되었듯, 낙동강 주변의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겨울딸기를 축내며 봄을 기다릴 것이다. 걱정은 거기에서 멈출 리 없다. 거대한 호수의 제방에 복잡한 굴을 길게 파놓을 테니 집중호우에 제방 붕괴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4대강 사업 낙동강 구간의 가장 하류인 함안의 한 호수에 벌써 사고가 벌어졌다. 집중호우로 빗물이 순식간에 모여들자 뉴트리아가 파놓은 굴 때문에 약해진 제방이 붕괴되었다.

 

수초가 사라진 겨울철에 늪을 유영하다 포수의 총탄에 쓰러지는 동료를 보면 주로 야행성인 뉴트리아는 낮에 얼씬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총도 소용없어진다는 건데, 앞서 경험한 다른 나라처럼 주어진 환경에 금방 적응하는 뉴트리아가 우리 땅에 퍼진 이상, 발본색원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동면까지 알게 된다면 남은 방법은 거의 없어질 터. 불고기나 로스구이로 유혹하는 방법도 그리 효과가 없을 것이다. 고기나 가죽의 인기가 높아지면 사육농가가 늘어나겠다.

 

퇴치한다는 건 결국 죽여 없애자는 뜻인데, 들어올 때 그리 애지중지하더니 이제와 죽이겠다니. 뉴트리아는 억울할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자연에서 퇴치할 수 없다면 황소개구리나 배스처럼 어쩔 수없이 최소 범위에서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뉴트리아가 퍼져나갈 환경 조건을 최대한 억제시키고, 우리 자연에서 나타나는 천적이 수를 조절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텐데, 대구를 내륙항으로 만들려는 4대강 사업은 고유 생태계를 더욱 처참하게 교란하기만 한다. (전원생활, 2011년 1월호)

감사히 담아갈께여... ^^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8. 13. 09:27

 

강화도 주변의 작은 섬들, 10여 년 전만 해도 서도면과 삼산면에 흩어진 섬에 가려면 물때를 잘 살펴야 했다. 강화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도 바다물이 썰어 낮아지면 배가 뜨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었기에 예전의 교사나 공무원에게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더 밀려날 곳이 없는 무능 또는 비리 공무원에게 마지막으로 발령을 내는 고립무원. 눈물만 뚝뚝 흘리던 공무원이 사표 쓰고 다음 배편으로 나가거나 초임인 총각 선생님이 한 학기 마치고 내빼는 섬마을에는 애환도 많았을 테고, 이미자는 애간장 끊어지는 곡조로 <섬마을 선생님>을 불렀다.

 

지금 강화도 인근의 작은 섬에는 학교가 없다. 부임할 총각 선생님도 없지만 공부할 학생도 없다. 아예 젊은 인구가 없다. 젊어야 60대인 주민들은 섬 주변의 갯벌에서 삼삼오오 조개를 캐거나 갯바위에서 석화를 따고, 집 주변 비탈 밭에서 채소를 일군다. 나이 들어갈수록 그물 친 바닷가를 자주 들여다보기 힘겨우니 돈벌이는 제쳐두고 그저 먹을 만큼 밭을 일군다. 한데 조그마한 밭마다 그물 울타리가 높게 둘러쳐져 있다. 고라니 때문이라고 했다. 고라니가 번식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섬이 아닌데 걸핏하면 갯벌과 바다를 건너오지 않던가.

 

강화도 일원의 작은 섬에 출몰하는 고라니는 애교에 불과하다. 육지의 완만한 산록에 연결된 밭은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싹이 올라오기 무섭게 뜯어 먹으면 약이 바싹 오르지만 마음을 추슬러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있다. 어떤 때는 출하를 앞둔 배추나 무를 몽땅 건드려 상품 가치를 없애 놓으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어렵다. 어디 그뿐인가. 논에도 뛰어 들어 익어가는 이삭을 마구 뜯으니 그냥 놔두면 1년 농사를 망칠 판이 아닌가. 전기 울타리를 논마다 둘러치자니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고, 포수를 고용해보지만 한두 마리 처치한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어디선가 찾아오는 녀석이 또 있고 새끼도 금방 자랄 것이다.

 

고라니는 이 땅의 불명예스러운 ‘유해조수’다. 유해조수로 낙인찍히면 포획이 가능하다. 총으로 쏴 죽여도 되고 올무를 쳐서 잡은 뒤 팔아도 된다. 비록 이 나라의 곡간에 쌀이 남아돌아도, 수입하는 채소로 농부들이 입는 손해가 훨씬 많아도 울타리를 뛰어넘어 농작물을 축내기 때문이란다. 농부들은 울타리 놓느라 비용이 들고 가끔 엽사를 고용하느라 비용이 추가되는데, 고라니라는 놈들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니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라지만, 사실 출몰하는 고라니는 몇 마리 안 될지 모른다. 고라니가 먹어치운 농작물과 울타리 설치비용은 농림수산식품부나 행정안전부, 또는 환경부 예산의 지극히 일부라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1미터가 넘고 등이 60센티미터 이상 올라오는 노루보다 체구가 10센티미터 정도 작지만 생김새와 털색이 비슷해 많은 이들이 혼동을 일으키는 고라니는 우리의 특산종이다. 중국에 있는 사촌은 아종 관계로, 과거 수렵용으로 영국과 프랑스에 들어간 후손 이외에 고라니는 오로지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유해조수가 되었다. 수컷만 뿔이 있는 노루와 달리 암수 모두 뿔이 없는 대신 수컷은 송곳니를 가졌고, 꼬리가 없는 노루와 달리 짧은 꼬리를 가진 고라니는 하구의 늪이나 산록에 분포하며 독소가 없는 풀이나 나뭇잎, 겨울철에는 나무뿌리까지 뜯어먹는 습성을 가지는데 노루와 달리 가까이에서 심각한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눈을 마주칠지언정 즉각 엉덩이를 들썩이며 겅중겅중 달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유럽의 포수들이 수입을 한 모양이다.

 

찾은 곳은 다시 가는 습성이 있다던데, 서울시 쓰레기매립장이었던 상암동의 월드컵공원, 인근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에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고라니는 어디에서 왔을까. 월드컵공원에서 한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마곡유수지의 풀숲에 빠끔히 모습을 내보이거나 그 인근에 넓게 조성해놓은 강서생태공원에서 겅중거리다 자전거 타는 이의 눈에 띄곤 하는 고라니는 사람들로 성가신 그 곳에 터 잡았을 리 없을 테고,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오는 걸까. 강화도 주변의 작은 섬을 건너다니는 녀석들도 제 삶터는 따로 있을 터. 거기가 과연 어디일까.

 

대개 두세 마리가 어울려 다니는 고라니는 5월 부드러운 새싹이 지천에 가득할 무렵 한 마리에서 세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머리 위의 둥글고 커다란 귀를 쫑긋 세운 채 혹시 있을 천적을 따돌리려고 과장되게 어정거리는 지점의 주위를 살펴보면 눈이 묻은 듯 흰 점과 줄무늬가 눈부시게 귀여운 새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 전에 내몰아 삵 이외에 이렇다 할 천적이 없는 세상에서 새끼들은 제가 태어난 곳을 터전 삼겠지만 거긴 다른 고라니도 많다. 부대끼기 싫어하는 고라니들은 어미를 따라다닐 시기가 지나면 흩어질 터. 한강을 타고 월드컵공원에서 노을공원으로, 다시 마곡유수지에서 강서생태공원으로 갔을 게고, 어떤 녀석들은 강화도의 작은 섬까지 기웃거리게 되었겠지.

 

장항습지. 대략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한강 하구의 너른 습지가 고라니의 터전이다. 온갖 철새가 날아들고 우거진 버드나무 아래 무수한 말똥게가 어우러지는 장항습지를 환경부는 2006년 4월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덕분에 고라니들은 안심하고 식솔을 건사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200마리가 넘는 고라니가 살기에 비좁았고, 능력껏 여기저기 흩어져 그물 울타리를 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장항습지에 남았더라면 포수의 총에 맞거나 놀라 달아나다 자동차에 치일 염려가 없었겠지만, 아등바등 경쟁하는 걸 싫어하는 품성 때문에 위험을 자초하게 된 것이리라.

 

특산종에 총질하는 우리는 한강 유역에 얼마나 많은 고라니가 살고 해마다 몇 마리의 새끼들이 태어나는지 조사한 적 없다. 한데 시방, 장항습지의 절반 이상이 수몰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경인운하와 연결하기 위해 신곡수중보를 김포대교 아래로 옮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장항습지를 찾아간 사람과 멀찌감치 눈을 마주치는 고라니는 머지않아 강화도 주변의 섬과 김포평야 근처에서 몰려들 총구를 조심해야 하고 자동차 전조등을 요령껏 피해야 할 모양이다. 제 뜻과 달리 유해조수로 지명수배 된 특산종의 운명이 그렇다 하므로. (전원생활, 2009년 10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1. 13. 12:46
 


하늘이 청명한 가을, 차량이 뜸한 시골의 아스팔트 도로 옆에는 나락 말리는 황금 띠가 한동안 펼쳐진다. 가끔 지나는 이는 나락 말리는 모습에서 흐뭇한 여유를 느끼겠지만 순박한 농부들은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아스팔트를 따라 들어오는 외지 트럭이 의심스러운 까닭이다. 도와주는 척 수선을 떨다 다 마른 나락을 몽땅 싣고 줄행랑 놓는 사례가 심심치 않다. 한해 고생고생하며 갈무리한 결실이 한 순간 사라지는 순간, 넋을 빼앗긴 농군은 나락 도둑을 잡아 다신 그런 짓 못 하도록 혼찌검을 내고 싶을 것이다.


곶감과 호두가 유명한 영동군. 감 아가씨와 호두 아가씨를 연실 선발하며 특산물을 알리려 애를 쓰는 영동군에서 조심해야 할 도둑이 있다. 청설모다. 수확을 앞둔 작물은 물론, 채 익지 않은 호두까지 건드려 상품가치를 망쳐놓으니, 청설모가 휩쓸고 지난 호두나무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농부는 자리를 박차고 총포상을 만나러 나갈 것이 틀림없다. 잘 닦인 아스팔트를 따라 나락을 훔쳐 달아난 도둑은 계획적인데 잡기 어렵고, 총구 앞에 놓인 청설모는 떨어진 호두와 직접 관계없을지 모른다.


잣 수확이 한창인 가을철, 가평군은 청설모와 전쟁이 한바탕 벌어진다. 엽총을 쥔 사내 서너 명이 숨죽여 움직이다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는 잣나무의 갈색 물체를 조준해, “꽝!” 검은 꼬리를 늘어뜨린 청설모는 그 순간, 툭! 맥없이 떨어진다. 총구를 거둔 엽사들은 “잣 도둑 한 마리!”를 외치며 자루에 추가한다. 사각거리던 청설모만 희생되는 건 아니다. 꽝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제 모습을 엽사 앞에 드러낸 녀석도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사정권 안에 놓이면 목숨을 더는 보장받을 수 없다.


청설모와 벌이는 전쟁은 일방적이다. 청설모는 총 쏘는 엽사를 이길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결과가 뻔한데 전쟁이라 말한다. 하지만 가평군의 잣 농부들은 청설모와 벌이는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하소연이다. 총을 쏘고 또 쏘아도 청설모가 먹는 잣이 농부의 수확량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란다. 7만 마리가 먹어치우는 잣은 한해 약 1400톤. 마리 당 20킬로그램에 해당한다. 잣 80킬로그램 한 가마니 당 65만원이라 하니, 청설모 한 마리는 해마다 유기농 현미 반 가마 이상 농가에 피해를 주는 셈이다.


초여름 엄지만한 열매는 이듬해 가을이 돼야 수확이 가능한데 청설모란 놈은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겨울 눈밭에 시퍼렇게 깔린 잣껍질을 보는 농심에는 울화가 치밀고, 참다못한 당국은 포상금을 내걸고 소탕작전에 돌입한다. “마리 당 5000원!” 천적이 사라진 산하에서 오직 사람만이 청설모를 구제할 수 있다며 천안시와 영동군도 가평군처럼 포상금을 걸었는데, 일방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청설모의 수는 만족할 만큼 줄어들지 않는 모양이다. 엽사로 조직된 ‘유해조수기동구제반’은 “지속적인 퇴치사업으로 예전보다 30~40% 정도 줄었지만 덫이 없는 산꼭대기로 몰려 포획이 쉽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잣과 호두에 밤과 버섯까지 먹어대는 청설모! 동물보호단체도 사냥을 반대하지 않는 ‘유해조수’가 되었지만 청설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잣나무로 서너 아이를 대학까지 보냈던 주민들은 나무 밑에 올무를 둘러치며 옛 기억을 더듬지만, 청설모가 잣을 지금처럼 먹지 않던 시절의 가격은 기억하지 못한다. 청솔모가 먹어치우는 양이 시장에 쏟아져나오면 잣 값이 떨어지리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막대하게 수입되면서 잣만으로 자식 대학 등록금 마련하기 어려워진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사실 청설모가 늘어난 이후 생태계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 다람쥐를 몰아내었을 뿐 아니라 야생조류도 많이 줄었다. 둥지에서 알과 어미까지 잡아먹기 때문이다. 이를 전적으로 청설모 탓으로 몰아붙일 수 없다. 다람쥐는 청설모보다 사람들 성화 때문에 사라졌다. 집 나간 고양이가 근교를 석권했을 뿐 아니라 관광버스 타고 몰려오는 사람들이 도토리를 몽땅 털어가지 않았던가. 주민에게 사랑받던 때까지가 드물어진 이유는 무엇이던가. 산에 벌레 사라지게 하는 항공방제와 논에 개구리 몰아내는 농약은 누가 살포하나.


목도리나 조끼로 변한 여우와 담비는 이 땅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족제비도 희귀해진 산하에서 매와 올빼미마저 자취를 감추자 청설모는 두려울 게 없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비탈진 산을 잣나무로 절도 있게 심어 놓은 사람들이 까치와 함께 청설모를 유해조수로 규정한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분포하는 청설모를 1970년대에 들어온 외래동물로 오해하더니 까치와 달리 측은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혼찌검 정도가 아니다. 당장 퇴치해야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청설모 덕분에 숲이 건강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나중에 먹으려 파묻은 열매가 잣나무와 호두나무를 참나무처럼 자생하게 한다는 것을 알려하지 않는다.


한 농부는 청설모를 손쉽게 잡는 방법을 소개한다. 농약 담는 500리터 고무 통을 잣나무나 호두나무 숲 가장자리에 놓고 물을 살짝 부어 놓으면 된단다. 잣을 포식한 뒤 목이 타는 녀석들을 노리는데, 총포와 덫을 피해 산꼭대기로 달아난 청설모는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한꺼번에 스무 마리 이상이 농약 섞인 물에 허우적거리다 죽는다는 것이다. 맹금류가 두려워 산꼭대기를 싫어하는 청설모는 잣나무와 호두나무가 획일적으로 심어지지 않았다면 절대 총구 주위를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다. 한 겨울에 임신해 이른 봄에 낳은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살려야 하니 어쩔 수 없건만, 천적을 몰아내줄 땐 언제고 이제 퇴치 대상이라니.


숲에서 사람을 만나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멈칫거리다 긴 꼬리를 수평으로 늘이며 껑충,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넘는 청설모는 보는 이에게 자연의 생명력을 선사한다. 다람쥐와 때까치가 사라진 주변에서 청설모마저 볼 수 없다면 회색도시에 지친 사람들이 더욱 삭막해지는 건 아닐까. 유해조수를 지정하기 전에 사람들은 청설모가 농작물을 집중 탐하는 원인을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나락 훔친 사람처럼 멀리 달아나지 못하는 청설모는 억울할 것이다. 이제와 누가 누구를 퇴치하겠다는 것인가. (물푸레골에서, 2006년 12월호)

사람이 기르는 채소나 곡식을 덮치는 풀은 죄다 잡초라고 하지요.
돈이 되지 않는 건 그렇게 '잡'자 붙여가며 소탕하려 하잖아요.
청설모 가죽도 목도리나 핸드백 쯤 된다면 귀하게 여기려나.
우리 마을은 산 밀어내고 아파트 지어 올리니 그나마 청설모도 자주 볼 수 없네요.
저는 청설모를 유해조수라 규정하는 인간의 극단의 이기심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생태계의 시선에서 본다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사악한 유해조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끄러워하는 데에서 그칠 수 없을 테지만, 그저 반성 밖에 다른 행동이 없네요.
당신이 피해 입어보세요 열 받지요 -- 일년 농사 망쳐 버리는데 예수가 아닌이상 그냥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