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1. 8. 15. 16:00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암 검진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전단이 편지로 왔다. “아직도 안 받으셨나요?” 묻는 전단은 검진 비용의 90퍼센트를 공단에서 담당하니 서구 식생활에 익숙한 고객은 조기 진단으로 건강을 잃지 말라는 고마운 친절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친절을 이미 여러 차례 받은 처지에서 마음이 흔쾌하지 않는 건 왜일까. 가부장적이거나 상업적 친절이라는 냄새를 느낀다고 반응하면 좀 지나친 걸까.

국내 굴지의 종합병원에서 원장으로 은퇴한 어떤 의사가 사석에서 자신은 건강검진을 여태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친구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까닭을 묻자, “무서워서!”라고 답했다며 그 은퇴 의사의 친구인 선배는 실소했는데, 그 선배는 해마다 사원 개인에게 마치 크나큰 권리라도 선물하는 양, 건강진단 다녀올 것을 해마다 회사는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나이들은 만큼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야 당연한데,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무게 잡는 의사들의 과잉 전문성이 불편하다며 모를 권리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토로했지만 회사는 알고 싶었을 게다. 미리 정리할 사원이 누구일지를.

충성스런 고객에게 특별한 배려처럼, 구형 손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주겠다는 호들갑스런 전화를 극성스레 받는다. 멀쩡한 전화기를 바꾸라니!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배터리 성능도 좋은데 왜 바꾸라는 겐가. 할부금 시한보다 훨씬 빨리 새로운 기능을 더한 제품을 내놓는 세태에서 재고품을 처리하려는 속셈은 아닐까. 헐값의 프린터를 내준 뒤 고가의 잉크나 토너를 파느라 여념 없는 업체의 상혼과 비슷한 건 아닐까. 아무튼, 옛 번호를 고집하는 손전화는 아직 내손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탈퇴하는 이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린다. 프라이버시 유출에 진저리를 친 경험이 쌓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언론은 귀띔했다. 진저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호기심을 과시하는 누리꾼들이 공개하지 않은 개인 정보를 신상털기라며 인터넷에 흘리자 관음증과 더불어 조회가 폭발하지 않던가. 이런 와중에 손 안의 인터넷인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모를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아갈 소지가 다분하다. 사전 허락 없이 사용자의 행적을 감시하던 손전화기 제조회사가 고발되었고, 벌금이 부과된 게 엊그제다.

건강 이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전자피부가 나온다!”며 독자에게 가슴 벅찰 것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잘 휘어질 뿐 아니라 견고한, 가로 2센티미터 세로 1센티미터에 두께가 37마이크로미터의 전자피부를 문신처럼 심장 가까이 붙이면 환자의 심박수나 체온은 물론 근육의 움직임과 뇌파의 변화까지 24시간 감지하며 주치의에 연결한다는 언론기사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개발을 시작했다는 과학자의 소견을 소개했다. 다만 생체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거리가 몇 센티미터에 불과해 원거리 전송이 필요한 의료기기 적용에 한계가 있으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덧붙이면서.

전자피부의 가능성을 타진한 과학자의 순진한 의도는 기술개발 속도를 미루어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스마트폰 기술과 범지구위성합법시스템(GPS)을 활용한다면 미약한 생체신호가 담당의사의 손전화 모니터에 전달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리라. 그뿐이 아니다. 이미 새 세기가 시작될 즈음, 세계 과학기술의 추이를 분석한 미래학자는 개인의 DNA를 기반으로 만든 칩을 피부에 이식할 경우, 시시각각 변하는 개인의 맞춤의학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담당의사는 컴퓨터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해 적절한 약품을 그때그때 처방할 뿐 아니라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는지, 먹지 않고 독한 술을 어디에서 누구와 얼마만큼 마시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보호자에게 일러바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전자피부에 개개인의 DNA칩을 넣어 환자, 아니 모든 국민의 피부에 태어나자마자 이식한다면 어떠한 장밋빛 미래가 약속될까. 집 잃은 개를 얼른 찾게 할 뿐 아니라 함부로 버린 개의 임자를 꼼짝없이 잡아내고, 물린 이가 예방주사 접종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전자칩은 개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안전할 뿐 아니라 효율이 훨씬 빼어나고 비싼 DNA전자피부가 전하는 은밀한 정보를 병원은 물론이고 행정망의 중앙컴퓨터와 연결한다면 생활은 무시무시하게 편해질 게 틀림없다. 말썽 많은 주민등록증이나 인감증명이 지갑에서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출입국 수속을 위해, 내 나라든 남의 나라든, 공항에서 길게 기다릴 이유도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1990년대 말, 인감증명과 건강보험카드의 기능을 포함하는 전자주민등록증을 편의를 앞세우며 추진하려는 정부에 시민단체는 맞서야 했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로 시민을 감시하는 상황에서 개인 정보들이 은행이나 보험회사, 그리고 기업에 흘러들어갈 경우 빚어질 감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치며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계획을 철회했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살아나려 한다. 전자주민등록증이 없어도 일상에 아무 문제가 없는 시민과 달리 정부는 아쉬움이 큰 모양인데, 그 실체가 도대체 뭘까. 전국 곳곳에서 눈을 번뜩이는 폐쇄회로 카메라보다 효율적인 그 무엇은 감시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까.

넓은 아스팔트가 한산해진 야심한 밤,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횡단보도로 찾아갈 때 저기 경찰차가 보였다. 그래서 안심하고 횡단보도 도착 전에 길을 건넜더니, 경찰 순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남발하며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민중의 지팡이를 믿어 안심하고 건넜다는 핑계를 귀전에도 듣지 않으며 도로교통법 운운하던 경찰은 전과가 없으니 봐준다며, 더 바쁜 일이 있었는지 가던 길로 휑하니 사라져갔다.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남이 보든 말든, 순찰차의 작은 단말기로 모든 범죄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실에서 더욱 가깝게 다가온 전자주민등록증이 걱정인데, 최첨단을 찬미하는 과학기술은 전자피부를 가볍게 넘어설 세상을 장밋빛으로 그린다.

전자피부의 쌍방향 정보는 주치의와 환자의 스마트폰 사이만 맴돌까. 그런 정보는 고객의 수가를 조절하고 싶은 보험회사에서 반색하고 이윽고 가입을 거부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어떤 이의 입사를 원하지 않겠지만 그 정도는 약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전자신호의 감시와 통제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다. 편의에 사로잡힌 개인은 중앙이 은밀히 수집해 분류할 뿐 아니라 가공하는 정보에 굴복할 뿐, 중앙의 의도를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철두철미한 감시사회에 내팽겨진 개인은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면 저절로 병원 고객으로 등록되면서 나아가 디지털 치매에 들어간다. 현관 자물쇠의 번호를 기억 못하는 차원이 아니다. 전자신호 체계에 소외된 이는 디지털 학대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작은책, 201110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5. 10. 01:23

 

요즘 참 편리한 세상이다. 굳이 은행에 가지 않아도 입출금이 가능하고 공휴일이든 오밤중이든 매장에 가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옷이나 물건을 주문할 수 있다. 이제 지갑을 놓고 왔다며 회비 면제를 요청하는 얌체도 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만 잔고가 부족한 게 가상공간에서 확인되는 순간 현실공간의 참여가 거부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생겼다.

 

인터넷은 언뜻 양방향으로 열린 공간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폐쇄된 공간도 많다. 그런 곳에 접근하려면 비밀번호를 정하고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해커들이 어떻게 기업이나 정부 요로에 접근하는지 알 턱이 없는 일반 시민들은 그래서 비밀번호의 지뢰밭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인터넷 뱅킹을 비롯해 편의를 보장해준다는 수많은 인터넷 쇼핑몰의 전자결재 수단들이 대개 그렇다. 가끔 찾아가는 경우, 십중팔구 비밀번호를 잊어 찾느라 성가신 절차를 밟아야 한다. 첨단기술이 요청하는 피할 수 없는 덫이다.

 

문자를 사용하면서 기억력을 잃었고 주판과 계산기를 개발하면서 계산능력이 손상된 사람은 노래방 기계를 보급하며 십팔번을 잃었고 내비게이션을 장착하면서 스스로 길눈을 어둡게 만들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친지의 번호를 저장한 뒤 가족과 집 전화번호가 아리송하게 된 것을 넘어 술 취하면 집 현관 열쇠번호까지 잊게 되고 말았다. 야심한 시각, 흐느적거리며 자기 집 현관에서 번호판을 한참을 더듬던 기억, 많은 이가 공유할 것이다. 지나가는 이웃이라도 있었다면 도둑으로 오인될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다.

 

비밀번호 따위를 잊는 첨단기술의 덫은 애교에 불과하다. 인터넷으로 자질구레한 물건을 구입하고 결재하는 시민들은 특별한 일을 일으킬 도리가 없겠지만, 뜻밖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클 만큼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지난 412일 발생한 농협 금융전산망 마비를 보자. 국가정보원과 공조수사를 한 검찰이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규정한 북한이 7개월여에 걸쳐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하고 실행한 새로운 차원의 사이버 공격여부와 관계없이, 농협에 계좌를 열고 온라인으로 예금을 입출금하던 이들은 자신의 의자와 상관없이 잔고 없는 가난뱅이가 되어 경제활동이 한동안 봉쇄되고 말았을 것이다.

 

지난 36일 북한은 경기도 서북부 지역의 위성항법장치(GPS)의 전파를 교란했다고 관계자가 발표했다. 2만 킬로미터 상공의 위성에서 발사되는 GPS 신호는 지상에 도달하면 휴대전화의 100분의1 정도로 미약해 간단한 장비로 쉽게 교란할 수 있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실제 2003년 이라크 군은 미군의 GPS를 교란해 민간시설을 오폭하게 만들었다는데, 휴대전화의 오빠 믿지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한 젊은이의 혼선과 오해보다 자칫 우리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넘어가 나포되는 위기를 맞을 수 있었다. 그뿐인가. 훈련 중이던 아군의 포탄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아무리 철두철미한 방어 장치를 갖춰도 자연 재해 앞에 속수무책이 되는 최첨단의 덫도 여러가지다. 가깝게 일본 동북부 지진에 이은 쓰나미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수소가스 폭발의 후폭풍을 보라. 수십 년 유기농업을 정착시키려 애를 써왔던 농부의 자살도 참으로 애처롭지만 이이폰으로 지구촌의 여유 있는 계층에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던 미국의 전자회사 애플에 생산 차질이 생겼다지 않는가. 일본에서 생산하는 플래시메모리 공급 중단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생산량 위축돼 우리가 반사이익을 얻는다 해도, 그건 잠깐이다. 그 여파는 돌고 돌아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1995년 일본 고베의 한신대지진은 톱니바퀴 물리듯 돌아가는 세계 물류에 한동안 지장을 초래했고, 투기세력의 조정이 있었겠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리비아 민중의 시위로 국제 석유가격이 잽싸게 올랐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이 만든 러시아 식량위기는 시카고 곡물선물시장의 투기세력을 들쑤셔 공급가격을 치솟게 만들었고, 그 여파로 아프리라 세네갈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최첨단 예보장치를 가진 투기세력들은 이미 예상했을 것이다. 자국의 잉여 농산물로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최첨단 공장을 정부 보조금을 받아 경쟁적으로 세우는 자본도 옥수수 수입국의 비명을 예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지난 달 미국 중부 평야지대를 휩쓴 사상 최악의 토네이도는 하필 일본 완성차 공장을 뜯어냈지만 우리의 현대나 기아차 공장을 용케 비켜갔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의 4월 신차 판매고가 절반으로 급락한 반면 우리 차들은 절반 이상 늘었다는데, 태평양 상의 라니냐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예년에 없이 토네이도를 강력하게 만든 지구온난화는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기만 하는데, 빈도와 강도를 거듭 경신하는 미국의 토네이도가 다음에도 현대차와 기아차 공장을 비켜갈 거라 확신할 수 있을까. 더욱 강력한 토네이도가 내습해도 끄떡없게 개축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른바 디지털 치매를 피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세력에 의한 디지털 감시의 눈초리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건물과 마을 어귀마다 설치된 폐쇄회로 카메라뿐이 아니다.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띄우든,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빅브라더는 언제 어디서나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두루 감시할 수 있다. 대리운전 전화 후 성가시게 오는 안내 문자는 애교에 불과하다. 아무리 일상을 건전하고 무미건조하게 지내도 뜻하지 않은 범인의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다. 범인과 같은 버스를 탔다는 걸 경찰청의 중앙컴퓨터는 안다. 그뿐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리바이도 위변조될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항상 건전하고 무미건조하게 살 수 없다. 또한 언제나 맑은 정신과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분간하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디지털 치매 세계에 예외는 없다. 치매에 접어든 노인은 딜리트하고 말 첨단일수록 기술은 다수의 소외를 양산한다. 빅브라더가 지역에 있는지 중앙에 있는지에 따라 소외의 범위는 다를 테니 전자칩이 삽입된 여권을 가진 이의 기록은 미국의 중앙컴퓨터가 관리할 게 틀림없는데, 정부는 앞으로 전자집이 삽입된 주민등록증을 발급한다고 한다. 중앙 컴퓨터가 당의정으로 제공하는 편의에 길들여진 민중은 첨단기술의 덫에 겹겹이 갇히는 셈인가.

 

이미 최첨단 감시의 덫에 손발이 사방팔방으로 묶인 처지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사지와 정신이 멀쩡하다면 더욱 교묘하게 현혹하는 최첨단의 강요에 가능한 만큼이라도 저항할 필요가 있겠다. 신용카드의 수를 줄이거나 현금을 사용하고, 구형 휴대전화를 고집하다 버리고, 현관을 열쇠로 열거나 아예 열어놓는 행동이다. 중앙의 편의에 중독된 민중끼리 살아가려니 현실에서 고문처럼 어려운 일이겠지만 첨단기술의 치명적인 덫을 인식한다면 빠져나갈 고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러운 삶으로 돌이켜 보자는 거다. (지금여기, 2011.5.?)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1. 22. 03:04

 

1980년대 중반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빨간 옷 입은 여성들이 연이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봉준호 영화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2003년에 발표했지만 범인은 아직 검거되지 않았다. 경찰은 비슷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비상근무에 들어간다. 희생자의 행적을 CCTV로 확인하며 수상한 자의 접근을 살피는 건 물론이고 희생자와 동일한 교통수단을 이용한 모든 이를 검색하며 알리바이를 추적하느라 날밤을 샌다.

 

피해자와 동일한 버스를 타서 같이 내린 자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현금으로 차비를 내는 자는 제외하지만 요즘 거의 없을 터. 충전식 교통카드 사용자도 파악하기 몹시 번거로우니 뺄 수 있지만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자는 꼼짝없이 포함된다. 신용카드를 사용한 탓에 경찰에게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밝혀야할지 모른다. 횡설수설한다면 가해자로 의심받을 수 있다. 그렇듯, 편의를 도모하는 신용카드는 사용자의 행적을 누군가에게 시시때때로 노출시킨다.

 

18세기 제래미 벤담은 ‘파놉티콘’이란 개념을 제안했다. 자신이 감시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다수의 죄인을 몇 안 되는 간수가 관리할 수 있는 감옥의 구조로, 당시에 채택되지 않은 파놉티콘은 감시가 전자화된 요즘, 만개하고 있다. 신용카드가 그렇고 핸드폰이 그렇다. 회원을 가입한 뒤 특정 주제의 책을 구입하면 서점은 비슷한 주제의 책이 발간될 때마다 이메일을 보낼 것이다. 술 한 잔 뒤 얼큰해져 부른 대리운전은 대리운전회사의 평생 고객으로 즉각 등록될 것이다. 밤 10시가 되면 문자가 지겹게 전송된다. 일종의 감시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시민단체들은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을 반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당시 정부는 카드 한 장으로 온갖 일상이 간편해질 것이라는 장점을 내세웠지만 시민단체는 국가의 감시를 두려워하며 반대 목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그때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IC칩에 일상의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은행계좌와 인감, 의료보험 정보를 포함해 수십 가지의 정보를 담으려 했다. 또한 행정전산망과 연계해 사용자의 편의를 도모하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끝까지 선의를 강조했지만, 전자주민등록증이 채택되었더라면 국가권력은 개개 사용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 금전거래와 건강 여부를 시시콜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독재권력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개인의 행동과 사상을 감시 통제한다. 파놉티콘은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를 원활하게 돕는다. 김대중 당선자에 의해 공식 폐기된 전자주민등록증도 빅브라더의 감시와 통제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었다. 모든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등록한 경찰은 용의자의 행적을 컴퓨터 앞에서 살피며 알리바이를 캘 뿐 아니라 정치인과 사업자는 경쟁자의 행적을 파악해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보험회사는 시민의 건강 상태를 검토하고 가입을 선별할 수 있었다.

 

지난 10월 행정안전부는 전자주민등록증 다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공청회로 국민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여러 경험상 현 정권이 시민 의견을 공정하게 듣고 투명한 논의 결과를 정책에 반영할 것으로 믿기 어렵다.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표면에 성명, 생년월일, 성별, 사진, 유효기간, 발행번호와 같은 기본사항만 기재하고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처럼 민감한 정보는 보안장치가 내장된 IC칩에 암호화해 저장하므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차단할 수 있을 거로 장담했다. 하지만 그럴까.

 

현재 사용하는 플라스틱 이전의 주민등록증은 재료가 종이였다. 그 위에 두꺼운 비닐로 코팅을 한 주민등록증은 아무나 위변조할 수 있어도 누구나 그 사실을 알아챘다.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은 전문가가 위변조했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앞으로 나올 전자주민등록증은 위변조가 불가능할까. 매우 어렵겠지만 누군가가 위변조한 주민등록증은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결국 빅브라더 사이의 농간으로 시민들만 골탕 먹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 대다수 대학생들은 신용카드와 교통카드를 겸하는 학생증을 사용한다. 플라스틱 카드에 익숙한 그들은 머지않아 유비쿼터스 강의실에서 출석이 학생증으로 체크되고 수강태도가 평가될 것이다. 편의에 익숙해진 대다수 학생들은 학생증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전자주민등록증은 어떨까.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주민등록증의 IC칩에 주장처럼 주민등록번호만 들어갈까. 공청회에서 시민단체는 주민등록법 개정안 24조 2항에 의료보험과 운전면허 같은 민감한 정보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는 걸 주목했다. 전자주민등록증을 사용하는 시민들은 국가와 중앙 권력기관이라는 빅브라더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지 않을 수 있을까.

 

교통경찰이 바라보는 앞에서 횡단보도를 무단으로 건너보라. 자존심이 상한 경찰이 득달같이 다가와 “교로교통법 위반” 운운하며 주민등록증을 요구할 것이다. 마뜩치 않아도 제시해보라. 그들은 순찰차 안의 단말기에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할 거고, 잠시 후 모니터에서 경범이든 중범이든 전과기록을 찾으려 혈안이 될 것이다. 아무 것도 없더라도 눈을 위아래로 부라린 뒤, 태도가 공손하면 특별히 봐 주니 다신 무단횡단 말라고 으름장을 놓을 테고 불량하면 벌금 고지서를 발부할 것이다. 달리는 자동차가 없을 때 교통경찰이 보호해주는 길을 안심하고 건넜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소용없다.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에 익숙해지고 신용카드의 편의에 길든 시민들이 전자주민등록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면 빅브라더는 어떤 파놉티콘을 구상할 수 있을까. 1997년처럼 40가지가 넘는 개인정보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머지않아 IC칩은 DNA칩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데, 개개인의 유전정보가 고스란히 담긴 전자주민등록증이 편의를 대신하게 된 세상을 상상해보자. 어떤 장밋빛 인생이 보장될까. DNA칩이 들어간 플라스틱 전자주민등록증을 굳이 소지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잃어버리면 곤란하지 않은가.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 한 미래학자는 개인의 DNA칩을 피부에 삽입하는 장밋빛 내일을 예상했다. 은행과 병원의 컴퓨터와 연계된 DNA칩을 몸에 삽입한다면 일상이 아주 편리해질 것이라 장담했다. 톨게이트가 없어도 고속도로 통행료가 자동으로 인출되고 연인과 극장에 가도 입장권을 별도로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귀띔했다. 단말기에 삽입 부위를 가까이 대면 해결된다는 건데, 그 뿐이 아니다. 병원 옆을 지나갈 때 핸드폰 모니터에 혈압과 맥박수가 표시되면서 혈당과 알코올 수치에 맞는 약을 그때그때 처방한다는 게 아닌가. 참 끔찍하게 편리한 세상이 도래할 모양인데, 시민들은 마냥 행복할 수 있을까.

 

빅브라더는 지금도 고객이나 시민이나 용의자의 정보를 감시, 분류, 통제한다. 문제는 빅브라더가 당하는 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정보를 위변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알리바이도 함부로 창조할 수 있을 텐데, 중앙에서 집중적으로 제공되는 편의에 길든 개개인은 아무 생각이 없다. 전자주민등록증은 장차 어떤 내일을 안내할까. (작은책, 2011년 1월호)

 

행안부 작자들이 올해 8-9월에 다시 입법통과 시도한다는데 참 걱정입니다. 바퀴벌레같이 기어나오는 전자주민증을 이참에 완전 사망시켜버립시다. 영국이나 미국같은 선진국도 인권침해, 예산낭비등으로 포기한 것인데 이나라 공뭔과 관료들이란 작자들은 말이 안통하구 거짓과 기만의 달인이니 절대 주민증을 전자화하지 못하도록 무산시켜야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