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9. 10. 04:56

 

태풍 꿀랍이 다가와서 그런가, 추석이 며칠 남았건만 전국의 고속도로는 벌써 붐비기 시작한 모양이다. 자동차 없으면 추석도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편리할 것 같은 독신도 굳이 승용차를 타기에 그 연유를 물었더니, 추석 때문이라고 했다. 시골 부모는 자식에게 내줄 농작물을 잔뜩 준비해 놓았다는 게 아닌가. 1년 중 오직 이날을 위해 기꺼이 농사를 지은 부모를 생각해서 차를 가지고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건데, 찾아갈 시골에 없는 처지에, 부러운 이야기였다.

 

자동차가 흔치않던 시절, 명절 귀성인파는 서울역 광장에 오래 줄을 서 표를 구해야했다. 아이 놓칠세라 손을 꼭 잡은 부모는 선물 보따리까지 부여잡고 입석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고속도로가 전국을 누비는 요즘, 사람들은 자동차를 선호한다. 도로가 막히더라도 차 안에서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 모르는 이와 부대끼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명절이 오면 방송매체들은 도로 사정부터 보도한다.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자동차가 사람의 움직임을 방해한다고 설파했다. 집에서 자동차 사이를 움직일 뿐인 사람은 그저 핸들 돌리고 가속과 감속 페달을 밟는데 그치지 않던가. 발 대신 움직이는 자동차를 위해 적지 않은 기름과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은 자동차를 사용해서 얻는 이익이 자동차가 없어 겪는 불편함보다 크다고 믿는다.

 

자동차를 시용하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닐 이유가 없고 천방지축인 아이를 놓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가 외면하는 길을 찾아갈 수 있고 대중교통의 막차시간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 자동차가 도로에 늘어나면서 약속시간을 종잡을 수 없지만 처리하는 일과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난다. 물론 거리끼는 부분이 적지 않다. 늦은 시간까지 흐느적거리는 자유가 구속되는 차원이 아니다. 소중한 이를 다치거나 숨지게 하는 사고가 빈발하고 숨 쉴 공기를 오염시키며 지구온난화를 촉발할 뿐이 아니다. 자동차를 만들고 사용하고 폐기하는 과정마다 적지 않은 쓰레기를 내놓는다.

 

늘어나는 소비에 비해 생산량이 밑돌아 그런지, 올라간 국제 석유가격은 여간해서 내려오지 않는다. 세금이 많이 포함되었더라도, 우리나라는 최근 1리터 당 2천 원을 훌쩍 넘었는데, 석유 위기를 경고하는 전문가들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대안을 찾아야 할 텐데, 사람들은 자동차를 포기하려 할까. 지구온난화까지 걱정하는 전문가들은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제안하며 전기자동차 보급을 전망하지만 자동차 문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자동차에 중독된 세상은 석유를 대체할 자원을 구한다. 콩이나 옥수수, 사탕수수나 유채와 같은 농작물, 파래와 같은 해산물로 대체연료를 개발하는 전문가들은 친환경까지 내세운다. 석유보다 긍정적이라는 거지만 대부분 착시현상이다. 지구촌의 자동차에 넣을 대체연료를 충당하려면 지구 하나로 모자란다. 게다가 그런 농작물의 생산과 대체연료 가공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대체연료에서 얻는 에너지보다 월등하게 많다. 화력이든 핵이든, 자동차에 충전할 전기도 효율이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운전자의 건강과 환경, 그리고 지구온난화 예방에 도움이 되는 건 실제로 없다.

 

대안은 강고하기 짝이 없는 자동차 문화를 근원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를 위해 자동차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는 도시를 구상해, 승용차보다 대중교통, 대중교통보다 자전거, 자전거보다 걷는 생활습관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주거공간이 기형적으로 밀집된 초고층빌딩은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가 낭비되므로 대안일 수 없다. 대부분의 일상을 걷거나 자전거 이용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도록 학교와 직장과 시장과 종교와 문화시설과 농업단지가 가까워야 한다. 이른바 컴팩 시티.

 

추석연휴에 한가했던 도시가 다시 복잡해질 즈음 시골이 한가해질 텐데, 복잡할수록 불편한 도시의 대안은 한가로움에 있을지 모른다. 복잡한 도시를 시골과 컴팩 시티로 분산시키고 한가롭게 살아야 사람 사이의 행복도 깊어질 것이다. (요즘세상, 201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