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9. 1. 3. 22:08

인류세의 파국 앞에서

 

인류세,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정서진 옮김, 이상북스, 2018.

 

 

 

 

 

방어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맘때 제주도 모슬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방어는 덩치가 커서 그런지, “대방어라 칭한다. 몸길이 1미터에 10Kg을 넘나드는 방추형 방어는 연붉은 살이 부드러워 식도락가의 입맛을 자극하니, 수도권의 이름 난 횟집마다 개시를 알리는 입간판을 큼직하게 세워놓았다. 하지만 수족관에 초점 잃고 둥둥 떠다니는 방어의 덩치는 의외로 작다. 한 자 겨우 넘을라나? 알 한번 낳은 적 없는 어린 개체임에 틀림없다.


배 위에 오르자마자 몇 번 힘차게 버둥대다 이내 조용해지는 방어를 살려서 수도권으로 옮기기 무척 어려울 터. 항생제 듬뿍 넣은 해수에 빠뜨려 죽지 못하게 실어오려면 아무래도 덩치가 작은 게 낫겠지. 우리나라에 항생제 내성이 높은 건 병의원의 처방전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수족관에서 활어를 고르려는 습관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방어는 항생제보다 다른 이유로 피하고 싶다. 방사선이다. 그것도 인류가 만든 최악의 독성물질, 플루토늄.


자연계 우라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U238은 비교적 안정적인 물질이다,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는 U238의 핵을 97%, 고속 중성자를 맞으면 연쇄반응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U235의 핵을 3% 골고루 섞어 만드는데, 사용 전 핵연료는 덜 위험하지만 일단 핵분열이 시작되면 위험이 고조되고 폐기할 즈음 끔찍한 상태가 된다. 사용 직후의 핵연료 1미터 앞에 1초만 서성여도 생명이 끊어진다는데, 연쇄반응 과정에서 1% 정도 생성된 플루토늄도 한 몫 한다. 플루토늄은 알파선을 내놓는다. 알파선은 입자가 커서 종이도 뚫지 못한다지만 몸에 들어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방어는 회유성 연안 어류다. 이맘때 우리 남해안과 제주도 모슬포 연안에 모이지만 여름이면 물이 차가운 동해로 올라간다지만 동해에 머무르는 건 아니다. 오호츠크에서 타이완까지 널리 회유하며 분포하는 방어의 일부는 여름철이면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바닥에 널린 생선을 잡아먹으며 덩치를 키우는데, 그 무리는 우리 연안과 모슬포 일원을 반드시 피할까?


20113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연쇄 폭발 이후, 망가진 원자로를 빠져나온 핵연료에서 적지 않은 플루토늄이 추출돼 후쿠시마 연안의 바닥에 켜켜이 쌓였을 거로 추측할 수 있고, 먹이사슬이 거듭될수록 급격히 농축되는 플루토늄이 최종 포식자인 방어 몸속에서 알파선을 내뿜을 거라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 반감기가 24000년이 넘는 플루토늄 1그램이면 우리나라 인구 전부를 폐암으로 사망하게 할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그 중 극히 일부를 섭취하더라도 대단히 위험하므로, 방어를 굳이 외면한다.


폭발한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굴곡진 리아스식 해안을 짓밟고 들어섰다. 오랜 풍파를 받으며 구불구불 가장 안정된 지형이었지만 인간은 리아스식 해안을 일직선으로 메웠고 그 자리에 새운 핵발전소를 안전하다 계산했다. 리아스식인 우리 해안에 갯벌이 드넓다. 아니 넓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 매립했고 그 자리를 호화스런 비행장, 휘황찬란한 빌딩숲, 그리고 크고 작은 공단과 수많은 화력발전소로 채웠다. 영광군은 핵발전소에 내주었다, 일본과 달리 지진이 약하고 쓰나미가 없으니 염려 놓을까? 지구온난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빈도가 늘어난 태풍이 한층 강해졌고 지진도 예년 같지 않다던데.


인류세의 공룡?

 

1991년 한 생태학자가 인간을 홀로세의 공룡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라는 주장이 2000년대 초에 나왔다. ‘현세다시 말해 홀로세는 11700년 전 플라이스토세 빙하기가 끝난 무렵부터 이어왔지만 상황이 바꿨다는 거다. 인류의 적극적 활동으로 지형이 크게 바뀐 만큼 인류세(Anthropocene)로 정의하자며 오존층 연구로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뤼천이 제안했다. 물줄기와 육지의 안정성을 해치는 초대형 댐과 해안 매립만이 아니다. 생태계의 순환을 방해하는 온갖 화학물질은 생물종의 멸종을 부추기고 지구의 평균온도를 급상승시켜 사막화를 확산시켰다. 결국 2016년 국제층서위원회는 크뤼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류세의 공룡인가? 쥐라기에서 백악기 사이 대략 2억년 동안 번성하던 거대 동식물인 공룡과 양치식물은 6500만 년 전,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른바 대멸종이다. 전문학자는 1만년이라는 찰나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데, 지질연대로 삽시간에 생물종의 75% 이상을 멸종하게 만든 급작스런 지층 변화는 5차례 발생했고, 그 원인은 당시 번성하던 생물의 의지와 관계없었다. 지름 10킬로미터가 넘는 거대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발생한 지층의 급변이 5번째 대멸종의 원인이었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운석 충돌 이후 걷잡을 수 없는 화산과 지진이 이어지며 지표면이 요동쳐 먼지를 일으키고 기운이 급강하했을 텐데, 얼마나 많은 개체들이 그 순간 절명했을까?


쥐라기의 공룡은 수천 종으로 번성했지만 홀로세의 인간은 달랐다. 다른 생물의 안정을 방해하며 홀로 번성한 인간은 인류세에 이르러 자신의 종말을 스스로 예고한다. 쥐라기의 공룡은 자연 재해로 2억 년의 장구한 역사를 1만 년 만에 마감했지만 기껏 백만 년 전 존재를 드러낸 인간은 제 꾀에 걸려 넘어졌다. 경작과 가축화로 다른 생물의 생존을 억압한지 1만년 만에 다른 생물종의 멸종을 무모하게 재촉하더니 결국 자신의 생존 기반마저 허물어버렸다. 편견을 바탕으로 한 교만이었다. 이제 6번째 대멸종의 징후가 흉흉하건만 반성은커녕 인류세 주인공의 행태는 점입가경이다. 합성생물로 위기를 극복하겠단다.


자본이 주도한 한국의 산업화를 연구해 1980년대 중반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클라이브 해밀턴이 나섰다. 호주의 한 대학에서 전 지구적 성장 이념을 냉철하게 비판하던 그가 이 지경에 이른 인류세를 제대로 파악하자며 Defiant Earth펴낸 것이다. 번역하면, 도전적인 지구? 저항하는 지구? 부제로 인류세에 놓인 인류 운명(the fate humans in the anthropocene)”을 덧붙였는데, 우리 독자들이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을 터. 번역 출판한 출판사는 알기 쉽게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으로 옮겼고 책 제목도 인류세로 내놓았다.


인류세의 저자 해밀턴은 독자에게 경각심을 전하고자 책을 쓴 게 아니라면서 첫 페이지를 열었다. “인류세에 도달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고자 암중모색한 거라고 책의 의미를 부여했다. 암중모색? 망가뜨린 지구를 더 늦기 전에 지켜주자던가 반성할 줄 아는 생물종인 인류가 지능을 최선으로 끌어올리는 행동으로 이제라도 파탄을 막아보자는 호소는 아니다. 눈부신 과학기술로 극복할 수단을 찾아보자는 제안은 더욱 아니다. 생존을 위협할 만큼 생명유지 시스템이 훼손되었건만 별일 없는 듯 살아가는 우리는 숱한 경고를 무시한다. 막연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에 희망을 거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인간에게 인지적 도약필요하기에 절박한 마음으로 해밀턴은 암중모색을 시도한다.


인류의 인지적 도약이 필요하다

 

오늘날 가장 큰 비극은 비극을 비극으로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고 말하는 해밀턴은 인류세는 지구 역사의 균열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균열일까? 20대에 탄자니아 곰베 숲에 들어갈 때 300만 마리 넘던 침팬지가 50년 만에 1% 미만으로 위축되었지만 제인 구달은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므로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따뜻한 마음이지만, 개발에 저돌적인 인간이 반성을 호소하는 인간보다 훨씬 많은 세상에서 지구 생명 시스템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처참해졌다. 먼 훗날, 인류가 사라지고 한참 지난 뒤 지층에 균열은 뚜렷할 것이다. 인간에게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여유가 한시적으로 몇 십 년 남았다고 믿지만 인류세저자는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임진강에도 4대강에 설치된 대형 보가 세워질 뻔했다. 콘크리트로 번듯하게 세운 대형 보는 촛불 정권이 들어서도 없애지 못한다. 없애기커녕 눈치 보기 바쁘다. 대형 보가 높인 수위에 맞춰 시설재배를 시작한 농부들이 수위 조절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가. 보 때문에 생태계가 붕괴되고 수질이 오염되었지만 여태 엉거주춤한다. 중국 양자강의 수위를 170미터 이상 끌어올린 싼샤 댐이 완공되고 2년 뒤 쓰촨 성 대지진으로 수십만 인민이 사망했지만 인과관계는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수압이 원인이라는 결론이 나오면 중국 정부는 세계 최대 수력발전을 포기하고 싼샤 댐을 허물까?


자연경관과 생태계에 인간이 영향을 미치므로 인류세라 정의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해밀턴은 지구 시스템 전반의 기능에 생긴 균열을 설명하는 용어가 인류세라고 강변한다. 지구는 이제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걸 이해하자고 독자를 다독인다. 기술로 감히 해결을 시도할 수 없다. 지형이나 기후, 생태계와 환경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범주다. 해밀턴이 말하는 지구 시스템 과학은 생태적 사유를 대체하기보다 새로운 사고체계라고 강조한다. “생태계 교란을 뛰어넘어 지구 시스템의 균열을 인식하는 질적 도약을 포착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인류세, 좀 아리송하다.


인류세 개념이 나오자 사화과학자와 자연과학자의 해석이 난무한다. 그들은 인류가 지구에 가할 수 있는 위협을 축소하면서 그릇된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고층대기에 황산염 입자를 뿌려 온난화를 막자는 제안은 기후과학을 부정하고 싶은 정치인과 관련 자본의 지지를 끌어들인다. 관련 연구비가 이어지겠지. 인류라는 지구의 훌륭한 지적자산의 노력으로 매력적인 행성은 난관을 극복할 거라는 믿음이 인간 세상에 스며들겠지.


지구의 모든 육상 척추동물의 질량을 따져보자. 인간이 30%, 가축이 67%. 이제 생태계가 안정되었던 홀로세로 도저히 되돌아갈 수 없다고 지적하는 해밀턴은 인간을 특출한 생물로 오만하게 인식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도덕적으로 겸허해야 한다고 말한다. 변화의 속도, 어쩌면 인간이 당연히 포함될 6의 멸종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자연의 구조 안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한다는 거다. 관성적이던 행동에 제약을 가하고 스스로 절제하자는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 새만금에 핵을 대체할 태양광 발전이나 내연기관을 없앨 자율주행차는 아니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환경변화를 이기는 곡물을 그때그때 개발하는 일도 아니다.

 

인류세는 언제부터일까? 학자마다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는데, 해밀턴은 콕 짚어 1945년을 제안했다. 홀로세에 없던 플라스틱과 유기화합물질이 그 즈음 출현했지만 무엇보다 방사능물질이 본격적으로 축적된 시점이다. 핵폭탄이 떨어지면서 수천 핵실험이 연거푸 자행되자 남극 빙하에 방사성물질이 나타나기 시작하지 않았나. 일본의 핵화학자 다카기 진자부로오가 반핵학자로 회심한 계기가 그랬다. 그는 촉망받던 과학자에서 다음세대를 걱정하는 생태주의자가 되었다.


자연과 합일하기 위한 노력을


지구 생명 시스템은 태양계의 에너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구 시스템 과학은 생태적 사유를 초월해야하므로 인류세에서 인간은 어떤 대안 행동을 암중모색해야 할까? 인류세의 저자는 자연과 분리된 인류의 독립된 역사가 현대사회과학의 기반이 되었다는 걸 상기한다. 그 결과 인간이 인류세에 내몰리게 되었겠지. 그렇다면 다시 자연과 합일해야 한다. 적어도 경작을 시작한 시절의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품이 두 개인 도끼와 화살로 수렵채취해 가족을 먹이고 입히며 집도 지어야 하는데, 그럴 땅도 기술도 의지도 인류세에 없다. 반면 먹여 살릴 인구가 지나치게 넘친다.


생물 종 75% 이상 사라지면 지구생태계는 리셋 현상으로 들어갈 것이다. 산업화 시대보다 섭씨 평균 3.4도 이상 상승하면 양의 되물림현상으로 지구는 6.4도 이상의 상승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그리 상승하면 심해에 얼어붙은 막대한 양의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대기에 분출되며 불이 붙어 지상에서 탈 수 있는 모든 게 사라질 것으로 전문학자가 분석한 기사를 10여 년 전에 보았다. 10년 이내에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100년 안에 불행이 다가올 거라 당시 전문학자가 경고했는데, 이미 10년이 속절없이 지났고 파국을 맞을 상승온도를 3.4에서 2.0도로 최근 수정했다. 지난해 10월 초, 갯벌을 광활하게 메운 인천 송도신도시에서 IPCC(기후변화에 관란 정부간 협의체)는 기온 상승을 1.5도에서 막아내자고 다급하게 결의했지만 구속력이 이어지지 않았다. 후손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


결국 6번째 대멸종으로 이어진다면 지금과 같은 인간이 진화해 다시 등장할 리 없다. 인간 비슷한 지능을 가진 존재가 운 좋게 진화된다면 인류세를 인식할지 알 수 없는데, 지금의 인간은 지구 생명 시스템이라는 기댈 언덕이 형성되었기에 등장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언덕이 거의 무너져간다. 인간 자신의 탐욕에 의해. 우린 분수계를 넘었다. 돌이킬 수 없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마 앞에 성호를 긋고 멸종을 기다려야 하나? 아니라면? 인류세를 읽고 경각심을 갖자. 초롱초롱한 눈매를 깜박이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행복해야 하니까. (녹색평론, 2019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