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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15. 7. 22. 17:32


지난 가을부터 올 봄까지 중부지방의 가뭄은 전에 없이 혹독한 모양이다. 팔당댐의 수위를 유지하게 하는 소양강댐은 물을 예년의 절반도 가두지 못해 호수의 상류는 바닥이 바싹 마른지 오래다. 무엇보다 농사짓는 이의 아우성이 큰데, 도시는 안타까움을 공유하지 못한다. 아니 간신히 모내기를 마친 논이 쩍쩍 갈라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 비가 잠깐 내려도 우산 들고 다니기 귀찮아할 따름이다.


1983년인가? 우리나라 인구가 4000만을 돌파했다고 정부와 언론은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 당시 식량자급률은 얼마나 되었을까? 인구 5000만을 넘어선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텐데, 국가의 내일을 위해 아이를 더 낳으라는 요즘, 늘어난 인구들은 1980년대보다 커다란 집에서 많은 음식을 먹으며 물을 펑펑 쓴다. 그러느라 도시 인근의 농경지는 도심지로 거푸 바꿨고 농촌은 도시로 편입돼 대규모 주택단지로 잠식되었다. 그 즈음 지구온난화가 가시화되더니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요사이 지구촌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는다. 우리는 어떤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도시는 빗물을 완충하지 못한다. 내리는 빗물은 도시를 흥건히 적시며 어디론가 흘러 잠시도 머물지 못한다. 고이면 귀찮아지거나 위험하므로 서둘러 배제해야 한다. 예쁘게 단정한 서울의 청계천이 그렇다. 비가 그친 도시는 지독한 사막이다. 그치자마자 바싹 마른다. 그래야 살롱 구두를 신은 시민들의 민원이 줄어든다. 주변 녹지와 농경지를 집어삼키며 점점 넓어지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서 어디론가 흘러간 빗물은 이따금 낮은 지역에 몰려들어 수해를 일으킬 따름이다.


도시의 인구가 지금보다 적고 면적도 작을 때, 그러니까 도심지 주변에 녹지가 많던 시절, 내리는 빗물은 여기저기 녹지에 고이며 지하로 스며들거나 증발했을 것이다. 여름 뙤약볕이 며칠 내리쬐면 하늘은 어김없이 먹구름을 몰고 왔다. 한바탕 소나기를 뿌리며 도심지와 그 주변을 식혀주었지만 언제부턴가 소나기는 자취를 감춰간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 머무는 인구의 십중팔구는 숨이 턱턱 막히는 뙤약볕이 계속되면 냉방기부터 켜겠지. 도시의 가난한 노약자들은 에어컨 빵빵한 공공시설로 늦지 않게 피난가야 한다.


도시 면적에서 녹지가 30%보다 좁으면 시민들은 녹지를 찾아 떠나려한다고 생태도시 관련 전문가는 주장한다. 주말마다 고속도로가 미어터지는 우리나라가 그 좋은 예일 텐데, 대신 녹지가 도시의 절반에 가깝다면 굳이 떠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다. 5분 걸어 찾을 수 있는 녹지에 가족과 연인이 환대하며 우의를 나눈다. 그런 도시의 녹지는 대개 습지를 포함한다. 지하수위를 유지하게 하는 습지가 있어야 녹지가 건강하고, 깃드는 생물의 다양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완충한다. 그뿐인가. 안정된 식수가 보장된다.


내리는 비의 60% 이상이 여름 한철에 집중되는 우리나라는 국토의 65%가 경사가 깊은 산지로 구성돼 있지만 유사 이전부터 강은 사시사철 맑고 시원한 물을 하류로 흘려보냈다. 강물이 화강암 모래와 더불어 흐를 때 하류에 사는 도시인들도 수인성전염병을 몰랐지만 댐과 대형 보로 흐름이 차단된 지금은 아니다. 강변을 매립해 만든 공업단지의 폐수가 스며드는 강물이 모래와 더불어 정체되면서 썩어 악취를 내뿜는다. 이제 강물을 바로 떠 마실 수 없다. 불과 두 세대 전까지 몰랐던 수돗물이 필요해졌다. 냄새 심한 강물을 약품과 에너지를 동원해 정화한 수돗물이지만, 가정에서 정수기로 다시 걸러야 시민들은 비로소 안심한다.


팔당호에 모인 물은 대략 1주일이면 수도권의 수많은 정수장으로 빠져나간다. 정수장을 나온 수돗물은 이내 공장폐수나 생활하수가 돼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흘러간 뒤,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겠지. 도시에서 사용하는 수돗물의 양을 줄이면 농촌의 갈증은 상당히 해결될지 모른다. 낮은 지대의 홍수 피해가 줄어들고 하수가 스며드는 크고 작은 강의 생태계도 살아날 게 틀림없는데, 외부에서 농작물과 물을 풍족하게 가져오는 한, 도시는 농촌의 갈증에 통 관심이 없다.


관악산 기슭을 넓게 차지한 서울대학교는 수많은 건물이 복잡하게 배치돼 대학 구성원도 두리번거리는 이를 제대로 안내하지 못한다. 관악산이 완충하며 깨끗하게 흘려주던 강물은 서울대학교가 들어서면서 신림동의 하천을 때때로 범람했다. 그 건물 중 건설환경공학부가 위치한 35동은 조금 다르다. 840제곱미터의 옥상에 빗물을 이용할 수 있는 녹지를 한무영 교수가 조성한 것이다. 받아놓은 빗물로 커피를 타서 손님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그 교수는 비를 맞아 머리가 벗겨진 이가 찾아오면 자비로 머리카락을 심어주겠다고 호언한다.


정원과 텃밭을 갖춘 서울대학교 35동의 옥상은 해마다 250포기의 배추를 생산해 김장을 담그는데, 한무영 교수는 한해 서울시에서 빗물을 재활용하는데 사용하는 예산이 서둘러 배제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의 1%도 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건물 사용자에게 텃밭이나 휴식공간을 제공할 수 있도록 옥상을 녹화하면 완충한 빗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냉난방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눈을 가리고 마시게 한 결과 시민들은 시판되는 생수보다 빗물을 더 선호했다는 걸 강조하는 한무영 교수는 지붕에서 받는 빗물로 도서지방의 만성 물 부족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시텃밭의 물도 지붕에서 조달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열대우림 벌채 이후 물 부족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일원을 지원하는 한무영 교수는 인천의 오랜 마을, ‘배다리라는 지역에 빗물을 받는 장치를 설치했다. 산업도로 개설로 사라질 운명이었던 마을의 한 작은 지붕을 활용하여 받는 빗물은 무기질이 많아 농업용수로 우수하다는데, 아직 마실 엄두를 내는 주민은 없다. 빗물을 받는 지붕을 늘리면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우파공동체처럼 마실 수 있을지 모른다. 빗물을 모아 농사용으로 사용하는 우파공동체 주민은 최소한으로 정화한 빗물을 식용으로 사용한다. 그들이 만들어 파는 빵은 주변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히틀러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영화사로 활용했던 부지가 폐전 이후 방치되자 일군의 젊은이들이 점거해 임의로 사용한 곳이 베를린의 우파공동체다. 당시 건물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는 우파공동체는 녹화한 지붕의 곳곳에 태양광 발전패널을 설치했다. 방문자를 위한 숙소도 운영하는 우파공동체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물을 자체에서 자급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고 방문자에게 자랑스레 소개한다. 그렇다면 산업도로를 막아낸 뒤 공동체를 지향하는 배다리의 마을주민들도 진정성 있는 논의와 합의로 물과 에너지를 상당히 자급할 수 있으리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고층 또는 초고층아파트단지에서 빗물과 전기의 자급은 모색하기 어렵다. 사는 동안 얼굴 마주하지 않는 이웃과 그런 논의는 언감생심이겠지만 주택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댄 마을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주택들이 낡아 아파트로 재개발하고 싶은 주민이 많은 마을일수록 가능성이 클 텐데, 어디 자원하는 마을 없나? 세입자든 집주인이든 골목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기억하고,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지나가는 마을이라면 금상첨화겠지. 자동차가 차지한 마당과 골목 여기저기를 텃밭으로 꾸미고 녹화한 지붕에 태양광 발전패널을 붙일 수 있도록 협동조합을 결성해 기탄없이 논의할 수 있을 텐데.


서울 성미산 마을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 줄여서 소행주3동 지었다. 2년마다 서럽게 이사하던 고생을 털어내게 해준 소행주는 주거 가족들은 물론 이웃과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주택이다. 소행주에 거주하는 가족의 아이들은 학원 다녀와 자기 방에서 컴퓨터게임에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래와 뛰어놀기 바쁘다 곯아떨어지기 일쑤라는데, 아쉽게 소행주에 텃밭은 없다. 공간 최대로 주거공간을 확보한 까닭인데,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텃밭은 마을의 유대를 강화한다. 텃밭에서 전자기기에 코 빠뜨리는 아이는 찾아볼 수 없다.


소행주와 같이 공용공간을 가진 새로운 건축물까지 포함하는 마을을 기존 공간에 만들면 어떨까? 오래된 주택이라도 견고하게 보수한다면 우파공동체에서 보듯 지붕을 녹화하며 빗물을 이용하거나 태양광 발전패널을 부착할 수 있다. 세입자가 사는 건물도 그대로 활용하며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다. 골목에 주차한 자동차들은 주차장을 별도 공간에 확보해 옮기든가, 공용 자동차 몇 대 남긴 뒤 처분해도 좋겠지. 자동차가 없는 골목은 마을의 훌륭한 마당이 될 수 있다.


물과 전기를 자급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활발할 수 있도록 열린 건축이 앞장설 수 없을까? 앞서가는 국내외 사례를 제시하며 주민들의 의지를 결집할 수 있다면 까짓 제도야 마을의 유권자 힘으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르는데. (와이드 46, 2015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