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3. 7. 12:58

 

10여 년 전인가. 한국해양연구원의 한 연구자가 바다의 경제적 가치가 4경 원에 이른다고 계산해 환경운동가들의 이목을 끈 적이 있는데, 최근 미국의 한 천체물리학자가 지구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해 우리 돈으로 물경 5407천 조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화성을 1만 파운드, 금성을 1페니의 가치로 평가한 그는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과 질량의 질과 양을 기준으로 환산했다고 하는데, 계산하는 연구자의 시각에 따라 평가되는 가치는 천차만별일 것이니, 그저 흥미로운 연구의 하나로 기억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가치를 평가할 때, 지구보다 훨씬 들쭉날쭉한 기준을 적용할 분야는 아마 인간 자신일 것 같다. 아이의 생일잔치에 수천만 달러를 물 쓰듯 쏟아붓는 부자와 항생제를 한 알 구하지 못해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잃는 지역의 통계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2008년 인간의 생명가치를 1인당 500만 달러로 설정한 미국 식품의약청은 이듬해 790만 달러로 높였다는데, 그 근거는 자신이 죽을 확률을 낮추느라 미국인들이 사용한 비용의 평균이었다고 한다. 합리적인가.

 

같은 방식으로 계산할 때 나올 우리나라 수치는 어느 정도일까. 아마 미국보다 작을 텐데,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보다 인간의 가치를 천박하게 취급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의료 처지에 들어가는 비용의 높낮이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의료 처치의 양적 질적 차이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여길 수도 없다. 미국이나 우리나, 잘 사는 나라나 아니나, 인간의 경제적 가치를 통계로 산정한다는 건 무례하다는 느낌이다.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며 느끼는 무한한 감동과 애정,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이를 잃고 느끼는 끝모를 허전함과 안타까움은 소득의 다소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1959년 미국의 49번 째 주가 된 알래스카는 1867년 러시아에 720달러를 주고 매입한 황무지였다고 한다. 당시 얼음에 뒤덮인 알래스카를 구입하는데 미 의회가 강력히 반대했다는데, 현재 채굴하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치는 물론이고 전략적 위치를 고려해도 미국은 뜻밖에 횡재했다고 누구나 공감할 테지. 우리 돈으로 10억 원도 안 되는 헐값으로 구입한 알래스카는 당시에도 수만의 원주민들이 살았다. 1967년 미국과 러시아는 원주민 생명의 경제적 가치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겠지.

 

군대에서 1980년대 졸병들은 우스개로 ‘1종반납이라는 말을 했다. 1종이면 병사를 말하고 1종반납은 군에서 사망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건데,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훈련이나 사고로 병사가 사망할 경우 1인 당 아주 가소로운 돈을 받는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한데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돈으로 환산한 교수도 미국에 있다. 칼슘과 마그네슘, 철과 미량의 구리를 고려할 때 고작 89센트에 불과하다는 거다. 1980년대 군대에서 1종반납의 대가로 지급하는 돈이 오히려 더 많았을 테지만 장기를 거액으로 사고파는 요즘세상에 누가 인체를 화학원소 가격으로 평가하겠는가. 인체의 원소가치를 계산한 그 연구자는 부질없는 결과를 세상에 더 보텐 셈이다.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자동차 지붕이 구겨져 해마다 135명이 사망하는데, 부시 행정부가 설정한 인간 생명가치가 지붕 강화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8억 달러 낮아 규제안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 가치를 높인 덕에 자동차 지붕이 강화될 토대가 마련되었다는데, 인간 생명가치가 정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는 자국민을 상대로 싸우는 용병에게 하루 1천 달러를 지불하고 시위대 한 명 사살하면 2천 달러를 내준다는 흉흉한 소문도 인터넷에 돈다.

 

개성을 가진 자기 고유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려는 인간의 천박한 행위는 참으로 터무니없는데, 인간이 보는 인간의 가치는 그렇다 치자. 540경 원이 넘는다고 인간이 계산한 지구가 보는 인간의 가치는 과연 어떨까. 인간 없이 여태 잘 존재해온 지구에게 요즘의 인간처럼 부담스러운 구성원은 더 없을 텐데. (요즘세상, 201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