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3. 7. 21:20


! ! 후드득!’ 인적 드문 산록에서 가끔 듣는 소리다. 꿩의 과시행동이라고 조류학자는 설명한다. 주변 낙엽과 비슷한 깃을 가진 갈색 암컷을 까투리, 눈 주변이 선홍색이고 화려한 꼬리 깃을 가진 수컷을 장끼로 구별하는 꿩은 암수의 생김새가 완연하게 다르다. 수컷인 장끼가 요란스레 자신을 과시하는데, 뭘 믿고 저러나.


화려한 깃을 드러내며 꿩! ! 소리치고 후드득 날갯짓하면 자신의 위치를 천적에게 드러내는 꼴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얌전해야 천적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분명히 낮지만 암컷에게 용기 없는 수컷으로 보일 것이다. 설사 천적이 노릴지라도 능히 피할 자신이 있다는 식의 과시행동은 암컷을 믿음직스럽게 여기게 할 테고, 까투리는 과시행동을 견주며 장끼에게 접근한다고 동물행동학자는 해석한다. 그런 꿩은 닭과 가까운 종이다.


암수 구별이 뚜렷한 닭도 과시행동을 한다. 어스름 새벽부터 온 동네 수탉이 경쟁적으로 꼬끼오울어대는 통에 잠을 깨곤 했다. 닭은 서열이 정해지기 전까지 서로 매섭게 쪼며 싸우지만 정해지면 평화가 깃든다. 짝짓기는 물론 사료 접근에 우선권이 생기는데, 만일 새 닭이 끼어들면 한동안 시끌벅적하다 이내 조용해진다. 그런 닭은 건강했다. 불과 50년 전에 대부분의 닭이 그랬는데, 그때 닭과 꿩에 조류독감이 있었을까? 알 수 없지만, 누구도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병이었을 터.


살처분, 아니 생매장될지 모르고 판자를 든 인부에 쫓기며 뒤뚱뒤뚱 구덩이로 들어가던 어린 오리들은 크기가 한결 같았다. 한날한시 부화되자마자 축사 안에 쏟아진 한 무리의 오리뿐이 아니다. 닭도 돼지도 소도 마찬가지다. 냉정한 과학축산은 죽어라고 새끼만 낳는 돼지와 암소, 암컷에 인공으로 수정시킬 정액만 죽어라고 뽑아내는 수퇘지와 황소의 품종을 용도 별고 육종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돼지와 소는 엄격한 조건에서 계산된 사료를 먹고 항생제가 주입되면서 똑같이 자란다.


값비싼 자동화 설비는 하루 100만 마리의 삼계용 닭을 포장해낸다. 사람은 고리에 한 마리 씩 다리를 걸면 끝난다. 다리가 걸려 몸이 뒤집힌 닭, 아니 병아리는 기계의 원심력에 목을 늘어뜨리며 전기가 통하는 물에 감전돼 정신을 잃고, 목숨을 잃고, 머리와 깃털과 내장을 잃는다. 배에 인삼과 대추와 찹쌀이 들어간 살코기가 낱개 포장돼 출하할 상자에 담기기까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들쭉날쭉한 병아리를 공급한 농장은 퇴출될 것이다.


유정난만 죽어라고 낳고 암탉과 죽어라고 교미하는 수탉들은 용도에 맞춰 동일하게 육종한 까닭에 기계의 오차범위를 만족시킨다. 과학축산은 극단적 선택 교배로 타고난 유전자를 크게 위축시켰다. 한꺼번에 부화기로 들어간 유정난이 동시에 부화하면 한 무리의 병아리를 공장처럼 착착 돌아가는 축사로 쏟아 넣는다. 이어 27일 동안 항생제 섞인 배합사료를 쉼 없이 먹이면 중복 점심에 전국의 식당과 군대에서 삼계탕 수백 만 그릇을 동시에 내놓을 수 있다.


닭은 공간이 좁아도 서열은 다투므로 자본은 미리 부리를 뭉툭하게 잘라놓았다. 쪼여도 상처가 크지 않아 상품성은 떨어지지 않겠지만, 그 어린 닭은 무척 아플 것이다. 같은 크기의 어린 돼지는 쑥쑥 자라면서 축사가 비좁아지니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앞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을 수 있다. 그래서 미리 꼬리를 바싹 자르고 이를 적당히 뽑아버린다. 살처분 구덩이에서 공포에 질린 돼지들이 들쭉날쭉하지 않은 이유가 그렇다. 오리도 닭도 마찬가지다. 크기가 한결 같은 만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생각해보자. 단일한 품종의 농작물을 넓게 심으면 벌레가 금세 모여든다. 화학비료를 주면 웃자라지만 뿌리는 깊게 내리지 못한다. 살충제를 뿌리면 농작물은 해충 내성을 잃지만 해충은 살충제의 내성을 갖고, 농작물은 새로운 해충과 병균에 시달리게 된다. 반면, 같은 농작물이라도 다양한 품종을 여기저기 심고 여러 농작물로 사이짓기를 하면 해충이 드물고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잘 자라 실한 알곡을 맺는다. 품이 많이 들어가고 돈벌이가 당장 줄지만, 땅도 농촌도 농부도 건강해지고, 먹는 이도 건강해진다.


타고난 유전자를 잃은 가금과 가축을 좁은 공간이 밀어놓으면 부대낄 수밖에 없다. 자라면서 배설물이 쌓이는 공간은 비좁아지며 스트레스가 커지고, 서로 상처를 입히면 질병에 쉽게 감염된다. 전염성 질병은 순식간에 퍼진다. 놓아서 기를 때 지나가는 질병이던 구제역도 조류독감도 치명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아남는 개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대미문의 예방적 살처분은 수출시장의 신뢰를 핑계로 난폭한 살육을 서슴지 않는다. 처지를 바꿔 보면 천벌 받을 짓임에 틀림없다.


충북 음성군의 한 양계장은 멀쩡한 닭을 모조리 죽이는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깨끗한 농장에서 닭의 본성을 최대한 배려해왔기에 조류독감에 대한 면역력이 큰데, 형평성 운운하는 당국이 예외 없는 살처분을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유전자와 면역력을 지우는 예방적 살육은 축산을 어둡게 한다. 본성을 보전하던 조상은 살처분은 물론, 가축이 떼로 죽는 참변을 알지 못했다. 낳은 알을 품는 암탉이 들쭉날쭉한 병아리와 마당이나 농장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건강을 되찾아야 농부와 땅과 먹는 이의 건강이 회복될 것이다. (기쁜소식, 2014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