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8. 2. 00:11

 

지금이야 실크 블라우스 입었다는 게 특별한 자랑거리가 아니지만 1970년대 대학가에서는 위화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비가 내리면 블라우스 젖는다며 수선을 떠는 모습을 눈꼴시게 바라보아야 했던 건데, 지금 실크 제품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 옛날, 서양인의 피부를 부드럽게 감싼 실크는 돈 있는 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거친 사막과 험준한 산악의 좁은 회랑을 실크로드로 작명하며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실크는 비단이다. 최고급 원단을 상징했던 비단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 제품이 선호되었나 보다. 1960년대 인기가수였던 김정구는 <왕서방 연서>를 크게 유행시켰는데, 비단 장수 왕서방이 번 돈을 모두 바치며 기생 명월이를 만나더니 좋아 어쩔 줄 몰랐다는 내용이다. 왕서방의 눈을 멀게 한 명월이는 비단보다 더 고왔던 모양인데, 왕서방이 동의할지 알 수 없지만, 명월이보다 고운 딱정벌레가 있다. 발품을 아무리 팔아도 만나 주기는커녕 먼발치에서 구경하기조차 어려운 우리의 천연기념물, 비단벌레다.

 

천연기념물로 제의할 때 문화재청은 “한반도에서 분포하는 곤충 가운데 그 빛깔이 가장 아름다운” 종류로 평가했는데, 애완곤충으로 명성을 떨치는 장수풍뎅이나 장식용으로 인기가 높은 광대노린재는 그 소식에 섭섭했을까. 나비들도 수긍했을지 알 수 없는데, 2008년 10월에 496호 찬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단벌레는 “문화적, 생태학적 가치와 함께 멸종위기 대상 종으로서 보전 대책이 요구됨에 따라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문화재청은 덧붙였다. 이미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2급에 지정한 후였다. 왜 1급이 아니라 2급인지, 비단벌레는 그게 궁금하지 않았을까.

 

1센티미터 남짓한 폭에 길이가 4센티미터에 이르는 비단벌레는 날렵한 몸매 이상 아름다운 무늬를 단단한 등판에 수놓았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푸른 금속광택을 홀로그램처럼 발하는 등판에는 네일 아티스트가 솜씨를 뽐낸 듯 가늘고 긴 주황색 무늬가 가장자리를 타고 영롱하게 흐른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 옥충(玉蟲)이라 하는 비단벌레를 중국은 녹금선(綠金蟬)이라 부른다던데, 남자를 유혹하는 성분이 있다는 중국의 속설과 관계없이 그 자태만으로 여인네들의 장식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미인박명이라는 말. 사람에게 한정되지 않을 성 싶다. 양귀비나 황진이처럼 비단벌레도 어느새 전설이 되어가기에 이르는 말이다. 자개를 위해 전복이나 오분자기 껍질이 동원되듯 비단벌레의 등딱지가 오래 전부터 공예품에 부착되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대만, 남부 중국에도 분포한다는 비단벌레는 곤충도감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할 만큼 자취를 감췄다. 남도의 팽나무나 후박나무, 왕벚나무나 느티나무의 수관부에 알을 낳는다는 비단벌레, 3센티미터로 애벌레가 성장할 때까지 5년 가까이 수관부를 갉아먹는 비단벌레는 왜 보이지 않는 걸까. 비단벌레가 좋아하는 나무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발굴된 의복과 마구에 비단벌레 등딱지가 장식되었고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굴한 말안장은 2000마리 분의 비단벌레가 동원된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한다. 그뿐이 아니다. 고구려 동명왕릉 구역의 7호 무덤에서 찾아낸 ‘해뚫음무늬금동장식’에도 비단벌레 장식이 완연했다. 일본 법륭사에 보존돼 있는 목공예품 옥충주자에는 무려 4500마리의 비단벌레가 장식되었다던데, 사실 일제 강점기 때 발굴한 우리 부장문화재에서 비단벌레를 본 일본 학자들은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비단벌레 장식은 제 나라의 고유 문화재로 믿었는데 흔들린 게 아닌가.

 

일본의 비단벌레 장식 유물을 백제 장인이 만들었는지 여부가 궁금해진 일본학자들이 3차례나 방문해 대대적인 조사를 했지만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하고 단지 분포한다는 소문만 들었다고 하던데, 남도에 한정돼 분포하는 거로 알려진 비단벌레가 삼국시대에 얼마나 많았을까. 황남대총 유물의 비단벌레에서 오키나와 산이 있었다고 하니 당시 일본과 무역이 그만큼 활발했는지 모른다.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야 생존이 가능한 비단벌레는 일본 열도에 많았을 테니 물량이 딸리자 수입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비단벌레 장식의 시원은 어디였을까.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연구과제인데, 분명한 것은 우리보다 일본이 연구나 비단벌레 복원에 훨씬 열성적이라는 사실이다.

 

발굴된 천여 년 전의 금장 문화재에 금은 변색되었어도 비단벌레 장식은 아직 영롱한 빛을 잃지 않았다는데, 조상은 아름다움만으로 비단벌레 등딱지를 공예품이나 의복에 장식한 게 아닐 수 있다. 보석처럼 오래 간직하는 비단벌레의 빛을 망자의 사후세계까지 이어지도록 배려한 건지 모른다. 대단한 권세를 누린 계층만이 그 혜택을 누렸을 건데, 삼국시대는 지금보다 따뜻했다고 한다. 게다가 숯을 연료로 사용할 정도로 경주에 숲이 풍부했다니 비단벌레도 꽤 많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온난화가 심화되면 비단벌레가 많아질까. 두고 볼 일이지만 비단벌레의 습성을 미루어 수령이 오랜 활엽수림은 많아야 가능할 것이니 자연림을 잘 보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최근 선운사 도립공원에서 근 30년 만에 비단벌레 한 마리가 발견돼 세간이 화재가 되었다. 키 큰 나무 위로 날아올라도 번쩍거리는 날개가 쉽게 눈에 띈다는 비단벌레를 선운사에 가면 자주 곁눈질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지구온난화로 더워지자 잘 보전된 도립공원에 모습을 겨우 드러낸 거로 추정되는 비단벌레는 아직 인공 증식장에 가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본 비단벌레연구소장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거제도는 경북대학교와 손잡고 비단벌레의 증식과 복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와중에 곡성군의 지원으로 ‘섬진강자연학습원’에서 증식을 연구하던 김소직 박사가 7년 만에 희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한데 불안하다. 희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이가 생태학자가 아니라 전통 공예나 고미술품 복원을 기대하는 박물관 관계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거제시는 비단벌레를 지역 특산품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상황에 발맞춰 멸종위기 곤충의 증식으로 황금알을 낳겠다는 움직임이 이는 까닭이다. 생태계와 개체복원보다 앵벌이를 앞세우며 입맛부터 다시는 풍토, 비단벌레는 차라리 은둔하는 게 낫겠다. (물푸레골에서, 2009년 9월호)

30년 만에 고창 선운사에서 비단벌레 한 마리? 그럼 학자들은 30년 동안
책상에서 꿀만 빨고 있는 동안 난 내가 알고 있는 공간에서 꿩대신 닭으로 간단하게
채집한 비단벌레 유충만 13마리 였는데...
역시 모 대학 생물학과 곤충학 팀 교수와 학생들이 거제도에서 장수풍뎅이 채집해
오라고만 시켜놓고 교수 지들끼리는 낚시 하고 술 퍼먹고 학생들만 밤낮 주야장천
모기에 뜯기고 뺑이 친 결과가 고작 수컷 2마리 채집했다는데....
아~ 진짜 암담한 현실..... 저딴것들한테 뭘 배우나...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0. 14. 01:11

 

소쩍새는 “소쩍, 소쩍” 두루미는 “두룩, 두룩” 하고 우니, 따오기는 “따옥, 따옥” 하고 울까.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한정동의 시 ‘당옥이’를 노랫말로 윤극영이 작곡한 동요, ‘따오기’는 처량하게 “따옥, 따옥” 운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따오기와 그 울음소리. 하지만 원로 조류학자 원병오는 까마귀 비슷하게 “과아, 과아”하고 운다고 주장한다. 까마귀는 “까악, 까악” 하고 우는데.

 

윤극영의 ‘따오기’는 슬프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거나 잡힐 듯이 잡히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다.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가 가신 나라로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을 표현한 ‘따오기’에서 따오기는 바로 우리 민족이다. 조선의 주권은 일제에 빼앗겨 해와 달이 뜨는 머나먼 나라로 갔다. 그 서러움을 노래한 시인은 따오기를 부모를 여읜 ‘당옥이’라 했다.

 

우리나라에 아주 흔했던 따오기는 1925년에 접어들 무렵 드물어졌나보다.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1892년 영국의 C. W. 캠벨은 “한국의 따오기는 쉽게 총의 밥이 되는 멍청한 새”라고 국제조류학술지에 기록한 사실을 미루어, 전문가들은 사냥을 주요 이유로 꼽는다. 비슷한 시기, 서울 북부에서 50마리의 따오기를 보았다는 폴란드인 탁자노우스키의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아, 아무래도 외세의 집합소로 전락한 조선 땅에서 서양 포수들에 의해 사라졌을 개연성이 높다.

 

총으로 동물을 죽이는 취미를 고상한 스포츠로 위장한 제국주의자들이 남의 나라의 금수강산을 난사하자 흔하던 따오기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는 1963년, 일본은 1980년 이후 자연에서 관찰한 기록이 사라졌고, 우리나라도 더는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1966년 판문점 근처와 1974년 대성동 비무장지대에서 보았다는 기록 이후, 아무것도 없다. 실체는 사라지고 동요만 남은 셈이다.

 

그나마 따오기는 다행인가. 미국 동부에 서식하던 나그네비둘기는 30억 마리에서 멸종하는데 불과 10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하니.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리지어 사흘 이상 머리 위로 날았던 나그네비둘기. 총알 하나로 80마리를 잡을 정도였다는데, 잠깐 사이에 달구지가 꽉 차도 총동원된 학살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고 멸종의 역사는 전한다. 작대기만 휘둘러도 하루에 1000마리 이상 잡을 수 있었던 나그네비둘기는 북미원주민들이 경외하는 가운데 수만 년 이상 북미대륙을 이동했을 테지만, 마지막 집단이 사라질 때까지 광란의 포획은 계속되었고 미 정부는 방관했다. 이내 늘어나리라 믿었던 게지만 나그네비둘기는 속절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1880년대 한 무리의 수가 수백만 마리로 줄었는데, 그 정도로 지속적 번식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쉽게 총의 밥이 될 정도로 흔했다 보일 듯이 보이지 않게 되자 우리 정부는 1968년 따오기를 황급히 천연기념물 198호로 지정했고,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멸종위기종 적색리스트에 등재, ‘각별하게 위기에 처한 종’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멸종 직전에 보호대상종으로 선포한 것이지만 그런다고 개체수가 회복되는 건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인공으로 증식하는 개체를 제외하면 중국 산시성(山西省)에 분포하는 20여 쌍이 전부일 거로 조류학자는 조심스레 추정한다. 네덜란드 군인의 총소리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해 몰려들다 16세기 말에 멸종된 모리셔츠 섬의 못 생긴 새, 도도와 달리 겨우 살아남은 20쌍이 인공증식의 가녀린 원천이다.

 

예쁘다기보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따오기는 현재 중국에서 국조(國鳥) 대접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붉은 기운을 감도는 흰색의 몸은 70센티미터가 넘고, 날아오를 때 화사하게 드러나는 날개 안쪽의 붉은 빛과 바람에 나부끼듯 수평으로 늘어뜨린 뒷머리의 흰 깃은 가볍지 않은 기품을 과시하지 않던가. 붉은 이마와 얼굴에서 길게 이어지는 검은 부리는 아래로 완만하게 구부러지며 날카로운데, 끝이 붉은 색이다. 백로보다 조금 짧은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논바닥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은 천적 앞이라 해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자세를 엿보이게 한다.

 

그 점이 포수에 노출된 따오기를 위기로 몰았을 게 틀림없다. 추수철 날아와 모내기 준비하는 봄까지, 논 가장자리를 서성이며 농사 방해되는 곤충을 쏙쏙 잡아먹는 따오기는 농경사회에서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몸집이 크고 부리가 날카로우니 천적이 별로 없고, 농민이 해코지하지 않으니 바쁠 게 없는 따오기는 제국주의가 확산되기 전까지 우아한 자태를 수천 년 이상 뽐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타오기는 급격히 자취를 감췄고, 한정동은 ‘당옥이’라는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는 10월 28일에서 8일 동안, 경남 창녕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주제로 ‘제10차 람사협회 당사국총회’가 개최된다. “지구 차원의 습지보전 상황을 평가하고 공동의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인 람사총회가 열리는 창녕 우포늪은 시방 정신 차릴 틈이 없다. 30년 전 우리 땅에서 사라진 따오기를 부활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진 중국 국빈 한 쌍이 람사총회를 준비하는 우포늪에 정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와 중국의 전문가는 만전의 준비를 마쳤고, 10년 뒤 대가족으로 불어나기를 기대한다. 중국은 자연에서 생포한 7마리에서 1000여 마리로, 중국의 따오기 한 쌍에서 시작한 일본은 10년 만에 100여 마리로 늘었다지 않던가. 중국과 일본의 서식지보다 우포늪의 생태계가 따오기가 정착하기에 우수하다니, 정성껏 보살핀다면 우리도 충분히 증식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겨우 한 쌍이다. 번식에 성공하더라도 근친교배에 의존해야 하니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빈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포늪 이외의 자연은 아주 위험하다. 농약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기왕 들어온 따오기, 예산이 뒷받침되는 한, 최선을 다해 증식시켜야 마땅하겠지만 자연에 방사하려는 계획은 참아야 하지 않을까. 자연에서 짝을 지어 스스로 생존할 만큼 유전적 다양성은 확보되지 못한 마당이므로. 절종되지 않도록 개체수를 충분히 늘리면서 따오기가 생존 가능한 자연스런 습지를 확보해 증식 장소를 넓히는 것이 차라리 바람직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언론 앞에서 자연방사라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기왕 우포늪에 들어온 따오기, 앞으로도 계속 보일 듯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