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10. 25. 07:11
 


어릴 적 마을에 텔레비전은 몇 집 없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만화영화 황금박쥐를 보려면 저녁 무렵 부잣집을 기웃거려야 했는데 무섭게 엄격한 아버지는 질색을 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온통 황금박쥐 이야기뿐인데…. 소외되기 싫어 어머니에게 텔레비전을 사거나 그 집에 가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소용없었다. 그래도 주제가는 알았다.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는가? 황금박쥐. 빛나는 해골은 정의에 용사다.” 그렇게 이어져 “우주의 괴물을 전멸시켜라!” 하다 “박쥐만은 알고 있다.”로 끝났다.


학교 앞 만홧가게의 흑백텔레비전에서 갈망을 채우던 시절, 극장에서 황금박쥐를 상영하자 어머니는 우리 형제를 데리고 가주셨다. 영화는 칼라였다. 과연 황금박쥐는 황금색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더 보고 싶다며 떼를 썼고 어른 보기에 유치했을 만화영화를 어머니는 한 번 더 보는 고역을 감수해야 했다. 이후 우리는 황금색까지 아니라도 좋았다. 붉거나 노랗더라도 관계없었다. 보자기를 어깨에 두른 채 작대기 하나씩 들고 골목을 뛰어다녔다. 목청 터져라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는가? 황금박쥐, 박쥐만은 알고 있다!” 노래하면서.


그 황금박쥐가 나타났다고?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들은 요즘 조용한데 언론은 목청을 높인다. 황금박쥐가 나타났다며. 천연기념물 452호이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동물인 황금박쥐가 부산 북구의 버석 재배용 비닐하우스에서, 충남 태안군의 한 농가에서, 전남 함평군의 폐금광에서, 강원도 동해시의 동굴에서, 충북 진천군과 충주시의 동굴에서 나타났다고, 경사 났다고 소리 소문을 낸다. 얼마나 반가운 노릇인가.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는 천연기념물 황금박쥐를 알현하게 되었으니. 하지만 이 땅의 황금박쥐는 멸종을 강요당한다.


황금박쥐는 학자들이 ‘오렌지윗수염박쥐’라고 이름붙인 ‘붉은박쥐’를 말한다. 갑자기 집안으로 날아 들어와 깜짝 놀랐다는 태안의 주민은 “몸에 난 털과 골격 부분은 오렌지색이며 날개 부분은 검은색을 띄고 있다.” 기억하고, 비닐하우스에 들어온 황금박쥐를 “다치지 않게 집에 보호한 뒤 구청에 알렸다.”는 부산의 주민이 황금빛 나는 작은 동물이었다고 증언하는 걸로 보아 황금박쥐는 분명 황금색이다. 또 분명한 것은 황금박쥐는 주민들의 각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황금박쥐는 멸종위기 신세가 된 것일까.


사실 황금박쥐만이 멸종이 걱정되는 박쥐는 아니다. 해질녘 약수터나 근교에서 쉽게 눈에 띄었던 관박쥐도 몹시 드물어졌다. 깊은 산 동굴이나 인적 드문 산골마을에서 겨우 몇 마리 볼 정도다. 이따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비쳐주는 동굴 속의 박쥐는 언뜻 많은 듯해도 형편없게 줄어든 모습이라고 관련 생태학자는 정정한다. 지금은 동굴 깊이 한 지점에 매달려 있지만 예전에는 동굴 전체에 빼곡했다는 거다. 잘 사는 집 흑백텔레비전에서 황금박쥐가 방영될 적에 커다란 나비처럼 밤하늘을 펄럭이던 박쥐는 어디 어디로 간 걸까.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그 한 복판 백화점의 주변 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다 만난 박쥐는 아마 황금박쥐가 아닐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중국 남부, 대만,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발리에 분포하고, 일본의 대마도에서 발견된다는 황금박쥐는 따뜻한 곳에 터전을 마련하는 모양이니. 얼마 전 주문진의 초저녁 가로등 주위를 날던 박쥐는 황금박쥐일까. 어두워서 몸 색을 구별할 수 없었는데, 희귀한 만큼 황금박쥐일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모른다. 터전을 바꿨을 가능성도 있다. 지구가 더워지는 이유와 더불어 주민들의 보호와 관계없이 정부가 서식지를 파괴하니 황금박쥐는 다른 터전을 찾아야 한다.


최근 충주환경운동연합은 황금박쥐를 원고로 환경소송을 냈다. 말 못하는 동물의 생존권은 누가 보호해야 하나. 결국 사람인데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연을 대리하는 환경소송에서 연이어 참패한다. 그런데도 충주환경운동연합은 나서야 했다. 충주시장과 원주지방환경청장을 피고로 하는 ‘가금-칠금 간 도로 확ㆍ포장공사 도로구역 결정처분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청주지방법원에 낸 것이다. 황금박쥐는 법정 카메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텐데, 과연 승소할 수 있을까. 우리 법리는 아직 미망인데, 천성산 도롱뇽과 다른 판결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날개 편 길이가 4에서 5센티미터 정도인 황금박쥐는 몸도 그 크기다. 황금빛 몸통에 오렌지색 털이 양털처럼 있는 황금박쥐는 다른 박쥐와 마찬가지로 야행성이고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동굴에서 동면한다. 우거진 숲에서 곤충을 잡아먹으며 이른 여름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얼마 전 한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쌍둥이를 낳고 한 마리를 포기하는 황금박쥐를 보여주었다. 비정하다고? 아니다. 두 마리를 동시에 키울 수 없는 까닭인데, 안타깝게 황금박쥐 어미와 선택된 새끼는 자신의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필요한 솔부엉이에게 희생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솔부엉이를 원망할 수 없다.


진천군은 황금박쥐가 집단 서식하는 것이 확인되자 생태조사에 나섰다 한다. 주민들이 보호에 앞장서는 가운데, 진천군 관계자는 학자의 연구결과를 검토한 이후 붕괴된 내부의 보강과 정비를 벌여 황금박쥐가 서식하는 동굴을 모범적인 보전지역으로 만들어 갈 계획임을 천명했다. 한데 불안하다. 황금박쥐가 발견된 충주 폐갱도를 보전하면서 지방정부에서 벌인 공사의 소음과 오염으로 서식환경이 극히 악화된 사례를 미루어 볼 때 불안하다는 거다. 진천군은 보전작업에 앞서 생태조사를 한다는데, 괜한 걱정인가.


황금박쥐를 보호하려고 국내외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까지 개최한 충주환경운동연합은 오죽하면 소송을 선택했을까. 황금박쥐의 표본을 전시하고 황금박쥐의 생태를 알리는 행사를 개최한 충주환경운동연합은 황금박쥐가 사는 지역 위에서 대규모 도로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크게 걱정한다. 발파와 장비에 의해 발생할 소음과 진동, 그리고 동굴 붕괴는 황금박쥐를 그게 위협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식처를 잃은 황금박쥐는 안전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언론에 거듭 노출되는지 모르는데, 황금박쥐 서식이 확인된 곳이 위험하다. 황금박쥐는 이제 어디 어디 어디로 가야 하나. 박쥐만은 알고 있을까. (물푸레골, 2007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