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5. 9. 1. 14:39
 


《자연의 재앙, 인간》, 프란츠 부케티츠 지음, 박종대 옮김, 시아출판사 2004년



다윈은 평생 돈벌이에 나서지 않았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연구하며 대가족을 건사할 수 있었다. 그런 다윈은 진화론으로 엄청난 인세를 받았다는데, 출간하기 무섭게 교회에서 모조리 사들였다는 일설이 있다. 당시 한 고위 성직자의 부인은 “맙소사!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사람들이 읽을 수 없도록 합시다!” 제안했다고 하므로.

 

자신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데 충격을 받는 사람에게 체절을 가진 지렁이와 인간의 해부학적 유사성을 일러주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등동물이 된 낭패감으로 몸서리칠까. 멀지 않은 과거, 한 골격 해부학자는 하등에서 고등, 원숭이에서 흑인, 흑인에서 백인으로 진화되는 모습을 그려낸다는데, 진화는 진보의 개념이고, 인간은 진화의 찬란한 종착점일까. 생물과 사회의 진화에 관심이 많은 프란츠 부케티츠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재앙이라고 《자연의 재앙, 인간》에서 강조한다.

 

무심코 거울을 본 어떤 기독교 신자는 담배를 끊었다. 하느님께서 담배 피우라고 창조했다면 콧구멍이 하늘을 향했을 텐데 아래로 뚫렸다는 게 이유였다. 사람의 코는 안경을, 귓볼은 귀걸이를 위해 달려있을 리 없다. 기린의 목은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기 위해 길어졌을까. 그렇게 주장하는 합목적적 해석은 사람의 진화는 예정된 것으로 주장한다. 진화의 마지막은 노벨상 많이 타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경기에서 주로 우승하는 백인일까. 혹시 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인 남자?

 

1988년 올림픽과 2004년 월드컵 때, 복중으로 한정하지 말라는 사철탕이 거리 뒷면으로 사라져 우리 민속학자를 분노케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GNP와 선진국 타령에 목이 쉰 행정당국이 알아서 긴 처사였다. 주로 백인 남자인 “외국인이 우릴 어떻게 평가할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말끝마다 ‘원더풀!’과 ‘그레이트!’를 붙이는 서양인들의 언어습관에 황송해하는 옥시덴탈리즘이 빚은 문화상대주의의 자학이자 오리엔탈리즘을 스스로 증명하는 작태였다. 그렇다면 ‘삶의 방식’인 문화에 우열이 있을까. 오랜 환경에서 우러나오는 문화는 다양성을 그 가치로 한다. 다양성에는 우열이 없다.

 

현대의 삶이 과거보다 진보한 것일까. 획일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문명은 언제 어디서나 공정하며 정확할까. 편의와 속도는 감당할 수 없는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사람과 자연, 남성과 여성, 북과 남, 당대와 후손의 갈등을 초래한다. 사고와 전쟁을 사양하지 않는다. 배기가스 촉매제를 강요하면서 격자형 고속도로로 산허리를 절단내고, 야생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면서 갯벌을 매립하고, 핵발전소를 폐쇄하면서 초대형 댐으로 강을 틀어막는 현대 인간은 진보한 것일까. 자연과 여성과 남과 후손의 처지에서 재앙이 아니고 무엇이랴.

 

인류는 절대 진보하지 않았다. 과거 악습이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하게 바뀌었을 따름으로 해석하는 저자는 진화를 진보로 착각하는 이유를 “문제가 심각한 현재를 대신할 희망을 기대하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찬란한 유토피아를 바란다는 것인데, 다양했던 자신의 문화대신 파괴를 일삼는 ‘죽음의 충동’이 지배하는 한, 인간에게 희망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생명공학이라는 새로운 악습이 후손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자연의 재앙, 인간》을 아프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 (발간 예정 서평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