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12. 23. 00:44

 

지난 518. 망월동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는 모습을 벅찬 마음으로 시청한 일단의 인천시민들이 삼삼오오 답동성당 교육관으로 모였다. 살벌했던 군사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세상에서 환경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이 먼저 떠난 선배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조금만 더 견디면 그토록 염원했던 세상, 나라다운 나라가 시작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텐데, 모인 사람들은 먼저 떠난 선배를 기리며 무척 아쉬워했다.

 

1994518, 당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터넷을 들춰보았다. 광주항쟁 14주기를 맞은 통일 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추진위는 김영삼 정권을 향해 학살 책임자들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공정한 수사와 소추를 요구했다는 짤막한 기사가 올라 있다. 그로부터 4일 뒤 나락 한 알에 우주가 있다고 설파한 장일순 선생이 6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년 전 수술했던 위암의 재발이 원인이었다. 지금까지 건재하다면 우리 나이로 90. 연로하더라도 기뻐했을 텐데, 장일순 선생은 아쉽게도 생전에 당신이 염원하던 민주주의를 우리와 더불어 체감할 수 없다.

 

병세가 악화되어도 병상에 누워서도 기력을 모아 이현주 목사와 노자 이야기를 마무리한 장일순 선생은 원주에 대성학원을 설립한 교육자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한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을 창설한 생명운동가다. 그는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만 골라서 먹는 짓은 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면서 솔선했다. 자신의 몸과 땅을 위해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싶어도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농민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자는 당부였는데, 위암이라니. 어쩌면 순교한 건지 모른다.

 

사진: 녹색연합 작은것이아름답다에서 2020년 11월 30일 간행한 책. <지구별 생태사상가>

 

 

나와 너는 천지만물과 더불어 하나

 

장일순 선생은 생전에 이렇다 할 논문이나 원고, 번듯한 책 한 권 남기지 않았지만 많은 이는 생태 사상가로 생각하며 그의 정신을 기린다. 대학에 적을 두고 정규적인 강의를 맡지 않았어도 제자를 자임하는 이가 많다. 내 땅에서 함께 살아온 어른을 기억하는데 인색해야 하는 분위기가 은근히 강요되는 세월이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핸드폰 문화는 집안의 어른도 무시하지만,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가까워도 많은 사람들이 장일순 선생을 잊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을 기리고 싶은 생태 사상가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먼발치에서 만난 적 있는 이라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다정다감할 뿐 아니라 따뜻하다고.

 

장일순 선생은 진정 책 한 권 글 한 줄 남기지 않았을까? 서점가에 분명 장일순이라는 저자의 책이 버젓이 진열돼 있는데. 하지만 장일순 선생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이 발간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분명한 자신의 말이 세상에 나오면 출판사와 출판인이 치도곤을 당할 수 있기에 글쓰기를 억제했고 출판을 한사코 만류했다. 녹색평론사에서 발간한 나락 한 할 속의 우주는 어렵게 찾아낸 강연이나 대담의 기록을 나중에 묶었고 삼인 출판사의 노자 이야기세 권은 공저자인 이현주 목사가 주로 정리했다.

 

우리 현대사는 얼마 전까지 엄혹했다. 장일순을 두려워하는 자는 입을 봉쇄하려 들었다. 군사정권을 진두지휘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자, 장일순 선생에 눈을 부라린 자는 얼마 전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였다. 정통성 없는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자에게 민중은 무서운 존재다. 도산 안창호의 맥을 잇는 대성학원을 세우고 사회대중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그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빌미로 3년 동안 옥고를 치렀지만 박정희 정권은 탄압을 이어갔다.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니 태어나 살아오던 원주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군사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를 마냥 바라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1970년대 초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와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가두시위를 주도한 장일순 선생은 독재정권의 눈에 가시였는데,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의 복구와 농민의 생존을 도모하면서 장 선생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궁극적으로 건강한 사회의 실현을 생각한다면 투쟁에서 머물 수 없다는 걸 체득하고 공생의 논리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생명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각오로 이어졌다. 19831029일 도시와 농촌을 직접 연결하는 한살림을 원주에서 창립하기에 이른다. 이후 선생은 생명운동에 남은 생을 헌신했다.

 

한살림과 같은 생활협동조합은 농촌의 생산자 조합원과 도시의 소비자 조합원이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한다. 유기농산물은 원칙적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지만 유기농업은 농사 방법의 차이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유기농산물은 땅과 하늘과 사람, 생산자와 소비자, 사람과 땅속의 미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농업으로 생산한 농작물이고 그렇게 짓는 농업이 유기농업이다. 유기농업은 지금 우리의 삶에 조상의 삶과 얼이 깃들어 있다는 걸 반영해야 할 뿐 아니라 후손의 행복과 건강하게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땅 속의 미물을 죽이는 농약은 결국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 다채로운 생태계의 얽히고설킨 조화를 단조롭게 만드는 농약은 결과적으로 이웃과 허물없이 나누던 음식을 거대한 기업이 지배하는 상품으로 바뀌게 했고 그 과정에서 농민과 노동자는 소외되고 말았다. 다국적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간 식량산업은 막대한 자금 이상으로 석유가 동원되지 않으면 절대 유지될 수 없다. 다국적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씨앗이 단순화된 농작물인데, 그 농작물의 유전자마저 조작하며 규모를 키운 자본은 농산물 독점에서 그치지 않았다. 가축의 유전자까지 획일화해 공장식으로 사육하기 시작하자 세상은 조류독감, 구제역, 광우병 들로 돌이킬 수 없게 온통 오염되고 지구는 걷잡을 수 없게 온난화되었다.

 

삼라만상은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 한 그루의 장대한 나무도 눈에 띄지 않는 씨앗에서 움트고 나무는 자라는 과정마다 미생물과 곤충은 물론 거대한 동물의 터전이 된다. 곤충이 낳은 알은 애벌레가 되어 딱따구리의 몸으로 들어가고,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아대면서 미생물을 밀어넣는다. 미생물이 들어간 나무는 늙으면 쓰러져 흙으로 되돌아간다. 참나무 한 그루는 700종류의 곤충에게 터전을 내어주는데 농약 세례를 받는 근린공원의 꽃나무는 나비 한 마리의 접근을 가로막으니 새들이 외면한다. 그 아래 뛰어노는 우리 아이들의 코는 농약을 피하지 못하고 아토피에 시달린다. 그래서 장일순 선생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고 일찍이 설파했는지 모른다.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장일순 선생은 붓의 달인이다. 표정이 있는 난을 치고 의미를 담은 서화를 남겼다. 선생은 당신이 지원하는 단체를 도우려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개최했지만 자신의 붓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다. 봉산동 자택에서 시내까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족했지만 반나절이나 걸었다고 장일순 선생을 잘 아는 이는 회고한다. 눈을 마주치는 주민과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라는 건데, 하루는 군고구마 장수가 쓴 군고구마 팝니다. 글씨에 탄복했다고 한다. 투박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깃들었다는 아닌가.

 

아들의 등록금을 간신히 마련한 할머니가 원주역에서 소매치기당한 사연을 들은 장일순 선생은 무작정 대합실에 나가 몇 날을 앉아 있었다고 한다. 어디로 가려는 것은 물론이고 누굴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앉아 있기만 하니 궁금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초지종을 들었고 이내 소문은 원주 시내에 퍼졌다고 한다. 그렇게 원주역에 앉아 있길 일주일. 고개를 숙이고 찾아온 소매치기는 남은 돈을 내놓았고 할머니에게 돌려주었다는데, 다음날 그 소매치기를 찾아 나선 선생은 내가 자네 영업을 방해했지? 용서해주게.”하며 소주잔을 권했다고 한다.

 

소매치기와 대학생, 할머니와 군고구마 장수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은 장일순 선생에게 양주나 맥주보다 누구나 마음 편하게 기울이는 소주나 막걸릿잔이 어울렸겠다. 개구리와 메뚜기와 거미, 그리고 모든 유충들이 우글거리는 논밭이 비옥한 소출을 내주고 그런 논밭에서 생산한 농작물이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선생은 조그만 엘리트 의식도 갖지 않았다. 자신을 한 알의 씨앗으로 생각한 장일순 선생은 후배에게 나대지 말고 기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가? 선생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도무지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등 떠밀려 시작한 추모 사업은 소박하고 더디다.

 

위암으로 누웠을 때 노자의 도덕경을 함께 읽으며 물 흘러가듯 나눈 이야기를 이현주 목사는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정리했다. 그 무렵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나서려는 목수에게 장일순 선생은 노자 있나?” 물었고, 책은 있지만 읽지 않은 목수가 머뭇거리자 선뜻 여비를 내주었다는 일화를 최성현은 좁쌀 한알에서 소개했다. 장일순 선생 10주기를 맞아 장일순을 기리는 모임에서 장 선생과 얽힌 이야기들을 나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에 엮었다. “속지 마시오들. 세상에 글한테 속는 것만큼 맹랑한 일도 없으니까라 말했던 장일순 선생의 책은 대략 그 정도에 그친다.

 

군사정권 시절의 진정한 언론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은 201012월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쳤다. 리영희 선생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분석할까? 세월호 침몰 뒤의 기자들의 행태를 기레기라 비판한 민중과 촛불을 들었을 텐데, 바뀐 정권에게 어떤 충고를 아끼지 않을까? 장일순 선생과 비슷한 연배이지만 깍듯이 선배로 모셨던 리영희 선생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잇는 군사정권에 어려 차례 고초를 겪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리영희 선생은 마음이 울적하거나 허전할 때 훌쩍 원주로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파킨슨씨병으로 말년에 고생하다 유명을 달리한 리영희 선생이 장일순 선생과 이 시간 생존한다면 원주로 떠나 기쁜 마음 나누고 싶지 않을까?

 

장일순 선생이 떠난 원주. 하지만 체취가 남은 원주는 여전히 성지 같은 곳이다. 생전에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말씀을 들은 적 한 차례 없지만, 만났다면 무척 반갑게 맞아주셨을 거 같다. 그래서 자택이 있는 자리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 같다. 요즘 말로 힐링될 성싶은데, 게을러서 여태 찾지 못했다. 집터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자신을 한없이 낮춘 선생이니 개발광풍에서 집터를 보전하기 위해 자손이 애를 썼을 거 같지 않은데. 핑계를 앞세운 처지가 못내 아쉽고 송구스럽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다시금 제창되었는데.

<지구별 생태사상사> 260-269쪽, 작은것이아름답다 2020년 11월 30일 펴념.

작은것이아름답다, 2017년 6월호, 78-85쪽.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5. 29. 00:53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막 지났다.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주로 활동한 장일순 선생의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글은 거의 없다. 자신의 글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이 곤혹당하는 걸 바라지 않았기에 몇 편의 연설문과 대담, 그리고 일화만 남았다는데, 그 일화를 보면 선생의 삶과 생각은 무척 평화로웠을 게 틀림없다. 좁쌀 한 알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선생이 생활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한 건 자연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남과 나를 어찌 나눌 수 있겠는가. 남과 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평화는 깃들 수 있으리라.


언젠가 북유럽 도시를 방문했을 적, 대낮임에도 자동차마다 전조등을 켜고 다니는 걸 보았다. 여름이라 낮 시간이 길 텐데, 의아해 물었더니, 전조등을 켜면 자전거와 부딪힐 가능성을 30% 이상 낮추기 때문이라고 가이드는 답했다. 자동차가 하도 천천히 다녀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였는데, 자동차 도로 사이에 안전 분리대가 없어도 자전거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은 건 자동차의 속도가 낮고 전조등을 켜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는 내 가족이나 이웃이다. 나도 차를 두면 당연히 자전거를 이용한다. 사정상 자동차를 탄 운전자가 더욱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준법투쟁이란 게 무서운가 보다. 지하철이나 버스 운전사들이 준법투쟁에 돌입하면 단속하겠다고 경찰이 으름장을 놓은 적 있다. 정해진 공간에 세워 손님들이 내리고 탈 시간을 규정대로 제공해야 당연한데, 불법이라는 겐가? 불법보다 반항이므로 단속하겠다는 의지일 텐데, 괘씸죄에 걸리는 반항의 대상은 누구인가? 공권력? 버스회사나 지하철공사? 배차간격을 바투 붙인 이유는 회사의 이윤과 긴밀하다. 경찰은 회사의 이해를 대변해 단속할 따름이다. 자동차와 운전사 고용을 늘려 배차간격을 조절한다면 준법투쟁이 사라질 텐데, 그러지 않으니 사고 확률은 높아진다. 한 차례의 사고는 챙겨둔 이윤을 일거에 사라지게 할지 모른다.


최근 광역버스 탑승하던 직장인들의 지각 사태가 속출했다. 고속도로에서 승객은 반드시 좌석 안전벨트를 매도록 안내해야한다는 규정은 출퇴근 시간이면 관행으로 외면되었지만, 단속을 지레짐작한 회사가 세월호 참사 이후 정원 외 승차를 금지한 까닭이었다. 출퇴근 시간에 좌석보다 많은 승객을 싣는 일은 광역버스의 일상이다. 버스를 늘려야했지만 외면해온 건 단순히 이윤 때문이리라. 버스와 운전기사를 늘리면 화사는 이윤을 얼마나 잃을까? 운전사 파업 때마다 적자를 하소연하던 버스회사는 버스와 고용을 늘리려면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아우성칠까?


일본에서 고철보다 약간 높은 가격으로 구입한 해운회사 청해진의 세월호는 온갖 불법이 자행되며 운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의 이익을 배려한 지난 정권의 규제완화만이 참사의 원인은 아니었다. 무리한 구조변경과 규정을 무시한 화물적재 그리고 안전 장비와 훈련 미비는 단속되지 않았다. 훈련을 위한 예산이 접대 예산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라기보다 늘 그래왔기에 새삼스럽게 단속할 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가정으로 묵인해온 관행이 규제완화에 힘입어 더욱 버젓해졌을 것이다. 침몰 징후가 뚜렷해도, 침몰하는 중이어도, 침몰 이후에도, 해난 구조까지 민영화한 정부와 해경은 관행처럼 해운회사의 이윤에 충실했다. 해경의 보도자료에 의존한 언론마저도.


규정에 따라 승객과 화물을 싣고 운행한다면 청해진은 진정 손해를 볼까? 제주항로를 독점한 청해진은 이용료를 올려야 한다고 진작 주장했을까? 규정보다 서너 배의 화물을 얼렁뚱땅 실어야 고철에 가까운 배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요금이 적었던 걸까? 그렇다면 당초 당국에 의해 책정된 요금은 불법 관행을 조장한 셈이다. 끔찍한 참사를 유인한 꼴인데, 언론들이 보도한 청해진의 부당행위 크기와 범위를 미루어보면 세월호의 적자 내용이 사실에 부합할 거로 믿기 어렵다. 투명하지 않은 해운회사는 청해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접대에 관례처럼 응해왔을 관계당국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회사 경영과 당국의 관리 감독이 투명했다면 우리의 선박 이용 요금은 합리적으로 책정되었을 것이다. 1993년 위도 페리호 참사 이후 해운업계의 불투명한 관행을 바로잡았다면 고철 선박을 수입하지 않아도, 화물을 과적하지 않아도, 승무원을 저임금으로 착취하지 않아도, 요금을 올리지 않아도, 해운회사는 적자 나지 않고 승무원은 친절하게 임무에 충실하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발생한 사고가 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합리한 경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와 수단이 회사 안팎에 준비돼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쓸 이유도 없었을 게 틀림없다.


세월호 참상은 청해진해운에서 그치지 않는다. 결박하지 않고 화물을 과적하던 연안 여객선들이 갑자기 규정을 지키느라 허둥댄다는데, 육지에서 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비행기 이륙 방향을 바꾸며 허가한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123층으로 세우기 위해 파낸 지반이 가라앉는다는 건데, 관련 회사와 정부는 분명한 근거 제시 없이 안전만 되뇐다. 부산 고리핵발전소 1호는 사고뭉치였지만 세월호 참사로 언론의 초점이 몰릴 때 정부가 슬며시 가동 연장을 허가했다. 그 핵발전소의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320만 명이 산다.


안산에 사는 노동자에게 몇 차례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이가 그 중에 있다. 단원고에서 교생실습을 한 큰애의 친구는 힘든 나날을 지낸다고 한다. “큰애를 부산외국어대학교에 보냈다면 코롱 미우나리주트 강당의 눈덩이에 파묻히고, 작은애가 단원고에 다닌다면 나는 팽목항에 있을 거라며 날마다 108배를 한 가정주부가 있다. 도처에 세월호가 있으니 예외를 확신할 사람은 없다.


장일순 선생이 좁쌀 한 알에 우주가 있다고 일찍이 말했듯,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혼자 잘 살 수 없다. 내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먼저 생각했다면 이번 참사는 없었다. 행복은 생태계의 뭇 이웃과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무시한 이번 대가는 너무 참혹했다. (작은책, 20146월호)

동요풀님 보고 싶네요. 말북이에요. 몇달만에 들어와보곤 이 글을 만나네요. 풀꽃세상에도 올리고 싶어 인사드립니다. 최근에는 무위당 20주기 행사를 조금 거들어 보름간의 행사를 잘 마쳤지요. 주말에는 선정회의가 원주에서 있습니다. 그래도 지키고는 있어야 할 풀꽃세상의 정체성인 듯 싶어서요. 제대로 이어줄 이들이 생겨나겠지요. 올해 가기 전에 함께 만날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군요. 건강하세요.

 
 
 

서평·추억

디딤돌 2010. 12. 21. 22:28

 

2010125일은 현대사의 질곡을 헤치며 어둠 속의 우리에게 빛을 선사해준 리영희 선생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전환시대의 논리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로 권력에 길들어진 우리의 뇌리에 죽비를 내리치던 리영희 선생을 사상의 스승으로 많은 분은 기렸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암울했던 시절, 리영희 선생처럼 마음 추스르기 어려운 분도 드물었을 텐데, 답답할 때면 원주를 방문했다고 선생은 소회하곤 했습니다. 그저 마주 앉기만 해도 응어리를 스스로 풀어내도록 이끄는 장일순 선생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리영희 선생보다 한살 많았던 장일순 선생은 1994522일 위암으로 먼저 타개하셨지요.

 

잘 알다시피 장일순 선생은 우리 한살림 운동의 모태입니다. 장일순 선생은 화학농업으로 땅이 죽어가면서 농촌의 생산자도 도시의 소비자도 피폐해간다는 걸 일찍이 절감했고,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한 유기농운동을 제창했습니다. 그리고 실천했습니다. 또한 유기농운동에 앞장서는 후배와 제자에게 좋은 농작물을 나눠야지 먼저 차지하려 욕심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우리 땅에 유기농운동이 지금처럼 뿌리내리기 전에 세상을 떠난 장일순 선생은 어쩌면 순교하신 건지 모릅니다. 땅도 농촌도 우리의 내일도 유기적으로 살리자며 우리를 토닥거리면서 당신이 먹을 수 있었던 좋은 음식을 이웃에게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한살림을 비롯해 여러 생활협동조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국 곳곳의 도시와 농촌에서 소비자와 생산자 조합원을 나날이 늘려가는 지금, 우리는 장일순 선생의 절박했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며 행동하고 있을까요. 조직이 방만해지기도 전에 나태해진 건 아닌지요.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말. 그런 말은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조합원으로 엮인 한살림이나 생활협동조합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비자 조합원은 생산자 조합원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며 농작물을 구입하고, 활동가들은 직접 대면하기 어려운 소비자과 생산자 조합원을 신뢰를 바탕으로 연결하는 본분이 요즈음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상품을 진열하려는 백화점에 어울릴 법한 정기 바겐세일이라는 말이 한살림이나 생활협동조합에서 들리면 서글퍼집니다. 물론 유통기간이 다가오는 가공식품을 버려야하는 고충을 그때그때의 세일로 피하고 싶은 조직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진정 땅과 농촌과 내일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소비자 조합원들이 유통기간이 다가오는 식품이라도 흔쾌히 구입해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활동가들은 소비자 조합원들을 그렇게 이끌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오래 생활협동조합에서 활동가로 있던 이가 그만둔 일이 있습니다. 먹어보니 맛이 없다며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 조합원을 설득하다 지쳤기 때문이라기보다 귀찮은 듯 군말 없이 바꿔주는 조직의 풍토 때문이었습니다. 끊임없는 교육은커녕 가입하려는 소비자 조합원에게 출자금만 받으려할 뿐 초기 교육마저 생략하고, 심지어 세파에 찌든 장사치처럼 좋은 음식이라며 가입을 유혹해야하는 상황이 부끄러웠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생산자에게 가격을 낮추라는 요구가 유기농산물 운동조직에서 나오는데 당혹해야 했고 가까운 곳에 다른 생활협동조합의 매장이 열리려 하자 부지불식간에 경쟁심을 가지게 되는 자신이 미워졌다고 했습니다. 기존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을 끌어들이려 사은품을 제공하는 생활협동조합이 인근에 문을 여는 풍토에 절망해 유기농산물 운동의 활동가라는 보람을 접기로 했다지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신뢰를 연결해주는 활동가의 일. 참 어렵지만 쉬지 않아야 합니다. 절박한 마음과 신념이 흔들리면 장일순 선생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독려하던 유기농운동은 그만 힘을 잃고 맙니다. 생각해볼까요. 싫든 좋든, 곧 한미FTA가 체결될 모양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만 양보한 게 아닙니다. 농작물을 내주고 말았으니 노예처럼 생사여탈권을 바친 셈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견뎌내는 하는 분야는 농업인데 농업은 반드시 유기농이어야 합니다. 땅과 농촌과 내일을 살릴 수단이 유기농 밖에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사명을 가진 우리 땅의 유기농업을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우리의 내일은 장차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말 텐데, 한살림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새삼스러우니 반복할 필요가 없더라도 다시 살펴봅시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초심을 붙잡는 조직이 시방 한살림과 생활협동조합이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활동가가 실망해서 지친다면 어떻게 풍전등화인 이 땅과 농촌과 내일의 건강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한살림이나 생활협동조합이 양판점의 지하식품매장처럼 서로 경쟁하고 생산자에게 낮은 가격을 요구하며 소비자를 유혹하면 조직의 생명은 단축됩니다. 소비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난다면 잠시 공존할 수 있을 테지만 마지않아 포화된다면 살아남고자하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테지요. 결국 신뢰는 무너지고, 거대한 자금력을 가진 조직에 우리나라의 유기농업 구조가 통합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 미국의 유기농마켓이 들어온다면 어찌될까요. 지금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미국의 자본은 대량생산, 대량운송, 대량소비의 힘으로 매우 빠르게 미국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요. 초심을 잃은 우리 유기농시장과 경쟁할 때 누가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 땅과 농촌과 내일의 건강은 또 어떻게 될까요. 저는 내일이 걱정입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포함합니다. 따라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맞을 필요가 있습니다. 초심을 살려 유기농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겁니다. 이때 한살림에서 발간한 한살림을 흐르게 하는 사람들은 절박한 마음을 다시 추스르게 합니다. 시의적절하게 초심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엇나가는 유기농산물 운동조직의 모습에 마음 상했던 소비자나 생산자 조합원들이 다시 구두끈을 질끈 동여맬 동기를 마련해줄 것 같아 기쁜 마음입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고민하고 마음을 새로 다짐하는 분들의 속마음을 들으며 다시 몸과 마음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활동가와 조합원들은 여전히 한살림다움"에 목이 마릅니다. 듣던 중 반가운 고민이었습니다. 조합원을 더 가입시키야 한다는 활동가 생각의 기저에 땅과 내일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스며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비록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지만 조합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찾는 소비자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이 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활동가의 아쉬움은 앞으로 한살림에 더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흙과 인간을 살리는 유기농산물 운동이 되길 희망하는 이, 유기농운동의 동기를 부여한 깊은 고민을 생산 현장에서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생산자 조합원의 목소리도 아름다웠습니다. 벌레 먹은 농작물을 보고 생산자의 고충을 이해하려는 소비자가 한살림을 바탕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건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장 뿐 아니라,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다음세대에게 땅과 내일의 건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공부방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소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기농운동이 끊임없는 공부, 현장 참여, 행동에서 증폭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오늘과 내일을 건강하게 연결하는 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깁니다. 우리의 걱정은 미국과 유럽하고 맺은 FTA만이 아닙니다. 해마다 그 규모를 모르게 확산되는 지구온난화가 엄습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은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를 신뢰로 이어주는 역할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생산자의 신념을 지금 이상 북돋아야 하겠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습니다. 내 땅을 우리 후손에게 건강하게 그리고 유기적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화학농업에 찌든 농부와 땅을 회복시키는데 한살림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어쩌면 유일한 희망일지 모릅니다. 그를 위한 끊임없는 공부와 행동이 물론 수반되어야 하겠지요.

 

이번 인터뷰에서 희망을 봅니다.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살림이 유기농 계의 SSM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살갑게 만나게 하는 유기농운동의 메카로 자리잡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운동은 어디까지나 재미와 감동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장일순 선생의 마음처럼,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는 유기농운동이 지속될 수 있을 테니까요. 여러분의 수다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살림 활동가 인터뷰, 한류스타의 발문, 2011)

 

좋은글 감사합니다. 담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