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2. 10. 23. 17:07

                                  진화 역사에 괴물은 없다

자연의 농담, 마크 S. 블럼버그 지음, 김아림 옮김, 알마, 2012.

 

 

사람만큼 큰 메기가 체르노빌 핵발전소 주위 하천에서 여전히 어슬렁거리는데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자 인근 농장에서 귀 없는 토끼가 나타났다. 그것도 여러 마리가. 막대하게 분출된 방사선에 의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과문해서 그런가, 보통 크기의 메기를 어떻게 사람만큼 커다랗게 자라도록 영향을 미쳤는지 그 구체적인 원인과 과정은 알지 못한다. 보통 메기의 수명이 길지 않은데, 사람만큼 커다란 메기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26년이 지난 지금도 보이는 그 메기가 첫 세대는 설마 아닐 테고, 후손이라면 새로운 종이 탄생한 셈일까? 맞는다면 같은 모습의 짝을 만나 번식해 같은 후손을 이어온 건데, 그 커다란 메기의 먹이가 주위에 충분한가보다.


전문 자료를 읽지 못해 체르노빌의 커다란 메기의 유전자에도 상응하는 변화가 있었을지 모르는데, 후쿠시마의 귀 없는 토끼는 어떨까. 겉보기 멀쩡한 귀를 가진 토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던데, 귀 없는 토끼의 암수가 있어 교배한다면 귀 없는 새끼들이 태어날까. 그렇다면 획득형질을 이어갈 정도로 유전자에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일 텐데, 이후 연구가 궁금하다. 만일 아니라면 방사선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메기와 토기의 예를 들었지만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이후 차마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로 태어나 자라다 죽거나 기형으로 발생하다 산모의 몸에서 죽은 태아를 주변 국가에서 많이 보았다. 비록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신체와 장기에 이상을 갖고 태어나는 어린이는 후쿠시마 주위에 많을 테고, 앞으로 계속 태어날 거로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체르노빌처럼.


거리에서 우리가 기형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부인과에서 미리 조치를 취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안정된 환경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은 대부분의 개체는 아기를 정상의 모습으로 낳는다. 사람 뿐 아니라 자연의 생물들이 그렇게 적응되었기 때문인데, 언제까지 유효할까. 지금 우리의 환경은 안정적이 아니지 않은가.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만이 아니다. 작년 311일 후쿠시마 이후 어느 지역의 핵발전소가 폭발할지 알 수 없지만, 수명을 무리하게 연장하는 핵발전소와 더불어 물과 대기, 그리고 음식을 거쳐 우리 몸에 들어오는 무수한 유기화학물질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넘치는 시절이다. 자신이 환경에 끌어들인 온갖 화학물질들은 내 몸 안에 들어와 심각한 장애를 일으킨다.


2012년 런던올림픽의 마스코트 맨드빌은 눈이 하나다. 그래서 순간 어색했지만 모니터를 형상화한 것으로 짐작하며 넘어가려 했는데 주경기장의 철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취향이 독특한 작가는 왜 마스코트의 눈을 하나로 착상했을까. 자연의 농담을 쓴 마크 S. 블럼버그는 사람에 눈이 하나로 발생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 물론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 정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없지만, 태아 또는 배아 상태에서 죽은 사례는 없지 않다는 걸 민망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발생 단계에서 어떤 이유로 정상과 다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인데, 그런 개체들은 괴물인가. 그렇게 정성에서 벗어난 상태로 발생하는 이유는 유전자에 있을까. 아니면 환경 요인일까.


우리는 신체의 일부가 붙은 일란성에 관한 뉴스를 기억한다. 등이 붙거나 머리가 붙어 분리수술이 불가능한 경우도 없지 않은데, 분리수술만이 아이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에 회의하는 블럼버그는 사람의 눈을 주목한다. 두 눈 간격이 보통 사람보다 약간 멀거나 가까운 사람은 많은데, 눈이 하나이거나 중복될 정도로 바싹 붙는 경우는 유산된 태아 또는 배아를 보관하는 표본실에 있다. 그 경우 발생 과정에서 자라던 코가 내려가지 못해 눈 위에 배열되는데, 사람이라면 소스라치게 놀라겠지만 코끼리의 모습이 그렇다. 코끼리는 분명 괴물이 아니다. 블럼버그는 발생학적 차이로 해석한다. 블럼버그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전뇌, 그리고 입술과 귓불, 여성의 유방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발생을 멈추지 않고 계속된 결과인데, 역시 유전자 명령의 결과가 아니라 발생이 빚은 우연의 결과라는 뜻인가.


사람은 걷는다. 그 때문에 생긴 질병이 있고, 아이를 낳는 과정이 네발짐승에 비해 힘겹다. 뒤뚱거리며 걷는 침팬지는 우리 눈에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데, 네발 습성을 잃은 사람은 네발짐승의 시각에서 괴물일 수 있다. 한데 네발짐승인 양이 앞 발 없이 태어나 시행착오 끝에 사람처럼 걷는다면 양 사회에서 괴물 취급받지 않을까. 그 양의 유전자는 보통의 다른 양과 다를까. 블럼버그는 발생학을 진화와 연결하며 설명하려 한다. 침팬지나 개코원숭이가 걸을 수 있어도 네발로 다니는 편이 익숙한 근육 구조를 가졌듯 사람은 두발에 적응되었지만, 그리 진화된 건 유전자의 명령이라기보다 발생 과정의 차이가 빚은 결과라고 해석한다. 부드럽게 걷게 된 건, 숱한 시행착오와 훈련의 결과라고 귀띔한다.


사람과 다른 발생 경로를 거친 코끼리의 코처럼, 다리가 없는 뱀, 등과 배에 두툼한 껍질이 생겨서 붙은 거북, 지느러미를 가진 돌고래들도 발생이 빚은 다양성이다. 처음에 괴물로 인식되었을지언정 처해진 환경에 적응해 생태계의 훌륭한 구성원이 되었다. 도요새와 참새 종류의 부리와 다리의 길이가 다양하고, 그런 차이는 먹이의 차이로 이어진다. 먹이의 차이가 만든 결과일까, 아니면 부리와 다리의 길이의 차이가 먹이를 차이로 이어진 것일까. 쉽지 않은 연구가 필요할 텐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새롭게 획득된 형질이지만, 그 개체는 처해진 환경에 적응하려 무척 노력했을 것이다. 자연에는 언뜻 비슷비슷하지만 다른 생물들이 무수히 많다. 그들이 진화한 원인에서 유전자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발생학적 차이도 상당하겠다는 생각을 자연의 농담은 독자에서 분명히 전한.


일찍이 라마르크가 주장했던 획득형질의 유전은 부정되었다. 꼬리를 자른 쥐끼리 50차례 이상 교배해도 여전히 쥐는 꼬리를 달고 태어났다. 하지만 꼬리가 길게 자랄 부위를 실험실에서 건드리면 쥐는 꼬리 없이 태어날 수 있다. 그 쥐들을 교배시키면 결과는 어떨까.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분출한 방사선이 토끼의 귀 발생을 막았다. 나방의 더듬이를 없앴다. 유산된 사람 태아의 모습도 적지 않게 당혹스러울 텐데, 그런 개체들이 성공적으로 태어나서 만난 환경에 거뜬히 적응할 수 있다면, 같은 모습의 개체와 만나 짝짓기를 해서 같은 모습의 후손을 낳으면서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면, 괴물이라 외면했던 개체들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수 있다. 다르게 태어난 모습으로 새로운 생태적 공간을 찾아가 먹이를 달리하며 개체수를 늘려간 뒤, 나중에 선조의 모습을 가진 개체와 만나 서로 거들떠보지 않게 된다면 진화가 완성된 것이다. 그땐 어떤 개체도 괴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계기가 발생 과정에서 새로운 모험을 자행하게 만들까. 흔히 의사나 어른들은 임신 초기에 약을 함부로 먹지 말고 음식 조심하라고 이른다. 임신 초기라면 아기의 몸이 완전히 분화하기 전, 다시 말해 태아 이전 단계인 배아 상태일 때를 말한다. 왕성하게 몸이 형성되고 장기들이 분화할 때 발생 과정을 변하게 할 약물이나 방사선이나 피로나 스트레스를 조심하라는 충고일 것인데, 요즘 우리의 환경은 산모가 조심하기 어렵게 만든다. 방사선과 화학물질만이 아니다. 고주파가 나오는 전화기를 머리에 대는 생활습관을 고칠 산모는 없을 것인데, 초대형 송전탑은 막대한 저주파를 내놓는다. 오염된 4대강의 악취나는 강물은 머지않아 수도관을 탈 텐데, 회사나 인근 식당에서 피할 도리가 없다. 농산물과 수입식품에 들어간 조작된 유전자는 탈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리는 현재 처한 환경에 최대한 적응돼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다. 우리가 가진 지금의 몸과 마음은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하기 어렵다. 발생 과정에 변화가 생겨 민망한 모습으로 태어난 아이가 온난화된 지구, 핵발전소의 연이은 폭발로 방사선이 만연된 지구, 사람이 버린 온갖 썩지 않는 폐기물과 유기화학물질들이 넘치는 지구, 흐름이 꽉 막혀 사시사철 강물이 녹조로 시퍼런 지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라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임신 초기에 안정된 환경이 보장되어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기가 태어나 건강하게 살며 세대를 이어가길 희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긴장해야 한다.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파괴하며 오염시키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괴물이라는 편견을 지적하는 마크 S. 블럼버그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연의 농담은 적응된 환경을 보전해야 할 우리의 책임을 암시한다. (반니, 2012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