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5. 6. 22:58
 

요즘 청계광장은 촛불 하나 들고 찾는 젊은이를 받아들이느라 밤이면 빛난다. 고 박경리 여사의 소원과 달리 개발세력이 내세운 복원이라는 미명으로 원형이 파괴되었을 때, 역사를 잃은 청계천은 조경 이외의 가치를 잃었지만, 이제 새로운 가치 창조의 기회를 누린다. 콘크리트 청계광장으로 태어난 이래 가장 보람찬 문화적 경험이 아닐까. 비록 선거권이 없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은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축제의 한마당을 연다.

 

핸드폰 문자와 인터넷으로 참여를 권유하던 청소년들이 청계광장에 모인 이유는 참여다. 그나마 열린 공간이 거기였고 가까운 곳에 커다란 신문사가 몇 군데 있다. 정권이 바뀌기 무섭게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왜곡한 그 신문사들은 청계광장에 모인 청소년의 목소리마저 왜곡하는데 앞장섰다. 근거 없이 불순세력으로 모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청계천 복개를 뜯었던 전 서울시장이 대통령으로 거주하는 청와대와 멀지 않은 곳이 청계광장인데,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은 할 말이 많다. 광우병에 대한 자신들의 염려를 싸잡아 ‘괴담’으로 폄하하는 언론과 청와대에 항의해야 했다. 발랄한 요즘 젊은이는 눈을 부릅뜨며 항의하지 않는다. 축제로 표현한다. 후손의 건강보다 외교를 먼저 생각한 어른들에 의해 광우병 위험에 노출된 자신들의 처지를 춤과 노래로 표현하며 그 대책을 요구하려는 거다.

 

청계광장을 참여광장으로 새롭게 연 학생들의 목소리는 기득권을 쥔 어른들이 무시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의 권리를 시민사회에 분명하게 전했다는 사실에 우선 의미를 두어야 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듣는 정부라면 괴담 운운하기에 앞서 청계광장을 찾아 학생들과 대화에 나서야 마땅할 것인데, 두고 볼 일이지만 긍정적이지 않다. 참여를 반겼다면 미국 협상단과 마주 앉기 전에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을 테지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대통령과 의회와 행정부를 먼저 의식했을 따름이었다. 직접민주주의는 물론이고 대의민주주의 원칙마저 외면하고 만 것이다.

 

의원은 지역구 주민의 의견을 대의한다. 그러겠다고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얼마 전 총선에서 대부분의 국회의원 후보들은 대의민주주의의 실천의지를 의심하게 했다.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수호하기는커녕 훼손한 경우가 더 많았다. 개발과 관련한 숱한 공약은 행정부의 몫이건만 남발한 것이다. 뉴타운 공약이 그랬다. 뉴타운이 미칠 파장을 주민과 먼저 논의하거나 뉴타운을 원하는 주민들이 얼마나 되는지 합리적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당선 후, 돈 벌면 좋은 거 아니냐는 발언을 연발하며 무책임을 연출했다. 뉴타운으로 터전을 잃을 80퍼센트 원주민의 의견을 싹 무시한 추태였다.

 

대의민주주의는 약하다. 대의민주주의가 마련하는 제도와 행정은 허물어지기 쉽다. 독단이 빚는 파행으로 유권자의 지지기반을 상실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의원들은 논의에 앞서 주민의 의견을 거의 묻지 않는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는 당연히 고려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가 곧 지역구 주민의 의견이라는 오만에 빠져 있을 경우는 그래도 낫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당론에 논쟁 없이 굴종, 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가 빈발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나선다. 때때로 주민소환이라는 무기로 의원들의 자세를 교정하려는 행동도 수반하지만 아예 직접 의견을 제시하며 논의에 참여하려는 운동을 전개한다. 이른바 ‘참여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에 충실한 선량이라면 의견을 내는 주민들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주민과 만나 논의한 의견을 의회나 행정부에서 반영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른바 ‘거버넌스’다. 거버넌스를 위해 주민에게 광장이 필요하다. 내일의 유권자인 학생들의 목소리를 아름답게 펼쳐내는 청계광장은 시방 거버넌스를 시험하고 있는데, 광장은 다양할 수 있다. 인터넷도 훌륭한 가상 광장의 역할을 요즘 담당한다. 들불처럼 번지는 대통령 탄핵 목소리를 보라. 다만 자본의 지배를 받는 포털은 압력에 약할 수 있다. 불안하다면 안전한 광장을 인터넷 공간에 마련해야 거버넌스 참여자는 마음이 놓일 것이다. 정자나무는 마을의 오랜 광장이다. 그 안에서 주민의 의견이 자유롭게 모이고 격의 없게 논의된다.

 

참여민주주의는 강하다. 주민의 목소리를 가깝게 듣고 논의해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보다 강하다. 하지만 논의에 나서려는 시민이 많을 경우 직접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그럴 때 참여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고, 한계가 분명한 대의민주주의에 힘을 실어준다.

 

가장 확실한 직접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마을이다. 마을의 의회는 정자나무다.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고 의장을 선출하는 마을 사람들은 의제를 스스로 결정해 의논해왔다. 마을이 모이면 도시가 되고, 크고 작은 도시가 모여 국가가 된다. 마을의 의견이 수렴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마을은 국가의 기초 단위다. 마을이 연대하면 민주주의가 강한 도시가 될 테고, 도시가 연대하면 국가의 민주주의가 강화될 터. 정자나무는 그래서 중요하다. 간디는 마을을 공화국이라고 말했다.

 

마을을 ‘아름다운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원로 소설가 송기숙은 정자나무를 바깥세상과 만나는 마을의 광장이라고 말한다. 대소사가 논의되고 장이 서며 각종 행사가 이루어지는 정자나무 그늘은 소통공간이라는 거다. 땅에 뿌리를 둔 사회다. 사상가 이반 일리치와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일찍이 ‘우정과 환대’를 마을의 소통 도구라고 통찰했다. 우정과 환대는 돈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이웃은 땅에서 생산한 음식과 땀 흘려 만든 물건을 나누는 마을에서 우정과 환대로 공존 공생해왔다. 그런 마을은 경계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웃은 개성을 존중하며 서로 돕는다.

 

간디는 평생 물레를 돌렸다. 마을에서 자족을 실천하는 몸짓이었다. 영국의 박해를 무릅쓴 소금행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마을에서 모든 생활필수품을 자급할 수는 없다. 최대한 자급하려 노력하면서 모자라는 건 이웃 마을과 나눠야 한다. 우정과 환대가 살아 있는 이웃 사이에 무리한 요구나 속임수는 끼어들지 못한다. 이웃하는 마을은 농산물이나 농기계 들을 공정하게 교환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마다 자랑할 만한 특산품이 생기고, 자부심과 함께 독특한 문화와 역사가 열린다. 뿌리내린 것이다. 서로 돕는 이웃이나 마을은 타자를 절대 배제하지 않는다. 간디는 그런 마을 공동체를 꿈꿨다.

 

저녁 먹고 지붕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전달되는 범위를 마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인천에서 사촌 동생이 찾아오자 장독대에 올라 친구들을 불러모은 사촌형이 살던 마을. 그날 밤 사랑에 여러 켤레의 장화가 모여 막걸리 몇 순배 돌았던 1980년대 강화가 그랬다. 1960년대 인천이 그랬다. 그때 어머니는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샀고 우리집 밭과 이웃의 논에서 먹을거리를 대부분 해결했다. 이삿짐은 동네 사람들이 날라주었고, 대소사는 언제나 이웃이 도와주었다.

 

송기숙은 못난 사람의 대명사, ‘후레자식’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후레자식은 마을의 젊은이에게 도덕적 기준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본받지 말아야 할 전범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맨발의 기봉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지체장애인. 뿌리내린 마을이기에 기봉이를 보호받을 수 있었다. 뿌리내리지 못한 주민은 이웃을 기억할 수 없다. 이웃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니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 개성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 획일적으로 정해지는 삶에는 ‘표준’이 있다. 표준은 개성을 배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대시한다. 이윤이나 권력을 중앙에서 집중적으로 추구하는 세력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미FTA 합의는 미국이 정하는 표준에 우리나라의 삶을 맞추기로 결정한 것이다. 성공이라며 축하하는 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식 삶에 익숙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오랜 문화와 역사와 환경을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열렬이 환영한다. 미국식 삶의 표준은 대개 자본이 결정한다. 투자한 자의 이윤이 그것이다. 그 표준에는 우정이나 환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통치나 상행위는 물론, 아기와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일도 표준화되었다. 돈으로 거래하는 서비스 산업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뿐이 아니다. 지역의 개성 있는 문화나 제도가 표준을 추구하던 투자자에 손해를 끼칠 경우, 소송에 휘말릴 국가는 배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식 삶을 강요하는 한미FTA는 마을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철저히 배제한다.

 

녹색평론 최근호는 ‘FEC 자급권’을 소개한다. 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 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제안이다. 식량과 에너지와 돌봄은 지역 내에서 사고팔 수 있다지만 이윤의 대상일 수 없다. 우정과 환대로 나눠야 한다. 바로 마을의 모습이다. 봉화의 어떤 할머니는 박정희가 아직 대통령이라고 믿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할머니가 살아가는 마을은 국가의 참견이나 중앙 집중적 자본의 억압이 미치지 않은 공화국이었던 모양이다. 국가는 물론, ‘세계무역기구’나 ‘양자 간 자유무역’이라는 족쇄가 주민의 삶을 구속하지 않는 공동체. 바로 송기숙이 우리에게 제안하고 간디가 평생 소망하던 마을일 것이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제13회 풀꽃상을 정자나무에 드리기로 결정했다. 전국에서 모인 30여 명의 회원들은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이 감히 자연에 상을 줄 수 없는 법. 자연에 상을 드리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시키는 환경운동을 전개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이번에 왜 정자나무를 주목했을까. WTO와 FTA로 표준화된 국제 경쟁사회를 앞두고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자치의 가치에 새삼 주목했고, 정자나무를 그 상징으로 천거했으리라.

 

우정과 환대가 살아 있는 마을이라면 한미FTA 파고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도 피할 수 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광우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를 위해 정자나무를 마을에 심어야 한다. 가상공간을 누볐던 젊은이들이 청계광장에 멋진 정자나무를 심었듯, 뿌리내리려는 사람들도 마을에 정자나무를 심어야 한다. (풀꽃세상 2008년 발행, 정자나무)

촛불집회는 정말 멋진 곳이었습니다. . . 중 고등학생들도 교실을 떨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주었습니다.

그저 취업이나 걱정하고 있는 대학생 다수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7. 8. 3. 10:22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제13회 풀꽃상을 정자나무에 드리기로 결정했다. 전국에서 모인 30여 명의 회원들은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한 해 동안 풀꽃상을 받은 자연물, 정자나무의 의미를 살리는 환경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이 감히 자연에 상을 줄 수 없는 법. 자연에 상을 드리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시키는 환경운동을 전개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그 동안 동강의 비오리, 보길도 해변의 갯돌, 민둥산의 억새, 골목길, 새만금의 조개, 지리산의 물봉선, 자전거, 논, 간이역, 비무장지대, 우리 씨앗에 풀꽃상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왜 정자나무를 주목했을까. WTO와 FTA로 대표되는 세계자유무역의 시대를 맞아 새삼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자치’의 가치에 주목했고, 정자나무를 그 상징으로 천거한 것이다.


마을을 ‘아름다운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원로 소설가 송기숙은 바깥세상과 만나는 마을의 광장으로 정자나무를 이야기한다. 대소사가 논의되고 장이 서며 각종 행사가 이루어지는 정자나무 그늘은 소통공간이라는 거다. 송기숙이 보기에 세상의 축소판인 그런 마을에는 대개 5가지 유형의 인물이 존재한다. 한 유형의 사람이 없어지면 곧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그 자리를 메우게 마련이라는데, 존경받는 어른이 첫 번째라면 늘 말썽만 부리는 버릇없는 후레자식이 두 번째. 일 삼아서 이집 저집으로 말을 물어 나르는 입이 잰 여자와 틈만 있으면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을 웃기는 익살꾼이 세 번째와 네 번째, 그리고 좀 모자란 반편이나 몸이 부실한 장애인이 마지막 다섯 번째 유형이다.


간디 역시 마을을 공화국이라고 말했다. 바로 자치가 이루어지는 공화국이다. 땅에 뿌리를 둔 사회.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이웃이 우정과 환대로 땅에서 생산한 음식과 땀 흘려 만든 물건을 나누며 공존공생하는 오랜 터전이다. 비록 다른 마을과 구별하려는 경계선이나 표준이 없어도 개성을 존중하며 이웃들이 서로 돕는 마을. 이런 마을을 공화국이라고 송기숙도 간디도 표현한 것이다.


다양한 개성이 존중되는 마을은 안정적이다. 송기숙은 후레자식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후레자식은 마을의 젊은이에게 도덕적 기준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본받지 말아야 할 전범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맨발의 기봉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지체장애인. 그는 땅에 뿌리 받은 마을이기에 보호받을 수 있었다. 표준이 냉정한 도시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표준은 개성을 적대시한다. 표준은 이윤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세력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미FTA 합의는 미국 표준에 우리나라를 맞추기로 결정한 것이다. 성공이라며 축하하는 자들은 우리의 오랜 문화와 역사와 환경을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환영한다. 미국 표준은 자본이 결정한다. 투자한 자의 이윤이 표준이다. 그 표준에는 우정도 환대도 가동하지 않는다. 통치나 상행위는 물론, 아기와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일도 서비스 산업이다. 지역의 문화나 제도로 투자자에 손해를 끼칠 경우 소송에 의해 배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봉화의 어떤 할머니는 박정희가 아직 대통령이라고 믿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할머니가 살아가는 공간에 국가의 참견이나 억압이 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치가 가능한 마을에서 살았을 것이다. 국가는 물론, 세계무역기구나 양자간자유무역이라는 족쇄가 주민의 삶을 구속하지 않는 공간. 바로 간디가 평생 소망하던 마을이다. 정자나무는 그런 마을을 상징하기에 한미FTA 시대를 눈앞에 둔 시점에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제13회 풀꽃상의 후보에 정자나무를 선정한 것이리라.


마을 안 개개인의 우정과 환대, 마을 사이의 우정과 환대라면 한미FTA 파고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도 피할 수 있다. 광우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을은 아름다운 공화국이기에 그렇다. (요즘세상, 2007년 8월 26일)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요즘 공동체성이 살아있는 작은 마을 내지는
살아있는 마당에 대한 생각들이 많았는데,
정자나무가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마을이
여기저기서 많이 살아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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