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7. 25. 00:59


 동그란 물건이 튀기며 다가오거나 땀 뻘뻘 흘리며 몸 부딪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므로, 체육시간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공 여러 개 돌아다니는 연병장에서 떼로 붙잡고 늘어지며 공을 뻥뻥 차는 군대축구에 진저리를 쳤고. 제대하고 그런 이야기를 꺼낼 일도 없었다. 그런다고 축구경기의 구경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내놓으라 하는 선수들이 뛰는 월드컵이라면 특히.


광화문으로 나가지 않았을 뿐, 친구들과 선술집에서 우리 팀 선전하는 모습에 열광했던 2002년 월드컵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별 생각 없이 세계 수준의 축구에 매료되었는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부터 축구 그 이면에 관심이 생겼다. 빈부격차가 유별난 지역에서 거액의 예산을 들이며 떠들썩하게 치루는 월드컵은 누구의 행복에 우선할까. 경기장 신축과 운영에 들어가는 예산 때문에 소외되는 가난한 계층은 분명히 아닐 텐데, 그들도 열광의 세계로 유인되는 모순이 궁금했다.


축구에 대한 시시콜콜한 역사와 다양한 일화를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엮어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를 펼쳐야 남아공 월드컵에 빼앗기는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보상하겠다 싶었다. 스포츠가 산업화될수록 즐거움에서 의무로 치달아가는 상황에서 월드컵은 그 첨병이다. 움직이는 광고판인 선수들은 차라리 발노동자라고 그 책을 추천한 라틴 문화 연구자 고 이성형 교수가 지적했지만, 어쩌면 고액 연봉에 구속된 노예일지 모른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일본팀을 좌절하게 만든 코트디브아르의 디디에 드록바가 그랬다.


주고받는 달러의 크기로 평가하는 GNP 순위에서 밀려 가난하다 낙인찍힌 코트디브아르는 내전에 휘말려 있었다. 그때 드록바는 무릎을 꿇고 전쟁 중단을 고국에 호소했고, 이후 평화를 되찾았다고 방송은 전한다. 공만 잘 차는 게 아니라 애국심이 절절한 진정성에 내전 세력까지 감화된 결과라는데, 그런 드록바도 자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남아공 올림픽 개최 직전, 일본과 가진 평가전에서 팔이 부러졌어도 그 발노동자는 쉴 수 없었다. 자신의 발을 감싼 신발 회사와 맺은 계약 때문이었다,


기다리던 카메라 앞에 풀 죽은 얼굴로 귀국 인사하는 선수와 감독에게 엿사탕을 냅다 던진 이른바 광팬은 우리나라의 축피아를 비난했다는데, 16강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다행이라고 말하는 어떤 이는 우스개 반으로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야 말로 애국자라고 평한다. 세월호 참사로 가슴 휑한 시기에 열광할 수 없는데, 일찍 돌아오지 않았냐는 거다. 사실 축구에 문외한인 사람의 눈에도 이번 월드컵에서 보인 우리의 선전은 틀림없지만 한계가 보였다. 1983년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 대표와 2002년 히딩크 감독의 한일 월드컵은 예외였다. 예외를 일반화하는 건 옳지 않다.


신체 조건과 시설 수준이 낮아 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는 우리가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축피아여부는 알지 못하지만, 따지자면 숱하게 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걸 분석할 능력도 마음도 없고, 우리 축구가 세계를 석권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승부에 집착하면서 제도화되고, 산업화되면서 선수들이 노예화되는 스포츠를 경원할 따름이다. 요컨대 다시 즐거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A매치라 하는 국가 사이의 경기도 마찬가지다.


국제경기는 갈수록 경쟁적이다. 승패가 명예 뿐 아니라 돈과 연계되는 만큼 자본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스포츠복권은 애교에 불과하다. 여기저기 신축하는 경기장과 그 경기장의 흑자 경영을 위한 양판점 때문에 주변 상권이 피폐해지는 일, 경기장을 위해 땅값이 싼 지역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난한 이웃의 터전이 사라지는 일은 자본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을 준비하던 브라질과 남아공이 그랬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다. 곧 개최할 제17회 아시안게임을 위한 신축 경기장들은 논밭을 짓밟았다. 그 땅을 투기한 자들을 배불렸지만 경기 이후의 대책은 전무하다.


14회 아시안게임을 치룬 부산시의 담당자는 인천시에 조언했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로. 경기 마치면 부수라고. 하지만 부술까? 부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 준비는 없을 것이다. 무모한 개발로 천문학적 빚에 시달리는 곳이 인천이다. 재정 형편 때문에 대회 자체를 반납하라는 여론이 비등했다는 걸 기억하는 인천시는 부술 때 빗발치는 민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축 경기장 때문에 터전을 잃은 시민들, 그 땅에서 재배하던 농작물을 잃은 우리는 재정 악화를 부추기는 경기장을 맥없이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브라질 열기가 식자마자 세계와 우리는 월드컵 지역예선으로 불 지피려 애쓸 텐데, 4년 뒤에는 열사의 땅 카타르에서 한달 넘게 열기를 내뿜을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렇지, ? 그 경기장에 에어컨을 컬 거라고?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한여름을 피한다 해도 에어컨을 얼마나 가동해야 조금이라도 시원해질까? 실내경기장이라 해도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겠고, 실내가 아니라면 발노동자가 감당해야 할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리라. 신축 경기장들을 86만 국민이 채울 수 없으니 관광객이 쇄도해야 한다. 언제까지? 지구온난화는 국제축구연맹의 관심사가 아닌 게 분명하다.


국제축구연맹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끔찍한지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의 스포츠 전문기자가 피파 마피아를 써야 했는데, 그 방면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라고 다를 거 같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다수의 위원들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승인할 수 있을까? 하루 300톤의 고농도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내보내야 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6년 뒤 조용해질 리 없다. 그걸 모르지 않았을 위원들의 횡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본의 노예에 불과한 선수의 건강 따위는 염두에 없었을까? 마음 놓고 열광하지 못할 관중은 정권의 노예인가.


국제경기 이면의 악취가 진동하는 이때, 인천 아시안게임에 도무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아시안게임 이후 열릴 인천 장애자 아시안게임의 상징은 주걱 주둥이를 가진 저어새인데, 맙소사! 인천시는 시방 멸종위기에 몰린 저어새의 마지막 생존 기반인 송도신도시 인근 갯벌을 맹렬하게 매립 중이다. (작은책, 20148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1. 7. 12. 23:05

 

이제 어찌되었거나 2018년 동계올림픽을 내 나라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개최가 결정된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은 물론 텔레비전 화면을 주시하던 강원도 평창을 비롯해 전국에서 일제히 환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그 점에서 인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삼 4년 전 417일이 생각났다. 그날 오후 1010분 경, 인천시청 특성 야외무대는 모여든 시민들의 환호와 불꽃놀이로 한동안 설렜는데, 지금은 걱정이 앞선다.

 

2014년 아시안게임으로 챙길 생산유발 효과는 1293백억원, 고용유발 효과를 268천명으로 추산한 인천시 당국은 국제도시 인천의 브랜드 가치가 크게 오르고 인천시의 핵심사업인 경제자유구역 해외투자 유치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고 그 기대는 현재진행형이겠으나 현 시점에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쌓인 외화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던 중국과 처지가 너무도 다른 우리 상황에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난 인천은 당장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남은 기간이 빠듯한 만큼 중앙정부의 지원이 시급한데, 중앙정부의 예산은 여전히 장마로 휩쓸려가는 ‘4대강 사업에 퍼부어질 뿐이다. 게다가, 한 달 앞인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중앙언론은 인천 아시안게임 따위에 관심 밖이다.

 

그래도 아시안게임과 동계올림픽을 우리는 성공적으로 개최할 것이다. 지금도 적자 운영에 허덕이는 문학경기장보다 훨씬 큰 메인스타디움을 서구에 짓고, 십여 경기장을 추가할 인천에 필요한 예산은 인천시민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국내의 이용인구가 지극히 드문 경기장이 속속 만들어지는 평창도 그 정도가 더하다. 인구 5만의 도시에서 경기장 신설은 물론 운영자금을 감당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회 자체는 성황리에 마무리될 것으로 당연히 예상한다. 실패했다는 프로파겐다는 감히 표출할 수 없지 않은가. 1988년 서울올림픽은 물론이고 적자가 분명했던 1993년의 대전국제엑스포와 2002년의 부산아시안게임도 겉보기 눈부셨다. 곧 열린 대구 국제육상대회도, 내년에 열릴 여수세계박람회도 마찬가지겠지.

 

부정할 수 없는 작금의 사실! 숭의 축구전용경기장에 거대 쇼핑몰이 들어서는 것이 확정되어야 장차 운영 수지 뿐 아니라 당장 들어가는 막대한 건설비를 충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따라서 대형 마트 입점을 반대하는 지역 자영업자들의 하소연과 반대행동은 무시되거나 억압될 텐데, 프로축구 시합이 숭의동의 그 경기장으로 옮겨지면 문학경기장의 누적되는 적자는 시민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숭의 축구전용경기장에 들어설 대형 마트보다 큰 쇼핑몰이 버젓하게 서구 지역의 상권을 초토화시키지 않는 한, 신축할 종합경기장의 내일은 창창할 리 만무하다. 중앙정부가 마음 돌이키고 경기장 건설비를 만족스럽게 지원한다 해도 결과는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300만 인구를 바라보는 인천의 사정이 그럴 진데, 거의 전액을 중앙정부와 강원도가 지원할 평창은 사정이 나을까.

 

당장 유치에 마음이 급해 그랬는지, 개막식과 폐막식이 예정된 스키점프경기장에 6만 관중석을 마련하겠다고 유치위원회는 올림픽위원회에 약속했다. 조립식이 아니라면 그 관중석은 상당한 유지관리비용을 해마다 요구할 텐데, 우리나라에 스키점프경기가 7년 뒤 성황을 이룰 수 있을까. 열기가 고조된 프로야구도 3만 관중을 넘기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우리에게 생소한 봅슬레이나 바이애슬론은 얼마나 많은 인파를 평창에 모여들게 할 것인가. 20일 못되는 대회 기간에 세계에서 몰려들 인파가 흥청거릴 돈으로 건설과 향후 관리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 기간을 위해 국가가 편성해야 하는 예산은 얼마나 될까. 그뿐이 아니다. 유치위원회는 인천공항에서 평창까지 한 시간에 주파할 초고속전철 마련을 약속했으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들은 정작 흥청망청했던 대회가 끝난 뒤에 발생할 것이다.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1998년 동계올림픽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정난을 벗어나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고 작년의 캐나다 밴쿠버도 100억 달러 정도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다. 들리는 소문은 경기장 신설을 최소로 줄인 1994년 노르웨이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만이 적자를 면했다는데, 우리는 김칫국부터 마신다. 언제는 20조원이라더니, 평창 동계올림픽이 직간접적으로 649,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거라는 기대가 주조된다. 장밋빛 꿈이다. 동계스포츠의 묘미를 알아가는 아시아인들이 올림픽 이후 대거 운집하리라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덕분에 적자를 면할 납득할만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기정사실로 믿고 세운 알펜시아에 거액을 투자한 부자들은 한시름을 놓을지 모르겠다.

 

같은 대륙을 연속해서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하지 않는다는 올림픽위원회의 원칙 때문에 2020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나설 일본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결정에 떨떠름하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차기 올림픽을 원하는 다른 유럽 국가 IOC위원들의 외면을 원망했다는 독일은 평창의 끈질긴 노력을 거울삼아 재수에 나설 전망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만큼 올림픽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가 적지 않은 모양인데, 사실 평창과 동계올림픽 유치를 경쟁했던 독일은 반대여론이 의외로 컸다. 건설업자가 일방적으로 챙기는 투자 이익에 비해 지역과 납세자가 얻을 이익이 적고 경기장 건설과 운영에서 비롯될 환경파괴를 염려했기 때문이라는데, 경기장에 예정된 도시는 주민투표 결과 58퍼센트만이 유치를 찬성했다고 한다. 찬성이 90퍼센트로 압도적이었던 우리는 경제와 환경적 대책을 완벽하게 세웠을까.

 

외교부의 고위 공직자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뒤, 벅찬 마음으로 트위터에 “2018 평창은 우리 국민 모두의 승리!”라고 선언하면서 이걸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우리 국민이 아니지요^^ 대한민국 국민 파이팅!”하고 외쳐 구설수에 올랐다. 극우 성향을 가진 자라면 모를까, 정부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고위 공직자의 그와 같은 공개 발언은 듣는 이를 으스스하게 했다. 전체주의를 느끼게 하는데, 불만 섞인 글이 오르자 그는 누가 2018평창을 못마땅해 하는지 이번 기회에 잘 봐두세요!”하며 한 술 더 떴다고 한다. 한데 뮌헨은 반대 목소리를 존중했고, 유치에 실패했어도 대안을 미리 논의할 수 있었다. 2000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한 독일의 하노버 시도 반대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환경을 앞세우는 대회를 성공적으로 열었다. 대회 이후 시민들은 대체로 만족한다. 스키 할강 경기장을 위해 가리왕산의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의 파괴 가능성이 벌써부터 논란되는 평창은 어떤 대안을 강구하려 할까.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지역이 대회가 끝나면서 안고 있는 경제적 부담을 인식하고 있는 언론은 흑자 올림픽을 위한 경제와 환경적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유치에 성공했으니 이제 차분하게 올림픽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거액의 투자자나 기업의 이익보다 지역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며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미 세계의 추세가 그렇다. 올림픽 경기가 개최되는데 7년이 남았으니 대회 종료 이후에 덩그렇게 남은 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여 하며, 불가피하게 파괴될 수밖에 없는 생태계가 있다면 복원 대책도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

 

7년 뒤에 평창도 물론이지만 당장 3년 앞으로 다가온 인천이 더욱 걱정이다. 늦기 전에 세심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재정 상태가 넉넉하지 않은 만큼 경기 종목과 규모를 변동해서라도 부담을 최대한 줄이고, 대회 이후 활용 가치가 낮은 경기장은 이웃 도시의 기존 시설을 빌려 이용해야 한다. 대회 전후에 미칠 시민들의 손실을 최대로 줄이기 위한 대책을 사전에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덮어놓고 환호한 인천은 아시안게임의 대책이 아직도 선명치 않다. 논의조차 제안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인천에 남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천in, 2011.7.12)

 
 
 

도시·인천

디딤돌 2010. 11. 23. 17:38

 

북경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에 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세계인의 시선을 거푸 모은다. 다녀온 이의 소감이나 언론의 기사를 종합할 때, 대회 운용의 짜임새나 축제의 즐거움보다 현저하게 눈에 띄는 건, 단연 규모인 모양이다. ‘세계의 공장’이라 칭하는 중국이 긁어들이는 외화를 동원한 물량공세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는데, 비록 아시안게임일지라도 광저우는 남중국의 체면을 위해 작심하고 북경 올림픽 못지않게 준비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2년 뒤 박람회를 개최할 여수와 4년 뒤 아시안게임을 준비해야 할 인천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 대회 개최지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시설을 자랑하는 이번 아시안게임이지만 확대된 규모만큼 축제의 열기가 아시아 전역으로 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참가에 의의를 둔다지만 거의 모든 게임이 한중일 삼국의 독무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싱겁기 짝이 없는 예선을 마치면 역시 한중일이 경합하고, 그 경합의 결과도 절반 이상 중국이 독식하지 않던가. 그러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한중일 축제의 들러리라는 느낌이 들거나 다음 대회에 나오기 꺼려질 수 있겠다. 4년 뒤 인천 대회에서 중국의 독주가 뒤집힐 리 없겠지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처럼 우리도 싹쓸이에 동참하려 든다면 아세안의 원성이 표면화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데, 그런 걱정인 나중 일이다. 지금 인천의 사정은 그리 한가롭지 않다. 우선 지나치게 초라하지 않을 규모부터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 지난 인천정부가 투기를 전제로 한 개발행위에 과하게 몰두한 까닭에 부풀만큼 부풀려진 거품은 시방 인천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더 큰 거품을 위해 이러저러한 거대 개발사업에 뿌린 막대한 자금이 땅에 저당된 마당이 아닌가. 부푼 거품이 한꺼번에 꺼져 발생할지 모르는 충격을 막아보고자 발버둥치는 인천은 현재 경기장 건설에 염출할 여유 돈이 없다. 그렇다고 4대강 사업에 애먼 돈을 퍼붓고 있는 중앙정부에 손을 내밀 수 없는 처지다. 인천의 사정을 이해할 마음과 하사할 돈이 중앙정부에 있는가 여부와 관계없이, 인천시는 부산과 달리 지원 약속도 받지 않고 아시안게임을 무모하게 유치하지 않았던가.

 

이 와중에 서구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의 규모를 축소한 건 다행이라기보다 아쉽다. 프로 축구와 야구 게임으로 유로관중이 찾아올 뿐 아니라 대형 결혼식장까지 유치한 문학경기장도 적자에 허덕이는 현실이다. 옛 숭의동의 종합경기장이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모습이 바뀌면 바로 프로축구도 자리를 옮길 예정이므로 문학경기장의 적자도 깊어질 텐데, 문학경기장보다 큰 규모의 경기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주경기장 건설을 줄기차게 요구한 서구의 인사들은 뾰족한 대책을 가지고 있다던가. 온갖 상업시설이 총동원될 숭의동의 축구 전용 경기장도 걱정일 텐데, 서구에서 거대 상업시설 유치 이외의 대안이 가능할까. 거대 자본이 소유할 그런 상업시설은 서구 주민들의 유동성 자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일 수 없으면 들어서지 않을 텐데. 지역 소상공인의 생계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인천 북부에도 문학경기장 규모의 운동장에 있어야 한다는 형평성 논리는 불투명한 경제를 미루어볼 때 무모했다. 서구와 인천 북부에 부족한 시설이 비단 경기장만은 아니다. 또한 서구에 있어도 나머지 지역에 없는 시설과 공간이 많다. 형평성 논리로 장차 인천 동서남북에 종합운동장이 있어야 하는 건 어니지 않은가. 경기장 이용 시민과 관중이 지역마다 넘친다면 고려해볼 가치가 있겠지만, 어디 그런가. 소프트웨어의 열기가 없는 경기장의 거대한 하드웨어는 지역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전국에 새로 지은 우리나라의 경기장만이 사정도 아니다. 우리와 달리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신청하려 하지 않는 일본의 사정도 비슷하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가. 인천시는 최근 “2014아시안게임 선수 연습시설 등으로 활용 예정이던 체육공원을 조성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4천500억 원에 달하는 재원을 조달할 여력이 없어 계양구 용종동과 남동구 수산동, 도림동, 논현동 그리고 연수구 선학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체육공원과 선수 훈련 시설 조성 계획들을 사실상 백지화했다는 것인데, 서구에 조성할 주경기장 인근의 경명체육공원 조성 계획도 원점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북경에 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규모에 부러움을 느낀 시민들은 다소 아쉽겠지만 예산은 물론이고 다음 대회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할 때 인천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천시민은 경기를 반납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고 아쉬워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전면 재조정할 대상인 선학동 149-1번지 일원은 44만 8천 여 제곱킬로미터 면적에 하키장과 볼링장이 예정돼 있다. 5000관람석 규모의 하키 경기장과 3000관람석 규모의 보조 하키 경기장, 그리고 500관람석을 가진 56레인의 볼링장이 들어서고 정식 규모의 축구 경기장 2면이 선수 훈련 장소로 마련할 계획이었으며 나머지는 체육공원이 들어설 것이었다. 그를 위해 토지 소유자 262명과 보상을 협의해 올해 초, 대부분의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결국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당초 예고된 근사한 시설이 들어서지 않아 아쉬워하는 이도 있을 테지만, 인천의 경제 사정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하키 경기 열기를 미루어 볼 때, 차라리 다행이라 여기고 싶다. 전국에 선수는 물론이고 하키 동호회 회원이 얼마나 될까. 성남에 국제 규모의 하키장이 있으면 되지 인천에 8천 명 규모의 하키 경기장이 2면이나 있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볼링도 그렇다. 인천에 이용객이 줄어 울상인 대규모 사설 볼링장이 그리 많은데, 관람석을 핑계로 거대한 경기장을 새로 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업을 포기하려는 사설 볼링장을 지원해 관람석을 마련하는 방법이 훨씬 경제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아닐까.

 

문학 경기장도 20억 이상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한다. 광저우는 나을까. 1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주변 광동성과 홍콩 인구와 경제력을 감안한다면 인천보다 사정이 다소 나을지언정 인구 670만의 광저우 역시 새로 지은 숱한 경기장 때문에 한동안 부담스러워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미 보상을 상당히 마친 선학동을 비롯해 5군데 부지는 어떻게 활용해야 바람직할까. 대부분의 지역이 그린벨트거나 농경지라는 점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원상복구가 어렵다면 녹지가 태부족한 인천에 나무들이 가득한 자연공원, 빗물을 완충하며 지하로 스미는 비오톱 공간으로 다시 창조될 수 있다. 이미 유럽과 북미는 물론이고 가까운 일본의 도시들이 시민에게 배려하듯, 텃밭을 찾아 인근 도시로 주말마다 떠나려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 점이 4년 뒤 인천의 환경과 경제를 위한 최선의 대안일 수 있다.

 

4년 뒤 아시아의 젊은 손님들을 잔뜩 불러놓고 다시 한중일의 잔치판을 벌리는 건 아무래도 결례라는 느낌이다. 우리가 일부러 경기력을 포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시아의 이웃을 위해 인천이 다른 차원의 대범함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열기는 높지만 장비가 열악한 몽골 야구 선수단에게 배트를 무상으로 제공했듯, 경기장을 덜 지어 숨통이 트는 예산의 일부라도 활용해 그저 참여에 보람만 느낀 뒤 허탈하게 떠나곤 하는 국가 젊은이의 경기력 증진에 기여하는 일이다. 돈을 지원할 수 있겠지만 돈보다 이웃 국가들과 논의하여 코치를 파견한다면 그들의 참여 의지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현역에서 은퇴한 인천의 젊은이에게 보람 있는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천의 위상이 긍정적으로 높아지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인천시민 생활체육의 저변도 그만큼 넓고 깊어질 것 같다. (인천in, 2010.11.?)

 

선학동시민입니다. 우리집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 원래 경기장이 들어서려던
부지라지요. 경기장이 들어서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쉽지만, 이 공간을
생태공원으로 만든다면 경기장이 들어서는 것보다 (개인적으로는) 찬성입니다.
살기에는 잘 가지도 않는 커다란 경기장보다 주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녹지조성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정말이지.. 체육관이라던지,
공원같은 주민들이 운동할 수 있는 녹지가 꼭 필요합니다.
백지화로 인해 허탈해진 주민들 마음까지 잘 헤아려 다독일수있는 인천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