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5. 28. 13:01

오만한 과학을 비판했던 인문주의자, 그의 책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최성일 지음, 연암서가, 2011.

 

 

 

열역학의 내용을 모르는 인문계는 단순무식한 이공계가 한심하고, 칸트라는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통 모르는 이공계는 고리타분한 인문계를 감상적이라며 비웃는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인문계와 이공계는 고교 2학년부터 갈린다. 대학 입학 후 처음 갖는 동창회에서 반갑게 만나지만 길게 나눌 대화의 주제를 찾지 못해 못내 서먹하다.

 

대체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글을 쉽게 쓰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만, 인문계가 보기에 이공계의 글은 어법에 맞더라도 도무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이공계를 위한 글쓰기 강좌를 기획하는 친절을 베풀고, 딱딱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 연구에 매달리다 지친 이공계는 시를 쓰거나 아무 생각 없이 음악에 빠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과학자들이 그렇다. 그래서 말년의 아인슈타인은 어려서부터 꿈꿨던 바이올린에 심취했고, 은퇴하자마자 지필묵부터 챙기려는 과학자도 우리나라에 있다.

 

답답한 이공계를 위해 일부 인문계가 소통을 제안할 수 있는 건, 자신의 한계를 느끼는 이공계가 더러 있기 때문일 텐데, 이공계는 인문계를 도울 준비를 하기 어렵다. 시를 쓰고자 하는 이공계는 있어도 열역학을 알고자 하는 인문계는 거의 없는 탓이다. 그래서 인문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인문주의자를 향해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하고 제안했다. 인문을 모르는 이공계의 허튼소리를 제대로 비판할 수 있으려면 과학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할 테니까. 과학을 모르니 이공계가 그린 화려한 청사진에 덮어놓고 정신줄부터 놓는 인문주의자들이 생기고, 그들이 정책결정자가 되어 도 넘게 장단을 맞출 경우, 위험사회는 증폭될 수 있다. 황우석 사태가 그랬고, 시방 4대강 사업이 그렇다.

 

최성일은 출판평론가다.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품질까지 살피며 관련된 출판계의 흐름을 두루 분석해 저자와 출판사의 진정성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그의 글은 흔히 만나는 서평과 다르다. 최성일의 평론에서 공력을 얻는 독자들은 어떤 책부터 왜 찾아서 읽어야하는지 덕분에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서점을 방문하게 된다. 인문주의자라는 호칭을 달가워하는 그는 과학을 모르는 시민들을 열광으로 몰고갈 의도를 가진 이공계의 편견과 오만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인문주의자에게 오로지 인문 관련 책의 평론을 청탁하는 분위기에서 평소 과학책을 즐겨 읽었기 때문이다.

 

약국에 처박혀있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던 아버지에게 강소천 동화집부터 받았던 이공계는 초등학교 내내 띄엄띄엄 읽었을 따름인데 초등학생 최성일은 소년소녀발명발견과학전집을 아버지를 졸라 구한 뒤 단박에 읽은 모양이다. 중학생 때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과학책의 세계로 빠져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 여긴 최성일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를 읽고 과학 에세이의 진면목에 전율했다. 이후 이어지는 과학 애호가최성일의 책읽기는 양과 질에서 난다 긴다하는 과학도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 인문주의자가 과학책만 다룬 출판 평론집을 냈다.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가 그것이다.

 

우수한 과학책일수록 인문적이라는 걸 경험으로 터득한 최성일은 우주의 탄생과 질서를 입이 딱 벌어지게 펼쳐내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처음 펼친다. 어릴 적부터 별들이 수수께끼였던 세이건에게 사람들은 그저 별은 하늘의 빛이라 대꾸했다. 수수께끼를 풀 수 없던 세이건이 도서관에 갔더니 사서는 대뜸 할리우드 스타에 대한 책을 내주는 게 아닌가. 항의를 하고 받아든 책은 어린 세이건에게 황홀한 세계였다. 처음 만난 과학책다운 코스모스는 중학생에게 꽤 까다로웠지만, 작은 활자의 500페이지를 오기로 완독한 최성일은 200612월에 출간한 코스모스특별판에서 명왕성이 태양계의 일원으로 버젓이 등장시켰다는 걸 집어냈다. 그해 여름 행성 지위를 박탈당해 134340번의 외소행성으로 분류되었다는 게 아닌가.

 

어려서 읽은 소년소녀발명발견과학전집을 수소문한 끝에 다시 잡은 최성일은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이 소개된 1권 우주편을 펼치며 요하네스 케플러를 생각한다. 위대한 발견을 했지만 말년에 쓸쓸했던 예전의 과학자는 딸인 점성술이 빵을 벌지 않으면 어머니인 천문학은 굶어죽는다.”는 말을 남겼다는 거다. 연구나 교육보다 용역에 마음을 빼앗기는 요사이 과학자들은 케플러보다 위대한 발견에 시간가는 줄 모를까. 12권 우주여행 편에서 달 정복이라 붙인 제목을 터무니없다 여기는 최성일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정복이라 하지 않듯 아폴로 달 착륙은 유인 달 탐사로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무렴. 요즘 과학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를 썼다는 걸 진작 알지 못했던 이공계는 갈릴레이가 학문은 회의를 통해 획득되는 지식이며 과학자들이 이기적인 권력자 앞에서 위축되어 오로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쌓는 데만 만족한다면 학문은 절름발이가 되고 만다고 일찍이 제자에게 전했다는 걸 몰랐다. 벌써 절판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는 인터넷 헌책방에서 구해야겠는데, 나치가 핵폭탄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물러난 폴란드 출신 물리학자 조지프 로트블라트와 달리 끝까지 남았다 결국 못 볼 꼴을 보고 만 미국 출신 물리학자 율리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뭐라 했던가. “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성찰 없는 충성심을 바친 게 아닌가.”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핵의 평화적 사용으로 핵폭탄의 가공할 위협을 상쇄할 순 없다!”고 공언했건만 요사이 더욱 공허하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핵발전소에서 거듭 일어났건만 핵무기를 염두에 두는 핵발전 추진론자들은 도대체 숨을 죽이지 않는다.

 

정치적 메시지가 덧붙은 과학적 오만에 일침을 가하는 굴드의 책을 펼친 최성일은 지금이나 그때나 과학자들도 무의식적으로 그 시대의 사회 정치적 제약을 그들의 이론에 반영한다.”는 굴드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다윈이 가난뱅이의 자손이라 자신의 이론을 펼쳐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생물학은 얼마나 다를까 상상해본다. 황우석 사태를 예견한 듯,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를 쓴 이충웅이 멸종위기 동물이 개발 계획 지역에 살면 멸종위기 동물이 아니게 되는 나라에서 생물종의 다양성이 보장될 리 만무하다!”고 한 한탄에 동의하는 최성일은 논리적 사고와 비판 없는 과학 대중화는 일종의 우민화일 뿐이라는 이충웅의 주장을 되새긴다.

 

많은 이는 에드워드 윌슨을 자연주의자로 인식한다. 그도 그럴 게,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그가 외친 목소리가 얼마나 크던가. 하지만 그는 사회현상까지 유전자에 환원시켜, 같은 대학에 있던 굴드를 포함해 많은 생물학자들을 아연케 했다. 생물학자의 틈바구니에 끼어 인문사회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이 이공계도 마찬가지였는데, 최성일은 유전자결정론에 기대어 인간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에드워드 윌슨의 책들을 평하는 자리에서 못박았다. 내공이 없는 이공계도 감히 반박하기 어려운 윌슨의 주장에 비판의 일설을 가한 최성일. 맑은 정신을 가진 인문주의자이기에 가능했으리라.

 

한 편의 책을 평가하려고 관련된 숱한 책을 철저하게 살피는 최성일의 자세는 책에 대한 뜨거운 애정에서 비롯되었겠지만,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쇠진되었을 게 틀림없다. 올해로 10회를 맞을 환경책 큰 잔치를 기획해온 환경단체, ‘환경정의에서 이 글을 쓰는 이공계와 초기에 함께 활동했던 최성일은 고맙게도 내 스토커라 했는데, 그가 이 글을 읽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작년 남아공 월드컵대회에서 우리 팀이 아르헨티나와 만날 때, 찻집에서 담담히 재발된 뇌종양이 악화되었다고 말하던 그는 자신의 이 책,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마저 펼치지 못했다. 인문에 곁눈도 두지 않은 채 허욕과 탐욕에 눈이 먼 과학자들이 과학을 모르는 인문계를 속이려드는 현실에서, 우리는 이제 과학을 비판할 줄 알았던 인문주의자, 최성일을 기억해야 한다.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 (프레시안, 2011.5.28.)

 
 
 

서평·추억

디딤돌 2011. 3. 22. 13:24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바오, 2009.

 

우리의 여왕 김연아가 돌아왔다. 8개월 만에 돌아온 그는 알차게 준비한 피겨세계선수권대회가 무산된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답게 당분간은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 역할에 조금 더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언론은 전했다. 김연아가 가세하면서 올림픽 유치는 큰 힘을 받을 것처럼 상기된 투로. 불가항력인 대지진으로 무산된 동경 대신 언제 어느 도시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될지 모르는 처지임에도 유치전에 김연아가 뛰어든 마당에 반대의사를 공공연히 표하는 이가 거리낌 없이 나타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실 지적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 아닌데.

 

설 연휴가 시작될 때, 동남권 신공항을 밀양에 설립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려 밀양역에 당도한 시장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참고 볼 수 없었다. 밀양 시내를 뒤덮은 현수막은 부산 가덕도를 비방하면서까지 반드시 밀양에 세워져야 한다고 외치고 있건만 저 젊은이들은 하필 이때 귀성인파에게 반대 전단을 마구 뿌려대는 겐가. 시민 앞에서 체면이 깎일 뿐 아니라 자칫 표도 잃을 수 있다고 여겼는지 시장은 보란 듯 실력행사를 벌였다. “너 같은 XX는 밀양시민이 아니야!” 욕설로 부족했는지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밀양시민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때리는 시장은 애향인, 맞는 시민은 추방당해야 할 매향노였을까.

 

유신독재 시대, 다른 의견을 이웃에게 말하던 이가 소리 소문 없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더니 결국 동네를 떠났다. 1979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권력을 쥔 자가 이따금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건 공포가 그 원인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동네의 여론에 영향력이 거의 없는 시민에게도 폭력을 휘두른 유신독재 정권은 무엇이 그리 두려웠을까.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휘두르던 군사독재 정권은 학생과 시민의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민주적 정통성도 유권자의 지지도 없었다. 시민의 목소리를 억압하지 않으면 비참하게 퇴출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폭력의 근저에 도사렸을 것이다.

 

16세기 중반, 그러니까 로마가톨릭에 반기를 든 일련의 목사와 신학자들이 개신교를 주창하며 가톨릭 도시와 국가들을 새로운 신앙의 공간으로 바꾸어나갈 무렵이었다. 스위스 제네바의 인문주의자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가톨릭의 사슬에서 막 풀려난 도시에 흘러들어와 새로운 독재를 감행하는 칼뱅에 대항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주창했고, 그 대가로 혹독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박해를 피해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제네바로 숨어들어온 신학자 사이에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새로운 억압의 시대, 그런 억압에 저항한 한 인문주의자의 목소리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간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 독일인 스테판 츠바이크 손에서 실감나게 재현되었다.

 

같은 시기, 로마가톨릭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에서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가 동물과 다름없는 미개인으로 취급할 것인가를 놓고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와 신학자 히네스 데 세풀베다가 추기경의 사회로 치열한 논쟁을 벌일 때, 거침없는 열정과 선동으로 가톨릭 성직자를 수도권에서 몰아낸 제네바는 26살의 신학자 장 칼뱅을 끌어들였다. 츠바이크의 말로 예언자적인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교리의 정신적인 요체로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 기독교 강요를 집필한 칼뱅은 종교개혁으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 위기의 개신교를 하나로 붙들어 맸다. 그로인해 방종은 교의가 되고, 자유는 독재로 변했으며 영적인 흥분은 정신적인 규범이 되었다고 츠바이크는 썼다. 조국 프랑스에서 쫓겨나 낯선 땅에 정착한 젊은 칼뱅은 혁명 초기 다채로운 성서 해석이 난무하는 위기 상황에서 상대를 철저하게 파괴하거나 자신이 붕괴하는 선택만이 놓였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 칼뱅에게 도전한 신학자가 있었다. 칼뱅의 절대 교리에 따라 사람의 기쁨 대신 하나님의 공포 속에서 군대와 같은 규율로 웃음까지 잃어버린 제네바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교리를 들고나온 에스파냐 출신의 미겔 세르베투스가 그였다. 분노에 일그러진 독재자 칼뱅은 교묘하고 무자비한 수단을 총동원해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는 세르베투스를 기어코 산 채로 화형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 사건은 양심을 깨웠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신학자의 양심에 이단자라는 멍에를 뒤집어씌우고 종교적 살인에 나선 냉혹한 칼뱅을 행해 이웃 도시 바젤의 신학자이자 교수인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잠자코 있는 대다수 지식인과 달리 광신자의 살인행위에 저항해야 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양심에 따를 주장을 한 학자를 불태워 죽인 행위는 개신교가 어렵게 쟁취한 기독교도의 자유의 권리를 단번에 없앤 것이다. 통치 몇 십 년 만에 칼뱅은 가혹한 정신적 독재로 개신교의 명예를 지워버리지 않았나. 이단자라니. 하느님을 찾는 종교인이 성서에도 없는 이단자라는 말을 마구 휘둘러 대립하는 의견을 가진 이를 함부로 죽여도 무방하다는 겐가. 참된 기독교란 무엇인가. 가톨릭인가, 루터파인가, 칼뱅파인가. 저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다른 해석을 이단이라 지목하고 서로 처형한다면 하나님 세상에는 피만 넘칠 뿐이다. 화형당한 사람이 이웃나라에 순교자가 되는 해석을 하나님이 칼뱅에게 허락했다는 겐가.

 

가명으로 쓴 이단자에 관하여에서 악마나 만들어낼 만한 잔인한 살육을 그리스도에게 미루는 인간들의 극악한 용기에 비탄한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글에 반대함>이르는 고발장에서 법으로 말을 유린하고 교리로 생각을 짓밟는 폭력에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분노한 칼뱅은 이웃 도시에 압력을 넣어 카스텔리오를 감금하며 입을 다물게 하려 했지만 강금당한 자는 젊은 시절 칼뱅이 꺼낸 말에서 모순을 들춰냈다. 과거 칼뱅의 주장은 현재 칼뱅이 볼 때 화형감이었던 것이다. “진리는 펴져나가는 것이지 강요되는 게 아니라는 신념을 가진 카스텔리오는 바젤 당국의 배려로 감옥에서 풀려나 칼뱅의 글에 반대함이라는 책을 썼지만 발간되지 못했다. 칼뱅이 미리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세르베투스의 경우처럼 처형하려 온갖 궁리를 다하던 독재자는 양심의 목소리로 싸우다 심신이 피폐해진 인문주의자가 48세에 사망하자 한숨을 돌렸다.

 

권력을 쥔 자의 관용을 이야기한 카스텔리오의 칼뱅의 글에 반대함100년 뒤 빛을 보았고 세상은 어느새 달라졌다. ‘사람의 기쁨 대신에 하나님의 공포를 내세운 텅 빈 교회들은 관용의 정신으로 서서히 변했다. 감각적인 삶은 언제나 추상적인 가르침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츠바이크는 주장한다. 세월이 지나 카스텔리오가 부활한 것인데, 인류의 거대한 역사 속에서 독재란 잠깐 동안의 과정이라고 츠바이크는 썼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세상은 사상적으로 자유로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다원주의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쫓겨나는 신학자가 없지 않다는 건 안다. 원치 않는 예배를 거부한 학생을 퇴학시키는 개신교 학교는 이제 없어졌는가.

 

지하철에서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목청껏 외치는 이를 제지하기 귀찮다. 만일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 자가 있다면 더욱 큰 소리로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코앞에 와서 외칠 게 틀림없다. 절대 전도가 목적이 아닐 것이다. 이웃의 눈살 찌푸리게 하면서 전도가 가능하다고 여길 리 없지 않은가. 교회의 인정을 받아 천국에 가고 싶은 거겠지. 일본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전도에 나선 이를 볼 수 없는 건 기독교인이 적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메이와쿠 문화에 젖어 있다. 세계인이 대지진과 쓰나미와 방사능 노출 앞에서도 침착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는 모습에 감동하지만, 정작 일본의 지식인, 아사히신문 전 주필인 후나바시 요이치는 우리의 중앙SUNDAY와 가진 인터뷰에서 체념과 포기로 느껴진다.”며 오히려 걱정한다. 다른 의견을 낸 것이다.

 

정부에 거액의 연구비를 받는 핵전문가는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문제의식을 명확히 노출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수돗물불소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치과의사 사이에서 나오지 못하는 세상에서 현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 생명공학 전공자 중에 유전자조작과 배아복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이는 권력자를 향해 질문을 해야 한다. 아니라고 믿을 때, 아니오! 하며 일어서야 한다. 고 리영희 선생은 행동하는 지식인만이 지성인이라고 했다. 지식인이 제 목소리를 낼 때 사회는 모순을 쉬 극복할 수 있고 억압된 사회는 해방될 수 있다. 츠바이크가 화려하게 써낸 500년 전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는 지성인의 전형을 21세기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현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는 건가. 권력이 누수되는 징후가 보이는지, 4대강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학자들이 슬며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참 교활한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인가. 권력의 향배에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돌리려 획책하는 교활한 지식인에게도 우리는 거침없는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세상은 기고만장해지고 독재를 감행할 수 있다. 그뿐인가. 질문이 없는 교실은 졸리다. 재미없다. 선생은 공부해야할 동기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18세기 프랑스 지식인 볼테르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주장을 펼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말했다는데,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존중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양보와 타협이 가능해진다. 학교도, 사회도, 종교와 신념도, 정당정치와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4대강도 조력발전도, 평창 동계올림픽과 하다못해 골프장도 그러할 것이다.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500년 이상, 아니 훨씬 더 오랜 세월을 가로지르는 진리를 우리에게 고하고 있다. (인천in, 201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