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4. 1. 7. 23:13

 

우각로는 요즘 사용하는 지명이고 우린 배다리라 했다. 배다리. 다리가 있었고 배가 지나다녔던 곳이라니 개항 전후 바다였던 지역이었을 것이다. 대략 만 명이 살았다는 작은 포구가 개항되고, 매립을 거듭해 지금 30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가 된 인천. 얼마나 많은 바다가 매립되었을까. 대부분 갯벌이었을 것이다. 그 갯내음을 잊지 못하는 인천시민에게 배다리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개항 이후 고단했던 민중의 역사와 문화를 골목골목에 담고 있으므로.


150여 개의 헌책방이 거미줄처럼 얽힌 일본 동경의 간다 거리나 250미터에 50여 개 점포가 늘어선 부산 보수동의 책방골목과 다르지만, 한때 수십 개 헌책방이 성업하던 배다리는 청년기를 인천에서 보낸 50대 이상이라면 대부분 기억하는 거리다. 가난했던 시절, 인천 노동자들의 아들딸이 남들이 썼던 참고서와 영어사전을 사러 기웃거리지 않았나. 그뿐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학교와 학교건물이 자리한 곳이 아닌가. 그런 역사와 문화를 산업도로를 위해 파괴하려 했을 때, 인천의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벌써 7년 전이다. 이제 산업도로는 배다리의 지하로 들어갈 것이다. 불안에서 벗어난 배다리를 다시 찾았다.


굴삭기가 춤을 추는 요즘의 강산에서 7년은 참 긴 세월이다. 아벨서점 게시판에 겹겹이 붙었던 격문은 사라졌지만 많은 문화예술인이 배다리 골목에 정착을 했다. 어느새 터줏대감이 된 스페이스 빔 뿐 아니라 오랜 시집을 전시하고 시낭송회를 정기적으로 여는 공간과 사진전시 전문 공간, 그리고 많은 창작 공간이 문을 열었다. 대부분 젊은 배다리의 문화예술인들은 기존 건물을 활용한 자신의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서로 만나며 설치작품을 구상한다. 그들은 배다리를 찾아오는 시민들과 기억을 나누고 내일을 생각한다. 아직 내린 뿌리가 든든하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이만큼 정착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입주하며 활동하기까지 산업도로 개설을 원했던 주민과 갈등도 적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산업도로가 피해갔어도 적잖은 주민은 여전히 개발을 원하겠지만, 배다리는 겉보기 평온하다. 그래서 그런지, 스페이스 빔에서 주도한 배다리_사이클 빌리지프로그램이 아무런 제지 없이 진행되었고, 젊은 작가들과 마음을 모은 주민의 능동적인 참여는 그 프로그램의 의미를 더욱 높여주었다. 아스팔트가 넓게 차지할 뻔했던 대지는 막바지 고추와 가지가 열리는 텃밭으로 변했다. 장마가 끝났으니 이제 2년이 된 텃밭에 김장용 배추와 무가 심기겠지. 봄철 노란 유채꽃이 만개했던 공터는 작년에 뿌린 코스모스가 아귀다툼으로 올라왔는데, 텃밭의 인기 때문일까. 텃밭과 코스모스 밭 주변의 주택들도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코스모스 줄기가 높게 올라오는 공터는 텃밭보다 훨씬 넓다. 그래서 아깝다. 일방적인 관치의 냄새도 난다. 봄철에 유채꽃 만개하고 가을철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모습을 구상했을지 모르지만, 동구청장이 설마 주민의 의견을 일체 묻지 말고 반드시 유채와 코스모스를 심으라고 지시했을까. 코스모스 밭에 누가 생활쓰레기를 버린다며 울타리처럼 해바라기를 기습적으로 심으려한 동구청의 야간작전도 참 우습다. 배다리에 정착한 문화예술인을 포함해 마을의 내일을 생각하는 주민의 의견을 물으며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은 걸까. 마을이 지저분해지는 걸 바라는 주민은 없다. 동구청은 주민들의 마음을 미리 모을 수 있었건만, 배제하고 말았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마다 유행처럼 개발이 보류된 땅을 텃밭으로 분양하고 있다. 주민들이 원하기 때문인데, 배다리 주민들도 공터를 텃밭으로 바뀌기를 원할 게 틀림없다. 주민들의 창의가 배려되고 능동적인 활동이 보장될수록 마을은 건강하다. 동구청은 굴삭기 삽날을 피한 배다리가 건강하게 보전되길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앞장서는 주민들이 중요하므로, 적어도 내년부터 텃밭으로 변해야 옳겠다 싶다. 1톤이 담기는 물 저금통과 음식 쓰레기를 유기질 비료로 발효시키는 퇴비간도 준비돼 있다.


군사독재 시대의 관성인가. 우리 관료들은 인사권 가진 상사의 제안을 지시로 판단하고 밀어붙이려는 경향을 버리지 못했다. 유채와 코스모스를 일제히 심고, 주민 몰래 해바라기를 심으려는 태도만이 눈에 거슬리는 게 아니다. 경인철도 변에 조성한 걷고 싶은 길도 생뚱맞은 건 마찬가지다. 배다리에 둥지를 친 문화예술 작가가 얼마나 많은데 그들의 의견은 왜 생략했을까. 주민은 대화 대상이 아니어야 하나. 주민 그리고 새로 주민이 된 작가들과 충분히 논의해 거리를 선정하고, 팔 걷어붙인 주민들의 마음을 담아 가꾸었다면 배다리는 지금보다 훨씬 자랑스러웠을 것이고 찾는 이도 많았을 텐데, 이래저래 아쉬운 일이다.


독일 베를린 남쪽 시내 한가운데 우파 파블릭(UFA Fablik) 공동체가 있다. 나치가 지배했던 시절 괴벨스가 장악했던 영화사였지만 종전 후 방치되던 지역이었다. 1970년 초부터 68혁명을 주도했던 젊은이들이 그 터를 점유, 이후 매입했고, 지금은 전기와 물을 태양과 빗물 정화로 자급자족하며 유기농 제빵과 농작물을 나누는 공동체로 활발해졌다. 오래돼 볼품없어도 건물을 부수지 않았다. 기존 건물들을 활용해 체육관과 카페, 연극 공연장과 문화 교습소, 대안학교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우파 파블릭 공동체는 지역사회에 건강하게 뿌리내렸다. 30여 명의 주민들이 160여 명의 회원들과 협력해 동양무술과 서커스를 가르치고 공연하며 어린이 농장을 운영해 시민들의 호응을 받는다. 베를린의 우파 파블릭은 독일을 넘어 유럽의 모범적 도시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71, 덴마크 코펜하겐의 방치된 병영을 일단의 청년들이 점유를 시작했다. 크리스티아니아가 그곳이다. 지금 850명이 거주하는 공동체가 된 크리스티아니아는 예술가와 히피의 안식처가 되어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지며, 심지어 공동체 안에서 대마초 판매도 버젓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담배와 같은 중독성이 없고, 몸에 미치는 부담도 작지만, 아무에게 마구 판매하는 건 아니다. 나름 필요가 인정되는 사람에게 적당량을 제공할 뿐이라고 한다.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 구성원은 머지않아 점유공간에서 해방공간으로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 코펜하겐 시나 덴마크 정부에서 매입해 기증할 거로 믿는다. 크리스티아니아는 자유로운 해방공간을 대표하는 도시 공동체로 인식돼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지 않은가.


인구가 2700명인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마르날레다 마을은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의 주도로 방치되던 영주의 토지를 점유한 지역이다. 토지는 대대로 물려받는 영주가 아니라 농사짓는 농부와 그 공동체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진두지휘한 시장은 12년 동안 무려 12번이나 투옥되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결국 주 정부에서 그 땅을 구입해 마르날레다 마을에 기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단식을 마다하지 않는 주민의 압도적 지지로 34년이 넘게 마을을 이끄는 고르디요 시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가난했던 마을을 최고로 부촌으로 이끌었다. 불황에 휩싸인 스페인에서 사람들은 마르날레다 마을로 이사하고 싶어 할 정도라고 한다. 임대료가 파격적으로 저렴한 공유지 내의 350여 주택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으나 사고팔 수 없는데, 한달에 한 차례, 마지막 일요일이면 젊은이들이 나이든 주민의 주택을 찾아가 원하는 곳을 수선한다고 한다.


마을 공동체의 자치를 주창한 간디는 인도는 70만 개의 자치 가능한 마을의 연합으로 존재한다고 설파했다. “대량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생산의 원칙을 지키는 이른바 스와데시. 수도와 대도시에 포진하는 권력에 마냥 숭배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뜻과 의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을에서 스와데시는 가능하다. 대도시에서 스와데시는 어렵다. 경작할 만한 땅이 없고 이웃과 소통이 없는 빌딩숲에서 스와데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수 넓은 아파트의 아스팔트 공간도 쉽지 않다. 대면공동체. 얼굴을 보고 인사하고 집 안팎의 사정도 서로 의논할 수 있는 이웃이 있는 마을이라야 쉽다. 그런 마을에 경작하고 농산물을 나눌 수 있는 땅과 주민의 자치 의지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배다리가 그렇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살지만 눈을 마주하지 않는 익명의 공간에 지친 시민들이 최근 골목을 살리자고 나선다. 골목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구성원의 정이 흐르는 마을의 실핏줄이다. 실핏줄이 살아야 마을이 살고, 마을이 살아야 도시도 국가도 건강할 수 있다. 골목에서 마음과 더불어 생산한 농산물도 주고받으면 이웃은 더욱 돈독해진다. 거기에 재미와 감동이 보태진다면 마을은 단단한 공동체로 지역에 뿌리내릴 것이다. 스페이스 빔을 비롯해 많은 문화인과 예술인이 터 잡은 배다리에서 가능성을 본다. 인천시와 동구의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정주한 작가들이 주민들과 소통하며, 개항 이래 지금까지 간직하는 인천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보듬고 가꾸어간다면 배다리는 인천의 소중한 도시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배다리 리_사이클 빌리지 결과보고 자료집, 2013.10.30. 24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