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7. 7. 27. 23:14


독일은 명실상부한 유럽 최대의 산업국가다. 당연히 전기를 많이 소비할 텐데, 독일은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자국의 핵발전소 17기 중 8기를 즉각 폐쇄했다. 이후 일부 전문가의 예상과 달리 독일은 이웃 국가에서 전기를 대대적으로 수입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하는 일이 생겼다. 무슨 까닭일까?


안전을 이유로 전기레인지를 사용하는 가구가 우리나라도 늘어난다고 한다. 가전제품 전문가는 디자인이 수려한 프랑스 제품보다 다소 투박하더라도 독일제를 권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덧붙이는데, 가정용 전기에 누진세를 적용하는 까닭에 우리는 전기레인지를 선뜻 구매하지 못한다. 국민 1인당 평균 전기 소비량을 단순 계산하면 우리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거의 두 배 가깝다. 전기레인지를 사용치 않아도 그렇단다.


남은 9기의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기로 한 독일은 무모하지 않았다.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소가 충분하기 때문이 아니다. 석탄 매장량과 화력발전소는 충분하지만 대기오염을 피할 수 없으므로 점차 줄여나가려고 한다. 태양과 바람으로 생산하는 전기가 뒷받침하므로 과감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건설과 운영에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핵발전이나 화력발전 관련 산업계의 권력의 태도는 우리와 다르지 않고, 그런 거대 권력의 방해가 집요했지만 소비자의 단호한 행동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독일 남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는 세계 환경 수도또는 태양의 도시로 세계인의 칭송을 듣는다. 곳곳에 에너지를 자립하는 마을이 있기 때문인데 어떤 선지자의 제안으로 시민들이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붙이며 화답하고 자동차 사용을 자제한 건 아니다. 숲이 풍부한 만큼 하천이 맑고 깨끗한 프라이부르크에 핵발전소를 세우겠다는 중앙정부에 맞선 시민운동이 처절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석유 가격이 치솟자 독일 정부는 프라이부르크 인근에 핵발전소를 추진했다. 시민들의 반대 시위는 강렬한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핵발전소 없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전기를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결심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핵과 같이 위험한 에너지 뿐 아니라 화력처럼 더러운 에너지도 피하고자 노력했다. 태양과 바람에서 머물지 않고 음식 쓰레기나 축사의 가축 분뇨를 적극 활용했지만 눈물겹다기보다 아름다웠던 시민들의 행동은 다른 데 있었다.


초창기인 만큼 기술이 미비했던 당시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 분야는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지 못했지만 시민들은 전기 소비를 줄이는 노력으로 핵발전이나 화력발전소 도입의 명분을 없앴다. 에너지 전문가들도 시민의 노력에 뜻을 모았다. 핵 관련 자본의 편에 서서 반대하는 시민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연구한 우리와 달랐다.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산업분야의 에너지 효율화를 높이는데 독일 전문가들은 앞장섰다.


프라이부르크의 노력이 곳곳으로 확산된 요즘, 독일인들은 겨울철이면 외투를 입고 집에 머물고 고급식당도 손님이 없는 자리의 조명은 꺼놓는다.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하자 에너지 낭비가 일상화된 우리의 산업체들과 달리 이산화탄소 소비가 적은 생산 기술을 개발하면서 지구온난화를 진행을 완화하려고 애를 쓴다. 에너지 소비를 90% 정도 줄이는 주택과 건축물의 공급을 의무화하는 독일은 산업체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대부분을 태양에서 구할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참고로 독일의 태양은 우리보다 약하다.


58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프랑스는 정권이 교체된 요즘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핵이 대세다. 전후 프랑스의 정권을 잡았던 사를 드골은 철권통치로 유명하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 드골은 나치에 부역한 지식인, 특히 언론인을 사형에 처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철권은 프랑스에 핵발전소를 집중시키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누가 감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으랴.


켜고 끌 때 복잡하고 위험하므로 밤에도 가동해야 하는 핵발전은 많은 전기를 버리게 만든다. 전기의 4분의3을 핵발전소로 충당하는 프랑스는 핵발전소를 다수 도입한 전두환 정권처럼 과소비를 추동했다. 산업체와 가정은 전기 효율화에 관심이 부족했는데, 안전할 거로 막연히 기대했던 핵발전소가 1986년 구소련과 1979년 미국에서 폭발했고 2011년 일본은 폭발을 막지 못했다. 기술 부족이 아니었다. 대체로 핵발전소가 많은 국가 순서로 폭발했는데 다음은 어디일까?


연구자의 연구과욕으로 폭발한 구소련과 노무자의 실수가 사고를 부른 미국의 핵발전소는 최신형이었지만 지진과 쓰나미가 원인을 제공한 일본의 4기는 수명을 연장한 노후 시설이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이 시민들의 반대로 억제된 마당이므로 프랑스 역시 대부분의 핵발전소가 낡았다. 고장이 많아도 철저한 관리로 사고를 막으려 애를 쓰는데, 프랑스는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기관과 안전을 관리하며 통제하는 기관을 엄격히 분리했다. 운영과 통제 기관의 인적교류가 활발한 우리나라는 사회적 합의 없이 수명연장을 거듭해왔다.


어느 산업 설비도 사용 시간이 길면 낡고 고장이 잦아진다. 작은 사고도 방심하면 끔직한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에 핵발전소는 철저한 관리와 통제가 필수다. 사고 발생이 발각나면 대충 얼버무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가동을 중단시킨다. 한데 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양은 막대하다. 지역에서 자급하는 태양광에 비교할 수 없다. 그 막대한 전기가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소비에 익숙한 프랑스인들은 빗발치게 민원을 제기할 것이다.


독일의 많은 건물은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다. 그 전기는 자신의 집과 지역에서 자급하는 게 원칙이다. 모자라면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의 전기를 끌어오지만 대신 위험과 오염을 감수해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소비를 줄이고 효율화를 택한 독일인은 이웃 지붕의 태양광 패널에 관심이 많다. 고장 나면 팔 걷어붙인 이웃이 모여 고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핵발전소 규모의 정전이 발생할 일이 없다. 때때로 이웃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할 여유가 있다.


어떤 전기를 쓸까? 우리나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전력회사가 많은 독일은 마을 단위로 선택이 가능하다. 핵발전소가 줄어들면 방사능 걱정도 줄어든다. 화력발전소가 줄어들면 미세먼지 걱정이 줄어든다. 지구온난화도 그만큼 억제될 텐데, 우리나라는 요즘 신고리 핵발전소 5호기와 6호기의 공사 중단을 놓고 일부 핵발전 전문가들의 저항이 거세다. 핵발전 산업계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받은 학자이거나 그 산업계에서 제공하는 지원금에 길든 언론이 그들이다. 본질을 왜곡하며 공론화 과정에 전문가의 참여를 요구하지만 추악한 이기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핵발전소 건설과정에 주민의 참여와 공론화를 강압적으로 막던 자신들의 독선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독일은 2022년까지 자국 핵발전소를 전부 폐쇄하는 논의에 핵발전 관련 산업계 전문가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했다. 그들은 공급자가 아닌가. 다음세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핵발전과 화력발전의 중단은 정언명령이다. 가전제품 선택과 마찬가지로 전기의 선택 역시 주부가 포함된 소비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촛불이 이끈 핵발전소 폐쇄 논의에 핵발전 추진론자들은 끼어들 자격이 없다. (작은책, 201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