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7. 8. 10. 19:26
 

갯벌은 품이 넓다. 태고 이전의 기억부터 오롯이 담아왔다. 빙하기에 육지였던 황해에 갯벌이 쌓인 지 만년이 못된다지만, 그건 갯벌만 연구하는 전문가의 생각일 뿐이다. 빙하가 녹으며 형성된 황해에 쌓고 쌓은 고은 흙은 갯벌 이전에 우리 강산의 태고 적 흔적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빙하로 덮이지 않은 우리 강산은 고생대지층을 오롯이 간직한다. 빙하로 깎여나간 유럽대륙에 200종도 못되는 식물이 자생하는데 우리 강산은 다르다. 수많은 동물과 어우러지는 4000종이 넘는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영겁의 세월 동안 풍화된 고운 모래와 흙이 조금씩 흘려 황해의 갯벌에 고생대의 기억을 내려놓았다.

 

분오리 돈대에서 바라보는 강화 남단의 갯벌은 참 넓다. 멀리 장봉군도와 영종대교 너머로 이어지는 강화의 갯벌은 한강에서 비롯된 한반도의 기억을 담았다. 거기에는 한강을 따라 오르내리던 뭇 생명의 희로애락이 있고, 신석기부터 근대에 걸친 조상의 땀과 문화와 영욕의 세월이 스며있다. 갯벌은 우리 조상의 삶이었다.

 

사람은 아스라한 지평선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아마 기억의 원형질이 거기에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퍼져나간 사람은 지평선에서 고향을 찾는지 모른다. 갯벌은 지평선이며 수평선이고, 태고 적 기억이다. 멀지 않은 조상의 문화와 역사다. 우리네 삶을 지탱해주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생명 탄생의 기반이다. 실제로 지구 생명은 바다에서 기원했고, 갯벌과 같은 습지에서 많은 생물종이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갯벌은 맨 몸으로 부빌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피부다. 대지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을 한 후손은 오직 갯벌에 와야 어머니 품에 안길 수 있다. 숱한 생명을 잉태해온 갯벌은 우리를 받아들인다. 탕자의 어리광을 끌어안는다. 해질 녘 강화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진 갯벌은 그래서 더욱 따뜻하고 편안하다.

 

생명의 모천이자 자궁인 갯벌. 화가 김용님은 그곳에서 어머니를 그린다. 갯벌에 깊게 팬 주름에 노을로 물드는 강화 갯벌에서 고향을, 고향에서 비롯되는 모성의 따사로운 기억을 반추한다. 갯벌에 깃든 이에게 오랜 세월 내어준 젖과 문화와 역사를 갯벌을 매립해온 탕자에게 드러낸다는 걸 붓으로 말한다. 갯벌이 있기에 조상의 삶이, 후손의 건강이 보전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개발만능 세대에게 전한다.

 

해안선이 길고 복잡했던 우리의 리아스식 해안은 현재 없다. 자로 대고 그으면 완성되는 해안선으로 마감되면서 갯벌은 우리 시대에 사라져간다. 사라진 갯벌 위에 솟은 화려한 건물들은 자연의 도움 없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갯벌은 생명이거늘 우리는 조상의 기억도 후손의 생명도 신기루 같은 돈과 바꾸려 한다.

 

강화로 피난 떠난 80만 고려의 민중을 먹어 살린 강화는 갯벌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때부터 매립돼 온 강화의 갯벌. 지금은 온전한가. 매립 위기에서 벗어났는가. 강화에 둥지를 친 김용님은 “노을 젖은 갯벌에서 오래된 어머니 생각”에 잠긴다. (2007년 9월, 화가 김용님 전시회 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