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7. 8. 3. 10:22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제13회 풀꽃상을 정자나무에 드리기로 결정했다. 전국에서 모인 30여 명의 회원들은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한 해 동안 풀꽃상을 받은 자연물, 정자나무의 의미를 살리는 환경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이 감히 자연에 상을 줄 수 없는 법. 자연에 상을 드리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시키는 환경운동을 전개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그 동안 동강의 비오리, 보길도 해변의 갯돌, 민둥산의 억새, 골목길, 새만금의 조개, 지리산의 물봉선, 자전거, 논, 간이역, 비무장지대, 우리 씨앗에 풀꽃상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왜 정자나무를 주목했을까. WTO와 FTA로 대표되는 세계자유무역의 시대를 맞아 새삼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자치’의 가치에 주목했고, 정자나무를 그 상징으로 천거한 것이다.


마을을 ‘아름다운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원로 소설가 송기숙은 바깥세상과 만나는 마을의 광장으로 정자나무를 이야기한다. 대소사가 논의되고 장이 서며 각종 행사가 이루어지는 정자나무 그늘은 소통공간이라는 거다. 송기숙이 보기에 세상의 축소판인 그런 마을에는 대개 5가지 유형의 인물이 존재한다. 한 유형의 사람이 없어지면 곧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그 자리를 메우게 마련이라는데, 존경받는 어른이 첫 번째라면 늘 말썽만 부리는 버릇없는 후레자식이 두 번째. 일 삼아서 이집 저집으로 말을 물어 나르는 입이 잰 여자와 틈만 있으면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을 웃기는 익살꾼이 세 번째와 네 번째, 그리고 좀 모자란 반편이나 몸이 부실한 장애인이 마지막 다섯 번째 유형이다.


간디 역시 마을을 공화국이라고 말했다. 바로 자치가 이루어지는 공화국이다. 땅에 뿌리를 둔 사회.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이웃이 우정과 환대로 땅에서 생산한 음식과 땀 흘려 만든 물건을 나누며 공존공생하는 오랜 터전이다. 비록 다른 마을과 구별하려는 경계선이나 표준이 없어도 개성을 존중하며 이웃들이 서로 돕는 마을. 이런 마을을 공화국이라고 송기숙도 간디도 표현한 것이다.


다양한 개성이 존중되는 마을은 안정적이다. 송기숙은 후레자식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후레자식은 마을의 젊은이에게 도덕적 기준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본받지 말아야 할 전범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맨발의 기봉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지체장애인. 그는 땅에 뿌리 받은 마을이기에 보호받을 수 있었다. 표준이 냉정한 도시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표준은 개성을 적대시한다. 표준은 이윤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세력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미FTA 합의는 미국 표준에 우리나라를 맞추기로 결정한 것이다. 성공이라며 축하하는 자들은 우리의 오랜 문화와 역사와 환경을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환영한다. 미국 표준은 자본이 결정한다. 투자한 자의 이윤이 표준이다. 그 표준에는 우정도 환대도 가동하지 않는다. 통치나 상행위는 물론, 아기와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일도 서비스 산업이다. 지역의 문화나 제도로 투자자에 손해를 끼칠 경우 소송에 의해 배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봉화의 어떤 할머니는 박정희가 아직 대통령이라고 믿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할머니가 살아가는 공간에 국가의 참견이나 억압이 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치가 가능한 마을에서 살았을 것이다. 국가는 물론, 세계무역기구나 양자간자유무역이라는 족쇄가 주민의 삶을 구속하지 않는 공간. 바로 간디가 평생 소망하던 마을이다. 정자나무는 그런 마을을 상징하기에 한미FTA 시대를 눈앞에 둔 시점에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제13회 풀꽃상의 후보에 정자나무를 선정한 것이리라.


마을 안 개개인의 우정과 환대, 마을 사이의 우정과 환대라면 한미FTA 파고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도 피할 수 있다. 광우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을은 아름다운 공화국이기에 그렇다. (요즘세상, 2007년 8월 26일)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요즘 공동체성이 살아있는 작은 마을 내지는
살아있는 마당에 대한 생각들이 많았는데,
정자나무가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마을이
여기저기서 많이 살아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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