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9. 8. 21:02


“입맛은 보수적이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익숙해진 입맛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갓 장가든 사내가 밥상머리에서 제 어머니 손맛을 허구헛날 그리워해 신부의 속을 뒤집어놓는 걸 보라. 김치와 불고기가 세계로 퍼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수적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입맛이 변한다. 부부의 연륜이 쌓이다보면 아내의 손맛에 어느덧 길들여지고, 낯설던 지역의 이웃이 살가워질 무렵이면 그 지방의 음식에 어느새 익숙해진다.

 

입맛의 보수성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가을이 왔다고 전어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다. 물어보나 마나다. 도마나 석쇠에 눕기 전, 뜰채에 담긴 수족관의 전어는 기진맥진한 채, “3년!”이라고 못 박을 게 틀림없다. 좁아터진 수족관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전어는 군침 흘리며 둘러앉는 인간들을 향해 되묻고 싶을 것이다. “삼년 전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며?”

 

많을 리 없는 집 나간 며느리들, 전어 계절에 귀 따갑게 생겼다. 가을 전어의 맛을 기억하는 며느리는 십중팔구 갯마을로 시집왔을 텐데, 그는 왜 집을 나가야 했을까. 육지에서 스트레스 받은 전어는 그런데 관심이 없겠지만 가을 전어를 찾아 갯가에 둘러앉은 남정네들은 궁금해야 한다. 어떤 사연일까. 남편이 바다에 나간 사이, 애 보며 밥하고 농사짓고 그물 손보랴 눈코 뜰 새 없는 며느리는 시부모 봉양하느라 지쳐가는데, 간밤에 태풍 몰아친 뒤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생활고까지 떠맡은 갯마을의 며느리는 오로지 가을을 기다려야 했다. 해안으로 몰려드는 전어를 손쉽게 잡을 수 있었으므로. 이후 여차저차해서 집 떠난 며느리가 가을 전어 먹고파 돌아온다면? 이야기는 싱겁다. 가을 전어 먹고 자란 아기를 불현듯 보고 싶었다고 해야 재미있어진다.

 

봄여름에도 전어가 잡히는데 왜 가을을 유독 강조할까. 기름기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우리와 일본 중부이남, 그리고 중국 동부 해안에 주로 분포하는 전어는 수온이 15도가 넘는 얕은 바다를 좋아한다. 겨울에 남쪽으로 내려갔다 봄이면 올라와 강물이 섞이는 해안에 알을 낳는데, 그때 전어의 몸은 수척하다. 10만 개가 넘는 알에 영양분을 내준 까닭이다. 수온이 높은 해안에서 멀찍이 떨어져 플랑크톤을 먹는 여름, 전어는 아직 살이 충분치 않다. 수온이 적당해지는 가을, 해안으로 몰려와야 몸집이 기름지게 커진다. 겨울을 대비해 갯벌에 퍼진 식물성 플랑크톤을 게걸스레 먹기 때문이다. 전어는 그때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깨가 서말이라며 입맛 다시는 사람들이 전어를 게걸스레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전어는 錢魚다. 돈이라는 거다. 그래서 서해안을 돌아 남해안까지 가을은 전어 축제로 북적인다. ‘집 나간 며느리’를 꼭 들먹이면서. 바닷물이 차가워지기 전까지 토실토실 살을 키워야하는 전어는 10월이 되어야 깨가 서말일 정도로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지건만 돈 욕심은 조바심을 인내하지 못한다. 30센티미터 가까이 자라는 전어는 몸이 15센티미터가 넘어야 맛이 드는데, 작은 것도 개의치 않는다. 온갖 그물이 8월부터 덤벼드는 까닭이다. 그래서 어획고는 해걸이를 한다. 어느 해는 넘쳐서 돈이 안 되고, 어느 해는 잡을 게 없어 돈이 안 된단다. 그래서 새우 양식장에 전어를 키웠다. 그해 늦가을, 팔리지 않은 전어는 그만 떼죽음하고 말았다.

 

서천 흥원항, 마산 어시장, 광양 망덕포구, 보성군 율포, 사천시 삼천포항, 부산 명지시장에 이르기까지, 전어 요리대회와 시식회, 전어 잡기 체험행사는 기본이고 노래공연과 가요 콘서트, 어시장 아지매 선발대회에 이르기까지 천편일률이다. 전어회, 전어무침, 전어구이, 전어젓갈과 전어 회덮밥, 어디가나 똑같다. 봄철 주꾸미와 밴댕이로 시작해 겨울철 명태로 마무리되는 바닷가의 축제는 한결같다. 먹고 마시고 떠드는 고성방가의 한마당이다. 왕새우와 더불어 가을을 상징해야하는 전어축제도 예외가 아니지만 전어가 축제에 낀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조기나 청어와 같은 생선이 자취를 감춘 뒤 생각해낸 지역 관료와 언론의 억지춘향인지 모른다.

 

등에 작은 점이 여러 줄 이어지는 전어는 청어와 사촌간인 등푸른 생선이다. 가슴에 검은 점이 뚜렷해 수족관에서 쉽게 눈에 띄지만 정작 전어는 등지느러미를 자랑한다. 등지느러미 끝부분이 꼬리까지 길게 늘어져 움직임에 따라 나풀거리는 모습이 매력인데, 그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전어를 성질이 급한 생선이라고 몰아붙인다. 수족관에 들어가기 무섭게 죽는다는 거다. 횟집주인은 흥정하는 손님과 약속해야 한다. 생생한 전어는 뼈째 써는 세코시로, 허연 배를 들어올린 전어는 구이로 내놓겠다고. 하지만 주문해 먹는 손님들이 그걸 일일이 따지던가. 그저 싱싱하고 고소하니 흥겨울 밖에.

 

수족관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 전어는 갯가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사실 고소한 생선은 전어 말고도 많다. 지갑이 가벼운 시민도 즐길 수 있기에 유명세를 앓게 되었을 건데, 전어의 위기는 그만큼 앞당겨졌다. 요즘 가을 전어는 갯가를 벗어난 횟집의 수족관에서도 흔하다. 획기적 기술 덕분일까.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내년부터 양식 어류의 사료에 7종류의 항생제 첨가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사람과 동물에 공동으로 작용하는 항생제를 제한하는 건데, 어떤 전어 양식업자는 사료에 항생제를 넣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그 말이 진실이길 바라면서, 수족관의 물이 항생제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궁금해진다.

 

가을 전어는 개흙을 먹어야 싱싱하고 고소하다. 사람도 갯벌을 먹는 셈인데, 시방 갯벌은 사라지고 있다. 남은 갯벌도 오염되는 중이다. 어떤 연구는 전어가 다이옥신에 오염되었다는 결과를 내놓으며 한 달에 한번 이상 먹지 말라고 경고한다. DHA가 많아 성장하는 어린이에게 좋고, 위를 보하며 장을 깨끗이 해 노인에게 그만이라는 전어, 인기가 높아 가격이 상승하자 남획되고, 남획과 양식으로 가격이 폭락하자 소비촉진운동을 벌여야 할 지경이지만 청어나 조기처럼 우리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갯벌이 게 있기 때문이리라. 어패류의 산란장이자 육지 오폐수의 처리장인 갯벌에는 식물성플랑크톤이 많아 지구온난화를 예방한다. 갯벌이 건강해야 전어도 우리도 건강할 수 있다. 가을마다 전어를 만나려면 갯벌은 보존해야 한다. 전어와 한배를 탄 사람의 처지에서. (전원생활, 2008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