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9. 7. 12. 00:03

 

언젠가 미국의 유명 신문이 한국의 지하철 신풍속도를 흥미롭다는 듯 전한 적 있다.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시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크게 줄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이외의 국가에서 노인에게 앉았던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지하철에서 보여주는 우리 젊은이들의 한결 같은 양보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는데 그런 모습이 소득이 늘어나면서 차차 드물어진 현상을 주목했으리라. 그렇다고 우리 이외의 국가 젊은이들이 노인에 대한 예의 수준이 우리보다 낮은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앉은 자리를 양보하는 일을 미처 생각해본 적 없을 뿐이다.

 

전보다 드물어지기는 했어도 아직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우리 젊은이가 분명히 있다. 역설적이지만, 드물어진 건 어쩌면 노약자보호석이 생겼기 때문일 수 있다. 일상에서 지친 젊은이에게 나름의 핑계거리가 제공되지 않던가. 일본의 지하철에도 우리의 예를 따라 노약자보호석을 마련했는데 아무리 혼잡해도 그 좌석에 앉지 않는 젊은이들은 아무리 힘들어하는 노인이 바로 앞에 서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고수한다고 한다. 생소했던 노약자보호석이 생긴 뒤에 나타난 현상인지 알 수 없는데, 노약자보호석이 없어도 자리를 노인에게 양보하던 우리의 옛 시절이 지금보다 따뜻했다는 느낌이 든다.

 

먼저 앉은 이가 서 있는 이의 짐을 받아주는 일도 자리를 양보하는 것만큼 일상적이었다. 거의 배낭인 지금과 달리 학생의 가방은 대개 네모났고 그때에도 무거웠으니 무릎에 여러 개를 받아 포개놓을 수 있었다. 먼저 앉은 죄로 서너 개를 받다보면 가방이 가슴이나 심지어 눈을 가릴 지경으로 쌓이는 경우도 흔했다. 받아줄 거로 기대하고 은근히 예쁜 여학생 앞으로 접근하는 남학생도 많았음은 물론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많았고. 가방을 뉘어 받다보니 도시락에 반찬이나 김치의 국물이 새나와 교복에 얼룩을 남기는 불상사가 없지 않았는데 지금 지하철에서 가방을 받아주는 이는 거의 없다. 간혹 그런 선의를 표하는 나이 든 이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 어색하게 웃으며 사양한다. 선반이 있지 않던가.

 

지하철과 버스에 선반이 생긴 이후 앉은 이에게 가방을 맡기는 일은 실례가 됐다. 가방을 맡기는 이가 드물어지면서 받으려는 행위도 물론 줄었고. 운 좋게 자리에 앉은 이는 이제 서 있는 이의 손이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있는지 살피지 않는다. 이런 판국에 가방을 받으려는 행동을 한다면? 주위의 사람들이 이상스럽게 바라볼지 모른다. 가령 인상이 험한 남성이 아리따운 여성의 가방을 자신의 무릎으로 가볍게 당기며 받아주겠다고 하면, 변태로 오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아무리 복잡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이제 남의 가방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야 서로 속 편하다.

 

개통된 지 오래되지 않은 인천지하철에는 선반이 없다. 그래서 서 있는 자는 반드시 제 가방을 들고 있어야 한다. 승객이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이라면 자석에 앉아 자신의 가방을 무릎 위에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서 있다면 쉽지 않다. 한쪽 손에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 잡은 책을 읽어야하는데 책장 넘기는 일이 수월치 않은 것이다. 비에 젖은 우산이라도 가진 날이면 책읽기는 포기해야 한다. 그럴 때 앞에 앉은 이가 가방을 받아주면 좋으련만, 선반이 생긴 이후 그런 호의는 우리 선행의 목록에서 사라졌으니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가. 가방 없이 다니는 이가 부쩍 늘었다. 독서량은 줄었겠지.

 

개통 초기 약간의 예외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인천 지하철 차량에 선반이 아예 없었고 지금은 전혀 없다. 올 6월 송도신도시로 연장된 이후 승객이 늘어나면서 출퇴근 시간이 더욱 복잡해졌는데, 긴 시간 멍하니 있기 아깝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행사가 되고 말았다. 이제라도 선반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안전과 정확한 서비스를 강조하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다른 도시의 지하철처럼 선반 정도는 배려해야 옳지 않을까. 아니면 노약자보호석 스티커 같은 가방 받아주기 포스터라도 붙이든가. 장마는 이어지는데. (요즘세상, 2009년 7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