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6. 11. 2. 22:14


집에 냉장고가 언제 들어왔을까?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요즘이면 재활용 처리기에 넣으니 간단한데, 음식쓰레기가 줄어든 건 아니다. 사실 음식쓰레기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나오지 않는다. 쓰레기가 될 부분을 어느 정도 제거한 식재료나 포장만 뜯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을 구입하지 않는가. 상당한 음식 쓰레기는 슈퍼마켓에 납품하는 식품회사나 가공식품회사에서 발생한다. 대략 가정의 70배에 달한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 대다수 가정에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우리 대부분은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살았고 도시라 해도 주변에 논밭이 많았다. 음식 쓰레기가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활용됐다. 오래 두면 상하는 음식은 마당의 개 밥그릇에 담거나 가축의 먹이로 이웃이 가져갔다. 부엌에 찬장을 두어 밑반찬과 남은 음식을 잠시 보관했고 음식은 먹을 만큼만 조리했다. 당시 음식쓰레기라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저 남은 음식이라 했다.


냉장고가 커지면서 음식쓰레기의 양이 늘어났다. 음식을 보관하는 그릇도 다양해지고 커졌다. 커진 그릇에 담는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업도 커졌는데 농부의 수는 크게 줄었다. 우리는 내 집과 직장으로 공급하는 농작물을 누가 어떻게 경작했는지 거의 모른다. 가공식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첨가물이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잘 모른다. 관심을 가져도 소용없다. 규모가 큰 식품회사는 영업비밀이라며 알려주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법원의 명령이 와야 알려주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겨울이면 창호지 바른 문을 꼭 닫고 아랫목의 두툼한 이불 아래 밥주발 묻을 때, 밖으로 통하는 창문마다 성예가 끼었지만 아파트 이중창 안에 서리는 사라졌다. 하지만 집안이 건조해졌으니 빨래를 거실에 널거나 젖은 수건을 머리맡에 놓고 잠을 청해야했는데 이젠 아니다. 가습기가 보급되었기 때문인데, 전에 없던 걱정이 생겼다. 아무리 깨끗한 물을 넣어도 가습기 안쪽에 검은 물때가 생기는 게 아닌가. 물때에 아기에 해로운 균도 있다는 광고를 앞세우며 가습기살균제가 등장했는데, 그게 돌이킬 수 없는 말썽을 피울 줄이야.


상품 구입을 유도하는 광고는 이따금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지만 모든 정보를 다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은나노 세탁기는 의복에 묻은 병원균을 제거한다고 제작회사는 선전했지만 병원균 이외의 세균까지 죽여 유럽에서 사회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세탁기에서 빠져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이 옷 한 벌 당 1500개라는 유럽 연구진의 발표를 인용하는 광고도 없다. 그 플라스틱이 생태계를 돌고 돌아 물고기에 이어 사람의 입으로 들어온다는 사실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가 치약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와 수많은 치약이 퇴출되었다. 가습기처럼 뿜는 습기를 체내로 들이마시는 게 아니라 뱉어내지만 극미량은 체내로 흡수될 수 있으므로 마땅히 퇴출되어야 옳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문제의 살균제가 치약에 들어간 걸 몰랐을까? 몰랐다면 직무유기일 텐데, 알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국정감사에서 폭로되기 훨씬 전에 대형 마트에서 반액 할인 행사를 했을까? 식품과 의약품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자의 분노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가?


4대강이든 페트병이든, 담긴 물은 얼마 안 가 상한다. 지진이 잦은 일본은 7년 동안 담겨 있어도 안심할 수 있는 물을 비상용으로 판매한다지만 그 페트병은 특수하게 처리해 가격이 높을 테고, 시중에서 쉽게 구하는 페트병의 생수는 그 정도가 못된다. 일단 뚜껑을 열면 따로 보관하지 말고 다 마시는 게 좋다. 가습기에 부어도 마찬가지다. 물때가 생긴다. 그때마다 닦아내지 않으면 새 페트병의 물을 부어도 소용없다. 물때 속의 세균이 금방 증식될 것이므로. 하지만 물때 속의 세균이 모두 병원성은 아니다. 병원성이라 해서 몸에 들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몸의 면역력은 그리 허술하지 않다.


지난 9월말, 한 방송은 정수기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깨끗할 거라 믿었던 정수기 벽의 거무스레한 물질은 콧물 같았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과 곰팡이에 오염되었다는 게 아닌가. 끔찍했어도 물을 자주 닦아낼 수 없는 통 속에 가뒀으니 당연했다. 그 물을 마셔왔어도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얼음정수기였는데, 니켈과 같은 도금이 떨어져 얼음에 섞였다. 하지만 현재 불가항력으로 보인다. 금속 막대의 온도를 순간적으로 내려 물을 열린 뒤 온도를 급히 올려 막대에 붙은 얼음을 떨어뜨려야 하는 기능을 위해 도금이 필요한데, 그 기술이 완벽하지 않다.


조금 부지런 떨면 냉장고의 냉동실에 적지 않은 얼음을 준비할 수 있다. 시원한 물을 냉장해둘 수 있다. 고도로 정수된 수돗물보다 수도꼭지의 물이 안전하고 훨씬 저렴하다. 수돗물을 끓여 냉장하고 냉동한다면 얼음정수기는 없어도 그만이다. 여름철 얼음이 대규모로 필요한 사업소는 좀 귀찮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냉장고에 평면 모니터를 붙여 스마트하게 냉장고를 관리하라고 광고는 유혹하지만 조금만 부지런하면 불필요한 기능이다. 냉장고에 보관한 음식과 재료가 얼마나 남았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열어보면 안다. 시장바구니 들고 가게를 가면 운동도 된다. 필요한 음식재료를 냉장고가 온라인으로 마트에 주문할수록 식품안전에 무감각해진다. 남의 일처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인데, 택배 주문을 자주하면 감시가 된다. 거래하는 마트는 내 가족의 식성을 파악해 없어도 되는 음식을 주문하라고 집요하게 광고할 것이다. 음식쓰레기는 그만큼 늘어나겠지.


소비자가 자주 청소할 수 있는 정수기는 불가능할까? 가격이 오르고 디자인이 새로워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해질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자. 정수기 없었던 시절, 우리는 더 건강했다. 흐르는 강물과 우물물을 그냥 떠마시던 시절, 조상은 약을 몰랐다. 이웃과 농작물을 나누던 시절 하늘과 땅이 깨끗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편리하게 해준다며 구속하는 기계를 피할 수 있다. 이웃은 물론이고 생태계와 그만큼 살가워질 수 있다. (작은책, 2016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