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2. 8. 18:43

 

그들은 처음 저지대에 발생하는 수해를 막으려는 방수로라 했다. 그러면서 그 지역에 수해가 집중되는 원인에 눈을 감더니 기왕의 방수로를 운하로 조금 넓히겠다고 했다. 이제 경제위기를 앞세우며 ‘한국형 뉴딜’이라고 우긴다. 지지율대신 돈과 시간과 충직한 공권력을 가진 그들은 과정마다 드러나는 문제에 대해 납득할만한 해명은 일체 생략했다. ‘법과 원칙’이 통용되지 않은 것이다.

 

굴업도에 핵폐기장을 만들려던 1995년, 군사정권의 배려로 정권을 잡은 당시 정부는 법과 원칙으로 만든 공청회를 민방위본부 지하벙커에서 개최하긴 했다. 전투경찰과 공무원으로 자리를 채운 공청회장을 개최 2시간 전부터 겹겹이 둘러막은 경찰은 접근하는 시민단체 회원을 경찰버스에 태웠고, 공청회가 끝날 무렵 풀어주었다.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토론자들이 항의하고 공청회장을 빠져나가자 주최측은 기다렸다는 듯 관제 반대 토론자를 앉혀 공청회 요건을 만족시켰다.

 

요즘 경인운하 공청회도 법과 제도가 견인했다. 공청회장을 경찰이 접수한 것도 비슷했는데 반대측 토론자가 아예 참석조차 할 수 없었던 점이 달랐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전광석화처럼 시작해 질풍노도처럼 추진”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대외에 천명하는데 효과적이었을지 모르나 최소한의 민주주의마저 실종된 모습이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법과 원칙을 되뇌는 정부는 그 법과 원칙마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엿가락 잣대로 적용한 것이다.

 

방수로가 필요할 정도로 일정 지역에 수해가 집중하게 된 건 자연의 흐름을 무시한 개발이 원인이었다. 일제가 갯벌을 김포평야로 개발해 저지대가 되었어도 논의 보습력으로 큰 피해가 없었는데, 논이 거대한 아파트단지로 바뀌면서 완충될 수 없는 빗물이 한꺼번에 모이게 된 것이다. 그러자 얼씨구나 방수로에서 경인운하로 개발계획이 이어졌지만, 수해 방지를 위한 다른 대안은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해가 빈번한 지방에서 실행하는 유수지를 방수로와 더불어 활용하는 방안은 거액이 들어가는 건설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무시되었다.

 

서해 만수위에 큰 비가 내리면 수해를 오히려 증폭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경인운하는 정부가 내세운 경제성은 물론, 물류와 관광효과에서 의혹이 넘쳐난다. 의혹이 현실화되면 부담은 시민사회로 이어지고, 자연 파괴로 빚은 피해는 후손에게 영속될 것이다. 정당한 개발은 드러나는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완벽해진다. 현명한 자는 드러난 의혹을 폭력으로 덮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경인운하는 자연에 대한 폭력이고 자연에 대한 폭력은 고스란히 시민사회와 후손에 전가된다. 폭력은 두려움에서 온다고 <지옥의 묵시록>의 코플라 감독은 이야기했다. 지지율로 힘을 얻는 정치권의 두려움은 무엇이 원인일까. 이번 정권은 혹시, 균형을 잃은 법과 원칙으로 상승될 리 없는 지지율을 폭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닐까. (경향신문, 2009년 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