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2. 5. 09:57

 

얼마 전 한 인천시장은 한 단체에서 주최하는 연설에서 200여 군데 재개발 지역 중 수 십 군데를 직권으로 해제했노라 자랑했다. 주민의 반대가 극심한 지역인 모양인데, 경기침체로 기대했던 사업성이 어두워진 이후에 바뀐 민원을 받았을 것이다.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았던 시절, 재개발하기만 하면 집값이 껑충 뛰었던 시절, 재개발은 황금산업이었다. 사업자가 자신의 부담으로 재개발을 진행해도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집주인은 부담 없이 제 집의 부가가치가 상승하는 까닭에 유행처럼 단독주택들을 헐어 아파트로 바꾸고 20년 정도 지난 저층 또는 고층 아파트를 헐어 고층 또는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댔다. 하지만 수요가 싸늘한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집주인이 적지 않은 부담을 해도 부가가치가 통 오르지 않는다. 그러자 재개발 또는 재건축 사업이 시들해졌다.


인천시의 도시계획위원회란 곳에 위원으로 잠깐 활동한 적 있다. 참석 첫 회의 안건이 재개발이었고 위원들은 시에서 추천한 200여 군데를 원안 그대로 통과하자는 분위기였다. 주민이 원하기 때문이라 이유를 붙였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주민도 사실 적지 않았다. 그래서 현장 방문 후 논의하는 것으로 수정 제안했고, 그 결과 200여 군데 중 3분의1은 원안 가결, 3분의1은 사업 내용 수정, 나머지는 반려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데 무슨 영문인지 재개발 대상 지역이 다시 200여 군데로 늘어났다. 합리적 논의 없이 계양산 골프장 허가를 다수결로 밀어붙이기에 도시계획위원회를 그만둔 이후의 일이다.


당연히 부가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짐작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렸던 사람들이 낭패를 겪는 요즘, 많은 재개발 또는 재건축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시작을 하지 않은 지역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많은 돈이 투자된 상태에서 멈춘 지역은 주민과 사업자는 물론이고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 사이에 불신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세입자의 이해는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에서 거의 배려되지 않는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도 형편이 모자란 집주인은 떠나야 하는 게 재개발 재건축이다. 세입자들은 대부분 살던 곳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변하는 재개발과 재건축. 어떤 건축가는 자연재해나 핵발전소 폭발이 아니라 아파트가 마을을 해체한다고 비평했다는데, 현관 문 잠그면 남에게 참견이나 해코지를 당할 걱정이 없고, 관리비만 제때 내면 냉온수와 하수, 전기와 가스, 통신이 자유로운 아파트는 이웃에게 필요 이상으로 문을 닫게 만든다. 내 집의 온돌파이프가 새야 아랫집과 소통이 되는 아파트들은 다닥다닥 붙었지만 단지 안에서 몇 년을 함께 살아도 대화는커녕 눈인사도 나누지 않는다. 복도식은 그나마 낫지만 주민들은 서로 이웃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인천시 동구의 한 오랜 동네는 내심 재개발을 희망하지만 부가가치가 상승할 것 같지 않자 멈칫하는 지역이다. 재개발 논의로 어수선할 때 찾아간 그 동네는 주차 공간이 협소한 골목과 낡은 단독주택으로 방문자에게 어지러웠지만 주민들은 익숙했고 겉보기 다정다감했다. 눈길이 마주치면 목례와 인사를 나누었고 가던 길을 돌아와 음료수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아파트 단지에서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중 누가 세입자인지 알 수 없지만, 이웃으로 소통하는 따뜻한 모습이었다. 낡고 비좁아 정비가 필요해보이지만 아파트로 이웃 사이를 단절하기 아쉬운 지역인데, 아파트 단지가 아닌 재개발은 없을까.


197274남북공동선언 이후 방문하는 북측대표에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통일로 주변에 획일적으로 지었다는 서울 은평구 한양주택은 지금 없다. 워낙 날림으로 지어 주거환경이 불량했지만 마음을 맞춘 주민들이 주택을 고치고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며 30년 가까이 돈독하게 살았던 곳이었지만 뉴타운으로 사라졌다. 2000년대 초 재개발 열풍 속에서 그들은 뉴타운 편입을 마다했고, 서울시가 받아들이지 않자 공동체가 살아 있는 재개발을 원했지만 역시 거부되었다. 지금 한양주택이 있던 자리에서 공동체 분위기는 사라졌다. 아파트 열기가 식어버린 요즘, 마을의 공동체를 살리고 주거공간을 개선하는 재개발은 어려운 것일까.


크고 작은 주택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동네의 오랜 이웃은 서로 잘 안다. 작은 집에는 대체로 젊거나 산림도구가 단출한 주민이, 큰 집에는 식구가 많은 주민이 산다. 대부분의 집에는 거실과 화장실이 있고 요즘은 집 크기와 관계없이 세탁기와 커다란 냉장고와 승용차도 갖추고 산다. 그래서 집과 마당이 비좁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 놀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아파트처럼 천편일률 구조가 아니라 공동체를 염두에 두는 생활공간을 배려하는 재개발은 새로운 시대적 소명일 수 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 이외에 공동 공간을 만들어 이웃과 함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마다 두 개 이상 있는 화장실을 하나로 줄이는 대신 세탁기를 공유할 공동 시설을 만들면 어떨까. 공동 식당과 책과 악기를 나누는 거실 겸 사랑방을 만들면 어떨까. 텃밭과 정원을 공유하고 자동차를 공동으로 사용하면 비용과 주차 공간을 줄일 수 있다. 이웃 사이에 정이 깊어진다. 아이들은 자기 방에 갇혀 컴퓨터 게임에 빠지기보다 친구가 기다리는 밖으로 나갈 것 같다. 민주주의를 밝게 하는 사회성이 좋아질 것이다. 돈독해진 이웃의 배려와 도움으로 공동육아와 방과후 보충학습이 가능하니 신뢰가 엮는 직업도 마을 안에서 창출할 수 있다. 세입자가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밝은 공동체가 건강하게 이어질 것이다.


서울 마포의 성미산 마을에는 아이들이 밖에서 주로 논다. 어른이 지나가며 부르면 모두 밝게 웃으며 다가간다. 서로 막역하게 어울리므로 누가 누구의 부모고 아이인지 방문객은 눈치 채기 어렵다. 그런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재개발의 모형을 주민과 관료, 그리고 전문가와 건설업자이 서로 도와 만들어 낼 수 없을까. 건축만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 법과 윤리, 인문과 사회학 전문가들이 모여 그런 마을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고민했던 해외 사례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빗물을 재활용하고 태양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기를 얻는 공동주택, 우리가 참조할 예는 많다.


지하공간이나 관리사무실의 빈 공간을 활용한다면 아파트도 어느 정도 공동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든 아파트 단지가 있고 공동육아가 가능한 방과후 교실을 꾸미는 곳도 있다.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좁은 아파트 단지는 아무래도 유연성이 떨어진다. 재개발이 필요한 오래된 주택단지라면 그 모델을 찾기 비교적 쉬울 것이다. 가격이 상승한 집을 팔고 떠날 의도가 아니라 오랜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면,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논의하여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입자도 소외되지 않는 마을을 합의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만든 동네는 건강할 수밖에 없다.


     ‘구도심 재창조를 정책으로 내놓은 인천시장은 최근 전면 철거 방식에서 탈피해 마을의 공동체 문화를 살리면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출구 전략을 시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수도국산 일원의 이른바 괭이부리마을은 원주민 이탈과 장소의 고유성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현지 개량의 재개발 방식을 시도하겠다고 한다. 관료주의와 성과주의로 투명한 논의가 부족하거나 세입자 소외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부분적으로 공동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관심이 모인다. 시간에 얽매지 말고 충분히 논의해 모범적인 동네로 따뜻하게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인천in, 2013.2.4)

 
 
 

도시·인천

디딤돌 2012. 9. 27. 10:18

     1947년 수도국산 우물 터!

 

참 오랜만에 자유시장을 걸었다. 객기 부리던 대학생 때, 가끔 걸은 적 있었지만 거의 30년 만이다. 안주 한 점과 술 한 잔을 팔던 노점이 길 복판에 늘어섰을 시절, 배다리에서 화평동까지 중앙시장의 노상주점들을 완주하겠다며 선배와 흐느적거렸던 어느 눈 펑펑 내리던 겨울철 이후의 일인데, 그길, 원래 짧았나? 길다고 생각했는데.


전 전 시장 때부터인가. 동인천역 뒤를 개발해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한 게. 이후 그 약속의 이행은 지지부진했고, 온갖 이권과 이해가 엇갈리면서 진행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 재개발이 어디 한 군데라도 순탄하던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시행착오를 거쳐 사업을 진행하지 않던가. 유독 동인천역 뒤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자유시장 일부의 상인을 철수시켜 건물을 철거했지만 험상궂게 항의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린 모습이 웅변한다. 신도시 개발에 예산을 퍼붓다보니 소외되었다는 주민의 분노 목소리들이다.


북광장으로 이어지는 동인천역에서 화평동 사이의 상가는 지금 없다. 택시와 버스를 타는 아스팔트 광장으로 변했는데, 이용하는 시민은 그리 많지 않다. 외지인은 그 자리가 원래 그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괭이부리마을의 골목을 시작으로 인천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골목을 답사하려 모인 외지의 참가자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이전의 모습을 본 적 없기 때문일 텐데, 그건 30년 만에 찾은 이도 그럴 수 있겠다. 잠시 어리둥절해하다 익숙해지며 옛 기억이 희미해질 것이므로. 현수막을 걸었던 주민도 어쩌면 비슷할지 모른다. 주변 하수에 찌든 현수막은 추레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른바 풍경기억상실현상이다.


아파트 건물로 겉보기 번듯하게 뒤덮인 수도국산은 유명한 달동네였다. 지금도 많은 집들이 과거 그대로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김중미가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쓸 때에는 더했다. 우리나라 달동네의 전형이었다. 부두에서 막일하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던 곳. 그 허름한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애환,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희로애락이 이따금 격렬하게 때때로 부드럽게 흐르던 골목이었다. 그 자리에 달동네박물관이 섰다. 괭이부리마을 뿐 아니라 인천시민, 나아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젊은이에게 조상의 고단했던 일상을 생동감 있게 알려준다.


그런데 왜 수도국산인가. 그 사실은 박물관 입구에 간단히 소개해 놓았는데, 외지에서 온 이들은 다소 생소해 했다. 근방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보니 부두와 일본인 마을에 수도를 공급하려 수도국이 있었다는 걸 안내판을 알려준다. 그래서 만수산 또는 송림산이라는 제 이름을 놔두고 수도국산이 되었다는데 인천 사람 중에 인천 최초의 수도국이 게 있고, 거기에 달동네박물관이 있는지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거기에 달동네가 있었고 지금도 인정이 흐르는 골목이 살아있다는 걸 기억하는 이, 얼마나 될까.


문명의 붕괴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런 현상을 풍경기억상실이라 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의 풍경이 서서히 바뀌면 부지불식간에, 갑자기 바꿔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서, 예전의 모습을 잊고 마는 현상이다. 흔히 이스터 섬이라 칭하는 라파누이의 울울창창했던 야자수가 하나 둘 사라지다 모조리 없어졌고, 황폐해지는 와중에 조상들과 그 얼마저 사라져 쇠락해가는 후손들은 자신의 문화와 역사, 심지어 언어마저 잃어갔다. 이제 정체성까지 상실해가는 현상을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주목했는데, 수도국산의 달동네도, 동인천역의 자유시장도 비슷한 운명에 놓였다. 자존심과 인파로 넘실대던 자유시장과 기대와 애환이 흐르던 수도국산 골목의 기억은 머지않아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질지 모른다.


쇠락해가는 자유시장을 지나 수도국산으로 올라가면서 해방 직후 축조한 우물터를 찾았다. 수돗물의 혜택에서 거리가 멀었던 달동네 주민에게 마실 물을 제공해주던 고마운 우물이었는데, 얼마 전 메워지고 말았다고 한다. 일본인이 물러나고 달동네에도 수도관이 깔리면서 효용을 잃은 우물은 오염되기 시작했는데, 한 어린이가 빠지는 일이 발생하자 메웠다고 한 주민이 상황을 설명했다. 십분 이해가 가는 일인데, 정작 안타까운 것은 당시 인천시와 관련 담당자의 허약한 문화의식이 아닐 수 없다. 단기 4280, 그러니까 1947, 해방 맞고 두해 지나 축조했다고 기록한 표지석이 분명한데도 근처 집의 벽면에 포함되도록 방치하고, 우물터를 매립해 없애도 몰랐다는 게 아닌가.


자유시장이 사라진다고 초대형 마트에서 승용차 트렁크 가득 물건을 구입하는 요즘 시민들이 불편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수도국산의 달동네가 아파트단지로 사라진다고 별스럽게 슬퍼할 시민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기억, 저 아스라한 삶의 뿌리를 하나 더 잃는다. 자유시장에 남고자하는 이, 새롭게 둥지를 치고 싶은 이, 싫든 좋든 수도국산의 달동네에 삶을 기대는 이, 또 거기에 정착하고 싶은 이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헐어낸다면, 인천은 지역의 뿌리를 더 제거하는 꼴이 된다. 요즘 세간을 흉측하게 만드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범죄는 자신의 삶이 지역에 뿌리 내리지 않은 지역에서 쉽게 발생한다.


일본의 요코하마는 인천과 개항 상황이 비슷하다. 요코하마 시 최초의 수도국을 기념한 것은 물론이고 흑색 함대를 끌고 온 페리 제독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도시 곳곳마다 시시콜콜 이야기한다. 요코하마애서 페리 제독이 차를 즐겨 마신 곳이 여기라는 식이다. 페리 제독이 일본 땅에서 처음 재채기한 곳은 어디일까. 페리 제독을 기념하기 위한 처사일리 없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 뿐 아니라 생활 속에 남겨 시민의 삶을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시 차원에서 배려하려는 것이리라.


     수도국산의 달동네가 박물관으로 보전돼 어린 학생들에게 지역의 옛 문화와 역사를 알리려는 인천시의 노력이 긍정적이라면 달동네의 버림받고 있는 우물터를 다시 단장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요코하마처럼 근대문화유산이 많은 인천에 할 일은 많다. 근대유산 뿐 아니라 골목길까지 널려 있다. 타인의 접근을 봉쇄하는 최첨단 초호화 건물보다, 경쟁적 속도와 목포가 숭상되는 회색도시보다, 역사와 인정이 흐르는 도시로 성숙할 수 있는 길을 시민과 함께 모색할 수 있다. 이제 갈무리하는 가을이 완연하다. (인천in, 2012.9.26)

 
 
 

도시·인천

디딤돌 2009. 7. 12. 13:18

 

지금 3년 째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는 6년을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6년 동안 앞집 식구들의 얼굴이나 알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맥없이 인사하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 아랫집 부인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한다. 물론 그분의 성격이 활달해서 가능했던 건데 아직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아랫집 부인과 인사하게 된 사연은 과연 아파트답다. 이웃과 소통 공간이 없는 아파트는 바닥과 천장을 위아래 집이 공유하는데 그만 오래된 온수배관이 터진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아랫집을 오고가며 수리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약간 친해진 거다.

 

한밤중 몸을 흐느적거리는 취객이 제 아파트를 제대로 찾을지 걱정이 되는 이유는 전후 사방이 똑같은 배열 때문이지만 비틀거리다 어디에서 쓰러져도 선뜻 부축해 집으로 데리고 갈 이웃이 드물다는 데 있다. 이삼 년이면 이사 가고 마는 아파트에서 위아래는 물론 옆집과 정붙이고 사는 주민이 드물다. 주차 문제로 드잡이하는 경우는 있어도 어차피 익명인 관계에 서로 호의를 베풀 하등의 이유가 없는 곳이 바로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의 사각 아파트단지가 아니던가. 함잡이들이 힘차게 “함 사세요!” 두 번 외치고 세 번째를 위해 호흡을 가다듬을 찰라, 베란다 열고 더 크게 외치는 고함. “여기가 너네 집이냐! 조용히 안 해!” 그런 분위기에서 이웃끼리 정 나누기 아주 어렵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감성적인 환경운동을 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해마다 자연물에 풀꽃상을 주는 게 아니라 드린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감히 상을 줄 수 없기 때문인데, 1999년에 인사동 골목길에 풀꽃상을 드렸다. 상을 드린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인사동 골목길은 무하지역(無河地域)에 흐르는 개울과 같습니다. 이 길을 지날 때 우리는 한 마리 왜가리처럼 느긋해집니다. 우리의 발걸음에 여유를 주고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 인사동 골목길”에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아울러 “제어되지 않는 속도와 큰길의 가치만 숭앙되는 메마른 땅에서 한줄기 개울처럼 우리를 느긋하고 고즈넉하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사람의 얼굴’을 회복시켜 주는 골목길의 정서적 가치”에 고마워했다.

 

기왕 준비하는 찌게, 조금 큰 냄비에 끓여 이웃집과 나누는 정은 우리네 골목에서 생소한 풍경이 아니었지만 뻗어도 손이 닿을 수 없는 아파트에 문 걸어 잠그고 살면서부터 음식의 맛은커녕 그 집 식구가 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나마 기다란 복도를 골목처럼 공유하는 아파트라면 눈길 마주칠 때 겸연쩍게 눈인사라도 나눌 테지만 그런 아파트는 전용면적이 작다고 싫어한다. 아파트는 공동 주거공간이라기보다 투기 대상의 하나로 보기 때문인가. 그러다보니 멀쩡한 아파트까지 헐어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인다.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건데 그런 한바탕 회오리로 세입자는 정붙일 수 없는 마을을 떠나야 하고 조합원들은 이해에 따라 갈등이 커진다. 재개발을 ‘사람의 얼굴’을 회복시키는 골목길의 정서에 맞출 수 없는 것일까.

 

1990년 33살이라는 나이로 요절한 가수 김현식은 ‘골목길’을 불렀다. “골목길 들어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커튼 드리워진 창이 보이는 골목길에서 이웃을 만나면 반갑고, 가진 걸 나누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 골목길, 배다리에서 우각로를 이어 송림로타리에 걸쳐 펼쳐진다. 승용차가 교차하기 어려운 길에서 얼굴을 아는 주민들은 눈길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고 가게 앞 평상에 주저앉아 음료수를 나눈다. 아파트로 덮여가는 인천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정겨움이다. 그런 동구 골목길이 재개발 대상이라고 한다.

 

세입자도 소외되지 않는 이웃이 주거공간을 함께 구상하고 꾸며가는 재개발은 동구 골목길에서 어려울까. 냄비 주고받는 정이 흐르는 무하지역의 골목에서 왜가리처럼 느긋한 이웃과 희로애락을 나누는 재개발은 정녕 어려운 것일까. 친구와 선후배를 반갑게 만나고 텃밭도 일구며 막걸리를 기울이는 공동체, 동구 골목길에서 그런 희망을 그려본다. (기호일보, 2009.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