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3. 8. 27. 16:02


 

독일 시민들이 발전소와 함께 살아가는 법

 

우리가 뮌헨이라고 이야기하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주도를 독일인들은 뮌셴으로 발음한다. 그 뮌헨에 이자강이 흐른다.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발원해 뮌헨을 관통하는 이자강은 도나우강과 만나 흑해로 접어드는데, 최근, 100여 전 개발로 사라졌던 강변의 일부가 회복되었다. 덕분에 시민들의 즐겨 찾는 도심의 대표적 공원으로 면모를 일신했는데, 1800년대 이전, 1킬로미터 정도의 수변공간을 여유롭게 흐르는 강이었다.


수력발전과 운하를 위해 둑으로 막아 유구하던 강폭을 좁혔지만 도로가 잘 발달된 요즘, 운하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화력발전소가 거대화되었을 뿐 아니라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강물의 흐름을 차단하는 수력발전도 퇴조하고 있다. 최근 뮌헨시에서 둑을 헐어 폭을 넓히고 자연에 최대한 가깝게 강물을 흐르게 유도하면서 모래톱을 마련하자 주말이면 수영을 즐기는 시민들이 이자강에 가득하게 되었다. 뮌헨 이자강의 사례는 우리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례로 소개되곤 한다.


1900년대 초, 이자강의 강폭을 안공 수로처럼 좁히자 거세진 물살이 바닥을 파내려가면서 수면이 낮아졌다. 이어 지하수면이 내려가자 숲이 말라죽으며 생태계가 황폐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우물이 낮아지면서 식수가 고갈되는 현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강폭을 줄일 때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많은 예산으로 하류에 쌓이는 모래와 자갈을 상류에 퍼붓는 땜질을 반복했지만 고질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더는 감당할 수 없던 뮌헨시는 10여 년 전부터 막대한 예산을 투여하며 재자연화를 순차적으로 시도했다. 그렇다고 애초 넓었던 강폭을 완전히 회복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동원해도 강 가장자리에 조성한 건물과 도로를 헐고 강으로 환원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새와 물고기들과 더불어 사람들도 돌아온 이자강의 강폭은 본래의 10분의1, 대략 150미터에 불과하다.


참 희한한 일이 다 있다. 도심을 관통하는 구간의 강변 모래톱은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모여든 시민들의 시선에 화력발전소의 높은 굴뚝이 머문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뮌헨 130만 인구의 환경의식은 분명한데, 어떻게 화력발전소가 도시 한복판을 버젓이 차지할 수 있을까. 하수를 철저히 분리한 이자강에 막대한 온배수가 처리 없이 흘러들어오지 않더라도 찾는 시민들의 눈에 커다란 화력발전소가 거슬릴 법도 한데, 시민들은 대체로 무관심하다. 그 자리를 차지한지 오래 되었기에 정물처럼 익숙해진 걸까. 뮌헨만이 아니다. 슈투트가르트나 하노버를 흐르는 크고 작은 강가에 어김없이 화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시민들은 별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런 발전소에 신뢰를 보내는 편이다. 그들은 화력발전소가 갖는 고질적 환경 문제에 의외로 무신경한 걸까.


해마다 1천만의 관광객이 모이는 하이델베르크에 화력발전소는 없다. 물론 원자력발전소도 없다. 관광에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방식 대신 작은 강을 막아 전기를 생산하는데, 발전 시설의 작아 그런지 강물의 흐름이 정체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작은 전력량에 생활을 흔쾌히 맞추고, 하이델베르크대학과 같이 많은 전기가 필요한 곳은 외부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슈투트가르트나 뮌헨시가 석탄을 주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환영하는 건 아니다. 외지에서 전기를 끌어오려면 부담이 크므로 받아들이되 적정 수준을 넘지 않고, 관리와 운영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 시민들은 최신 오염물질 저감장치의 부착을 요구한다고 관계자는 덧붙인다.


우리와 달리 산뜻한 그림으로 곁을 치장하지 않은 독일의 발전소들은 원하는 이에게 대부분의 자료를 공개한다. 사고 위험이 있는 곳이 아니라면 굳이 시민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다. 전력회사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었기 때문인데, 처음부터 그리 된 것은 아니다. 날카롭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토론을 거듭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발전소가 없으면 환경은 깨끗하지만 전기요금 부담이 크다. 시민들은 기술적으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시설의 발전 설비를 받아들이는 대신, 전기 소비를 흔쾌히 줄였다. 유권자와 소비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정부와 기업은 전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더 필요해지는 수요를 위해 시민들은 발전소 증설보다 태양이나 바람에서 얻는 자연에너지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시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 정부는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생산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서울화력발전소와 시민 사이의 갈등

 

한강을 바라보는 서울시 마포구 당인동에 서울 유일의 화력발전소가 1930년 이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성전기주식회사로 출발해 19352호기를 추가하면서 당인리발전소라는 이름을 사용한 현 서울화력발전소는 한국 최초의 화력발전소다. 이후 1호기에서 3호기는 낡아 철거했는데, 힘센 사람이 많은 서울이라 그랬을까, 19874호기와 5호기에 전기집진기를 설치해 국내 최초로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사라지게 한 이력을 내세운다. 서울화력발전소는 1993년 바꾼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두 개의 보일러에서 387500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하는 한편, 여의도와 반포, 그리고 마포 지역 5만 여 세대에 난방과 온수를 공급한다.


서울에서 소비하는 전기의 3퍼센트 정도 공급하는 서울화력발전소는 1980년 이후 고장이나 풍수해로 인한 재해가 한 차례도 없었다고 자랑한다. 그와 별도로 주변 초중등학교에 교육 기자재를 기증할 뿐 아니라 장학금을 수여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마다하지 않지만 주위 시민들의 시선은 그리 고와 보이지 않는다. 규정에 따라 발전소 주변 지역에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 건 전력회사의 일상적인 일이다. 다른 발전소에 비해 당인동 화력발전소의 공헌이 질적이나 양적으로 부족하기에 주민들이 못마땅해 하는 건 아니다. 국내 최초로 먼지를 걸러내는 장치를 달고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보일러와 시설을 가동하더라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게 마포구 주민들의 표면적 이유지만, 어쩌면 발전소 때문에 발생할지 모르는 재산상 불이익을 더 걱정하는 걸지 모른다.


20079월 당시 대통령 출마를 준비 중이던 이명박 후보는 낡은 4호기와 5호기를 철거하고 발전소 위치를 서울 밖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철거된 부지에 현대적 미술관을 갖춘 문화창작발전소를 만들겠다고 당선되자마자 재확인했으므로 마포구 주민들은 그 동안 겪은 상대적 불이익을 참고 넘기려했다. 한데 정권이 출범하자 당시 지식경제부에서 딴죽을 걸었다. 이전할 부지를 확보할 시간이 없다며 감히 대통령 공약을 뭉개고 만 것이다. 대통령의 재가가 없다면 불가능한 약속 파기였는데, 201612월까지 현 발전소 부지의 지하에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80만 킬로와트의 발전 설비를 도입하겠다는 게 아닌가. 다량의 천연가스를 고압으로 태우는 발전소가 지하에 있을 경우 폭발로 인한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운동에 나선 대책위원회는 해당 전력회사와 정부를 강력히 성토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 서울화력발전소는 어떻게 되었나. 4호기와 5호기는 서울 소비량의 3퍼센트 전기를 여전히 생산하고, 갈등도 여전하다. 지난해 말 마포구와 문화창작발전소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전력회사는 마침내 갈등이 봉합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책위를 구성한 주민들은 구청장을 소환하겠다며 벼르며 반발한다. 정작 전력회사와 정부는 느긋한 듯한데, 협약을 체결한 만큼, 지하로 넣은 발전소의 부지 위에 런던 템스 강변의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미술관과 공원을 조성해 주민에게 개방하겠다는 계획은 법적으로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계획이 순탄하게 진행될지 아직 확신하게 어렵다. 전력당국은 주민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충분한 설명과 신뢰 축적으로 풀 수 있었다고 홍보하지만 대책위원회는 행정법원에 2심을 제기해놓고 있다.


주로 우라늄의 핵을 분열시키며 에너지를 얻으므로 핵발전이라 이름 붙였지만 무슨 속사정이 있었는지, 요즘은 원자력발전으로 개칭한다. 서울시는 요즘 원자력발전소 하나 줄이기 운동을 벌인다. 원자력발전소 한 기의 발전 용량이 보통 100만 킬로와트이므로, 서울시의 의지가 시민의 호응으로 이어져 그 캠페인이 성공한다면 당인동의 서울화력발전소가 떠나도 서울시의 전력 공급에 차질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전력수급계획을 세우는 정부는 지하로 발전 설비를 집어넣어서라도 가동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대책위까지 꾸린 주민들은 지하일 경우 위험해진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만 전력회사의 의뢰에 화답하는 전문가들은 괜찮다고 추임새를 놓았다. 한데 주민들은 지상의 발전소도 반겨하지 않았다. 그들도 전기를 쓴다.


사실 마포구 주민들만 지역 가까이에 화력발전소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다. 서울이든 뮌헨이든, 인천이든, 어디나 다 마찬가지다. 오염물질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발전소가 지역에 있으면 크든 작든 불이익이 생긴다. 대기오염물질 배출 총량제가 실시되면 아파트와 같은 주택은 물론, 상가와 사무실이 집중된 건물, 그리고 크고 작은 공장들은 냉난방에 비용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의 배출 총량제가 실시된다면 건물과 공장들은 시설 증설에 제한이 생길 것이다. 화력발전소 때문에 일자리도 줄어들 수 있다.

 

 

발전소의 투명한 운영과 시민 감시가 이루어져야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지자 인천시민은 고달픈 반대운동에 다시 나서야 했다. 현 남동화력주식회사, 당시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영흥도에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소를 밀집하려 나서기 때문이었다. 십여 명의 구속자가 생기는 어려움을 겪은 후 인천시와 남동화력주식회사는 협정을 맺었다. 80만 킬로와트 규모의 최초 2기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지만, 이후 더 필요할 경우 LNG로 충당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정부와 전력회사에 의해 속절없이, 발전 설비를 증설할 때마다 무시되었다. 87만 킬로와트 2기가 증설돼 현재 4기가 가동되는데, 201087만 킬로와트 규모의 화력발전 설비 2기가 다시 추가되었다. 5호기와 6호기는 현재 2014년 완공을 목표로 맹렬하게 공사하는 중이다. 그런데 다시 2기를 더 짓겠다고 전력회사는 인천시민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물론 연료는 석탄이다.


이산화탄소를 막대하게 내뿜을 뿐 아니라 상당한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그리고 폐를 위협하는 초미세 석탄재가 나올 것이라며 시민들이 극렬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2기 씩 계속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으로 추가되어도 정부나 전력회사 누구도 애초 맺은 약속의 위반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사과도 없었다. 오염물질 저감장치를 최첨단으로 달아도 80만 킬로와트가 넘는 4기의 설비에서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은 막대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인천에 허용된 배출총량의 절반 가까이 집어삼킬 정도다. 앞으로 4기가 다시 추가된다면 어찌될 것인가. 인천에 터 잡은 산업체들은 사업 규모를 확대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건만, 정부와 전력회사는 국가를 위해 시종일관 참으라 한다. 반대하면 지역이기주의자라고 몰아붙일 기세다.


우리보다 앞서 간 국가는 어떤가. 협정에 의거, 발전소 관리와 운영에서 비롯되는 환경문제를 모니터링하는 영흥화력발전소 공동조사단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발전소를 몇 군데 방문했는데,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저감장치는 아주 훌륭했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발생은 어느 발전소나 줄일 방법을 찾지 못하지만, 우리의 대기오염물질 처리 능력은 독일과 일본, 스페인과 미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배출기준은 우리 발전소가 오히려 엄격했다. 공동조사단이 이해하기 어렵게, 화력발전소들을 도시 한복판에 세운 독일은 건설할 때 시민의 강력한 반대가 없었느냐는 우리의 질문을 언뜻 알아듣지 못했다. 질문의 의도를 설명하자, 모든 자료를 공개하며 합의하므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답했다. 그럴지 모르는데, 처음부터 그랬을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가 드물게,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기까지 모든 분야를 하나의 기업이 독점한다. 그렇게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한국전력주식회사가 2001년 발전 부문을 6개의 자회사로 나누었지만 자회사들의 의사결정권은 미미하기만 하다. 한국전력주식회사도 무소불위는 아니다. 사사건건 간섭하는 정부의 지배를 받는다. 발전 시설의 증설과 폐쇄는 물론이고 전력요금도 자율적으로 책정하지 못한다. 전력회사끼리 경쟁도 담합도 불가능하다는 건데, 그 점이 소비자에게 유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서비스나 가격 인하 경쟁은 물론 없다. 각 전력회사들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 지배하는 상층부의 눈치를 살필 따름이다. 발전소 증설이나 핵폐기장 건설과 같은 사안에 공청회라는 요식행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소비자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아도, 민원을 듣고 딴청을 피워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책임질 일도 없다.


발전은 물론, 송배전 회사가 지역마다 다르게 자리잡아 서로 서비스를 놓고 경쟁하는 외국에서 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전기요금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당연히 저렴하다. 최첨단 저감장치를 설치해도 석탄 소비량이 늘어날수록 대기오염물질 배출은 비례해 늘어나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그만큼 막대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 불이익을 충분히 해소할 장치 없다면 시민들이 발전소를 기피하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그러므로 전력회사는 예상되는 모든 문제와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발전 방식과 용량을 소비자와 의논하고, 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시민들의 감시를 허용해 안전은 물론 오염물질 배출 최소화하는 노력을 다한다. 그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온 전력회사는 지역에 일자리 제공으로 그치지 않고 가격을 낮게 책정한다.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최근 한 에너지 전문가는 독일 베를린시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청원에 따라 시의 출자로 발전소와 배전회사를 설립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청원이 성사되려면 주민투표가 필요한데, 주민투표에서 다수 찬성을 얻으면 청원 법안은 의회에서 의결한 법안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청원을 이끄는 단체는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는데 일찌감치 필요한 수를 훌쩍 넘게 확보했다고 그 전문가는 전했다. 베를린의 340만 시민도 머지않아 가격이 내려간 전기를 공급받게 될 것인데, 베를린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인천은 참 초라하다. 필요한 전기의 근 3배를 생산하지만 요금은 전기 자급이 3퍼센트에 불과한 서울과 똑같다. 청원운동을 벌이는 베를린 시민들은 불이익에 대응하려 하지 않는 인천시와 인천시민을 이해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잘못된 전기요금 체계를 바로잡아야

 

독점은 독선을 낳는다. 최근 불거지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의 비리와 그 때문에 발전 설비가 불시에 멈추게 되는 현상은 사실 예견되고 남음이 있다. 감시 통제할 조직이 따로 없거나 부실할 경우, 부정은 어떤 분야든 예외 없이 싹트지 않던가. 원자력발전소를 추진하는 사람에게 감시와 통제를 맡기면 웬만한 문제는 거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불시에 멈추는 원자력발전소의 속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원자력발전소는 용량이 거대하다. 그 정도 용량의 전기가 한꺼번에 끊어지면 예비전력이 갑자기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한 대부분의 화력발전소는 소비지와 거리가 먼 곳에 밀집돼 있다. 고온 고압의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는 우리나라 3면의 바닷가를 차지했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초고압 송전선과 송전탑은 부챗살을 닮았다.


대용량의 원자력발전 설비들이 수요가 한참 늘어나는 계절에 작동을 잇달아 멈추자 당황한 정부는 시민들을 향해 전기 소비 절약을 주문하지만, 시민들이 절약한다고 아슬아슬하다며 엄설 떠는 예비전력이 성큼 늘어나는 건 아니다. 온도계 살피며 에어컨을 잠깐잠깐 켜는 소비자들은 구비해 놓은 가전제품에 비해 전기 소비를 진작 최소화해왔다. 누진세가 무십기 때문이다. 지난 110일 오전 10, 민방위훈련도 아닌데 느닷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10분 전 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전기를 절약하자어쩌고 하는 문서를 더듬거리며 읽었다. 전기가 부족해지면 산업이 마비되고, 가장은 직장을 잃어 자식들 굶주리게 된다고 낡은 스피커는 지직거렸다. 그런가?


정전을 대비해 필요하거든, 미리 만든 지침에 따라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이나 기업, 그리고 대형 건물과 관공서들이 진정성 있게 훈련하면 될 일이다. 왜 애꿎게 주택에 방송하고 아파트 단지에 사이렌을 틀어대는 겐가. 씁쓸한데, 누구의 의도였을까. 시국이 하수상하니 넘어가기로 하는데, 전력당국의 입맛에 길든 우리 주류 언론의 기자들이 현장, 또는 보도 자료가 깔린 관련 기관의 안락한 기자실에서 겨울철 정전 대비 위기 대응 절전훈련이 차분하게 진행되었다는 기사를 쓸 무렵, 인터넷 공간은 부글부글 끓었다. 산업 마비 운운하며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더 지으려는 속셈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도 그럴 게,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이 거세질 때마다 반복한 절차가 아니었던가. 역시나, 이후 열흘도 못돼, 정부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부지 지정 절차에 들어갔고, 화력발전소를 넉넉하게 짖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이때, 전기 소비 절약을 위한 절전운동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주류를 자칭하는 언론이 꺼낸 통계는 우리가 전기를 무척 낭비하는 시민이라고 질책한다. 우리보다 소득이 거의 두 배인 유럽의 많은 국가보다 일인 당 전기 소비량이 더 많다고 다그치지 않던가. 한데 이상스럽게 가정 소비량은 우리가 훨씬 적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누진세가 무서운 가정보다 터무니없게 싼 전기를 무한히 공급받는 영역이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2007OECD는 우리 가정의 전력 소비량은 일본과 유럽의 절반, 미국의 4분의1에 불과하다고 자료를 제시한다. 반면 전기 소비량이 가장 많은 기업은 유럽 국가의 절반의 가격을 적용받는단다. 헐값이다 보니, 기업은 신바람이 났다. 전기 수요자의 1.2퍼센트에 불과한 대기업이 전체 전력의 64퍼센트를 소비하는 기현상을 촉발하게 했다.


밥이 쌀보다 가격이 낮은 현상은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다. 기업과 산업에 공급하는 전기의 요금이 석유나 가스보다 저렴하게 책정되는 현상이 그렇다. 그런 요금 체계에서 낭비는 부추겨질 수밖에 없다. 영업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은 에너지 효율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에너지 효율화 기술을 개발할 이유도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제 경쟁력에 치명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심화된다면 머지않아 수출상품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재하자는 국제사회의 논의가 구체화될 텐데, 그때 녹색경영을 외면한 우리 기업의 제품은 세계시장에서 외면될 것이다. 우리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과 독일에 비교할 때, 동일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우리는 일본의 3.1, 독일의 1.9배의 전기를 소비한다고 한국전력주식회사 산하 경영연구소에서 20124월 분석한 바 있다. 과소비는 기업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름철 손님을 유인하려고 냉방기를 거리로 가동하는 고급 상가에서 낭비하는 전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역시 가격이 저렴한 탓인데, 정부는 엉뚱하게 개개의 가정에 엄포를 놓는다. 발전 설비 증설을 위한 꾐수일까.


지난 11020분 동안의 절전 훈련으로 원자력발전소 8기를 끈 효과가 있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렇다면 가정의 소비자 겁박하지 않고 산업 설비의 가동 시간만 조절해 전기 소비량을 분산해도 전력 위기는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업의 전기요금을 고작 4퍼센트 인상했다. 그러면서 가정용까지 덩달아 2퍼센트로 올리는 정책을 휘둘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자국의 원자력발전소 52기 중 50기를 끈 일본에서 전기 공급 중단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전력 예비율이 떨어진다고 자국민을 겁박한 적도 없다. 지난해와 지지난해, 전기의 거의 4분의3을 원자력발전에 의존하는 프랑스가 독일의 전기를 긴급 수입할 때가 많았다. 독일은 자국 원자력발전소를 절반 이상 껐는데, 이유는 무엇일까.

 

 

발전차액지원제도의 효율적 운용 필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독일 정부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원자력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성직자, 원로 정치인, 재계 인사, 그리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인문사회 전공의 대학교수 17명이 참여한 그 위원회는 8주 동안 활동한 뒤, 2022년까지 독일에 존재하는 원자력발전소 17기 모두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8기를 중단했는데, 그러자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력 부족을 이유로 프랑스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수입하게 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일 경우가 많았다. 59기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어김없이 생산하는 전기를 거리낌 없이 소비하는데 익숙해진 프랑스의 낭비구조 탓이었다. 많은 프랑스인들은 취사와 난방까지 전기로 사용하는 생활에 젖었는데, 오래된 원자력발전소에서 고장이 자주 발생하면서 공급이 그때마다 뭉텅뭉텅 중단되자 황급히 독일에서 수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유럽 최대의 산업국가인 독일이 무슨 배짱으로 자국의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작심한 걸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2011, 이미 태양과 바람에서 얻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비율이 전체 전기 에너지의 20퍼센트를 넘은 국가가 독일이었다. 독일은 자신감이 넘친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한 술 더 뜬다. 2050년까지 사용하는 전기를 모두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에서 확보하려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단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 독일의 태양빛이 그리 강하지 않고 북해 연안을 제외하고 바람이 특별히 거세지 않지만 개의치 않는다. 관련 전문가들은 독일의 야심찬 계획이 달성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 독일은 물론, 독일 이외의 국가,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도 독일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 정책의 성공 요인으로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제도가 햇빛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개발에 시민 개개인이 선뜻 투자하도록 이끌었다는데 적극 동의한다. 햇빛발전만이 아니다. 설비의 규모가 큰 풍력발전에 자본을 투자하는 중소기업도 많다. 농촌 지역은 가축 분뇨나 음식물 쓰레기를 전기 생산의 재료로 활용하고, 부산물로 나오는 양질의 유기질 비료를 들판에 뿌린다.


마을 단위, 또는 시민 개개인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 자신이 사용하더라도 남는 전기가 있게 마련이다. 발전차액지원제도는 남는 전기의 전량을 전력회사가 일정액으로 사들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다고 전력회사가 앉아서 손해보는 건 아니다. 정부는 전력회사에 상응하는 보조금을 지원한다. 남는 전기를 전력회사에 팔면 이윤이 발생한다. 그 이윤은 더 많은 개인 또는 마을의 에너지 자급을 유도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확보를 위한 민간의 노력은 관련 기술을 나날이 개선하게 만드는 긍정적 효과로 이어졌다. 발전차액지원제도의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다.


발전차액지원제도는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이제까지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외면했던 일본이 작년 7월부터 시행했더니 결과는 놀라웠다. 경제산업성은 2012년까지 250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민들의 호응으로 목표의 78퍼센트인 178만 킬로와트를 3개월 만에 달성했다는 게 아닌가. 원자력발전소 2기에 해당하는 전기를 생산한 것이다. 10킬로와트 수준의 태양광발전 설비 10만 건이 주택을 중심으로 빠르게 설치되었지만, 비 주거용으로 기업이 추진하는 햇빛발전과 풍력발전도 목표를 초과하고 있다고 일본의 언론은 자랑스레 전했다. 현재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개발 속도는 일본이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아서 정지된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대체할 수 있기를 일본의 탈핵 시민단체들은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일보다 햇빛의 양이나 질이 떨어지지 않은 국가 중의 한 곳이다. 하지만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활용 비율은 2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니, 우리의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200110월에 제정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 이용 보급 촉진법에 따라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운용해왔지만 유명무실했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제도가 알려지지 않은 탓이 컸는데, 유럽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 활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시민사회의 관심이 서서히 커져갈 무렵인 20103, 지난 정권은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중단하고 말았다. 대신 전력회사가 신재생에너지를 일정 비율 확보해야 하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시행했다. 제도가 바뀌면서 자신의 지붕, 교회나 학교 지붕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려던 사람들은 의지를 꺾어야 했다.


200912,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열린 덴마크 코펜하겐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우리 정부는 한국의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대비 30%를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10위 이내이자 무역 10위 권 국가답지 않게 소극적이라고 빈축된 약속마저 물거품이 될 모양이다.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는 2027년까지 화력발전소 18개소를 비롯해 총 2,857만 킬로와트의 발전 설비를 증설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의 화력발전소 증설 발표는 국제사회에 호언한 약속을 저버리겠다는 선언과 같다. 코펜하겐 약속을 이행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신재생에너지 의무 할당제를 도입했다고 지난 정권은 주장했지만 지금까지 그 실정은 물론 일정도 순조롭지 않다. 전력회사는 의무적으로 2012년까지 생산하는 전기의 3퍼센트를, 2020년까지 10퍼센트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도록 전력회사에 대한 의무규정을 두었지만 작년 말 실정은 목표의 절반에 그쳤다.


정부가 거론하는 신재생에너지는 발전차액지원제도의 부활을 요구하는 시민단체가 생각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내용이 다르다. 신재생에너지의 범주에 수소에너지와 연료전지, 그리고 조력과 수력발전에 망라되지만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그 목록은 없다. 전환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커서 전환된 에너지의 효용이 크지 않다면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할 수 없는 노릇인데, 수소 에너지와 연료전지, 그리고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는 조력발전과 곡물을 가공하는 바이오 연료들이 그렇다. 시민단체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에서 그런 비효율적 에너지는 제외한다. 문제는 더 있다. 발전 설비가 막대한 기업들이 2020년까지 생산하는 전기의 10퍼센트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려면 그 시설 규모를 무리하게 키워야 하고, 그 과정은 무리를 넘어 무모하게 진행될 공산이 크다. 마음 급한 전력회사들이 실제로 문화재 보호지역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려하거니 해양생태계의 풍요로운 요람인 강화도 일원의 갯벌을 조력발전으로 위협하려 한다.

 

 

시민이 참여하는 재생가능한 에너지 정책이 활성화되어야

 

1975, 시민 동의 없이 주정부에서 유치한 원자력발전소를 강력한 반대로 무산시킨 독일 남부 도시 프라이부르크의 시민들은 그 사건을 계기로 에너지 자급에 대한 자각을 되새겼다. 11년이 지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되면서 후손에 대한 책임의식이 더욱 강해진 시민들은 태양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행동에 들어갔다. 그 결과 프라이부르크가 오늘날 대표적 환경도시로 국제사회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독일 다른 도시의 의지가 프라이부르크보다 부족한 건 아니다. 독일 정부가 일찌감치 도입한 발전차액지원제도가 기여한바 크다는 사실, 부정하는 독일인은 거의 없다.


전기는 지역에서 자급할 때 가장 안정적이다. 태양광 패널과 같은 작은 발전 설비가 지붕마다 분산 설치돼 있다면 여기저기에서 작은 고장이 발생해도 전력을 그때마다 보완할 수 있다. 전기를 지역에서 자급하면 마을과 국가의 경제도 안정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관련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일자리는 광범위하다. 기존의 대형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보다 10배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경제학들은 평가한다. 우리의 발전산업 노동조합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전기를 자급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마을이나 개인이라고 해도 가끔 부득이하게 대형 전력회사의 전기를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시민들은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 그러므로 전력도 경제생활도 위기를 맞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시민들의 노력은 정부와 기업으로 이어져 가전제품이든 주택이든 에너지 효율화에 부응하게 된다. 독일을 비롯해 풍력발전이 활발한 북유럽의 경제가 단단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6개 전력회사에 발전 사업이 분할되었더라도 송전과 배전을 독점하며 지위를 유지하는 한국전력주식회사의 태도는 어떤가. 사전에 지역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논의하며 대안을 찾아 발전 설비를 장치하거나 교체, 또는 철수해왔던가. 신규 원자력발전소 사전환경성검토 초안에 대한 주민설명회에 앞서 유치를 찬성하는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웃에게 소화기를 분무한 영덕군의 사건은 무엇을 웅변하나. 정부와 전력회사는 주민들과 치우치지 않은 논의를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관련 정보를 주민들이 납득할 정도로 공개해왔던가. 영덕과 삼척에 추가할 원자력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765천 볼트의 초고압 송전탑이 밀양과 청도의 산간과 농촌마을을 관통한다. 그 시설을 반대하는 주민을 국익을 해치는 지역이기주의자로 몰며 공사를 강행하려는 한국전력주식회사는 밀양 송전탑 전문가 협의체를 파행으로 몰았다. 과연 정의로운가.


2004, 과학기술의 정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하는 시민단체 시민과학센터원자력 중심의 전력 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전력 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합의회의를 개최했다. 원자력 중심의 전력 정책을 고수하는 전문가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적극적 이용을 지지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공평하게 묻는 각계각층 17명의 독립적 시민이 합의를 전제로 긴 토론을 수행한 것이다. 3일 동안 심도 있는 논의를 여러 차례 민주적으로 실시했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치우치지 않게 의견을 들으며 심층 논의한 17명의 시민들은 고심 끝에 결론을 냈다. 원자력발전소를 증설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을 다하면 바로 폐로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합의회의에 참석한 한국전력주식회사와 정부는 시민들의 결론을 정책에 일체 반영하지 않았다.


2010년 현재, 우리는 원자력에서 30퍼센트, 석탄 40퍼센트, 액화천연가스 20퍼센트의 전기를 생산하는 반면, 석유 5퍼센트, 수력이 포함된 신재생에너지에서 2퍼센트에 불과한 전기를 생산하는 실정이다.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실종된 상태에서 신재생에너지 의무 할당제가 얼마나 유효할지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5월 원자력발전소 하나 줄이기 차원으로 서울시는 서울시 햇빛발전 지원계획을 수립해 50킬로와트 이하 소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의 장착부터 판매까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원받은 햇빛발전 시설로 1킬로와트 생산할 때마다 5년 동안 50원 보조하겠다고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체계화했다. 그런 정책이 서울시에서 입안되도록 이끈 시민단체의 역할이 지대했다. 발전차액지원제도에 이은 햇빛발전의 긍정적 효과를 시민에게 알리고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6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행동에서 발표한 성명서처럼, 수 십 년의 독점구조가 계속되는 우리나라의 현 전력체제에서 부정부패가 만연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부패로 인해 원자력발전소가 불시에 정지하고 전력대란이 우려되는 현상은 이미 예고된 바와 다르지 않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 그리고 최근 일본에서 실천적으로 증명되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도입하든, 대형 전력회사들이 전기 생산과 공급을 과점하는 미국이 선호하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를 활성화하든, 우리 정부와 전력회사는 고루한 기존 생각을 이제 일신해야 한다. 1987대체에너지 기술개발 촉진법이 제정되면서 보급해야 할 태양이나 바람처럼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의 이용을 활성화하려면 지금과 같은 독점구조 하에서 실천력은 확보할 수 없다. 앞서 경험한 국가들의 숱한 사례에서 보듯, 에너지 정책에 시민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어야 한다.

 

 

재생가능한 에너지 활용은 시대의 명령

 

도심 복판에 버젓이 화력발전소가 서 있는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은 발전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고온 고압의 수증기를 활용해 지역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며 발전소의 에너지 효율을 80퍼센트 가까이 끌어올린다. 우리도 그 기술을 충분히 활용할 자본과 인력이 있다. 실제 지하로 이전하려고 하는 서울화력발전소에서 전기 생산과 더불어 열을 활용할 예정이다.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을 관통하는 넥타강과 이자강은 한강에 비해 수량이 훨씬 작고 폭도 좁다. 한강 정도의 규모의 하천이라면 1000만 서울시민들이 사용할 전기를 너끈히 생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난방과 온수도 충분히 공급 가능한 발전소를 허용할 게 틀림없다. 그리 될 경우, 먼 거리 송전으로 인한 전력 낭비 뿐 아니라 발전소 증설과 송전탑이 일으키는 지역 민원을 능히 잠재울 것이다. 물론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진 서울시민들의 거센 반대를 극복해야 가능할 테지만, 서울시민들은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과 그 주민들의 불이익과 고통을 이해하고, 상응하는 보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배려해야 옳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발전소가 없어 먼 곳에서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 곳(서울과 수도권)의 전기요금이 발전소가 있는 지역과 다르지 않은 희한한 국가가 우리나라다. 정의롭지 않다. 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와 대기오염물질로 불이익을 받는 지역임에도 희생만 강요하는 국가는 문명사회의 하늘 아래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정의로우려면 비용과 편익의 균형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발전소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보상이 제공되어야 옳다. 균형은 지역에서 그칠 수 없다. 세대의 균형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드리마일과 구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가 드러낸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은 재론이 불필요하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는 한, 피할 수 없는 핵폐기물의 치명적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 수 십 만년의 세월이 지나도 수 억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치명성이 줄어들지 않는 핵폐기물은 현재의 과학기술로 처리할 방법이 없다. 앞으로도 처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는데, 우리 정부는 아직도 원자력발전소 중설과 수명연장을 여전히 서슴지 않는다. 시대착오다. 미증유의 사고를 예견하는 한, 원자력발전은 후손에 대한 범죄에 가깝다. 화력발전이 나을 것도 없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대기에 농축되어 전에 없는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마당이 아닌가. 바닥이 드러난 화석연료를 걷잡을 수 없게 태우는 화력발전은 지금처럼 지속될 수 없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활용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요, 시대의 명령이다.


지구촌의 석유는 이미 고갈을 앞두고 있다. 시추해 끌어 올리는 석유의 양에 비해 소비가 더 많아진지 오래 되었다. 석탄이나 천연가스도 한계가 분명하고 바닥이 그리 깊지 않다. 원자력발전은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전기를 어떻게 확보해야 후손의 삶이 지속가능할까. 시설을 갖추는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수력이나 지열, 그리고 조력에 한계가 분명하다면,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 자연의 에너지, 다시 말해 바람과 햇빛이 유용할 수밖에 없다. 많은 경험이 증명하는 사실인데, 그런 재생 가능한 에너지라고 해도 전기로 바꾸는데 어느 정도의 석유는 필요하다. 석유가 없다면 재생 가능한 전기도 구할 수 없는데, 석유는 고갈을 앞두고 있다. 다음세대까지 펑펑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멀지 않은 조상이 살아왔듯,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석유 없이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아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먼 이야기로 들린다, 자식의 건강한 내일을 걱정하는 아비로서, 우리는 햇빛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활용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이, 반갑게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햇빛발전협동조합이 태동하고 있다. 조합원이 되어 출자를 하고 때로 햇빛발전을 위한 행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면 좀 뿌듯해질 것 같다. 전기도 아끼며 효율을 생각할 것 같다.


한데 많은 햇빛발전협동조합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지붕을 찾지 못한다고 수익이나 배당을 원치 않는 조합원들에게 하소연한다. 전 정권이 폐기한 발전차액지원제도의 부활에 앞서, 지방자치단체와 종교기관의 협조와 참여가 절실해 보인다. 이참에, 인천에 막대한 대기오염물질과 미세먼지를 배출하면서 이산화탄소를 거침없이 내뿜으면서 뒷짐지는 남동화력주식회사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흥화력발전소에서 막대한 온실가스,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초미세먼지, 그리고 온배수를 배출하는 걸 잘 아는 정부와 전력회사는 정의를 생각하는 행동을 인천시민에게 보여야 마땅하다. 그를 위한 범시민적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황해문화, 80, 2013년 가을호)

 
 
 

서평·추억

디딤돌 2008. 8. 27. 20:49


들어가는 글


7년 전, 독일의 여러 도시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도시 공간의 생태적 배치를 고민하는 서울시립대학교 이경재 교수와 그의 에코플랜연구실 답사 일정에 끼어 함부르크에서 하노버와 베를린을 지나 슈투트가르트까지 공원과 도시계획의 현장을 걸으면서 도시의 녹색 가치를 몸으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름에도 운 좋게 독일을 방문하게 되었다. 슈투트가르트는 이번에도 포함되었다. 기대가 컸다. 7년 전에는 그저 눈이 휘둥그레지며 다녔다면 이번에는 그 원인과 결과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7년 전에 마냥 감탄했던 여러 녹색 정책들은 계속 추진되고 있는지, 추진된다면 도시의 녹색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7년 전의 모습이 독일의 보편적 상황인지, 다른 도시는 어떤지, 7년 전에 다닌 도시가 유난스러웠던 건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7년 전에는 걷고 또 걸으며 체험했다. 현지 공무원의 안내가 없지 않았지만 간단한 현장 설명이었지 기획 단계의 타당성과 현장 접목의 고충을 심도 있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에코플랜연구소는 방문 전에 충분히 공부를 했다. 설명을 미리 들으면 그들의 시각으로 현장을 예단하게 되고 우리나라로 돌아와 잘못 적용할 수 있을 거로 판단했는지, 이경재 교수와 에코플랜연구소는 체험을 바탕으로 편견 없이 공부할 수 있기를 참여자에게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 추측이 맞는다면 의도는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교수와 연구원으로 성장한 당시의 대학원생들이 독일에서 보고 느끼고 토론했던 사례를 우리 상황에 적합하게 적용하려 노력하는 걸 보면. 이번에는 도시계획을 담당한 독일 공무원과 전문가의 설명을 체계적으로 듣고 현장을 함께 돌아볼 것이라 했다. 연륜이 쌓이면서 내공이 생긴 모양이다.

 

독일에서 공부하다 서울시립대 에코플랜연구실로 자리를 옮겨 연구에 전념하는 두 전문가의 헌신적 사전조사와 안내로 이루어진 이번 여행은 7년 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공부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비록 생태도시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 평가나 분석은 불가능하지만 이번 여행을 계기로 도시를 녹색으로 조성하고 가꾸어가려는 이들의 원칙과 자세, 그리고 그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인식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장마가 한창이던 7월 22일부터 폭염이 계속되던 8월 6일까지, 보름동안 이어진 여행은 독일 남부의 3개 도시를 집중적으로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흔히 ‘환경수도’로 일컫는 프라이부르크와 ‘바람골’로 유명한 슈투트가르트, 그리고 1976년 올림픽을 치룬 뮌헨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알프스와 이어진 베르크테스가덴 국립공원을 잠시 탐방했는데, 버스로 이동하는 중간에 몇 군데 도시에서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가졌다. 프랑크프르트에서 프라이부르크로 이동하는 중간에 만나는 작은 도시 비스바덴에서 가로수와 공원녹지 관리를 보고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길에 독일의 자랑인 흑림(슈바르츠발트)을 돌아보았으며 뮌헨으로 들어가기 전에 노이-울름에서 주 정원전시회도 둘러보았다.

 

7년 전에도 그랬지만 많은 여비를 들여 공부하는 이번 여행은 관광과 거리가 멀다. 에코플랜연구실을 움직이는 교수와 연구원, 대학원 박사과정과 석사과정, 그리고 연구실 출신인 타 대학 전임교수와 연구원 들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그도 저도 아닐 뿐더러 전공 방향마저 많이 달라 깊은 이해가 애초 불가능한 나는 그저 방해되지 않게 따라다니기에도 벅찼다. 곁눈질하고 엿들으며 의미를 짐작하면서 간간이 질문하며 나름대로 소화하려고 마음먹었다. 심도 있는 여행이었지만 늘 시간에 쫓겼고 피곤했어도 얻은 게 많았다. 그 동안 기여한바 거의 없는데 참여 기회를 준 에코플랜연구실의 특별한 배려 덕분에 독일 여행에 두 차례나 무임승차했다. 여행 내내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자를 키우고 연구 활동에 전념하는 에코플랜연구소와 달리 이번 여행의 목적은 내게 어떤 확신이었다. 학문적으로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어도 성취 욕구는 강했다. 도시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칠갑을 하고 모자라 초고층빌딩 신축을 자랑하는 우리의 풍조를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그러자면 근거가 분명한 확신이 필요하다. 7년 전에도 보았지만 도시 곳곳에 펼쳐진 드넓은 녹색공원이 시민들의 자부심이 된다는 걸 확고하게 인식해야 했고, 그런 정책을 펼치는 공무원의 의지와 자세를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세계는 닥쳐올 석유정점과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국가와 지역 단위의 실천과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건만 우리는 한가롭기 짝이 없다. 다른 지역에 비해 온난화 속도가 두 배 이상 빠르데 국가든 지방단체든 개발 바람이 여전히 거세다. 환경운동을 하는 동물생태학 전공자의 처지로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정체성이 없는 도시에서 시민은 뿌리내리지 못한다. 시민의 참여 없는 개발은 정체성은 물론 정주의식을 유발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목하 횡행하는 개발이 대개 그렇다. 독일은 어떤 식일까. 부지가 확보되면 녹지부터 조성하는 독일은 개발에 무척 신중하다. 도시개발의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은 적절히 반영한다고 한다. 도시개발의 철학을 독일은 어디에 두고 있을까. 개발 과정에서 갈등은 없을까.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그런 것들을 보아야 했다. 생태주거단지를 어떻게 왜 조성하고 그 곳에 사는 시민들의 모습은 어떤지, 공원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도시를 계획하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도시를 관통하는 하천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두루 살펴본 이번 여행의 주제를 나는 ‘녹색’으로 잡았다.

 

 

생태주거단지


함부르크의 작은 마을에서 ‘생태주거단지’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7년 전이다. 초원에 둘러싸인 그 주거단지는 건축 기자재를 자연에서 충당한 ‘생태건축’을 선보였고 허드렛물과 축산폐수를 자연에서 정화한다는 걸 안내판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 간 생태주거단지는 엑스포 이후 조성했다는 하노버에 있었다. 자연환경의 훼손을 우려해 엑스포 개최를 반대하는 시민을 생태를 표방해 설득한 하노버 시 당국은 행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 생태주거단지를 건설했으며 방문자를 위해 홍보판을 세웠다. 지붕에 풀을 심거나 태양광 패널을 단 저층의 주택단지도 새로웠지만 빗물을 지하로 흘러들어가도록 설계한 모습이 당시 이채로웠다.

 

흙에 짚이나 나무를 섞어 강도를 높인 벽채로 건물을 짓는 방법을 요사이 생태적이라고 내세우지만 세계 어느 지역도 멀지 않은 과거에 모두 그런 집과 건물을 지었다. 한데 ‘획기적’이라는 수사를 덧붙인다. 7년이 지났지만 독일이나 우리도 생태건축을 엄두내지 못한다. 비용과 관리의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생태건축의 보급을 활성화하려면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겠다. 지역에 맞는 생태건축을 체계적으로 연구개발하고, 그런 주택의 장점을 수요자에게 알리는 정책과 운동이다. 함부르크에서 엿본 시도는 아직도 역부족이다. 자연 소재를 활용하는 집은 드물었다. 우리의 경우, 생태건축이 없지 않지만 개인의 유별난 호사로 치부하곤 한다. 주택을 가족과 뿌리내릴 주거공간이라기보다 투자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아닌가. 정책적 배려가 없는데 기존 건설업체가 이윤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배제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초화류가 식재돼 녹화한 지붕은 도시의 녹지면적을 높일 뿐 아니라 주택으로 끊어진 생태계를 연결하고, 그 집의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고 한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는 거다. 지붕 녹화를 위해 건물의 강도를 보강할 필요가 있으나 가벼운 흙을 개발한 독일은 기존 건물을 크게 수리하지 않고 풀을 심고 있었다. 7년 전 이야기다. 대부분의 식수를 지하수에 의존하는 독일은 강수량이 우리의 3분의2에 불과하므로 지하수의 수량 확보는 아주 중요하다. 7년 전에 본 독일은 신도시는 물론, 기존 주택까지 빗물의 지하 침투를 유도하고 있었다. 홈통이 닿는 처마 아래를 깊게 파 자갈을 넣고 그 위에 키 작은 초화류를 심는 공사였다.

 

남부 독일의 3개 도시에서 생태주거단지를 다시 돌아보았다. 흙으로 지은 주택은 볼 수 없었지만 나무를 활용한 주택은 주거단지 내에 많았다. 독일의 목재 생산량이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빗물 지하화를 위한 설계는 7년 전에 생소했는데 어느 곳이든 일상화된 모습이었다. 지붕에서 이어진 홈통이 화단에서 열리고, 주택의 화단을 잇는 작은 도랑을 따라 계단식 잔디밭으로 물길은 이어지게 돼 있다. 한 방울의 빗물도 바로 강으로 흘러들지 않을 것 같다. 지붕 녹화는 당연해보이고 녹화되지 않은 지붕에는 거의 태양광 패널이 붙어 있다. 녹지는 어느 방향에서나 눈에 들어왔다. 설계부터 녹지를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라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가정마다 제 집 뜰에 나무와 풀을 심었고 학교와 관공서와 상가 주변도 잔디와 나무로 장식돼 있었다.

 

프라이부르크의 보봉을 찾았다. 보봉은 2차 세계대전 후 주둔하던 프랑스 군이 1992년 철수하면서 생긴 부지로 탄소 에너지로부터 자유로운 도시를 지향한 생태주거단지로 변모했다. 1995년부터 3차에 걸쳐 1100여 가구가 입주한 보봉은 시민 참여의 긍정적 사례를 보여주는 주거공간이다. 계획 단계에서 건축 과정에 이르기까지 연방정부와 시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민 참여가 독려돼 자동차가 필요 없는 도시로 만들었고, 그 결과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2차 유엔정주회의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하루에 6천 명 정도가 보봉을 방문하여 민원이 발생할 지경이라고 한다. 건물의 지붕마다 넓은 태양광 패널을 단 보봉은 에너지 자급을 넘어 판매도 가능한 플러스 에너지 시스템을 구가한다. 3중 유리와 30센티미터 이상의 벽체 단열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그 뿐이 아니다. 단지 내에 승용차가 다닐 수 없게 설계하자 이사온 주민의 절반 이상이 자동차 소유를 자제했다고 한다. 대신 단지 내에는 자전거가 자유롭고, 시내와 전철이 연결돼 원활한 교통 체계를 구축했다. 승용차가 불필요한 도시로 변한 것이다. 보봉에는 주차장이 개발 주택에 마련되지 않았다. 자동차는 공동주차장에 두어야 한다.

 

보봉보다 10년 먼저 계획해 1, 2단지가 완료된 리젤펠트 생태주거단지는 지금도 개발이 진행된다. 다음 날 찾아갔다. 2010년까지 모두 12000명의 시민이 입주할 예정인 리젤펠트는 과거 프라이부르크의 생활오니가 모여들었던 침전습지였으나 현재 산뜻한 주거단지와 철새가 날아오는 생태보전지역으로 변모되었다. 전체 면적의 4분의3 이상을 녹지로 조성해 쾌적한 주거공간을 도모하고 칠성장어가 서식하는 작은 하천을 단지 내에 보전하였으며 바람이 통과할 수 있게 단지를 설계한 리젤펠트는 에너지 저감 대책을 제시해야 건축허가를 내주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주택은 외부 에너지가 불필요한 이른바 ‘패시브하우스’ 개념으로 건축되어 건축비가 15퍼센트 이상 상승했지만 시정부는 장기저리의 금융을 지원했다. 덕분에 85퍼센트의 에너지 절감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슈투트가르트의 샤론하우저파르크 생태주거단지를 찾았다. 1993년 철수한 미군부대 터를 800명의 주거공간으로 개발한 곳이다. 완만한 지형을 살린 주택단지 사이로 넓고 긴 녹지대를 조성한 것이 두드러진다. 폭 40미터에 길이 1킬로미터에 이르는 계단식 잔디밭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안전한 녹지이자 빗물을 지하로 침투시키는 역할을 한다. 단지 내를 이동하지 못하는 자동차는 우회해 주택 지하에 마련된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주택단지와 이어진 초원에 조성된 어린이 놀이터는 물이 주제로 보인다. 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놀이시설에 어린이들이 몰려나와 즐기고 있었고, 주택단지 옆 초원에서 황조롱이를 피해 몰려다니는 여름철새 찌르레기 떼를 볼 수 있었다.

 

독일인의 발음으로 뮌헨은 뮌셴으로 들린다. 뮌헨의 생태주거단지는 1992년까지 공항으로 사용했던 부지를 개발한 ‘메세스타트-림’이었다. 중산층 16000명의 주택과 1만 개의 일자리를 갖는 상업과 사무 공간, 그리고 공원을 두루 갖춘 메세스타트-림의 주요 개념은 ‘생태’다. 550여 헥타르의 면적 중 240여 헥타르가 녹지로 조성돼 있을 정도다. 단지 내 승용차 통행은 엄격히 제한하지만 자전거는 자유롭다. 시내까지 18분 내에 이어지는 지하철이 확보돼 교통에 대한 민원은 발생할 것 같지 않다. 메세스타트-림은 지속가능한 주거단지를 위해 6가지 원칙을 세웠다. 주민의 휴양을 겸할 수 있는 녹지를 충분히 조성하여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도 도시의 기후를 낮추었으며 빗물 재활용하거나 지하로 침투될 수 있도록 설계한 점, 승용차 통행을 억제해 소음과 대기오염을 방지하고 재생 가능한 지열과 햇빛발전으로 탄소 의존형 에너지 체계를 극복하려 애를 썼다는 점, 공사 시 발생한 건축 폐기물을 단지의 기반 공사에 최대한 재활용하고 입주 후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를 중앙으로 분리수거해 철저히 재활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메세스타트-림에 들어선 상업지구 내의 건물 지붕은 세계 최대 면적의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지열발전이다. 지하 2000미터의 지열을 끌어내내 생산하는 전력으로 단지 내 수요의 80퍼센트를 담당할 정도라고 한다.

 

독일에서 새롭게 개발하는 주거단지는 대부분 생태주거단지로 보면 틀림없을 것 같다. 4층 이상의 주택은 찾아볼 수 없고 3층 이내의 주택의 지붕은 녹화되어 있다. 조성 면적의 3분의1 이상을 녹지로 확보하지만 주택과 상가와 사무 공간 주변에 조성된 녹지까지 합하면 단지의 50퍼센트 가까이 녹지가 차지하며, 녹지는 주민에게 개방된다. 나무를 아무렇게나 심는 건 아니다. 녹지 사이로 부는 바람이 단지를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최근의 주거단지일수록 단지 내 승용차 통행을 철저히 억제하는 대신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시설을 확보한다. 빗물 침투 시설은 어디나 공통이고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붙어 있는 것도 똑같다. 최근에는 패시브하우스 개념의 주택이 늘어나고 있다.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는 대부분 녹지 한가운데를 차지해 나무그늘에 드리워지며 나무와 모래와 같은 자연물질로 꾸며진다. 아스팔트 바닥이나 플라스틱 놀이기구는 눈에 띄지 않는다. 놀이터는 어린이만의 공간이 아니다. 손녀와 손자를 데리고 나오는 노인과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들이 반갑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녹색 공간으로 활용된다. 자전거 통행은 아주 편리할 뿐 아니라 활발해, 주말이면 주거단지 내의 공원이나 주거단지와 연결된 녹지대에서 가족단위로 패달을 밟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생태주거단지의 설계 대부분이 공모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 이채로운데, 우리와 달리 독일은 공모전의 공정성을 확신하는 모양이다.

 

최근 인천시장은 검단신도시를 확대 개발하면서 “수려한 자연경관을 고려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친환경도시’, 일자리를 창출하는 ‘자족형 도시’,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한 ‘에너지 절약형 도시’ 및 ‘대중교통 중심도시’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계획이 그리 미덥지 않다. 발표 이전에 시민과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26000가구의 입주 시기가 매우 빠르다. 2011년 12월부터 주택을 공급, 늦어도 2013년 상반기부터 입주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공모전은 고사하고 윤곽조차 없는데, 5년 만에 생태적인 주거단지가 완성될 수 있을까. 느닷없다. “광역 녹지축과 풍부한 수자원을 활용해 헥타르 당 127인, 녹지율 31퍼센트, 자전거 수송 분담률 30퍼센트 목표의 ‘친환경 도시’로 조성”되고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 도로가 폭 10미터 규모로 16킬로미터 구간에 만들어져 입체적으로 연결”된다는데, 서울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과 대학과 연구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하니, 장밋빛 청사진을 믿는 투기꾼부터 쌍수를 들고 접근하는 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주택거래신고지역과 개발행위허가제한지역으로 지정한 정부의 합동투기단속반 때문에 투기가 가라앉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강 되살리기


이번 여행에서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을 유심히 살펴볼 기회를 누렸다. 에코플랜연구소는 철근콘크리트로 싸바른 이후 오염된 도심의 하천을 어떻게 복원하는가를 학술적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그 방면에 전문성이 없는 나는 복원된 하천이 시민사회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 눈여겨보려고 했다. 제5공화국 말에 밀어붙인 ‘한강종합개발’ 이후 전국의 크고 작은 하천은 유행병처럼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 결과 굽이쳐 흐르던 직선으로 변하고 강폭은 좁아졌다. 매립된 하천 유역이 주택과 공업단지로 바뀌자 비가 내리면 흙탕물이 노도와 같이 흐르는 하천은 걸핏하면 넘치고 오염되었다. 강바닥은 오니로 덮이고 생태계는 괴멸되었다. 이제 시민들은 악취를 내뿜는 도심의 하천을 외면한다. 아예 복개하려고 든다.

 

서울 청계천은 복원과 거리가 멀다. 현란하게 치장된 배수구에 불과하다. 내린 비를 얼른 배제해야 하는 청계천은 여전히 직선이고 깊다. 한강물에 딸려들어온 물고기 이외의 생태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멋모르는 시민들이 눈을 휘둥그레 뜰 뿐이다. 직강화 된 하천을 청계천처럼 꾸미려는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을 다시 눈속임하려 드는 이때, 하천 복원이 가져오는 생태와 사회적 가치를 되짚어볼 필요가 충분하다. 우리보다 먼저 도심의 하천을 직선으로 만들었다 일찍이 낭패를 본 독일은 많은 비용과 시간과 성의를 들어 ‘자연형’으로 복원하려 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한데 주지해야 할 점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형이라는 것이다. 이제 와서 도시의 하천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할 방법은 없다. 자연과 유사하게 복원한 후 생태계가 어떻게 회복되는지 모니터링 할 필요가 남을 것이다. 남부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지 않을까.

 

프라이부르크를 동서로 가르는 드라이잠 강은 슈바르츠발트에서 기원해 라인 강으로 흘러드는 도심에서 30미터의 폭으로 흐르는 직선 하천이다. 드라이잠 강물의 일부는 도심으로 흘러들어가 여기저기를 도랑, 베히레로 흐른다. 과거에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생활하수와 인분과 쓰레기를 베히레에 버렸다고 한다. 얼마나 지저분하고 고약한 악취가 진동했을까. 수인성 전염병도 베히레를 매개로 쉽게 창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베히레는 관광자원이 되었을 정도로 말끔히 단장돼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흐른다. 도시의 홍수를 예방하고 시원한 바람을 유도하는 베히레에서 과거의 기억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베히레로 온갖 쓰레기가 모이던 드라이잠 강도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으로 오염되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맑은 물이 흘러 강 주변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다리 아래 스프레이 물감으로 그린 벽화가 화려한 드라이잠 강은 도심의 녹지축을 훌륭하게 담당한다. 오염원을 배제한 후 20미터 간격으로 낙차를 주어 산소를 공급해주고 있으며 자연스런 어도를 만들어 물고기의 이동을 배려하고 소수력발전 시설도 설치돼 있다. 나무와 풀을 심어 강변은 산책로, 강둑은 자전거를 위한 도로로 활용되는 드라이잠 강이지만 그 폭을 넓히지 못했다. 그러자면 기존 도시 공간을 잠식해야 할 텐데 그 비용은 염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차단되었던 지류를 연결하고 적절한 식재와 돌쌓기로 동물 서식공간을 확보하려 애를 쓰고 있다.

 

드라이잠 강이 흘러드는 라인 강은 산업화 물결이 거셌던 1870년대 3킬로미터에 달했던 강폭을 대폭 줄여 운하로 직강화하고 지류를 차단했다. 그러자 알프스에서 눈이 녹을 때면 강이 범람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시 당국은 이른바 ‘라인 통합 계획’으로 범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일시적인 저습지를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라인 강을 운하와 분리해 조정이나 카누를 즐기는 시민에게 배려하고, 강변의 울창한 숲을 휴양지로 개방한다면 지역 주민의 소득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설득으로 일정 지역의 숲을 유사시 저습지로 양보해달라는 제안을 하고 주민과 합의했다고 한다. 범람한 라인 강 물을 20일 정도 받으며 피해를 완충하는 저습지는 라인 강을 따라 13군데 필요하지만 아직 이웃 프랑스의 동의를 받지 못해 현재까지 한 군데를 확보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프라이부르크를 지나는 라인 강은 중류로 평소에도 물살이 거세고 수량이 많다. 일 년 내내 강수량이 일정한 유럽이라지만 알프스 눈이 녹는 계절만 조심하면 될까. 섭씨 30도 이상 오르지 않던 독일도 요즘 연일 무덥다. 우리가 방문한 때에도 35도를 오르내릴 만큼 뜨거웠다. 7년 전 거리를 누비는 독일 승용차에 에어컨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대부분의 자동차가 차창을 굳게 닫았다. 온난화의 영향인지 모른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알프스의 빙하가 사라질 것으로 유엔 산하 정부 간 위원회는 밝히고 있는데, 13군데 저습지 확보만으로 직선이 된 라인 강은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 운하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자연형으로 굽이치게 복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슈투트가르트에는 넥카 강이 흐르고 강변에는 벤츠 자동차공장과 화력발전소와 마을과 노천식당과 어린이 놀이터와 시민 휴식공간이 공존한다. 넥카 강 역시 강변을 철근콘크리트로 싸발라 풀 한 포기 없는 직선으로 단장했다. 하지만 슈투트가르트 시는 1993년부터 넥카 강의 복원에 십년이 넘게 투자하고 있다. 오염원을 차단하면서 깨끗하진 넥카 강을 자연형으로 복원한다. 콘크리트를 제거한 자리에 자연석을 배치하며 제방을 낮춘 공간에 생태공간을 조성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커서 공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국적 보험회사인 알리안츠에서 자금을 지원해도 그렇다. 그와 같은 복원공사는 시민의 성원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변의 화력발전소는 넥카 강물을 냉각수로 사용하고 터빈을 식힌 온배수는 지역의 난방에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슈투트가르트보다 현저하게 큰 서울도 생각을 고쳐먹을 필요가 있겠다. 다른 지역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며 생산한 전기에 전적으로 의존할 게 아니라 한강을 활용할 방안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알프스에서 발원해 도나우 강으로 합류하는 이자 강이 뮌헨 시를 관통한다. 이자 강이 있기에 뮌헨 시가 있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19세기 공업화로 직선으로 바뀐 이자 강은 유속이 빨라 바닥이 패이고 발전 목적으로 강물을 사용하면서 수량이 부족해 바닥이 드러나곤 했다. 그러다 알프스의 눈이 녹는 봄에 범람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온난화 이후 봄철 수량이 더욱 증가하자 문제가 심각해졌다. 자칫 뮌헨 시가 잠길 가능성까지 예측되는 게 아닌가. 뮌헨 시와 뮌헨 시가 속한 바이에른 주는 1995년부터 복원을 검토했다. 1998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하여 2000년부터 10년간 8킬로미터 구간을 본격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이른바 ‘이자 강 플랜’이다.

 

알프스와 가까운 남쪽 외곽 지역은 물을 잘 흡수하는 너도밤나무와 단풍나무, 도시를 지나간 북쪽 외곽 지역은 소나무와 참나무를 식재하며 자연에 가깝게 복원한다. 반면 도심 주변 지역은 휴양 목적과 부합하게, 도심 지역은 범람에 대한 안전과 휴양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복원하고 있다. 강폭이 넓은 외곽 지역은 강변의 콘크리트를 제거한 자리에 나무와 초본을 식재하였고 폭이 좁은 지역은 직강화 이전인 150미터로 확대하면서 유량도 늘렸다. 그를 위해 수력발전소로 가는 수량을 줄여야 했고 비용이 추가되었다. 발전소에 끼친 손해를 배상해야 했던 것이다. 강폭을 넓히는데 그치지 않았다. 100년 대비로 제방을 높인 강가에 웅덩이와 자갈밭, 그리고 소와 여울과 같은 다양한 하상을 조성해 담수어류의 산란장을 확보하면서 생물종 다양성을 도모하였다. 쓰레기가 넘쳤던 도시 주변 지역은 강폭을 넓힌 자리에 큰 돌과 자갈을 깔아 시민의 휴양을 배려했으며 둔치를 자전거 이용이 가능하도록 조성했다. 그래도 도심은 범람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관리 당국은 이자 강이 범람할 경우를 대비하여 강둑에 강물 유입을 신속히 차단할 수 있는 펜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뮌헨 시와 바이에른 주에서 출연하는 거액의 예산으로 복원하는 이자 강 플랜은 주민과 시민단체의 의견 수렵을 원칙으로 한다. 충분한 공감대를 가지고 복원하는 까닭에 예산 지출에 대한 민원이 발생할 리 없고, 이자 강을 이용하는 시민의 환경과 사회의식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비단 이자 강만이 아니다. 프라이부르크의 드라이잠 강과 슈투트가르트의 넥카 강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참여와 동의가 없다면 복원은 물론, 강의 유지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서울 청계천은 올바른 복원인지, 청계천을 흉내내려는 지방의 하천들은 문제가 없을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민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하천 복원은 건설업자의 이윤에 충성하는데 그칠 수 있으므로.



도시 녹지


1970년대 핵발전소 계획을 철회시킨 시민행동은 프라이부르크를 ‘태양도시’로 거듭나게 했다. 프라이부르크는 1992년 독일연방에서 ‘환경수도’로 선정된 특징을 여럿 가지고 있다. 독일 최초로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었고 1500년대 초에 완공한 뮌스터 성당이 자리하는 옛 시가지를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지정하였다. 1986년 독일 최초로 환경보호과를 설치한 프라이부르크는 1990년 환경보호국으로 격상했고, 세계 대부분의 도시는 프라이부르크의 예를 따른다. 우리가 찾은 금요일 오전, 뮌스터 성당의 광장에는 직접 생산한 채소와 과일과 꽃과 정원 장식 들을 전시해 파는 장터가 섰고, 시민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자신이 사육하고 가공했다고 주장하는 고기와 소시지를 내놓고 있었다.

 

시민들이 ‘자전거 고속도로’라고 말할 정도로 폭이 넓은 자전거 도로를 확보한 프라이부르크는 자전거와 자동차 도로를 분리해 안전하고 편리한 자전거 이용을 도모한다. 다섯 손가락처럼 이어졌던 도시의 녹지축이 비행장 건설 이후 손상되었지만 녹지로 둘러싸인 자전거 도로로 도심과 외곽이 연결돼 있고, 슈바르츠발트와 라인 강이 도시의 녹지와 이어져 있다. 독일의 다른 도시에 비해 일사량이 많아 농작물 생산이 양호한 도시가 프라이부르크다. 과일과 포도 작황이 좋아 양질의 포도주가 생산된다. 역시 녹지다. 게다가 가로수와 주택 앞의 녹지, 크고 작은 건물의 옥상녹화, 그리고 도심 곳곳에 마련된 잔디밭은 도시의 중요한 녹지를 형성하며 호수공원과 여기저기 자연공원의 녹지가 도시의 푸르름을 더해준다.

 

슈투트가르트와 뮌헨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공원은 키 큰 나무와 잔디와 초본으로 가득해 녹지축을 만들려고 공무원들이 그리 애를 쓸 필요가 있는지 의아할 정도다. 우리에 비하면 낙원이 아닌가. 슈투트가르트 도심을 가로지르는 광활한 공원, 로젠스타인가르텐에는 한 쪽에 키가 큰 단풍버즘나무가 500미터 넘게 두 줄로 이어져 있다. 프랑스 정원에 많은 ‘알레(allee)’다. 단풍버즘나무 알레 터널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자유분방한 슈투트가르트는 분지 지형이다. 도시의 대기가 정체되어 대기가 불량하다고 공무원은 말한다.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공무원들은 외곽의 녹지에서 포도원이 가득한 언덕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도심을 지나 넥카 강으로 빠져나가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바람골’을 구상했고, 현재 실천에 옮기고 있다. 7년 전에 슈투트가르트의 시민들도 생소하게 생각한 바람골이었는데 이제 누구나 당연한 듯 여긴다. 도심의 간선도로를 지하로 옮기고 그 자리에 녹지를 조성하는 사업은 한두 푼의 비용이 들어가지 않을 텐데 그렇다. 시민의 동의가 없다면 애초부터 사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슈투트가르트 21’ 계획을 호기 있게 추진하고 있다. 16개 노선의 철로가 있는 중앙역을 지하로 넣고 그 지상 공간을 일부 재개발하고 녹지를 잇는 대찬 과업이다. 1993년 계획돼 2006년 계획이 완료되었으니 곧 시작되어 2019년 완공 예정이라는데, 부디 기대하는 만큼 성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알프스와 이어지는 뮌헨은 빙하가 녹으며 내려놓은 자갈이 많고,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이는 거대한 호수, 침제가 이탄이 깊게 축적된 지역인 켄들뮈엘필제와 이어져 있다. 바이에른 주는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 침제와 켄들뮈엘필제를 관리한다. 생물종다양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수많은 철새가 날아오는 침제는 알프스에서 기원하는 티롤러 강의 하구를 집중 관리하고, 이탄 채취가 금지된 켄들뮈엘필제는 지하수위를 조절하며 150년 전 모습으로 보전하려 한다. 과거 근방에서 채굴한 암염의 정제를 위해 이탄을 채취했다고 한다. 열량이 높을 뿐 아니라 오래 연소되기 때문이다. 이탄을 채취했던 곳에 깊은 웅덩이가 생기고 수위 조절로 물이 빠진 곳에 자작나무가 들어서면서 육화되는 현상이 발생하지만 자작나무를 정기적으로 베어내어 복원하려 노력하고 있다. 주변 목장과 합의하여 물을 더 채우면 가능하다고 보는데, 목장주는 동의하지 않는 눈치다. 물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 까닭일 것이다. 목장을 위해 이탄층의 물을 빼자 진행되는 육화를 자작나무를 자르며 막는데 한계가 있을 텐데, 복원작업은 언제까지 진행될 수 있을까. 그래도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려 하지 않는 자세가 부러웠다.

 

프라이부르크로 들어가기 전에 비스바덴 시의 빌헬름스트라세를 터널처럼 덮은 양버즘 가로수를 보았다. 우리나라 청주 진출입로의 포플러 가로수 터널과 비슷한데 관리가 철저해 보인다. 비스바덴 시의 5개 공원에는 수백 년 이상 자란 너도밤나무 노거수가 많다. 수명을 다해 버섯이 핀 노거수는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 시 당국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줄기와 뿌리의 강도를 측정한 후 미련 없이 베어낸다. 우리처럼 외과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넘어지면 공원을 찾은 시민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서. 자연 속의 숲이 아니므로 관리해주어야 한다고 담당 공무원은 주장한다. 독일의 많은 도시 공원에는 노거수가 많다. 모두 그렇게 관리될 것이다.

 

독일의 도시는 커다란 프라이펜에서 익는 계란에 비유할 수 있다. 가운데의 노른자는 도시이고 둘레의 흰자는 시골이다. 도시와 시골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계란보다 훨씬 넓은 프라이펜은 울창한 숲이다. 독일의 도시가 대개 그렇다. ‘아우토반’이라 말하는 고속도로는 숲을 지나갈 때가 많고 도시는 진출입로의 숲을 지나야 들어간다. 심지어 도심 복판에 하늘을 볼 수 없는 숲을 조성해 놓기도 했다.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이 그렇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5분만 걸으면 한적한 숲으로 들어가 쉴 수 있다. 그런 도시에 사는 사람은 주말에 멀리 떠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른 도시로 이사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주의식이 절로 생길 것 같다.

 

묘지공원과 클라인가르텐도 훌륭한 도시녹지가 된다. 7년 전에 본 함부르크의 묘지공원이나 이번에 본 비스바덴의 묘지공원도 녹지가 완벽했다. 도시 변두리의 공터를 시민들의 휴양이나 텃밭농사를 위해 저렴하게 개방하는 클라인가르텐도 녹지 역할에 충실하다. 독일 도시는 거의 클라인가르텐을 운영하고 있다. 무허가 비닐하우스로 엉망이 된 마당이라는 이유로 골프장을 개발하려는 우리의 그린벨트를 차라리 클라인가르텐처럼 조성할 수 없을까. 원하는 시민에게 텃밭으로 충분히 분양할 수 있을 텐데. 요즘 매장보다 화장이 많아졌는데, 개개의 묘지 면적을 줄이고 나머지 땅에 나무를 심으면 우리의 공동묘지도 독일의 묘지공원처럼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녹지로 활용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나가는 글


주택마다 나무를 심은 정원을 만들고, 주차장 바닥에 잔디블록을 깔 뿐 아니라 나무를 심어 숲 속에 자동차를 세우게 하는 곳이 독일이다. 지붕 녹화는 물론, 벽에 식물을 늘어뜨리는 독일의 도시들. 고속도로 방음벽을 덩굴성 나무로 덮고 철도 가장자리는 물론 레일 사이까지 잔디를 심는 독일 도시 녹지의 철두철미함은 어떤 의지의 발로일까. 사방이 녹지로 가득한데 도시에 가로와 세로 녹지축을 구축하고 환상 녹지축까지 고민하는 자세는 지나친 걸까, 마냥 부러운 걸까. 국토가 우리보다 넓고 평편하며 인구밀도가 낮은 독일은 나무를 심을 도시 공간이 우리보다 충분하다. 국토의 65퍼센트가 산지인 우리는 도시에 나무를 심을 여지가 독일보다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의지의 차이가 크지 않을까. 없는 녹지를 더 조성하려는 자세와 있는 녹지를 부셔 높은 빌딩을 지으려는 태도의 차이만큼.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으려는 정신만큼.

 

우리보다 일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작은 독일은 소득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두 배 가깝다. 바람이 우리보다 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햇살의 강도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약하다. 그런데 태양광 패널을 붙여 햇빛으로 발전하는 건물의 수는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태양광 패널은 생태주거단지에 국한한 게 아니었다. 학교와 관공서는 물론이고 기존 주택의 남쪽 지붕도 태양광 패널을 붙였으며 고속도로 주변으로 지나치는 차창 밖의 허름한 목장 건물에도 태양광 패널을 붙여 놓은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도배하다시피 태양광 패널로 건물 벽을 채운 모습도 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높지 않은 산등성이에는 어김없이 풍차가 돌아간다. 향후 50년 내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50퍼센트 이상을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독일은 사용이 만료되면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할 것으로 천명한지 오래다. 그런 정책은 소득이 높기에 입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탄소 위주 에너지 경제의 한계를 절감하고, 대안을 녹색에서 찾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수가 세계 7위라서 ‘747공약’ 중 하나가 달성되었다고 너스레떠는 여당의 장단에 맞장구치려는지 우리 정부는 최근 느닷없이 ‘녹색 성장론’을 들고 나온다. 녹색으로 성장하겠다는 건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정부가 언급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앞으로 60년의 번영이 약속될 수 있을까. 대통령의 담화처럼 “유가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과도한 석유의존시대와 결별해야”하는 건 맞는데, 무슨 수로 “2020년이면 3천조 원에 달할 녹색기술 시장의 선도국이” 된다는 것일까. 새만금 매립이 곧 환경파괴인데 어찌 “태양과 바람, 꽃과 바다 에너지가 만개하는 신천지가” 된다는 건가. ‘무공해석탄’으로? 그건 핵인가. 핵발전소는 석유를 사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핵연료를 채굴, 정체, 운송, 폐기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석유 에너지는 엄청날 텐데, 핵연료는 과연 충분하다던가. 후손에까지 안전하다던가.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중점 육성하겠다는 ‘친환경 고효율 그린 카’는 수소를 연료로 사용할 모양인데, 무한대로 많은 자연계의 수소가 무슨 수로 연료가 되나. 그런 수소를 연료로 활용하려면 고도로 농축해야 하는데 그때 들어가는 막대한 에너지는 무엇으로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건가. 대통령의 주장대로 “기후변화 종합대책도 9월 중에 마련하여, 올해를 저탄소 사회로 가는 원년이 되도록 하”는 것을 찬성하지만 그 구체성은 물론 진실성을 확신하지 못한다. 개발에서 녹색을 철저히 배제해왔던 정부는 신뢰를 위해 녹색 가치를 위해 싸워온 시민들이 누차 지적해온 과오를 겸허히 반성하고 그 후속 조치를 마땅히 선행해야 한다.

 

‘저탄소 녹색성장’ 담화가 발표되자마자 태양광, 하이브리드 카, 원자력, 풍력과 관련되는 산업의 주식이 급등했다고 한다. 때를 같이 하여 “대운하를 추진하기 위한 발판으로 ‘한반도대운하재단’이 설립돼 활동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없는 법인데, 담화 발표 즉시 한 환경단체는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을 위해서 “신뢰와 실효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반응했다. 동의한다. “낡은 성장 정책에 대한 깊은 반성과 전면적인 쇄신”을 요구하는 그 단체의 주장에 거듭 동의하면서도 근본적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MB의 녹색성장은 녹색 이미지로 포장된 ‘그린워시’”라는 어떤 환경활동가의 외침 역시 존중하면서, 드는 의문이 있다. 저탄소든 고탄소든, 녹색성장은 과연 가능한 일이라는 걸까. 온난화가 부메랑으로 다가오는데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걸까.

 

프라이부르크만이 독일의 환경수도는 아니다. 우리이게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프라이부르크 이외에 환경수도로 지정된 도시는 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시의 처지에서 독일의 모든 도시는 환경수도다. 7년 전 다녔던 도시나 이번에 방문한 도시, 한결같이 녹색이 창연하다. 녹지는 물론이고 에너지, 빗물 침투시설, 쓰레기 재활용, 우리와 비교할 때 어느 것 하나 녹색도시의 면모로 부족함이 없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와 같은 독일 도시의 녹색은 우리보다 소득이 낮을 때 기획했고 지금 꽃을 피운다.

 

탄소 소비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독일이지만 아직 성장한다. 분명한 건 ‘아직’이라는 점이다. 세계 인구가 지금의 독일처럼 산다면 지구는 당장 절단날 것이다. 우리도 독일도 머지않아 지구촌 전역이 그럴 것이다. 석유 위기와 온난화 시기에 성장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힌다. 성장을 추구하는 한 저탄소 경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온난화는 마이너스 성장을 명령한다. 마이너스 성장을 염두에 두어야 저탄소 정책은 성공할 수 있다. 탄소 경제의 한계를 우리보다 명확하게 인식하는 독일은 석유와 같은 화석 에너지 사용을 서서히 줄여 다가올 온난화의 충격을 완화하려 하지만, 마이너스 성장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실패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뚱딴지같은 녹색성장 타령이다. 형용모순인 우리의 녹색성장론, 믿음직한가.

 

7년 전 생소했던 독일의 도시에 관한 정책은 지금은 보편적으로 보인다. 공무원은 물론 시민들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환경 담당 부서의 공무원이 생태주거단지와 녹지정책들을 기획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와 달리 도시계획 분야의 공무원이 이른바 ‘녹색’ 행정을 입안하고 실천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 과정에 시민 참여가 보장될 뿐 아니라 적극 배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 도시의 정책에서 녹색은 더는 새삼스러울 게 없는데, 우리의 알량한 녹색정책은 ‘그린위시’에 부식되려고 한다. 걸핏하면 선진지 견학 떠나는 우리 공무원에게 ‘타산지석’은 언제까지 공허해야 하나. (환경과생명, 2008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