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 24. 12:18

 

작년 가을에서 이번 겨울로 이어졌던 가뭄이 봄이 다가오기까지 풀릴 줄 모른다. 물기를 잃은 남도의 저수지마다 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 입안이 바싹 마를 지경인데, 제한급수로 하루하루가 고달픈 주민의 갈증은 더 말해 무엇하랴. 하늘만 바라보는 농부의 가슴은 진작 타버렸을 것이다. 추수 마친 뒤부터 강수량이 적은 기후대라 해도 이번처럼 지독했던 기억은 없다. 지난 장마철에 담긴 물이 전년의 3분의1에 불과했으니 봄을 앞둔 저수지는 존재 이유를 잃어버렸다.

 

국토의 65퍼센트 정도가 경사 급한 산지인 우리나라는 내리는 비의 3분의2가 여름 한철에 집중돼, 계절에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다른 강은 다채로운 풍광을 산기슭에 연출한다. 커다란 바위가 이리저리 겹친 계곡을 급하게 휘감아 내려가는 물줄기는 크고 작은 폭포와 깊은 소를 여기저기 남기며 중상류로 이어지고, 쏟아지듯 허겁지겁 내려오는 계곡의 물줄기는 중상류로 모이며 안정을 찾는다. 안정을 찾은 물줄기는 모래와 자갈이 깔린 산허리를 굽이치며 합류하다 하류로 천천히 접어들면서 고운 흙을 내려놓아 범람원에 넓게 펼쳐놓았고, 하류의 기름진 범람원에서 농사짓던 조상은 자손에게 문화와 역사를 이제껏 전할 수 있었다.

 

비가 여름에 집중되어도 강은 맑은 물을 사시사철 흘려주었다. 이따금 넘치거나 모자라 때때로 어려움을 겪었어도 고향을 등져야 할 만큼 주민들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았다. 농사지을 땅이 있다면 식구들은 배를 곯지 않았다. 가뭄에 잘 견디는 씨앗, 뿌리가 길어 홍수를 이기는 씨앗, 볕이 드문 평지에서 수확이 좋은 씨앗, 양지바른 비탈에서 잘 자라는 씨앗 들을 다채롭게 갈무리하던 조상은 혹독한 한발이나 홍수를 너끈히 넘겼다. 주위의 울창한 숲에서 굽이치는 강으로 물을 넉넉하게 공급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숲의 푹신한 낙엽은 훌륭한 수원지의 몫을 다한다.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낙엽층은 빗물을 저장할 뿐 아니라 정화해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물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방죽 이외에 댐이 없어 천수답에 의지했어도 벼농사에 큰 지장이 없었던 조상에게 심각한 갈증은 드물었다. 논이 다목적 댐 이상의 저수능력일 가졌을 뿐 아니라 지하수를 늘 깨끗하게 채우고 인근의 크고 작은 강에 물줄기를 이어주었던 거다.

 

흘러내리는 물을 비뚤배뚤한 논둑으로 막으며 계단처럼 이어지는 천수답은 지하수위를 건드리거나 오염시키지 않았지만 요즘의 관개농업은 지하수의 오랜 안정을 해친다. 소가 쟁기를 끌던 논배미를 농기계가 움직일 만큼 넓게 사각으로 합치면서 수맥이 훼손되고, 무거운 농기계가 논바닥을 다지면서 지하수가 차단된 것이다. 대신 댐에서 적시 적량 물을 공급받지만 관개수로와 먼 논은 자하수를 양수기로 퍼올려야 했고, 그 때문에 지하수위가 낮아졌다. 관리가 부실한 관정으로 농약이 스며드니 우물을 믿지 못하는 농촌은 상수도에 의존하거나 산에서 맑은 물을 끌어들이게 되고, 지하수는 더욱 버림받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논이나 강이 주변 생태계와 단절된 것이다.

 

논은 주변 산과 들의 생물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공간이었다. 가장자리에 마련한 물웅덩이마다 온갖 수서곤충과 작은 물고기가 빼곡했고, 곤충은 개구리를, 개구리는 뱀과 형형색색의 새들을 끌어들였건만 지금은 아니다. 둑에 제초제를 뿌려 여름에도 풀이 노랗게 말라죽고, 곤충이 다가오지 않아 봄이 와도 개구리는 물론 새도 울지 않는다. 농약 냄새가 진동하면서 침묵에 휩싸인 농촌에 어느덧 아기 울음소리마저 끊겼다. 지하수위가 낮아지자 갈수기에 강바닥이 바싹 마른다. 모내기철마다 다급해지는 민원에 따라 굴삭기를 동원하는 관청이 바닥을 깊게 파내면서 강의 생태계는 괴멸된다.

 

강은 상류와 하류만 이어주는 게 아니다. 굽이마다 바위와 모래와 자갈과 진흙과 갈대와 부들과 갯버들이 잘 어우러지는 폭포와 소와 여울을 연출하는 강은 주위의 숱한 생물을 모여들게 할 뿐 아니라 지하수와 이어지고 계절과 역사를 창연하게 기억하는 까닭에 사람들은 강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화를 다채롭게 꽃피워왔다. 문제는 강을 파편적으로 이용하는 관개농업보다 흐름을 거대하게 막는 댐이고, 더 큰 문제는 강을 계단처럼 막는 운하다. 일정 깊이를 유지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강의 흐름을 관리해야 하는 운하는 상류와 하류, 좌와 우, 강과 지하, 그리고 계절과 역사를 모조리 단절한다. 거대한 인공호수를 정체시키는 댐과 달리 운하는 강의 생명을 전면 부정한다.

 

강을 직선으로 만들면 빗물을 한꺼번에 바다로 밀어내고, 운하는 바다로 나가기도 전에 강물을 버림받게 만든다. 빗물이 흘러드는 계곡에 도로를 뚫거나 거대한 건물을 짓고 나무를 함부로 자르거나 낙엽을 긁어내면 노도처럼 이는 황토물이 생태계를 덮친다. 비가 그치치자마자 토사를 내려놓는 황토물이 흐름을 잃는 호수에 들어와 바닥을 높인다. 높아지는 바닥은 집중호우 때 제방을 위협하니 주변 농토와 주민의 삶은 위태로워진다. 깊은 콘크리트로 제방을 높게 보강하면 지하수가 낮아져 주변의 농토는 바싹 마를 것이다. 제방 너머 강기슭에 개발을 예정하는 운하는 ‘4대강 정비’라는 위장과 관계없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지역에 안길 것이 거의 틀림없다.

 

가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지구온난화가 걱정이므로 온실가스를 방출하는 개발을 획기적으로 억제하는 제도를 한시바삐 정비하고 당장 실천에 옮겨야겠지만 그런 행동만으로 남도의 이번 갈증이 즉각 해결되지 않는다. 비를 육지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운하는 터무니없고 댐도 한시적일 뿐이다. 숲의 천연 댐 기능을 보전하고 논의 생태적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렇다고 여름철에 바다로 흘러나가는 빗물을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강물은 갯벌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의 해양 생태계에 불가항력으로 필요한 생명수다. 덕분에 수많은 어패류가 알을 낳고 가까운 바다에 어군을 만들어 우리는 밥상을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칠갑이 된 도시도 바꿔야 한다.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 수 있도록 물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비오톱(biotop)을 조성해 곳곳의 피부를 살려낼 필요가 있다. 빗물도 완충하고 도시의 더위를 식혀주는 비오톱은 지친 시민에게 휴식과 생태학습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쟁하듯 깊어지는 관정으로 지반을 뚫고 강바닥을 깊게 파내려간다면 내일의 갈증은 더욱 증폭될 뿐이다. 자연의 보습력을 회복시키려는 행동에 서둘러야하지만, 그보다 먼저, 물 걱정에서 먼 도시인들은 남도의 농민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비록 관개농업이더라도 그들이 농토를 지키기에 도시의 갈증부터 언제나 모면되지 않던가. (작은책, 2009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