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2. 10. 12. 01:34

     전쟁이 빚은 과학기술의 빛과 그림자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 문학동네, 2012.

 

원자력문화재단이 요사이 각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정의롭지 못하게 핵발전소가 있거나 핵발전소 추가할 지역을 찾아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핵발전소 홍보 뮤지컬을 무료 관람하게 하며 홍보책자와 만화를 배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에게 명과 암이 두드러지는 핵발전을 세뇌하듯 찬양 일색으로 주입하는 것은 후안무치라고 지적한 한 언론은 미래의 에너지는 미래세대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옳은 주장이다. 한데, 거기에 더 추가할 게 있다. 100억 대의 예산을 홍보에 사용하는 원자력문화재단은 물론이고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외면하는 것으로, 핵발전과 핵폭탄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무기를 보습으로!’ 일환의 슬로건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을 제창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퍼진 핵발전소는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부산물로 양산하게 되었고, 덕분에 미국은 막대한 핵무기를 비축할 수 있었다. 일본 두 도시에 떨어진 핵무기는 2차대전 이후 적대국을 위협하는 데 유용하긴 했어도 다신 떨어지지 않았지만, 일본의 현 54기 핵발전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은 자국에 떨어졌던 핵무기의 수천 배를 만들 정도로 일본 내에 비축돼 있다. 전쟁을 위해 농축한 우라늄이 평화 시 핵발전소의 연료로 모습을 선하게 바꾸었지만, 핵발전소는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지옥의 신’, 다시 말해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 플루토늄을 대거 남긴다.


전쟁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적군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를 다급하게 만들게 한다. 돈과 과학기술자가 많으며 크고 작은 전쟁에 직간접으로 개입해온 미국에 그런 현상이 심하다. 승리를 위해 예산을 아끼지 않을 때, 불철주야 개발한 과학기술은 군대에서 기꺼이 사용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어렵사리 개발한 그 기술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 아깝다고? 캐나다에 사는 과학저술가 피터 노왁은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에서 우리 일상에 사용하는 많은 과학기술이 군사를 거쳐 일반 생활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밝힌다. 민간 영역의 수요가 훨씬 많을 테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노릇인데, 음식과 포르노까지 군사 목적을 거쳐 민간에 왔다고 주장해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부대를 전격 방문한 마릴린 먼로는 당시 시대를 풍미하는 섹스 심벌이었다. 군인의 사기를 진작하는 섹시 여배우가 전후 포르노 산업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피터 노왁은 마그네틱테이프에서 CD를 지나 DVD로 이어진 정보저장매체를 주목한다. 세계 2위인 중국보다 7배가 많은 군사비 예산을 쓰는 미국이 개발한 정보저장매체는 군사적 목적으로 큰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 그런 정보저장매체들은 포르노 산업과 손잡으며 화려하게 제 영역을 넓혔다. 해마다 1천 억 달러 가까운 거액을 포르노 산업이 지배한다고 피터 노왁은 주장한다. 그 중 미국이 130억 달러로 4위라는데, 포르노물 제작이 꽤 활발한 일본을 비롯해 규제가 심한 중국과 한국이 미국을 앞선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피터 노왁이 제시하지 않은 그 근거는 믿을만한가?


전쟁에서 무기 이상 중요한 보급품은 식량이다. 충분한 영양을 제때 공급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쉽게 변질되면 안 된다. 그래서 나온 식품은 돼지의 살코기와 지방이 부드럽게 배합된 통조림 속의 스팸이고 이어 햄버거다. 그 스팸은 전쟁 뒤 태평양의 섬 지방 주민들에게 비만을 안겼는데, 햄버거는 오대양 육대주에 비만을 안겼다. 이처럼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한 과학기술이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의 손에 넘어가면 시민사회는 폭탄 이상 파괴적인 변화를 겪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라는 제한된 목적에 충실하기만 하면 충분했던 과학기술이 민간으로 이전되면서 디자인이 강화되고 사용자 편의가 개선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본은 시장 점유를 위한 공격적 경영에 돌입하고, 성공하면 소비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자본시장에서 이윤을 선점하려는 전쟁은 군대의 전쟁을 질적 양적으로 압도한다.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요즘이라고 군사적 과학기술의 연구가 머뭇거릴 리 없다. 인터넷과 위성합법시스템이라고 하는 GPS기술은 애초 군사적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민간에서 더욱 활발하게 사용한다. 그렇다면 민간에서 개발한 기술이 군대로 이전된 경우는 없을까. 물론 적지 않다. 또한 군에서 개발했지만 민간에서 사용자 편의로 세련되게 개선한 기술이 다시 군에 적용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이나 패권을 노리는 권력은 한통속인 까닭이다. 군사가 매개하는 그 거래를 위해 과학기술자가 동원되고 자본이 투입된다. 세금으로 막대하게 배정되는 군사 예산의 실체가 무엇이고 어디에 얼마만큼 들어가는지, 시민들은 대부분은 모른다. 영업비밀이라 철저히 통제하는 기업의 연구 내역과 예산도 마찬가지다. 패권과 이윤은 권력과 자본이 챙기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시민과 소비자에 고스란히 전가된다.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제국이 개입하는 전쟁은 승리 또는 패권을 위해 일어나지만. 자본이 부추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윤추구를 위해 국가를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금융자본이 역사적으로 많았다는 걸 여러 증거를 들어 제시하는 책자가 여러 권이다. 그렇다면 군사와 자본은 한통속이다. 세금 내는 시민들과 자본이 제공하는 편의에 맥없이 중독된 소비자들은 소외될 따름이고, 그로 인한 결과는 대개 비극적이다. 전쟁으로 인한 군인과 민간의 희생을 언론이 안타깝게 전하는 것과 관계없이, 군사가 충돌하는 전쟁은 사장 지배를 위해 자본이 벌이는 전쟁에 비교한다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지 모른다. 적군을 대량 살상하는 폭탄보다 결코 안전하지 않다. 민간에서 폭발하는 군사기술의 상대는 적군이 아니다. 상대는 당대에 그치지 않는다. 생태계도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터넷 산업이 벌어들이는 이윤의 절반 이상을 싹 쓸어가는 포르노뿐 아니다. 손가락 수보다 많지 않은 몇 자본가의 이윤에 절대 충성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 농수축산물과 그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온갖 화학물질, 민간인에 제공되는 무기와 전자기기들, 그리고 로봇들이 시민사회에 어떤 편의를 제공할까. 몸이 부르르 떨리는데,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에서 피터 노왁은 모두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덕분에 우리의 삶이 편리해진 점도 있다는 걸 감추지 않지만, 그런 현상을 긍정적 발전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 외면하고 싶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그런 과학기술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그런 과학기술로 인해 어떤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를 펼쳐보길 권한다. 통찰력 있는 상식이 그만큼 깊고 풍부해질 것이다. (반니, 201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