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05. 8. 11. 01:50
 

토머스 쿤이 일찍이 지적했지만, 과학에도 패러다임이 있다. 찾아내고 또 찾아내면 이데아와 같은 불멸의 진리가 모습을 짠! 하고 드러낼 것 같지만 이미 숫한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진리는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진리를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가정이 존재한다. 아쉽게도 현실 세계에서 그런 가정은 통용되지 못한다.


현실 속의 과학논쟁을 들여다보면 토머스 쿤이나 가치중립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경우가 오히려 많다. 현장 또는 토론장에서 만나는 양측 과학자들의 주장을 들으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이론을 들먹이며 상대방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서로 비난한다. 듣자니 헷갈린다. 온갖 가정이 뒤죽박죽된 가운데 펼쳐지는 이론을 이쪽에서 들으면 이편이, 저쪽에서 들으면 저편이 맞는 것 같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하면 또 헷갈린다.


핵폐기장에서 만나는 과학자는 어느 편에서 나왔는가에 따라 판이한 주장을 펼친다.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우린 상반된 주장을 들었다. 생명공학도 마찬가지다. 과정과 결과가 인류복지를 앞당길 것으로 주장하는가 하면 그러므로 비윤리적이고 위험하다고 문제삼는다. 그럴 때 우린 과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배경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혹시 그 주장에 어떤 편익이 계산돼 있는 건 아닌지, 저런 주장을 하지 않으면 모종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면 덜 헷갈린다.


과학은 발전한다고 한다. 아니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발전해야 할까. 역시 찬란했던 그리 멀지 않은 과학을 보자. 과거의 과학을 돌이켜보면 허술하고 무모했다. 흔히 프레온가스라 칭하는 염화불화가스를 입에 물고 촛불을 끄는 실험을 연출하자 주위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안이 멀쩡한 게 아닌가. 사고뭉치였던 암모니아가스를 대신할 획기적인 발명품을 선택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어 보였던 당시, 오존층이나 지구온난화는 알지 못했다. 이렇듯 허점을 찾아 메우며 세련되게 발전하는 과학, 언제 다 메울 것인가.


내일 기준으로 허점이 많은 현재의 과학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면 안전해야 할까. 현재 과학기술로 확인하는 사전예방원칙을 실질적동등성원칙으로 대신하자는 과학자의 주장을 믿어야하나. 핵에너지 관련 과학이 저지른 실수를 우린 잊지 못한다. 멋진 논리를 내세우는 요즘 생명공학은 실수가 없을까. 그런데 과학이 기술과 만나 거대해지자 과학의 가치는 연구비 출처의 입김에 상당히 편향돼 있다. 내게 얼마 제공하면 나는 당신에게 어느 정도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연구비 신청서는 그 증거물이다. 허점과 편향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과학의 명분은 멋지다. 인류복지와 부가가치를 약속한다. 그 약속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까. 월화수목금금금, 잠도 없이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보편적 가치에 대해 고민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실험실 경험을 밑천으로 하는 과학적 논쟁에 그치지 말고 내 연구에 허점과 편향된 점은 없는지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의 눈으로 들어나지 않는 허점을 과학으로 깨닫기 어렵다. 이럴 때 인문사회의 시각이 필요하다. 과학 대 과학이 아니다. 인문사회와 만날 때 과학은 비로소 자신의 편향을 깨닫고 허점을 메울 기회를 얻는다. (이공대신문, 2005년 9월호)

역시 프로는 문법에 있어 빈틈이 없군요!
우연히 들렀다가 상식과 지식을 얻고 갑니다.
으이그 등신... 남의 것만 죄다 짜깁기했구먼. 이걸 무슨 글이라고... 수준이하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