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2. 20. 15:36

 

경상북도 내륙의 대학에 진학한 흑산도 출신의 대학원생이 있었다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지도교수에게 잘 삭힌 홍어 한 마리를 선물로 드리면서, 포장을 열자마자 놀라시겠지만 눈 딱 감고 하루에 한 점 씩 드셔보라 권했다는데, 학보모의 성의에 답하기 위해서 조심스레 도전하던 교수는 방학을 맞아 흑산도로 가려는 제자를 붙잡고, 홍어를 큰 녀석으로 한 마리! 주문했다나, 어떻다나.

 

목포의 한 대학에서 학회를 마치고 총장이 주최한 리셉션에 갔을 때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 조리사들이 둥근 테이블 한가운데 커다란 접시의 뚜껑을 일제히 열자 보란 듯 모습을 드러내는 홍어들. 무엇보다 냄새가 압권이었다. 전국에서 온 교수와 연구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호기심에 겨워 젓가락을 옮기는 성의를 다했는데, 인천에서 온 어느 대학원생은 주위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한 점도 입에 넣지 못하는 게 아닌가. 냄새는 어떻게든 참아낸다 해도 코 점막을 뻥 뚫으며 눈물까지 핑 돌게 하는 자극을 도무지 견디지 못했던 거다. 바다를 공유하는 도시에 살면서 어찌 홍어 한 점도 못 먹나, 당시 목포 사람들은 희한하게 생각했을 테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인천 사람들은 신선한 홍어회에 익숙한 탓이었다.

 

인천의 작은 어촌마을 ‘조개고개’에는 지금도 홍어회를 파는 서너 집이 명색을 유지하지만 70에서 80년대에는 먹성 좋은 대학원생 두 명이 단돈 만원만 준비하면 실컷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제법 많았다. 넓은 접시에 가득 펼쳐놓은 회가 7천 원이고 소주 한 병이 7백 원이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 시절, 가마솥에서 설설끓는 동죽은 공짜로 무제한 리필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조개고개의 식당은 신선한 홍어회보다 삭힌 홍어찜이 더 잘 나간다. 인천 사람의 입에 삭힌 홍어의 맛이 어느새 익숙해졌을 테지만, 그보다 백령도 인근의 인당수에서 홍어가 예전만큼 잡히지 않기 때문일 게다.

 

유배된 정약전이 한겨울에도 물산이 풍부한 흑산도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자산어보를 써나갈 무렵, 백령도 앞을 거세게 감도는 인당수에 모인 어부들은 흑산도에서 해류를 타고 모여드는 홍어를 잡으려 풍어제를 올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 공양미 3백석에 눈이 먼 심봉사가 제 딸 심청을 중국 어선에 팔았을지 모르고. 차고 깨끗하며 깊은 인당수엔 용궁이 있다. 심청의 청을 받은 용왕은 바위와 모래가 많은 인당수에서 점액질 적은 피부의 홍어를 충분히 잡도록 허락해줘 겨울철 어부들은 인천의 조개고개까지 신선한 홍어를 실어갈 수 있었지만 개펄이 두터운 흑산도는 달랐던 모양이다. 육지로 옮기는 도중에 삭아버리니 목포 사람들은 발효된 홍어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다.

 

요즘이야 바닥을 긁는 그물로 끌어올리자마자 냉동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낚시나 정치망으로 잡아 항아리에 넣었을 터. 길을 가로막는 그물을 피해 가던 홍어를 함정그물로 몰아넣은 어부들은 퍼덕거리는 녀석들을 항아리에 켜켜이 넣고 흑산도에서 목포로, 인당수에서 인천으로 옮겼을 텐데, 요소를 상당히 함유하는 혈액이 발효되면서 암모니아 냄새를 풍기니 어부들은 무척 난감했을지 모른다. 축 늘어져 도저히 팔 수 없다 여긴 어부가 아까운 홍어를 한 점 집어먹었더니, 웬걸! 별미가 아닌가. 정약전도 언급했듯, 그런 입소문을 타고 목포 주변부터 삭힌 홍어가 유명해진 건 아닐까.

 

내장부터 썩는 보통 어패류는 먹을 수 없어도 혈액부터 발효되는 홍어의 육질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단다. 세균 발육을 억제하니 식중독까지 방지한다는 게 아닌가. 잘 삭힌 홍어는 묵은 김치처럼 오래될수록 살이 단단하고 맛이 깊어진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삭힌 홍어는 보통 묵은 김치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주방장마다 이구동성이다. 거기에 돼지 수육을 얇게 저며 한 접시로 내놓으면, 이맘때 주당들이 쌍수를 드는 삼합이 완성되는데, 삼합은 역시 효모가 살아 숨 쉬는 막걸리와 먹을 때 빛난다. 내놓으라는 주당들을 단골집에 모여들게 하는 그 ‘홍탁’이다.

 

홍어는 사촌인 가오리나 먼 친척인 상어와 같은 연골어류다. 따라서 턱 근육을 억세게 들썩이면 씹어 넘길 수 있다. 생긴 모습이 가오리와 흡사하지만 주둥이가 뾰족하고 갈색 바탕의 등에 둥근 황색점이 펑퍼짐하게 펼쳐져, 나란히 놓으면 쉽게 구별된다. 대략 입동에서 입춘까지 단단한 사각 껍질에 싸인 대여섯 개의 알을 해조류에 붙여 낳는데, 너덧 달 이상 지나면 5센티미터 남짓한 어린 홍어를 우리나라 서해안, 동중국해, 일본의 연안에서 만날 수 있다. 이후 잔 새우와 오징어와 게와 갯가재 들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 5년이 지나면 몸통이 50센티미터에 이르게 되는데, 알을 낳기 전인 겨울에 잡아야 살이 토실토실하고 맛도 그만이라고 한다.

 

꼬리와 주둥이를 제거한 홍어를 듬성듬성 잘라 삼베로 칭칭 감고, 항아리 속의 왕겨나 짚 사이에 찔러 넣으면 사나흘 만에 코끝을 톡 쏘는 홍어가 상에 오를 준비를 마치지만 맛을 아는 사람은 내장, 다시 말해 ‘홍어애탕’을 즐겼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홍어의 내장은 신선할 경우 고소한 참기름 소금에 찍어 날로 먹으면 비린내 없이 구수해서 좋지만 조금이라도 삭은 칠레산이거나 냉동된 상태라면 살과 섞어 탕으로 끓여야 먹기에 낫다. 하지만 홍어애탕은 단골식당에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알현하기 어렵다. 요즘의 다 자란 흑산도 홍어는 부르는 게 값이라지 않던가. 주머니가 허전한 주당들은 하는 수 없이 찰진 맛이 덜한 칠레산을 찾아야 했고, 조개고개의 단골손님도 홍탁과 삼합을 마다할 수 없었으리라.

 

큰맘 먹지 않아도 실컷 먹었던 홍어가 우리 서해안에서 드물어진 건 무슨 까닭일까. 바다부터 따뜻하게 만드는 지구온난화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테지만, 갯벌을 보이는 족족 매립하고 바다모래를 연실 퍼가는 인간의 개발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매립하는 갯벌 위에 해수면보다 높게 부어대는 갯벌과 모래는 홍어의 오랜 터전이 아니었던가. 원앙처럼 철저한 일부일처인 홍어는 늘 붙어 다닌다고 한다. 꼭 붙은 암수 두 마리를 낚시 한 번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던데, 아직 우리 바다를 떠나지 않은 그 홍어, 이러다가 제철인 겨울에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물푸레골에서, 2010년 1월호)

잘못된 표현이겠지만 보통 삭힌홍어를 홍어회라고들 하지요. 회가 아닌데모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