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0. 2. 8. 15:33

유난스러웠던 추위가 물러서니 따뜻한 햇살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계절을 낳았고 지구 표면의 복잡다단함이 지역에 따라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들었을 텐데, 사람은 오직 그 변화의 폭에 적응해 살아오고 있다. 지구에 대기가 없거나 자전축이 기울지 않았다면 진화되지 못했거나 진화되었더라도 영하의 지역으로 퍼지지 못했을 사람은 요즘, 조금만 추워도 보일러를 가동하고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 스위치를 누른다. 조상이 물려준 적응력을 과학기술로 위축시킨 주제를 망각하고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하늘을 찌른다.

 

육지에 초고층 빌딩을 짓고 사는 인간은 지하 깊은 곳에 자동차와 철도를 내달리게 하더니 물속과 하늘에서 밥먹고 잠자면서 우주공간을 넘어 화성에 정착할 꿈에 젖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서 삼치 주산지인 나로도에 우주센터를 짓고 우주선 띄우는 날을 학수고대한다.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다. 과다한 화석연료 소비로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이때 우주개발이 과연 시급한지 따지는 이 드문데, 에너지를 과소비 없이 관리가 안 되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호화 청사에 따끔한 지적을 사양하지 않은 정부는 ‘살리기’를 참칭하는 ‘4대강 사업’을 지구온난화를 대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우기며 반대하는 시민에게 눈을 부라린다.

 

영겁의 세월을 굽이쳐 흐르는 강이 게 있기에 나무와 풀이 풍성한 숲에 수많은 동물들이 어우러지고, 여름에는 범람하다 가을 지나 물줄기를 줄이며 봄에 상당히 마르는 강이 사시사철 물을 흘려주기에 우리네의 삶도 편안했다는 걸 한사코 인식하지 않는 우리 정부는 4대강의 바닥을 화물선이 뜰 수 있을 정도로 긁어내고 강물의 흐름을 거대한 호수로 차단하는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그에 들어가는 화석연료의 양은 고려할 생각이 전혀 없다. 수억 년 이상 지구의 환경을 안정적으로 완충해온 온갖 생물 가치의 생태 공간을 함부로 파헤치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거리낌이 좀처럼 없다. ‘저탄소 녹색성작’이라는 마패를 쳐들면서.

 

“미 퍼스트!”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줍지 않은 영어를 남발하는 것처럼 외교상 부끄러운 일도 드물 테지만, 그가 보란 듯 외친 “미 퍼스트!”에 짐짓 고개를 끄덕인 코펜하겐 회의장의 인사들과 별도로, 대한민국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도대체 무엇이 ‘미 퍼스트’의 고갱이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상을 폭로하는 우리 시민단체 참여자들 앞에서 홍보한 “4대강 파괴 사업”을 염두에 둔 건 설마 아닐 테지. 에너지 소비 줄이기와 국가 성장을 분리할 수 없다고 했는데, 강화도 주변의 조력발전인가? “4대강 토목자본 살리기 사업”의 부스러기 효과인 소수력발전은 낯부끄러울 테니 아닐 게고, 한참 뒤떨어진 풍력과 태양력도 변변한 게 없는데, 도대체 미 퍼스트의 실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랍에미리트에 400억 달러 어치 수출했다며 신기루를 날린 핵산업일까?

 

분배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녹색’을 ‘성장’ 앞에 구사하는 언어도단은 예서 따지지 말자. 경제성장이 없어도 호혜와 평등으로 풍요로울 수 있다고 말하는 더글러스 러미스가 “민주주의의 반대는 경제성장”이라고 주장했다는 걸 되새겨보면 정부가 뇌까리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정체가 얼마나 위험스러울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에너지의 효율화와 절약을 유도하는 정책보다 공급자의 이권을 도모하는 물량 공세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이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의 대명사가 되었듯, 세계 최대와 최고를 꿈꾸는 ‘한국형’이 위험한 실체의 대명사로 세계인에 각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핵산업체의 장담처럼 눈에 불을 밝히고 감시한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하니 이번 논의에서 빼도록 하고, 역시나 세계 최고를 예고한 조력발전을 살펴보기로 하자. 과연 우리 조력발전이 ‘친환경’의 작위를 받을 만한가.

 

‘조력발전’ 하면 프랑스의 랑스 발전소가 먼저 생각난다. 현재 세계 최대인 랑스 조력발전소는 240메가와트로 영종도, 용유도, 장봉도와 강화도 남부의 갯벌과 해류를 틀어막는 ‘인천만 조력발전소’의 5분의1, 강화 본섬과 석모도, 서검도, 교동도를 북측으로 이어 그 일대의 갯벌과 해류를 틀어막는 ‘강화 조력발전소’의 3분의1에 미치지 못한다. 완공이 머지않은 시화호와 규모가 비슷하고 계획된 가로림만의 2분의1, 천수만의 3분의1에 불과하다. 고작 20메가와트 급으로 랑스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인 캐나다 아나폴리스 조력발전소, 더 작은 러시아의 조력발전소도 가동 중이지만 이들 나라는 조력발전의 증설은 피하고 있다. 경제성도 떨어지지만 환경에 대한 피해가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교란하는 강화 일원의 조력발전은 어떨까. 친환경 에너지는 무슨! 섬을 둘러막는 제방으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는 걸 노린 게 아닐까.

 

정부와 인천시에서 추진하는 인천만과 강화 조력발전소는 발전 기업에게 부과된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2012년부터 전체 발전량의 10퍼센트까지 이른바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지 않으면 벌금이 부여되는 제도로, 벌금의 액수가 상당해 발전 기업마다 사활을 걸고 태양력이나 풍력, 소수력, 지력, 조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원을 확보하려 혈안이 되었다는 건데, 갯벌에 얽힌 강화의 오랜 역사와 문화는 바람 앞에 등불 이 되고, 개벌에 서식하는 플랑크톤, 조개, 갯지렁이, 수많은 도요새와 물떼새, 오리류의 겨울철새, 그리고 천연기념물인 노랑백로를 포함해 저어새에 이르는 생명가치들은 터전과 생명을 내놓아야 할 모양이다. 갯벌에 서식하는 플랑크톤과 어패류가 탄소동화작용과 물질대사로 제거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조력발전으로 얻는 친환경 효과를 훨씬 초월하건만, 돈에 눈이 어두운 인간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친환경’으로 위장할 따름이다.

 

산허리를 뭉텅 자른 넓은 대지에 콘크리트를 깔고 그 위에 광패널을 덮은 태양력 발전도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 산림의 생태적 효과를 파괴했을 뿐 아니라 정작 전기 소비자와 거리가 먼 곳에 집중하지 않았나. 땅의 가치 상승을 선점하려는 자본의 노림수로 의심받을 소지가 높다. 지열도 풍력도 소수력도 규모가 크고 소비자와 먼 거리에 자본이 시설을 집중시킨다면 대체로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 친환경이라는 호칭을 받고 싶다면 자연의 생태적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집이나 동네에 설치해 운영할 수 있는 규모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소비자 지향의 분산형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4만 년 전 아프리카를 빠져나온 우리는 고드름과 성애를 보며 겨울을 지냈고, 푹푹 찌는 여름을 보내며 건강했다. 여름은 여름답고 겨울은 겨울답게 살 때 비로소 친환경이다. 신재생 에너지원의 확보보다 에너지 과소비를 억제하는 행동이 진정한 녹색이라는 걸 먼저 인식해야 한다. 자본의 성장을 위한 친환경은 녹색과 무관하다. 내일의 삶을 위협할 따름이다. (작은책, 2010년 4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09. 5. 26. 23:18

 

요즘 ‘저탄소 녹색성장’을 앞세우지 않는 개발이 없다. 별 것이 아니라도 일단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기치를 올리면 덮어놓고 허가를 해야 할 분위기다. 뚱딴지 같이 ‘경인 아라뱃길’이라 칭한 경인운하가 그 대표다. 밑도 끝도 없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부르짖으며 절차마저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한다.

 

인천시민을 소외시킨 채 시민공모로 이름을 정했다는 ‘경인 아라뱃길’은 누구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건 여기에서 따지지 않기로 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경인운하에 어떤 화물이 다닐 것인가. 울산에서 조림한 자동차? 남녘의 농수산물? 부산에서 인천항까지 정부 보조금까지 받고 운항하던 한진해운이 사업을 접은 건 수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남쪽 지방의 화물이 운송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주나 유럽은 아닐 테고, 일본이나 중국을 오고가는 수출입화물일까. 경인운하는 수심이 6미터를 유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부운하를 추진하던 전문가들은 6미터 수심을 유지해야 2500톤 급 화물선이 다닐 수 있다고 했다. 하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빌 수 없는 2500톤 급 화물선이 일본이나 중국을 오고갈까. 쉽지 않다. 지도의 거리가 가까워 보여도 풍랑이 이는 먼 바다를 건너야 한다. 먼 바다를 오가는 배는 호수나 강을 오가는 배와 달리 바닥이 깊다. 그래야 물의 저항을 줄이고 풍랑에 안정적인 까닭이다. 일본과 중국이 운하를 오가는 배를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 측이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이나 중국이 경인운하를 다니는 화물선을 마지못해 받는다고 치자. 어떤 화주가 약간의 풍랑에도 전복될 위험을 안은 바닥 편평한 배에 고객의 신뢰를 실으려하겠는가. 운하로 운송하는 수출입화물이 있다면 틀림없이 인천항의 배와 운하의 배 사이를 트럭이 옮겨야하는데, 옮겨 싣는 비용과 시간을 감당하면서까지 시간을 다투는 수출입화물을 운하에 실을 화주는 있을 성 싶지 않다. 먼 바다를 오가는 배는 수심을 깊게 유지할 수 없는 경인운하에 다닐 수 없다. 따라서 운하에서 속도를 낼 수 없는 배는 갑문을 들락거리기보다 그저 운하 안을 왕복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런 운하에 무엇을 실을 수 있겠나.

 

전문가는 인천 앞바다의 생태계를 훼손하며 퍼낼 해사나 수도권 생활쓰레기가 운송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내놓은 근사한 그림과 달리 운하 양 끝의 부두는 먼지와 악취에 시달릴 게 뻔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성을 장담한다. 오로지 신기루에 불과한 장밋빛 청사진을 뒷받침하려는지, 어이없게도 수향팔경(水鄕八景)을 주장한다. 이름붙이면 저절로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가 될 거라 무슨 근거로 확신하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오염 정도가 높은 곳이 한강 하류인데, 그곳의 물이 정체되는 운하를 보겠다고 찾는 관광객이 얼마나 될까.

 

조용한 농촌마을이었던 운하 주변에는 시방 어떤 관광자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리버사이드파크, 전통 정원인 만경원, 두물머리 생태원들을 조성하겠다는데, 그건 중간에 정박시설이 있을 수 없는 운하와 관계없다. 사업성을 살피지 않고 요란한 시설부터 막무가내 조성한다고 관광객이 몰릴지 확신하기 어려운데, 정부는 개발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정부가 조성할 것이라면 경인운하의 건설비는 더욱 상승할 거다. 민간 기업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사업에 정부 지원 없이 투자할 리 없을 테고.

 

애초 경인운하는 인근 저지대의 수해방지를 내세웠다. 그런데 어떨까. 평소 6미터 이상의 수심을 유지하는 운하는 조수간만의 차가 유난히 큰 인천이 만수위일 때 홍수가 발생한다면 주변지역은 속절없는 피해를 오히려 자초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만큼 집중호우는 빈발한다. 경인운하는 녹색일까. 황색으로 버림받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인천경향신문, 20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