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0. 7. 2. 20:56

 

모처럼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집 근처에서 맹꽁이도 운다. 인천만이 아니라 전국이 마찬가지인지 프로야구 4게임이 전부 취소되었다는데, 이런 비, 참 오랜만이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장마다운 장맛비가 아니던가. 작년인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기상청에서 ‘장맛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장마전선이 오르내리기는 하는데 예년과 달리 언제부턴가 마른 장마철이 계속되다 느닷없이 몇 시간 집중호우가 쏟아지곤 했다. 며칠을 두고 지루할 정도로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사라졌기에 ‘장맛비’라기보다 장마철에 오는 ‘국지성 집중호우’라고 기상청은 수정하고자 했다는 것이었다.

 

방학을 맞은 큰애, 그리고 기말고사를 마치고 일찍 들어온 막내와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 점심 먹으러 다녀왔다.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넓은 우산을 쓰고 걸으며 다녀오니 후텁지근했던 몸이 모처럼 상쾌해졌다. 아파트단지의 녹지와 가로수, 근린공원의 크고 작은 나무들과 그 안에 숨죽인 직박구리와 장마철이 지나길 땅 속에서 기다리는 매미 유충, 그리고 사람까지, 이 땅의 생명들은 이맘때 흥건하게 비를 맞아야 약동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잠깐! 이 정도 비가 몇 시간 계속된다면 ‘4대강 사업’의 현장은 어떻게 될까. 또한 경인운하는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관동대학교 토목학과의 박창근 교수는 “작은 재앙이 큰 재앙을 막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홍수는 대개 제방 정비가 완전하지 않는 지류와 작은 하천에서 발생했다. 기록을 경신하는 집중호우가 쏟아져도 정비가 거의 완벽한 4대강 본류에서 수해가 발생한 사례가 드물건만, 현 정권은 ‘살리기’라는 용어를 참칭하며 강물의 흐름을 좁히고 차단하며 강 한가운데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있다. 그 상황에서 큰비가 내리면 공사장 인근에 재앙이 발생하겠지만 그 규모는 아직 작을 것이다. 10미터가 넘는 대형 보가 4대강의 흐름을 16군데에서 막은 뒤 지역주민과 후손에게 발생할 재앙에 비한다면 애교에 불과할지 모른다.

 

4대강과 거리가 멀고 강물의 흐름과 연관도 없는 인천은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이 시점에 눈여겨볼 곳이 따로 있다. 이른바 ‘아라뱃길’로, 그 이름이 붙기 전에 ‘경인운하’라 한 곳이다.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더라도 아직까지 내린 비라면 너끈히 애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계양산 주변으로 한꺼번에 몰려드는 빗물을 바다로 빼내는 역할을 말한다. 바로 방수로의 기능이지만 운하로 완공된다면 사정이 바뀔지 모른다. 화물선이 오고갈 수 있는 물높이를 유지한 상태에서 국지성호우가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들 때 서해안이 만수위라면, 수해는 돌이킬 수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의견을 참고했는지 모르지만, 강원도 정선과 거리가 꽤 먼 인천에 뜬금없이 들어선 ‘아라뱃길’은 공연한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는 거다.

인천시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한 이름이지만, 그리 정했다니 일단 쓰기로 하자. ‘아라뱃길’은 운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운송할 것인가. 대양은 물론이고 황해를 건너며 중국을 오고가는 수출입화물은 타지 못할 것이다. 아라뱃길은 기껏해야 5천 톤 급 화물선이 다닐 텐데 그 크기에 값비싸거나 무거운 자동차나 철강 따위를 실을 수 없지만, 실으려는 수출입과 국내 물류의 화주도 없을 거로 본다. 해양을 오고가는 배는 육지 내의 물길을 다니는 배와 바닥이 다른 게 보통이다. 바닥이 뾰족하게 깊어 저항을 줄이며 바다를 달리는 대형 화물선과 달리 운하를 다니는 바닥이 편평한 배는 풍랑을 만나면 쉽게 뒤집히고, 막대한 기름의 과소비 없이 속도를 낼 수 없다. 그런 배를 환영하는 수출입 항구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없다.

 

철광석은 제철소와 가까운 항구로 직접 갈 일이고, 철강과 자동차는 주말이나 명절 이외에 그리 막히지 않는 도로를 활용하는 편이 시간도 절약되고 안전하며 비용도 적게 들어간다. 지방과 수도권을 다니는 화물은 면적 비례로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속도로를 활용할 것이다. 굳이 화물차에서 선박으로 몇 차례 옮겨 실으며 고작 18킬로미터에 불과한 ‘아라뱃길’을 이용할 리 없다. 화물은 옮기는데 비용과 시간이 더 들고 도난과 안전에 문제도 발생할 수 있지 않던가. 하지만 ‘아라뱃길’을 선호할 수도권 화물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생활쓰레기와 바닷모래가 그것일 가능성이다. 지방정부들은 수도권 쓰레기매립장으로 향하는 트럭의 수를 줄일 수 있을 테고, 건설업체는 다량의 모래를 쉽게 확보하니 좋을 텐데, 고작 그 이유로 거약의 예산을 들여 육상 생태계를 끊고 해양 생태계를 교란해야 한다는 건가.

‘아라뱃길’에는 하루 몇 차례 오고가지 않는 배를 위해 한강 하구의 오염된 물을 늘 채워야 하므로 악취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 물이 배가 갑문을 통과할 때마다 일정 양의 물이 바다로 빠져나갈 테니 인천 앞바다의 지속적 오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아라뱃길’을 한강에서 서해안으로 나가는 요트에게 내줄 수 있다고, 마치 훌륭한 관광자원이라도 되는 듯 주장하는데, 얼어붙은 현 정권이 아니라, 남북한 화해 이후 대폭 늘어날 한강의 요트는 직접 풍광 좋은 하구로 나가는 게 훨씬 낫다. 깎아지른 절벽 말고 볼거리가 전혀 없는 ‘아라뱃길’에서 악취를 참으며 천천히 지나갈 정신 나간 요트가 과연 몇 대나 있을 것인가.

 

토목학자들은 내심 ‘4대강 사업’을 운하로 규정한다. 운하가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한 사업이라는 것인데, 21세기의 화물을 텅 비는 고속도로 대신 느려터진 내륙의 운하를 이용할 화주는 없을 거라고 물류학자들은 동의한다. 우리나라의 요사이 인기 있는 화물은 특히 시급을 요하는 ‘경박단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가볍고 얇으며 크기가 작고 취급하는 화물의 수가 적은 전자나 디지털 제품 위주가 아닌가. 그런 화물은 비행기를 이용하지 배에 싣지 않는다는 것이다. 느려터진 운하는 어처구니없고, 위험천만한 운하용 선박으로 오대양육대주를 다닐 어처구니없는 화주는 이 세상에 없다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현재 공사가 하염없이 진행되는 ‘4대강 사업’과 ‘아래뱃길’은 어찌 해야 하나.

 

새롭게 취임한 현 인천시장은 ‘아라뱃길’의 홍수피해 방지 기능은 살리되 운송기능은 다시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언론이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당초 ‘굴포천 방수로’로 계획되었던 기능으로 환원하자는 의지다. 그를 위해 ‘아라뱃길’의 폭을 늘리고 깊게 바닥을 파낼 하등의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름도 애초의 방수로로 돌아가야 취지에 맞을 것이다. 방수로로 환원된다면 한강의 오염된 물이 차지 않을 테니, 평상시에 녹지로 유지하다 큰물이 들 때 방수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내릴 큰비를 대비해, 유럽의 라인강 유역에서 볼 수 있는 범람원을 방수로 주위에 조성하는 대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수위가 낮은 생태호수로 관리하다 방수로가 감당할 수 없는 큰물을 잠시 모아두는 기능이다. 그런 호수는 주변 녹지의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생태학을 위한 교육 효과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공사비를 현저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한 진지한 논의가 투명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제 와서 중동과 상동 아파트단지를 위해 김포평야를 성토해 매립한 행위가 계양산 주변의 홍수피해를 빈발하게 한 원인이라는데 초점을 맞출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다시 멀쩡했던 지역에 홍수피해가 집중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려면 아직도 농토를 계속 성토 매립하는 신도시 개발정책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어선 마당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주택을 더 지어야하는지 당장 검토해야 하지만, 만일 대단위 개발이 필요하거나 어느 규모 이상 재개발이 추진되어야 한다면, 일정 면적 이상의 ‘비오톱’(biotop)을 그 단지에 조성해야 한다는 걸 상기하자는 것이다. 홍수 피해를 효과적으로 줄이고 지하수위를 보전하려는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일찍부터 펼친 행정으로, 그들은 새로운 개발부지는 물론이고 기존 도시의 곳곳에도 ‘비오톱’을 확보하려 노력한다. 빗물을 완충하고 지하수와 연결할 수 있도록 일정 면적 이상의 녹지를 확보하고 그 녹지에 호수를 조성하는 일이다.

 

‘장맛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할 정도로 국지성 호우가 빈발하고, 슈퍼컴퓨터로 그 예후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는 이때, 도시의 녹지와 습지는 더없이 중요하다. 녹지가 태부족해 도심의 열섬화가 타 도시에 비해 현저히 심한 인천은 머지않아 도시 곳곳에 ‘비오톱’을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늦기 전에 ‘아라뱃길’부터 사업의 성격을 환원시켜야 한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국지성 집중호우’로 사나워지기 전에. (인천in, 2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