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5. 2. 00:12

 

신사임당이 젊은 시절에 그렇게 말했다던가. 아름다운 꽃을 그린 화선지를 보고 벌과 나비가 없어 향기를 느낄 수 없다고. 초여름을 앞두고 전국 산하의 꽃나무와 들꽃들은 저마다 향기로운 꽃을 자랑한다. 꿀벌과 나비는 부지런히 날아다닐 것이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씨앗을 생산하려면 먼저 수술과 암술을 가진 꽃을 피워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닿아 수정되어야 한다. 수정을 바람에 의존하는 나무를 제외한 들풀과 나무는 꽃이 화사할 뿐 아니라 향기도 그윽하다. 꽃 속에 꿀이 들었다는 걸 암시한다.

 

이맘 때 꿀벌은 꿀을 모으면서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주는 역할을 맡는다. 꽃과 꿀벌이 진화한 이래 지금까지 둘 사이의 관계는 계속되었고, 앞으로 변함없을 것이다. 덕분에 양봉업자는 꽃을 따라 따뜻한 남쪽에서 북쪽 지방으로 오르고, 복숭아와 배도, 딸기와 참외도, 수많은 들꽃과 나무도 열매와 씨앗을 맺을 수 있다. 사람이 먹는 농작물의 삼분의일을 꿀벌이 수정한다.

 

한데, 요즘 꿀벌이 급속히 사라진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주로 유럽에서 나오는 외신은 꿀벌이 예년에 비해 70퍼센트 이상 사라졌다는 것인데, 최근 미국의 꿀벌은 급격히 격감한다고 걱정한다. 그를 반영하는지 얼마 전, 한 신문은 우리나라의 어떤 과수원에서 사람이 벌을 대신해 일일이 꽃에 붓으로 가루수정을 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벌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라는 건조한 설명과 함께.

 

꿀벌이 사라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짐작하는 대로 농약 때문일까.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하는 외신은 농약도 무시할 수 없지만, 최근 급속히 사라지는 원인으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광범위한 파종과 더불어 이동전화를 의심한다. 조작된 유전자가 농작물에서 꿀벌로 수평이동한 다음 꿀벌의 유전자를 교란했을 가능성과 전 세계를 뒤덮은 이동전화와 기지국에서 내보내는 전자파가 꿀벌 사이의 정보교환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은 가볍게 지나칠 수준을 넘는다. 방심하다가 생태계의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생존에도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은 원인을 한시바삐 밝혀내고 세계의 모든 국가는 황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시민들은 생존을 위해 마련된 대책에 마음을 모아 실천해야 한다.

 

외신은 한결같이 시간이 없음을 강조한다. 확실한 인과관계를 찾지 못해 머뭇거릴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다. 농약이냐 유전자 조작이냐 이동전화의 전자파냐를 논란하다 시기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경고로 들린다. 꿀벌이 농약에 유난히 약하다는 것은 사실인 이상, 농촌은 물론 항공방제도 자제해야 할 텐데,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어 걱정이다. 농약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농약 없는 유기농업을 어서 도입해야 하는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소비자들이 마음을 모으면 당장 피할 수 있다. 전통 농업으로 생산한 농작물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다국적기업에서 생산해서 수출하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소비자가 외면하면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꿀벌이 회복될지 두고 보아야겠지만, 더는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동전화의 전자파다. 이동전화의 편의에 길이든 시민은 물론이고, 이동전화 자본은 꿀벌을 위해 사업을 중단할 용의가 있을까.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을 경우, 결코 막대한 이윤을 포기하지 않을 텐데. 광고를 동원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소비자를 계속 현혹할 텐데. 쏟아지는 최신 모델마다 사실상 크게 필요하지 않은 기능을 추가하며 당장 바꿔야 할 것처럼 유혹할 텐데.

 

다급히 타전하는 외신을 보고 흐드러진 꽃을 주의 깊게 살피니 정말 꿀벌이 무척 드물다. 꿀벌이 줄어들자 꿀이 모인 남의 벌통을 빼돌리는 양봉업자의 범죄가 늘어난다는 뉴스가 등장하는데 우리는 조용하다. 벌이 사라진다는 뜻은 대책을 강구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의미인데, 왜 아직도 무관심한가. 사람은 꿀벌이 사라진 이후 4년을 견딜 수 없다는데. (요즘세상, 2007년 5월호)

님에게 인사드립니다.
저는 인서점아저씨라고 합니다.
글이 좋아서 스크랩하려다 실패하고 복사를 해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의 카페에 아래와 같은 글을 붙여서 올려놨지요.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인서점아저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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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겨레 신문에

<꿀벌이 사라진다>는 기사가 났더군요.



꿀벌의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 인간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아래의 다섯 가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 벌의 살아가는 생태적 습성에서 '자연환경'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 벌의 집단생활은 인간의 사회생활과 흡사하고 그것은 자연의 모습이다.

* 자연이 허용하는 집단생활의 민주주의적 조직의 한계를 알 수 있다.

* 인간의 집단생활과 조직의 한계와 극복을 사회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모델이다.

* 자연의 파괴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것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반응을 알 수 있다.



저는 이런 것을 토대로

청년시절에 '막 철학'이라는 것을 작성하였는데

여기서 추출한 논리가 저의 <삼각논리>이며

저를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가게 했던 발 그 <주체철학>이기도 하고

<현상발전의 법칙>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철학을 위해 저에게 모든 헌신적인 활동을 아끼지 않았던

저의 영원한 친구 '조영명'이라는 분과 함께 했던 저의 '사고와 인식'의 모두인 것입니다.

또 이 까페의 끝 부분에 <인서점아저씨의 막 철학>이라는 항목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는 제가 언제라도 이 '막 철학'을 쓰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여간, 그래서 어떤 이의 불로그에서 이 글을 복사해다가 올립니다.

(사실, 인사를 하고 스크랩 할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군요.)

인서점아저씨 올림



****벌의 생태와 그 조직과 활동을 주의 깊게 살피면

인간의 사회조직은 물론 그 한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철학, 신학도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발견하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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