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3. 11. 10:17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했던가.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에 잔뜩 쌓인 눈이 아파트 후미진 곳까지 말끔히 녹자 과연 따뜻해졌다. 하지만 자연에도 시샘이 있는 법. 3월 들어 영하의 날씨가 잦자들며 남녘의 꽃소식이 올라올 즈음, 제법 큰 눈이 쌓였다. 하지만 눈은 따뜻한 오후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삭으러들었는데, 그늘진 골목에는 그냥 남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꼬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모처럼 뽀드득거리는 눈을 뭉치며 노는 모습을 그날 저녁 뉴스 시간에 바라볼 수 있었다. 곧 신록의 계절이 다가올 것이다.

 

어릴 적 생각에 잠겼던 눈을 뜨고 이내 현실로 돌아와 뉴스 화면을 바라보자, 아이들이 눈싸움하는 공간은 골목이 아니라 근린공원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자동차가 밤낮 없이 지나가는 곳이 도시의 골목 아닌가. 그런 골목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달라붙은 눈을 뭉치기 어렵겠지만 세 걸음 떼기 무섭게 경적 울리며 다가오는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다닐 수 없는 노릇일 게다. 골목에서 눈싸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릴 적 기억에 마음을 빼앗긴 착각이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서 코흘리개 꼬맹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철없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 학부모도 걱정이 많겠지만 교실과 운동장 가리지 않고 뛰는 천방지축들을 온전히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교사들도 걱정이 많은 계절이 찾아온 거다. 입학 후 한달 정도는 마음을 졸이며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올 수 있지만 바쁜 일상에서 허구헛날 아이를 챙길 수 없는 일. 어지간하다 싶으면 신신당부하고 아이 혼자 학교를 다니도록 유도할 텐데, 부모는 자동차가 늘 걱정이다. 꼬맹이들의 등하교 시간이면 직장에 늦은 자동차들이 속도를 낼 시간과 얼추 일치하지 않던가.

 

아이들만이 아니다. 바구니 들고 시장 골목에 들어서는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빵빵 거리며 앞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를 피하며 장을 보느니 차라리 대형마트로 가서 1주일 치 반찬거리를 한꺼번에 사는 편을 택하고 싶다. 모르긴 해도 한국을 대표한다는 인사동 골목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일방통행으로 바뀌긴 했어도 짜증나게 다가오는 자동차들로 인해 다정한 친구와 마음 놓고 기념품을 들여다보며 흥정할 기분은 나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를 제한하는 토요일 오후, 인사동은 북새통을 이루지만 걷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다양한 인종이 어깨를 부딪치며 걷지만 귀찮기보다 호기심을 더하고, 기념품보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약속 시간에 늦어도 지인은 양해할 것 같다. 뒤에서 자동차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리라. 종로구는 커다란 액자나 고가구를 들여놓거나 팔려면 자동차 통행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럴까. 평일에도 자동차를 제한하는 해외의 유명한 중심 상가를 가보라. 사람들이 물결치고 가게에는 물건이 넘친다. 커다란 물건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에 처리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에는 자동차를 제한한 결과다. 우리 인사동은 왜 그럴 수 없어야 하는지, 아쉬우면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놀이터로, 놀이터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골목도 마찬가지다. 등하교 시간에 맞춰 그 골목의 자동차 출입을 제한한다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들과 교사들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내린 날 제한한다면 꼬맹이는 물론이고 온 동네 이웃사촌들이 모여 흥겨운 놀이마당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골목은 동네의 잔치마당을 일부일마다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잘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은 우정을 돈독히 하게 되고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이사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집에서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 중에서 성당과 가까운 골목을 주일만이라도 자동차를 제한해보자. 밝은 얼굴을 한 이웃들이 열린 마음으로 성당을 찾게 되지 않을까. 내 뒤를 위협하는 자동차가 없으니 마음까지 열린다. 나아가 365일 하루 종일 제한한다면? 성당 주변에 성령이 충만하게 되지 않을까? (요즘세상, 201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