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5. 18. 01:33

 

재작년 황사 발원지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인천환경원탁회의 일원으로 찾은 이래 올해가 두 번째 몽골 방문이다. 유기질을 거의 잃어 모래나 다름없는 땅에 뿌리가 들뜬 풀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모습, 그 땅으로 몰려가 발로 모래를 긁어 풀을 뿌리까지 먹어대는 양과 염소 떼를 재작년에 보았다. 이윽고 작년, 재작년 방문을 계기로 인천환경원탁회의는 노도와 같은 물줄기가 모래땅을 뒤엎듯 초원을 파헤치며 종으로 횡으로 사람의 삶터까지 파고드는 사막화를 어떡해든 막아보자는 행동에 인천시민도 동참하게 되었다. 이른바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식림행사’였다.

 

나무를 심는 첫해는 참석하지 못했다. 시간강사 주제에 수업을 도저히 뺄 수 없었던 건데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의 양해를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다만 빠듯한 일정이 방문 전에 더 촘촘해졌고 집에 돌아오자 마감을 기다리는 원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해야 했다. 일상에서 비웠던 일주일은 내일의 생각과 행동을 풍부하게 할 게 분명한데, 성큼 앞당겨진 마감시간으로 몸과 마음이 당장 조급해진 것이다. 적막 속에서 천천히 흐르던 몽골의 시간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잠들 틈 주지 않으며 물수건과 땅콩과 기내식과 커피를 종용하고, 비행기 바퀴 내리기 직전까지 면세품 팔던 승무원들은 새벽에 내려 며칠 푹 쉴 틈이 보장되겠지. 공항에서 첫 지하철로 집에 도착해 아침 먹고, 쌓인 우편물 정리하고, 메일 확인한 후 답장 보내고, 씻자마자 오밤중까지 편집회의에 참석해 지쳤어도 몸을 추슬러 책방에 들려야 했다. 황사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몽골 사막을 몸으로 체험한 이의 감성을 호흡하고 싶었다. 이틀 나무심고 하루 시내를 돌아다닌 우리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몽골의 진면목을 늦게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2007년 여름, 오후에 당도한 울란바타르는 우리의 완연한 봄처럼 싱그러웠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코를 자극하는 매캐한 공기는 화력발전소가 원인이었다. 이번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느낌이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중고 트럭과 버스는 여전히 한국산이 대부분이지만 승용차는 2년 전과 달리 일제가 훨씬 많아 보인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해외 송금이 아무리 많아도 아직 그답지 않을 텐데, 말 타던 사람에게 자동차에 대한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건가. 가축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시내는 언제나 막힌다.

 

8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복잡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공항과 호텔과 게르와 식당과 상점을 들고나거나 버스를 오르내릴 때마다 반복하는 인원파악은 베테랑 가이드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일행의 절반 이상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인 중고등학생이 아닌가. 여비를 감당한 집안 덕을 본 그들은 애초 높은 자원봉사 점수에 마음이 빼앗겼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몽골 또래와 벅차고 뿌듯했던 작년의 체험을 돌이키고 싶었고, 몽골 다녀온 뒤 한층 진지해진 자녀가 제 성적을 쑥쑥 끌어올리는 걸 본 부모도 선뜻 동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재작년에 묵었던 한국 자본의 선진호텔은 여러모로 안정된 느낌이었다. 규모도 투숙객도 늘었고 늦은 시간의 스낵바에 손님이 남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특급호텔답게 눈과 코를 찌르던 새집증후군이 사라져 좋았다. 피곤한 가운데 회의실에 모여 인사 나누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2시. 행사 주체인 인천환경원탁회의를 비롯해 진행을 맡은 인천지역환경기술센터, 그리고 인천시 공무원과 연관 연구기관, 또한 언론사에서 30여 명의 어른이 참여했는데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도 시간을 냈다. 아무래도 어른보다 수원과 광명에서 온 학생과 40여 명의 인천 중고등학생이 많은 나무를 심을 것이다.

 

회랑처럼 좁다란 3500킬로미터의 숲으로 진전되는 사막화를 차단하려는 그린벨트 사업은 몽골 정부에서 능동적으로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부족한 건 정부예산만이 아니다. 나무를 심으려는 의지가 유목에 익숙한 몽골인에게 그리 절박하지 않고 무엇보다 동원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유목문화를 수천년 지켜온 몽골인에게 더욱 심각해지는 최근의 황사는 재앙에 가깝다. 목축에 방해가 되더라도 이제 사막화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데 동의할 정도가 되었지만 인구 280만 중에 120만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몰려 있는 몽골은 그린벨트가 필요한 지역에 사람이 몹시 드물다.

 

울란바타르 인근 성긴 지역과 서쪽으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바양노르솜의 ‘한몽 희망의 숲’은 희망대로 숲이 완연해져도 그린벨트 3500킬로미터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은 반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2만 그루 심고 내년에도 행사가 이어진다면 제법 우거진 숲을 보게 될지 모른다. 사막화는 그 숲을 뚫지 못할 것이다. 인천에서 분 나무심기 바람이 인천 이외의 지역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몽골 그린벨트의 녹색 띠는 더욱 길고 두툼해져 그냥 두면 국토의 90퍼센트 이상 사막으로 변할지 모를 몽골의 초원을 푸르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시작을 열었는데, 아주 반갑고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사가 시민들의 모금 덕분에 힘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무를 심는다고 숲이 저절로 조성되는 건 아니다. 일교차가 심할 뿐 아니라 건조한 몽골 사막에서 뿌리가 깊게 내리기 전까지 보살피지 않으면 나무는 말라죽고 만다. 적어도 3년 동안 1주일에 두 차례 물을 주어야하고 양이나 염소와 같은 가축이 나무를 갉아먹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몽골의 시민들, 그 중에 학생들의 관심과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사막화의 책임은 몽골과 거의 무관하다.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같은 맥락으로 상당 부분 우리와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의 나무심기는 그런 반성의 자세로 비롯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행사를 계기로 몽골과 진한 우정이 이어지기를 희망해야한다.

 

이번 행사를 인천환경원탁회의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푸른아시아’는 몽골에 나무 심는 시민운동의 시원을 마련했고, 어렵사리 노하우를 개척한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다. 몽골 정부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푸른아시아가 나무를 심는 노하우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전수했기에 ‘인천 희망의 숲’은 나무를 건강하게 채워나갈 수 있었다. 더구나 푸른아시아는 우리에게 묘목을 알선하고 장비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몽골과 우리 학생들이 함께 나무를 심도록 주선해주었다. 그 또한 두 나라의 내일을 위한 나무심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성긴에서 첫날 나무 심는 일은 쉬웠다. 누구였을까. 구덩이도 미리 파놓았고 모래땅에 부을 물과 거름이 벌써 준비해두었다. 몽골과 우리 학생들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발짓과 즐거운 표정으로 의사소통이 활발했고, 손잡고 나무를 심었다. 가는 나무를 50센티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넣고 흙과 거름을 덮어 발로 밟고 그 위에 두 양동이의 물을 붓는 일련의 과정을 뙤약볕에서 함께 해나가며 우정을 나눴다. 그 와중에 이름을 교환한 학생들은 간단한 말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까지 서로 배워, 준비한 나무를 다 심도록 격이 없이 가까워졌다.

 

좁은 포장도로와 초원을 이리저리 누비는 비포장도로를 먼지 일으키는 좁은 버스에서 6시간이나 견뎌야 도착하는 바양노르에서 학생들은 처음 잡는 삽으로 땅을 파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학생들과 어찌나 잘 어울리며 나무를 심는지 뒤에서 어정대던 어른 중의 한 사람이던 내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뙤약볕에서 어울려 땀 흘리다 헤어질 때 미리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면서 서로 주소를 적는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다. 작년에 참석한 학생은 다시 만난 몽골 학생과 반가움을 나누고, 처음 만났어도 기념사진 찍고 헤어지면서 눈물을 머금었다.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장신구를 남몰래 가지고와 버스 앞에서 전하는 몽골 학생들의 눈매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몽골에 나무를 성공적으로 심은 것이다. 몽골 학생들은 나무들을 잘 보살필 것이다. 1주일에 두 번 물을 주고 한국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것이다.

 

이틀 동안 나무를 심은 일행은 울란바타르 인근의 테를지국립공원을 다녀온 뒤 시내에서 자연사박물관과 수흐바타르 혁명광장을 둘러보고 국립민속극단의 수준 높은 공연을 보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테를지국립공원에 한국인의 흔적은 완연했다. 골프장도 한국인 소유였지만 자질구레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한국어를 알아듣고 호객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버스가 서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나는 몽골인들은 매사냥용 매를 잡아들거나 쌍봉낙타를 타라며 조르고 있었다. 물론 2달러를 반드시 받았고. 토끼를 잡던 매와 고비사막에 사는 쌍봉낙타가 앵벌이가 된 셈이었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재작년에 없던 건물이 속속 들어섰고, 또 올라가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구소련에 의해 고유 키릴문자와 존댓말과 젓가락 문화를 잃은 젊은 몽골인들은 행동과 표정이 자유분방했지만, 소련 멸망 후 자리 잡은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벌려놓았고 시민들의 마음에 자신의 국가가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스며들고 말았다. 그래서 외국인 소유의 빌딩이 솟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수입한 고물차로 거리가 막혀 매연이 매캐해도 참아내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사막화되는 초원은 아직 그대로인데 몽골 수도의 강산은 변했다. 이미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 피할 수 없을 환경재난이 몽골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건만 확신하기 어렵다.

 

‘몽골’은 용감하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아름답고 순박하며 자신의 문화에 자존심을 잃지 않던 모습을 보전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당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알 수 없지만,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일찍이 이윤을 앞세우는 개발은 내일을 어둡게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만이 내일에 대한 걱정의 전부가 아니다. 지각없는 개발로 식량기지를 없애버린 오늘, 내일을 기준으로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버림받지 않았던가. 우리는 앞으로 몽골의 도움을 애타게 청하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작년부터 ‘희망의 숲’을 몽골에 가꾸고 있는 우리는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두 나라의 우정이 지금보다 깊어져야 한다는 인식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시작의 큰 걸음은 내딛었다. (작가들, 2009년 여름호)

큰 일 하고 오셨군요, 심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서평·추억

디딤돌 2005. 9. 17. 15:59
 


중국 여행은 처음이다. 사업이나 유학을 위해, 또는 관광여행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며 방문하는 중국이지만 환경운동과 관련한 문제로 들락거리는 경우는 아직 적은지 이제까지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인천환경원탁회의에서 주선하여 말로만 듣던 삼협댐 일원을 둘러보게 되었다. 방학 내에 마치기로 출판사와 약속했던 원고를 시작도 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일 무렵 떠난 중국 여행.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많은 걸 얻어와야겠다는 다짐으로 합리화하며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상해 푸둥공항으로 가는 아시아나 승무원은 짧은 시간에 밥 주랴 면세품 팔랴 바쁘지만 피로해보이지 않는다. 기장들의 동일업종 세계 최대 기간의 파업으로 본의 아니게 한 달 이상 푹 쉬었기 때문일까. 좌석번호를 찾아 승객들로 꽉 찬 복도를 빠져나가면서 슬쩍 “얼굴이 환해 보이네요. 휴식이 길었죠?” 물었더니 “아, 네, 그게…, 그랬죠.” 하며 얼버무린다. 격무에서 잠시 해방되니 몸은 편했겠지만 언제 끝날 줄 모르는 파업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까닭에 마음은 불편했나보다.


규모에 비해 출국장이 협소한 푸둥공항을 빠져나가 연변 출신 현지 가이드를 만나 관광버스에 오른 일행은 인천환경원탁회의에 참여하는 대학교수와 시민단체 회원, 그리고 원탁회의를 지원하는 인천환경센터의 실무팀이다. 가이드는 비행기에서 어중간한 점심을 마친 일행을 반갑게 맞으며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좌우로 펼쳐지는 상해의 인문지리를 열심히 설명한다.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강제 개방된 상해의 면적, 인구, 건물, 자동차, 주택, 투기열풍까지. 누군가 우리나라를 ‘역동적’이라고 평가했다는데, 초고층 빌딩으로 뒤덮인 거대한 상대도 뒤지지 않겠다고 느낀다.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어떨까.


점심부터 먹자는 가이드의 권유를 짐 풀고 나오자는 수정제안으로 미루고 들어간 호텔은 지금은 공중분해된 우리나라 재벌 대우의 자금으로 지은 4성급이다. 10위안의 팁을 징수하려고 버스에서 가방을 빼앗다시피 챙긴 벨보이가 늦게 올라오는 바람에 짐정리가 늦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찾아간 식당은 우리가 늘 마주하는 중국집과 메뉴가 사뭇 다르다. 입에 대지 못해 해쓱하게 돌아온 동서의 푸념을 익히 기억하던 차에 먹성 좋은 나도 약간 긴장했는데, 조금 느끼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고기 담은 접시를 남 눈치보지 않고 피할 수 있어 편한 점도 있다. 함께 마신 중국 맥주는 좀 싱겁다. 주위를 살피니 비행기에서 나눠준 고추장이 빛을 발한다.


오후부터 본격 상해 시내 관광이다. 사실 이번 여행을 나는 관광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현지 가이드가 “중국으로 관광온 여러분을 환영한다, 삼협댐으로 관광가는 한국인들은 드물다.”고 할 때 내심 어색했다. 나는 삼협댐을 직접 보려는 의지가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8월 21일은 일요일, 즉 공휴일이다. 역동적인 중국도 일요일은 쉴 것이다. 몰라보게 달라진다는 상해를 반나절이나마 주마간산이나마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동방명주. 시청 옆 방문객 가이드 역할을 하는 건물에 잠시 들려 상해의 이모저모를 곁눈질 한 일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자 전망대인 동방명주에 등 떠밀려 올라가 상해 시내를 360도 둘러보았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중국인인 듯싶고 러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유럽인들도 보인다. 한국과 일본에서 온 관광객도 적지 않겠지. 오랜 건물을 때려부수고 올려짓는 건물들로 둘러싸인 동방명주에서 바라본 상해의 하늘은 뿌옇다. 언제나 저럴까. 거의 그렇단다. 양자강 이남에선 난방설비가 금지라는데, 어디가나 에어컨을 펑펑 돌리는 중국에서 난방 자제는 에너지 절약 차원만이 아닐 것이다. 난방용 석탄이 내뿜는 매연이 골치 아프기 때문이 아닐까.


동방명주 아래층에 마련한 역사박물관에서 서구 제국주의 등쌀로 개방된 상해의 역사를 밀랍인형과 미니어처로 재현해놓았다. 제국주의 막바지에 동방을 차지하려는 유럽제국들은 상해에서 각축을 벌였고, 민중은 고통받았을 것이다. 중국을 침탈한 제국주의자의 거만한 삶과 민중의 고달픈 삶을 조금 비교해놓긴 했지만 상해 역사박물관은 정부의 시각으로 해석한 자화자찬으로 일관한다. 서구식 개발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영웅적 개척으로 그려내고 있다. 자연을 착취해 지구 표면에 돋아올린 산업문명은 한계가 분명할 것인데, 서구 제국주의 뒤를 이은 중국 자본의 자연착취는 제국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총과 칼로 찌르고 죽이며 남의 것을 빼앗고 착취하는 전쟁을 마뜩치 않게 보던 우리나 중국의 문화와 역사는 자연에 깊은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자연에 대한 착취를 반성하며 상처 깊은 제 땅에 나무를 심고 고층빌딩을 자제하는 유럽과 달리 우리와 중국은 조상의 문화와 역사를 비웃는다. 뒤늦은 제국주의 환상에 말초적으로 젖어 자화자찬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걷다 지친 몸은 시장함을 선포한다. 상해에서 꽤 크다는 샤브샤브 식당에서 신선로 비슷한 화덕에 이것저것 식재료들을 빠뜨리며 허겁지겁 먹다 서커스를 관람한다. 어려 보이는 청소년들이 여러 재주를 선보인다. 관중의 탄식을 자아낸 서커스단은 마지막 긴장감을 선사한다. 지름 10미터가 못돼 보이는 철망 구 안에 오토바이들이 한 대 한 대, 모두 다섯 대가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빙빙 도는 게 아닌가. 아무튼 정신없었는데, 비슷한 중국 서커스단이 제주도에도 있다고 누군가 귀띔한다. 커다란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재주부리던 소년의 벗겨진 정수리를 보고 안쓰럽다 여겼는데, 밖에 나오니 그 소년은 우리 앞자리에 앉은 일본 여성 관객들과 기념사진 찍느라 바쁘다. 우리도 그들과 한 컷!


야경을 볼까 발마사지를 받을까. 상해 발마사지는 유명하고 또 퇴폐가 아닌가? 그런데 비행기에서 구입한 양주 마시기로 의견이 정리된다. 호텔에 들어와 뽀송뽀송하게 목욕제개한 일행들이 모여 양주 두병을 순식간에 비웠는데, 안주는 언제 마련했는지 달콤한 과일이다. 이런 데 와서도 여성들은 술상 준비하랴 바쁘다. 미안한 마음으로 따라주는 양주 다 마시고 일찍 들어가 푹 잤다. 삼협댐으로 출발하는 내일을 위해.


다음날 여느 서양 호텔과 다르지 않는 아침을 빵과 과일 위주로 먹고, 삼협댐과 가까운 도시 의창으로 떠나기에 앞서 상해 시내에서 기념품을 사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이른 시간이라 상점 문이 열리지 않은 남경로 대신 예원이라는 곳을 찾았다. 둘러볼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 부르는 값의 절반 이상 깎아야 한다는 가이드의 귀띔이 있었지만 물건 값 깎는 재주가 유달리 없는데 어쩌나. 자기로 구운 아기인형을 노점에서 사고, 전문상가에서 구입한 다기세트는 인사동에 비해 워낙 싼 값이라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당 5천 원 정도에 구입한 냉장고 장식 자석은 좀 약오르는 느낌이다. 흥정하다 그냥 가는 척 하면 낮춘 가격에 대개 동의한다는 노하우를 진작 전수받을 걸. 집에 돌아와 꺼내자 귀여운 중국 아이 도자기는 아내가 반기는데, 다기는 아니올시다란다. 그것 참.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 11시에 서둘러 점심을 먹고 푸둥공항이 생기기 전 상해를 대표했던 홍교공항에서 의창으로.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는 ‘중국동방항공’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중국엔 항공사가 많은 모양이지. 11시에 점심 거하게 - 중국 식당은 늘 거한 느낌이다 - 먹은 터라 배가 빵빵한데 승무원은 점심을 내준다. 비싼 비행기 삯에 포함되었을 테니 먹긴 먹지만 고기 빼고, 빵 빼고, 밥과 음료만 챙겼다. 지금은 문화방송 워싱턴 특파원을 하는 후배는 초창기 중국을 다녀와선 웃으며 소감을 이야기했다. 서비스에 관심이 없던 국내 항공기는 찐빵과 삶은 계란과 봉지 우유를 휙휙 던지는데, 제대로 받지 못하면 우유가 터진다고. 그 후 20년도 안 된 요즘, 중국의 항공사들도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젊고 늘씬한 여성들의 기내 서비스는 우리 항공사와 다를 게 없다.


의창에서 만난 현지가이드는 건장한 남성 동포로 삼협댐 건설을 담당하는 회사 소속이다. 삼협댐 건설공사 여파로 인구가 최근 20만에서 50만으로 늘어난 의창 시내를 지나면서 차창너머로 삼륜승용차를 보고, 삼협댐으로 이동하는 중에 환경원탁회의 사무국은 유람선에서 마실 중국술을 충분히 구입한다. 중국에선 술도 경쟁이 치열한 모양이다. 술병이 든 케이스를 뜯으니 경품이 나온다. 2위안 지폐와 라이터. 라이터는 금방 고장났는데, 운 좋으면 20달러 지폐도 나온단다. 그러고 보니 중국 텔레비전은 상품광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다 포기한 듯싶다.


과적한 트럭 무리를 이리저리 피하며 한참을 달리니 이윽고 차창 밖 멀리 삼협댐과 거대한 물보라가 보인다. 저 트럭들은 전국을 돌며 화물을 나르는데, 장강에서 배로 올라타 중경으로 간단다. 삼협댐이 한눈에 보이는 홍보관에 내린다. 젊은 홍보담당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이리 저리 찍고, 무리지어 다니는 군인들도 찍었다. 삼협댐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무장한 모습은 아니다. 관광객처럼 한가롭다. 삼협댐에 막혀 장강 하구에 민물 유입이 줄면 염분농도가 높아져 대만 일원 바다의 어획고에 변동이 있을 것이라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삼협댐을 폭파하겠다는 대만 간첩이 입국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가이드는 지나기는 말처럼 이야기한다. 저 어마어마한 크기의 철근 콘크리트를 부수려면 폭약의 양도 엄청날 텐데, 폭파가 어디 가당하기나 할까.


댐 정상으로 이동했다. 높이 185미터에 길이 2309미터, 정상부 폭이 13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은 막바지 공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130여 미터의 물이 담겨있고 2009년 완공되면 수위를 175미터로 끌어올린다는 댐은 최대 저수량이 소양호의 13배인 390억 톤이다. 지금도 막대한 물을 하류로 연실 쏟아내 멀리서 댐을 덮을 듯 물보라가 보였던 것. 댐 위에는 우리 말고 중국인들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많다. 만리장성도 쌓은 그들은 자신의 국가가 이룩한 세계 최대의 토목공사 현장에서 뿌듯해할까. 혹시 불안해하지 않을까. 떠들썩하게 기념사진에 열중하는 그들, 후자는 아닐성싶다.


터빈 외피만 드러낸 발전소 공간을 보러갔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었다지만 그냥 찍으란다. 외부 구조물에 가려진 터빈이 나열된 곳인데 감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통제실은 들어가지 못했다. 거긴 사진촬영이 절대 안 된다는데, 들어갈 필요도 없고, 들어가도 모른다. 사진? 통제실 사진 찍어봤자 써먹을 데도 없다. 뭐라 뭐라 열심히 설명하는 홍보담당 직원은 얼굴 보고 선발했는지 용모가 빼어나다. 홍보 직원의 설명은 자료에 다 나와 있다. 70만 킬로와트급 총 26기에서 1820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해 반경 1000킬로미터 지역에 전기를 공급한다고. 수몰된 지역주민의 애환, 물고기 이동을 위한 대책들을 물었다. 뻔한 대답. 원하는 곳에 농지를 제공하기도 했고 도시로 이전시켜 만족해한다는 관제답변이다. 물고기 이동을 위한 어도는 검토할 예정이란다. 검토? 검토하는데 돈 들어가는 일은 아니다.


5시 퇴근하는 공무원이 한국에서 방문한 우리를 위해 6시까지 수고해주었다. 함께 기념촬영한 후 유람선 선착장으로. 유람선에 올라 저녁먹고 5개 갑문으로 구성된 삼협댐을 오를 참이다. 거대한 갑문을 통과하는 순간도 놀라운 볼거리이자 경험일 것이다. 승객 70명 정원인 유람선은 작지만 4성급이다. 우린 4성급 호텔을 연상했는데, 유람선의 기준은 육지와 다른 모양이다. 좁은 선실에는 침대, 텔레비전, 에어컨, 욕실과 화장실이 나름대로 구비되었지만 냉장고는 없다. 승객은 일단 우리뿐인 모양이다. 유람선 측은 우리를 위해 식당이 아닌 노래방 시설 갖춘 연회실을 제공했고, 기역부터 시옷까지 오래된 한국 노래를 구비한 노래방에서 안남미 밥과 느끼한 중국음식을 독한 중국술과 함께 먹고 모처럼 목청도 뽑았다. 젊은 중국 종업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날이 어두워지면서 많은 배들이 첫 갑문 입구에 모여든다. 5개의 갑문 중 제일 위에 위치한 마지막 단계의 갑문은 아직 가동하지 않는다. 댐이 최종 완공되면 가동할 예정이다. 하나에 16미터씩 상승하는 갑문을 모두 통과하는데 3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첫 갑문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첫 갑문에 일단 들어가면 갑문 사이는 금방 빠져나간다. 만 톤급 배 2대를 동시에 옮길 수 있는 갑문 중 첫째 문은 자정 가까이 열렸고 우리 배는 가장 늦게 들어갔다. 덕분에 앞선 선박에서 쏟아내는 매연 공세를 덜 받을 수 있었지만 난간을 잡은 손이 시커멓다. 매연에 찌든 것이리다.


옆에 다가온 배도 유람선이라는데, 거의 시장바닥 수준이다. 4성급 유람선에 기대를 한 일행은 육지에 비해 좁고 부실한 시설에 불평했는데, 현지 가이드는 시장바닥과 같은 배를 가리키며, 보통 중국인들은 이런 배는 비용이 들어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귀띔한다. 장강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적어도 열흘을 잡아야 하는데 5성급 유람선은 2박3일 일정에 배정되지 않는단다. 하긴, 삼협댐이 만든 호수는 길이 660킬로미터, 평균 너비 1.1km, 총면적 632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호수 고속도로가 한꺼번에 4개가 생긴 셈이라고 하지 않던가.


일단 육중한 갑문이 닫히면 넓은 도크 안에 강물이 쑥쑥 들어와 배들은 금세 상승한다. 그런데 갑문 통과를 반복해 보려니 지루하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독한 중국술 마시던 일행들은 선실에 들어가고 나도 들어가 눕는다. 잠결에도 정박했다 움직이는 게 여러 차례 느껴진다. 눈을 뜨고 커튼을 열었더니 열려있는 마지막 갑문을 통과한다.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덩어리! 과연 높다. 앞으로 저 정도 이상 장강의 수위는 올라갈 것이다. 장강에는 크고 작은 20만대 이상의 배들이 오간다는데, 그 배들이 토하는 매연과 폐수는 엄청날 터, 흐름을 멈춘 거대한 호소에 정체되는 토사와 오염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어졌던 산들은 점점이 섬으로 흩어져 고립되고, 그곳 주민들은 인간보다 먼저 장강에 머물었던 판다처럼 개발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말 것인가.


만일, 저 삼협댐이 무너진다면? 부정부패로 얼룩졌다는 소문 때문이 아니다. 철근 시멘트 콘크리트의 수명을 따지니 그렇다는 것이다. 장강이 싣고 오는 막대한 토사가 175미터 이상 불어날 물줄기와 함께 수명이 다 된 댐의 일부라도 밀어낸다면? 방정을 넘어 벼락 맞을 소리일지 모르지만, 철근 콘크리트의 수명은 장강의 역사와 문화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다. 마실 물이 부족한데 댐을 만들지 않으면 안 돼! 토목전문가들은 그렇게 말한다. 댐 없으면 물을 마시지 못하나. 그렇다면 우리 조상은 목말라 죽었나. 인구가 집중되고 지표수가 오염되고 물 사용량이 전과 같지 않은 요즘, 댐은 필연이라고 주장하는데, 반드시 댐이어야 할까. 지하수를 더 깊게 뚫자는 뜻이 아니다. 더 깊은 지하수, 더 큰 댐이 아닌 지속 가능한 대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삼협댐 완공으로 수운이 길어지면 물류비 절약은 물론 관광수입도 늘어날 것이다. 장강의 물을 지하수로로 북경에 공급하면 수천 년의 갈증이 해결되고 공장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강 범람이 국지성호우로 연결되는 우리나라는 괜찮을까. 철갑상어를 비롯하여 100종이 넘는 어류는 장강을 오갈 수 있을까. 중국 당국은 그런 하찮은데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삼협댐이 무너지면? 앞으로 적어도 백년 이후의 상상일 테지만,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비용만이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재앙과 패닉 현상은 중국은 물론 삽시간에 세계로 퍼질 것이다. 1995년 고베 지진은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날부터 사실상 장강 관광이다. 우리가 크다고 이야기하는 양자강은 장강의 한 지류. 장강은 과연 길고 크다. 우리와 중국인으로 보이는 부유층 관광객들도 실은 4성급 유람선은 삼협댐이 모은 거대한 호수 위를 상류 방향으로 미끄러지며 삼협의 비경을 가로지른다. 삼국지의 주 무대였던 구당협과 무협과 서릉협, 이백과 두보와 소동파가 시를 읊고 읊었던 곳, 그 시인은 먼 훗날 자신을 시상에 잠기게 했던 삼협이 침범한 흙탕물로 백여 미터 이상 잠기리라 상상이라도 했을까. 13개 도시와 1500여 마을을 수몰하고 무려 백만이 넘는 이주민을 양산한 장강을 따라 기암절벽을 감상한다. 카메라도 이리저리 들이대며, 강가 마을 정취도 바라보고, 강가를 따라 이어지는 석탄광산도 살핀다. 저 석탄들이 영흥화력발전소로 갈 것이다. 상해 하늘을 늘 뿌옇게 만드는 석탄에는 수은을 포함한 중금속도 많고, 도시에 사는 중국인들의 사망원인 중 호흡기질환이 으뜸이라고 한다. 새삼스레 장강과 우리네 삶이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닫는다.


장강이 흙탕물인 건 강가의 농토 때문이라던데, 과연 그럴 것 같다. 벌건 흙을 노출시킨 계단식 밭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중국산 수입채소에 농약이 많이 검출된다던데 물길이 막힌 장강의 수질은 안녕할라나. 그래도 자그마한 중국의 시골 마을들은 정겨워 보인다. 마을과 멀지 않은 강가에서 한 무리 원숭이들이 보인다. 미처 카메라를 커낼 틈도 없이 유람선은 지나가고, 사람의 발이 닿기 어려워 보이는 협곡에 가느다란 대나무군락이 무성하게 늘어져있다. 판다가 주로 먹는 명주대나무란다. 판다는 없어도 대나무는 유구한데, 판다를 보유한 세계 각국의 동물원들은 저 대나무를 신선하게 수입하느라 거액의 예산을 소비한다. 그래도 판다를 보려고 밀려드는 관광객 덕분에 수지를 맞춘다고 들었다.


절벽 사이의 가느다란 길은 적토마를 탄 관우와 삼지창을 든 장비가 내달렸을지 모른다. 현지가이드는 여기 저기 절벽 틈에 나무상자를 가리킨다. 관이다. 옛날 이 지역 사람들은 망자를 절벽에 안치했다고 한다. 높은 곳에 놓을수록 지위가 높단다. 관을 올려야 하는 후손들은 힘겨웠겠지. 이어지는 경관에 넋을 잃다 들린 신농계. 웅장한 구당협과 화려한 무당 협곡을 지난 유람선은 맑은 물이 흘러드는 신농계에 접안한다. 언덕에 관광객을 붙잡는 중국 특유의 건축물이 보이고 그리 올라가는 길목에는 기념품을 파는 작은 노점이 옹기종기 이어져 있다. 여기선 나룻배를 타야한단다. 16인승 목선으로 봉고차처럼 한 의자에 3명씩 앉는다. 구명조끼를 엉성하게 입고 영어가 가능한 신농계 가이드를 태운 나룻배는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인 듯싶다. 앞뒤 각각 한명의 선장과 4명의 일꾼이 노를 젓는데, 물살이 빠르고 바닥이 드러나는 상류에 다다르자 대나무 밧줄을 길게 당기며 짧은 바지차림의 일꾼들이 뛰어내린다. 신발도 부실해 보이는데 대나무 줄을 어깨에 걸친 일꾼들은 강을 거스르며 우리가 탄 배를 끌어올린다. 영차! 영차! 인력거를 탄 듯, 마음 한 구석 미안해하는 우리의 성원을 받으며 원주민들은 배를 힘겹게 끌어 올리고, 이런 체험관광으로 돈을 버는 마을답게 손님들을 위해 선장은 노동요를 걸쭉하게 뽑기도 한다. 옛날에는 나체로 배를 끌었다는데, 엉겁결에 승선한 나룻배.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어찌 흔쾌하지 않다.


점심 전까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건축한 듯 보이는 건물로 올라간다. 좌우에 배열된 노점은 출토품처럼 보이는 자질구레한 기념품을 판다. 한 때 선물용으로 인기 있던 물고기 화석들도 보인다. 각종 약재들을 전시 판매하는 건물을 대충 돌아보고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의 민속 공연을 관람한다. 외국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상인들은 길을 막으며 약재 설명에 침을 튀기지만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동포들 보따리로 들어와 한때 길바닥에서 팔리던 중국 약재는 이제 우리에게 시들하다. 농약과 중금속 오염이 걱정된다. 한약도 신토불이! 짧은 공연을 보며 웃어 제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대사를 이해하지 못하니 이질감이 든다. 나무빗에 이름을 새겨 10위안 정도에 팔던 기념품점 상인들이 우리에게 30위안을 달란다. 기분 나빠 발길을 돌리자 20위안으로 내려 부른다. 점심을 위해 유람선으로 가는 길에 노점에서 남여상렬지사를 병풍처럼 새긴 우각을 샀다. 60위안 내란다. 고개를 흔들며 종이에 20위안이라고 쓰자, 40, 30, 25위안으로 깎던 노점주인은 그냥 돌아가려는 내게 20위안을 달란다. 20위안이면 2500원 정도다. 재미로 깎는다지만 지나쳤나 싶다.


점심에 독한 중국술을 많이도 마셨다. 우리뿐인 홀에서 노래 몇 곡 부르느라 멋진 경관을 놓쳤다. 술상을 들고 갑판에 나서니 주위를 둘러보며 사진 찍는 중국 관광객들이 선점한 상태. 한 구석에서 술 마시며 사진도 찍고 바닥에 기대 잠도 청하는 일행. 그 모습이 재미있었나. 한 중국 청년이 자는 모습을 스케치 해 선물한다. “씨에 씨에!” 점심상에 올랐던 찬을 놓고 술마시는 일행을 보며 중국인들이 놀라했단다. 술이 세다고. 중국 부자들은 기름진 음식을 늘어놓고 술을 마시지만 우리야 어디 그런가.


술이 깰 무렵 장대한 협곡을 지난 유람선은 수몰돼 얼마 남지 않은 백제성으로 다가간다. 미니버스를 타고 리프트 타는 곳으로 가서 리프트를 타고 백제성으로 오른다. 현지가이드의 본격적인 삼국지 설명이 토해진다. 죽음을 앞둔 유비가 조자룡이 바라보는 가운데 제갈량에게 아들을 당부하는 그림과 조각이 하이라이트인 백제성은 삼협댐 완공으로 꼭대기만 남는다. 여기저기 그림과 비석 설명에 열을 올리는 현지가이드는 구석에 마련된 찻집을 안내하고 시음을 권한다. 일행 중 몇 분이 예의상 특산이라는 차를 구입하고, 허접한 기념품 코너를 훑어본 후 고풍스런 성내를 빠져나오니 어느새 어둑하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 유람선까지 타고 갈 버스 쪽으로 이동하려는 찰라, 한 떼의 아이와 아주머니들이 와르르 달려든다. 신농계에서 한 개에 20위안을 부르던 기념품을 다섯 개 잡고 10위안이란다. 고개를 흔드니 귀지후비개도 추가한다. 우리 지하철에서 천원에 팔던 부채도 몇 개나 끼워준다. 싸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하나 사 주면 떨어져나갈 것도 같고, 10위안을 주었더니, 이런! 다른 아주머니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또 샀다. 이번엔 귀여운 여자아이가 막무가내로 사달라고 늘어진다. 그 꼬마와 한 아주머니가 제 손님이라며 싸우기까지. 안 되겠다. 냉정해지기로 했다. 버스에 오르니 일행마다 비닐봉투가 두세 개다. 착한 사람들!


좀 지겨워진 중국음식을 먹고 짧지 않은 원탁회의를 마친 일행은 일찍 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므로. 점심때까지 무한으로 가야하고, 다시 상해로 날아갈 국내선을 타야한다. 밤새 다시 하류로 내려간 유람선에서 내려 새벽에 배에서 주는 찐빵을 들고 버스 터미널에서 무창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과적 트럭에 시달려 바닥이 고르지 못한 고속도로는 거의 전 구간이 수리중인데, 우리를 태운 기사는 과연 용감했다. 중앙선까지 넘나들며 느려터진 화물차들을 연실 추월한다. 덕분에 긴 점심시간을 가졌다. 인구 850만 무한에서 가장 큰 한국식당이다. 한국말 주문이 가능한 식당에서 포식을 하고 서비스로 내놓는 소주도 마신다. 떡볶이, 파전, 김치찌개, 공깃밥 추가, 포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무한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 중국의 최대 곡창지대다. 여기저기 민물고기 양식장이 보이는데 그 중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종류도 많을 것이다. 누군가 추어탕을 먹지 말라고 당부한다. 중국산 미꾸라지는 항생제로 오염됐다고 귀띔하면서. 수입상의 요구에 맞게 적당히 오염된 채소와 미꾸라지를 헐값으로 수출하는 중국도 앞으로 바뀔 것이다. 한국을 겨냥한 유기농단지는 규모가 엄청나다는데, 제 나라 식량 자급률이 계속 뒷걸음치는 중국의 식량수출은 바람직할까. 농장을 공장으로, 숲을 농장으로 바꾸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잉여농산물을 수입하면 가난한 나라들은 물론 일본도 긴장해야 한다고, 월드워치연구소 레스터 브라운 이사장은 『중국을 누가 먹여 살리는가』에 썼다. 식량 자급률이 26퍼센트에 불과한 우리는 괜찮을까. 남의 나라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이라도 수입하면 유기농이 아니어야 한다. 제 나라 땅과 농민을 살려내지 못하고 수입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놓기 때문이다. 싼 값으로 반입될 중국 유기농산물은 먼저 우리 유기농부들을 울리고, 앞으로 자국 소비자와 농민들도 울릴 게 틀림없다.


무한에서 상해로 날아와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도 연변 동포 여성이다. 사흘 전 만나 들었던 설명을 반복하며 질문도 던지는데, 새삼스럽고 재미도 있다. 중국인들이 평생 못 해보는 것 세 가지. 사투리가 많은 중국말을 다 듣지 못하고, 발이 있는 건 의자만, 나는 건 비행기만 빼고 다 요리한다는 중국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넓은 중국 땅을 다 밟지 못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아스팔트와 고층빌딩으로 점철되는 상해는 삭막하고, 고가도로로 어지럽다. 첫날 묵은 호텔에 다시 여장을 풀고 잠시 쉰 일행은 상해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식당으로 간다. 3천 명 이상 동시에 들어간다는 식당은 김치를 기본으로 내놓는다. 맛도 그런대로 괜찮다. 사스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란다. 마지막 중국음식인데 특히 고기가 많고 기름기가 넘친다. 많이 먹지 못하고 노래방으로! 본격적인 광란의 밤이 연출되려는 것인가? 노래방이 거의 우리 룸살롱 수준이다. 우리와 동행한 여행사 사장과 현지가이드까지 18명이 한곡 씩 뽑아도 한 시간이다. 술도 안주도 남았다. 챙겨들고 나와 중국 마지막 밤을 구가할 각자 개별 프로그램을 작동하기로 한다. 아쉬운 밤을 취기를 달래려는 사람은 더 남기로 하고 나머지는 호텔로.


호텔 식 아침을 들고, 짐 싸들고 나오니 한국 여행객들이 서성인다. 가족과 함께 대전에서 온 여행객들과 잠시 이야기하다 상해 공항으로. 아시아나를 타고, 고기를 뺀 기내식을 먹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중국 여행은 어느덧 추억이 되고 말았다. 계양에서 공항버스를 내려 인천지하철로 아내와 아이들이 반기는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방문한 중국,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환경문제로 몇 군데 국가를 방문한 적 있지만 아직 중국에서 환경은 뒷전이다.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중국에도 환경단체가 생길 것이고 우리 이상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면 교류도 활발해지겠지. 닷새 만에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맛나게 비운 후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상해를 드나들었던 한국화가 친구를 만나 한잔하고, 며칠 허전했을 이불을 편다. 편안한 잠을 비로소 청한다. (기고문, 2005.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