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7. 19. 10:06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뤽 폴리에 지음, 안수연 옮김, 에코리브르, 2010.

 

“풍경기억상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이스터 섬의 비밀을 조명하면서 ‘풍경기억상실’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한 벌판에 거대한 석상, 모아이가 수백 개나 늘어선 모습이 이채로운 태평양의 외로운 섬 이스터는 원래 야자수가 울창할 정도로 기름진 땅에 먹을거리가 넘치는 낙원이었다. 안정된 환경에 정착한 최초의 인구가 서서히 늘어 자급의 경고등이 커지기 시작했건만,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작은 섬은 인구와 삶의 규모를 줄이며 안정을 모색하지 않았다. 생활 습관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면서 종족 갈등이 심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치달은 ‘모아이’ 세우기 경쟁은 야자수를 마구 자르는 무모함으로 이어졌다. 나무가 사라지자 거센 바닷바람과 뜨거운 태양에 노출된 섬은 기름진 흙과 마실 물을 잃었고 주민들은 고기 잡는 카누를 만들 수 없었다. 목숨과 더불어 조상에 대한 기억마저 잃은 역사는 이스터 섬에서 그치지 않았다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적한다.

 

“마지막 나무를 자른 주민의 기분은 그때 어떠했을까요?” 학생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연구실로 돌아가 생각했다. 비참했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다음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마지막 나무를 자르면서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어느덧 대부분의 나무를 잃은 섬은 이미 황폐화되었고,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섬의 모습은 풍요로움과 거리가 한참 멀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게 비참해진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뇌리에 울창했던 풍경은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며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풍경기억상실’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풍경기억상실.” 외부의 지원이 차단된 공간에서 지나친 개발이 빚는 풍족함의 한계가 음울한 신호를 보낼 때, 정신 차리지 못하는 사람은 망가지는 주변 풍경에 익숙하게 되면서 결국 과거의 기억마저 잊고 만다는 서글픈 용어다. 우린 어떤가.

 

이스터, 다시 말해 부활절에 방문한 19세기 서양인이 이름을 붙인 그 섬은 풍요로웠던 자신의 기억을 깡그리 잃었지만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우루공화국은 그리 멀지 않은 추억을 무력하게 되씹고 있다. 한 세대 전 만해도 퍼올리는 인광석으로 흥청거리지 않았던가. 매장량의 한계를 진작 알았고 발굴되는 양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돈으로 지탱되는 삶을 전혀 바꾸려 들지 않았다. 위기가 드러난 상태에서 더욱 탐욕스러워진 정부는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국제 사기꾼에 넘어가 남은 해외 자산마저 몽땅 잃자 급격히 쇠락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광석이 사라지자마자 국제사회에서 처참하게 버림받은 나우루공화국에서 ‘풍경기억상실’ 현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공동체의 종말은 참으로 비참하다는 현실은 지구촌에서 현재진행형이다.

 

프랑스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뤽 폴리에는 흔적만 남은 나우루공화국을 방문해 2009년 국제저널리즘회의에서 조사 및 탐구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을 썼다.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북동쪽으로 3500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 오세아니아 섬나라 나우루공화국은 초등학생의 지구본에 나오지 않는 21제곱킬로미터의 작은 바위섬이다. 1896년 나우루 섬에 잠깐 정박했던 선장이 가져온 나무처럼 생긴 돌 하나가 ‘한 여름 밤의 꿈’의 시원일 줄이야. 몇 년 동안 사무실을 굴러다니던 돌멩이가 순도 100퍼센트에 가까운 인광석이었고 이는 농토가 척박한 이웃 나라는 물론이고 전쟁을 준비하려는 유럽의 국가들도 눈을 크게 뜨고 찾던 물질이었다. 사람이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거의 오늘까지 북반구와 남반구를 가로지르는 철새들이 산호초 사이에 세세만년 배설해 형성된 인광석. 대략 2000년 전 정착한 주민들이 과일과 낚시로 유유자적할 때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지구촌이 산업화된 이후 나우루공화국에 화근이 되었다.

 

19세기 말 인광석을 발견한 뒤 마구 발굴한 서구 열강들의 탐욕에서 간신히 벗어난 나우루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우여곡절 속에 공화국으로 독립할 수 있었지만 국토는 이미 절반 이상 파헤쳐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1973년 석유 위기 이후 가격이 치솟은 인광석으로 GDP 2만 달러를 벌어들인 나우루공화국은 이후 국고가 달러로 넘쳤고 국가가 월급을 지불하는 가정부의 도움을 받는 국민들을 난생 처음 맞는 서구식 풍요로움을 꿈결처럼 만끽할 수 있었다. 세금이 없는 국민들은 초현대식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감당할 수 없는 환자가 호주 멜버른의 병원에 입원하는 사이 가족들이 머물 주거지역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순환도로에 고급 자동차를 몰고 나가 배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국민들은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중국음식을 주문해 먹었으며 고치기 귀찮아 자동차를 바꾸는 낭비를 일삼았다.

 

머지않아 인광석이 고갈되어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해외의 건물과 자금을 확보하고 걸핏하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자국민을 유학 보내 내일을 대비하려 했지만 면밀한 분석을 할 줄 몰랐던 벼락부자 나우루는 비상등이 커져도 도무지 자제할 줄 몰랐다. 확실한 보증이 없었던 해외투자는 적신호를 보였어도 사기꾼에 속아 실체도 없는 기금에 거액을 날렸고 대통령은 물론이고 장관과 그 부인들까지 국고를 개인 목적으로 낭비하거나 착복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급기야 “정치인들이 배를 불릴 때 국민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아이들은 말라간다!”며 여성들이 항의 시위에 나서자 해외에서 빌린 자금을 국민에게 나누어준 정부는 해외재산을 흥청망청 탕진했고, 돈이 없자 국제 테러리스트에게 여권을 팔아 챙겼으며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 망명자들을 수용할 난민촌을 짓는 대가로 호주에서 돈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0년 이후 캐낼 인광석이 거의 없는 나우루공화국은 아직도 옛 추억에 젖어 있다. 기름만 생기면 다 망가진 고급자동차를 몰고 순환도로를 달리거나 잡초가 무성한 골프장으로 향하는 주민들은 고도비만과 당뇨에 시달린다. 예측 없이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으로 아이들이 죽어나가던 시절 1000명으로 유지되던 인구는 느닷없이 쏟아진 달러 덕분에 열배로 늘었는데, 그만 성인병에 노출되고 만 것이다. “내일 일은 저절로 해결된다.”는 생각으로 과일과 낚시로 자족하던 때에도 비만이 많았던 나우루였는데, 지금은 쿠바에서 9명의 의사가 파견되어도 평균수명이 50세에 그친다. 늘어난 인구는 아직 한 여름 밤의 꿈이었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데 나우루공화국은 유유자적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권 수뇌부에 분노하지 않는 나우루 사람들은 30년 만에 자신의 고유문화를 잊고 말았는데, 돈 한 푼 없이 인공투석기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나우루의 내일은 저절로 해결될 수 있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나우루공화국이나 이스터 섬의 사례에서 우리는 커다란 교훈을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뤽 폴리에는 취재 중에 만난 호주 사업가의 말을 빌려 “무엇보다 자신의 물질적이 안락이 보장되지 자신의 문화를 등한시하고,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자신의 환경을 돌아보지 않는 인간의 역사, 그것이 곧 나우루입니다. 이 점에서는 나우루인이건 서구인이건 중국인이건 모두 다를 바 없습니다.”하고 권말에 덧붙였다. 그 점에서 ‘타산지석’이라는 경구를 가진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점은 무엇인가. 석유위기와 지구온난화는 이미 첫 번째 경고등이 아닌데.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은 내일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우리의 절박한 행동을 시급히 요청한다. (사이언스타임즈, 2010.7.19)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6. 1. 25. 16:06
 

흔히 8대 불가사이 중의 하나라고 말해왔던 이스터 섬의 거석, 원주민들이 ‘모아이’라고 칭하는 거대한 석상은 이제 불가사이가 아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벌판, 변변한 도구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식인까지 서슴지 않던 이스터 섬은 원래 울창한 숲을 자랑하던 풍요로운 섬이었다. 1100년 전 섬에 첫 정착해 번성한 부족 사이들이 벌인 석상 세우기 경쟁은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게 했고, 외부에 원조를 청할 수 없던 이스터 주민들은 그만 나무와 문명과 조상의 기억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황폐해지고 만 것이다.

 

1722년 부활절, 우연히 섬을 들른 네덜란드의 탐험가는 주민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부활절을 의미하는 ‘이스터’로 섬 이름을 붙이곤 수십 톤에 달하는 석상을 어떻게 세웠느냐고 물었다. 원주민들이 석상들이 저벅저벅 태평양을 걸어왔다 대답하니 당시 백인들은 불가사이라 규정했을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최근 정밀해진 과학은 이스터 섬의 모아이와 황량한 풍경은 생태계 파괴의 비참한 결과라는 걸 일러준다. 카누를 만들 만한 나무를 모조리 베어낸 이후 고기잡이에 나설 수 없던 이스터 섬 주민들의 후예는 지금 칠레의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지막 나무를 베어낸 주민은 당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명의 붕괴』(김영사 2005)에서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어떤 학생의 진지했던 질문을 상기한다.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주민이 단지 석상을 옮기기 위해 마지막 나무를 베어내면서 ‘이게 마지막이구나, 나무가 다 사라지면 우린 배를 만들 수도, 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도 없을 텐데’하고 아쉬워했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지막 나무를 베는 사람은 이스터 섬이 울창했다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어디 가나 황량한 섬에 나무가 드문드문 할 따름이었고, 나무 없다고 삶이 달라지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런 현상을 ‘문명 기억상실’이라고 정의한다. 서서히 황폐해가는 자연에서 원래 울창한 숲과 그에 어울렸던 제 문명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현상, 척박해지는 삶으로 퇴행하는데 익숙해지면서 과거 찬란했던 삶을 잊고 마는 현상이라고 『문명의 붕괴』에서 진지하게 설명한다. 저녁 지을 때 필요한 나무 한 줄기 찾으러 사막을 반나절이나 걸어야 하는 에티오피아 시민들은 국토의 90퍼센트가 넘던 반세기 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사막이 점차 확장되는 중국의 인민도, 갯벌이 서서히 사라지는 인천의 시민도, 모래가 사라지는 해운대의 주민들도 제 문명을 망각할지 모른다.

 

겨우내 동면중인 개구리를 한 소쿠리 잡아온 오대산 청년들은 꾸물거리는 개구리들을 뜨끈뜨끈한 물이 담긴 대야에 들이부었다. 화들짝 놀란 개구리들은 변온동물인데도 영하의 날씨에도 달아나려 애썼다. 여름철이라면 벌써 튀어나갔을 것이다. 여름철, 시원한 물이 담긴 대야를 석유난로에 올려놓고 물 온도를 조금씩 올려보자. 대야 속의 개구리들은 서서히 오르는 수온에 익숙해지며 모두 차례로 죽어버리고 만다. 자신에게 익숙한 수온을 망각한 것이다. 마지막 나무를 잘라낸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수온이 서서히 오르는 대야 속의 개구리처럼 자신의 문명을 잊고 말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저지르는 생태계 파괴로 문명이 서서히 붕괴되는 징후를 보이는데도 감지하지 못하는 지구촌의 주민들에게 경고한다. 외부의 지원이 없는 이스터 섬과 지구의 운명은 다르지 않다고 우리를 깨운다.

 

아토피성 피부병 환자가 점차 늘어나고, 암과, 뇌와 심혈관 질환이 젊은 층에 확산되는 현상은 지구에 전에 없던 물질이 증가한다는 걸 웅변한다.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석유 값이 조금씩 상승하는 것은 이산화탄소가 늘어나고, 여름에 에어컨으 춥게 가동하고 겨울에 외투 불편하게 만드는 에너지 고갈이 멀지 않았다는 걸 예고한다. 이럴 때 우린 내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정화되지 않는 물질을 자연에 내놓는 막개발과 핵발전과 생명공학으로 흥청거리며 문제를 피할 수 있을까.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며 오만해하다, 문명 기억상실로 빠져들까 두렵다. (기호일보, 2006.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