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2. 1. 22. 00:43

 

민주화운동으로 청춘을 바친 친구는 그런 일을 망원이라 했고, 난 그 망원유혹을 받은 적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의 이야기다. 인천 환경에 대한 동향 보고를 일주일에 두 번, A4용지 3페이지 이상 써서 보내라 요구한 이는 A4 한 장 당 원고료가 50만원이니, 두 달만 해보라 강권했다. 겉장에 동향 보고”, 이상 없으면 다음 장에 이상 없음”, 마지막 장에 으로 써도 무방하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는데, 일주일이면 최소 300만원, 두 달이면 2400만원에 달하는 거금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얼마나 될까.

 

인천 도림동에 난데없이 송전탑이 들어서기에 황급히 집회에 나선 주민들에게 저항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공부방으로 돌아오니, ‘모처에서 고압적으로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행동 삼가라!”한 전화가 왔다고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는 후배가 일러주었다. 그는 당시 안기부 직원이었고 집회 현장에 분명히 없었지만 내 말과 공부방 전화번호를 훤히 알고 있었다. 이후 가끔 전화로 밥 사겠다, 술 사겠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날리더니 정권이 바뀌면서 연락이 홀연히 사라졌는데, 아마 은퇴했을 그이가 내게 망원을 요구했던 거다. 그이의 업무를 이은 다른 이가 누군지 지금은 전혀 모른다. 새로운 이는 내 일거수일투족에 수수방관할까.

 

독일의 전력회사는 200여 개다. 지역을 분할하는 일본처럼 우리도 몇 개 전력회사가 지역을 나누고 있지만, 지배관계를 들어다보면 사실 하나나 다름없다. 게다가 송배전을 한 회사가 독점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전력회사는 중앙의 결정에 움직이는 독점 기업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전기를 생산하며 방사성 물질을 조심해야 하는 영광과 울진과 월성과 고리도, 유연탄에 섞인 오염물질이 쏟아지는 인천과 보령 같은 지역이나, 소비 대비 생산량이 0.0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서울까지, 전기요금이 똑같다. 그런 나라는 세계적으로 몇 개 안 된다. 중앙에서 전기의 생산과 송배전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중앙을 지배하는 자는 지역을 배려하지 못한다. 아니 억압하기 일쑤다. 중앙에서 생산해 독점 공급하는 자는 지역의 소비자에 감사할 게 없다. 베푸는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전기를 독점적으로 생산해 시혜하듯 공급하는데, 소비자의 고충을 헤아릴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우리나라 전기는 소비자가 별로 없는 시골에서 주로 생산해 낭비하는 대도시, 특히 서울로 몰려간다. 이제 대용량을 자랑하는 위험 덩어리 핵발전소가 추가될 모양이니 거대한 송전시설이 마땅히 필요할 게고, 송전탑 건설에 거치적거리는 지방의 골칫거리들은 당연히 제거되어야 옳다. 그를 위해 과거 정보기관이 동원되었듯, 요즘은 경찰이 동원되는가보다.

 

막대한 자금을 휘두르며 정치와 행정은 물론, 언론까지 좌지우지하는 전력회사는 그동안 밀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도시 사람들이 모르게 만들었다. 한 불만투성이 노인이 송전탑을 막기 위해 느닷없이 분신자살을 했다는 식으로 보도한 언론은 경찰의 입을 빌어 그저 사고일 뿐이라고 둘러댔다. 그랬나. 과연 그랬나. 송전탑, 그것도 766천 볼트나 되는 초고압의 송전탑, 사람과 가축은 물론 농작물의 생육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의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초고압의 전력선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게 된 밀양에서 그동안 송전탑을 놓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주목하지 않은 언론이었다. 그들은 역시나! 분신 이후 알량한 관심마저 껐다.

 

국회에서 사고사로 알고 있도록 만든 경찰과 언론. 그리고 사고사로 믿고 별 움직임이 없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전부 중앙 집권적 권력에 통제돼 있다. 권력은 바로 송전탑을 불사하려고 밀양시민의 고통과 분노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중앙이다. 어쩌면 통제되는 게 아니라 자진해서 영합하고 있을지 모른다. “저희는 자기 과실로 봅니다. (깻단에) 불을 붙이려고 하다 바람에 (옷에 불이) 확 붙으니까 발부터 탄 거죠라던 경찰의 발언은 중앙의 권력에 대한 충성맹세다. 이후 휘발유통이라는 증거를 인멸하려 한 그 경찰의 발언을 그대로 전파에 실은 언론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다 도망가고 없다! 경찰이 상황을 분명히 확인했으면서도 딴 소리를 하고 있다!”고 분개한 밀양시민은 주어지는 편의를 고맙게 소비해야 하는 지방의 한낱 불순분자일 따름이다.

 

일단 핵분열이 시작되면 끌 수 없기에 더욱 위험한 핵발전소에서 만들어내는 전기를 서울로 꾸역꾸역 옮기고자 만드는 송전탑은 산도 들도 강도, 경우에 따라 바다도 가른다. 바다를 낀 전국의 핵발전소만이 아니다. 화력발전소에서 이어지는 송전탑과 송전선은 내일까지 휘황찬란하게 낭비하는 중앙을 향해 무섭게 도열한다. “한국전력과 정부의 무성의로 절망감에 빠진 농민들이 벼랑에 몰려 있다고 증언하는 부산교구의 한 신부는 망자와 사지로 몰린 주민들을 보듬지만, 신고리와 신월성과 신울진과 더불어 삼척과 영덕에서 핵발전소는 거푸 돋아 오를 모양이다. 핵발전소로 권력을 확대하려는 중앙은 다음세대의 생명까지 저당했다. 일본 후쿠시마의 악몽은 그들 머리에 없다.

 

구소련의 체르노빌과 미국의 드리마일 핵발전소처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은 그 나라의 악몽으로 멈추지 않는다. 그 시대의 재앙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그런 핵발전소를 막으려면 소비자들이 나서야 한다. 74세의 농부 이치우는 90대 노모를 모신다고 했다. 그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그는 행동했다. 그의 내리사랑은 희생이었다. 그래서 그는 열사다. 헤이그에서 목숨을 버린 1907년의 이준, 옥중에서 사망한 1920년 유관순, 멕시코 칸쿤 세계무역회의 회담장에서 자결한 2003년 이경해와 같은 반열이다. 문제의 송전선로에서 350미터 떨어진 수녀원은 분명하게 동의했다. 재청들이 전국에서 이어질 게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이치우를 기려야 한다. 그의 희생을 분수령으로, 이 땅에 핵발전소를 마감하게 만들도록 소외된 소비자들이 궐기해야 한다. 독일도 그런 행동이 이어져 결국 핵발전소를 모두 끄기로 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독일의 선례를 따르는 이유도 그렇다. 핵에너지로 전기의 대부분을 얻는 프랑스도 머지않았다. 일본도 그럴 게 틀림없다. 우리도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경찰과 언론, 행정과 법원이 성가시게할지라도, 이치우 열사를 기리는 행동은 이제부터 불붙어야 한다. (지금여기, 2012.1.21)

글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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