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6. 5. 6. 15:24

 

인천에 사는 관계로 회의를 하러 서울에 자주 가게 된다. 기왕 가는 길이니 눈여겨두었던 책을 구할 겸 대형서점을 들리고 이따금 독특한 수입상품을 파는 상가도 찾는다. 인천에 대형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 책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수입상가도 있지만 물건의 종류가 부족하고 가격도 다소 높은 편이다.


회의는 꼭 서울에서 해야 하나? 구성원 중에 인천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로 인천에서 열자고 제안하면 일순 동의한다. 하지만 웬걸. 정작 회의 시간이 되면 사정 때문에 못 간다는 연락이 이어진다, 인천 사람들은 늘 감당해왔건만 멀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댄다. 인천 생활도 바쁘다. 하지만 가끔 서울로 왕복하면서 즐거움을 누린다. 핸드폰에 시간을 다소 빼앗기지만 지하철에서 읽는 독서량이 많다. 눈을 붙이며 노곤한 몸을 달랠 수 있다. 서울 시민들은 그 기쁨을 모를 것이다.


서울로 빠르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은 걸까? 서울로 잇는 고속도로의 수와 폭을 지금처럼 확대하기 전, 인천의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3시간 주차요금이 참 싸다.”고 빈정거린 적 있는데, 그는 서울에서 출퇴근했다. 집이 인천이라면 많은 시간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고 지역에 대한 관심을 늘릴 수 있었겠지. 지역에 기여할 기회가 많았을 텐데.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중앙 의존성이 클수록, 접근성이 빨라지면 서울에 대한 지방의 종속성은 높아진다. 인천에 시민은 점점 늘어 어느새 300만을 눈앞에 두었지만 스스로 인천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는 늘지 않았다. 서울로 출퇴근하며 불만 늘어놓는 시민은 인천에서 발행하는 언론에 별 관심이 없다. 인천 소식은 물론, 역사와 문화가 궁금하지 않다. 기회가 생기면 서울로 주거지를 옮기고 싶을 뿐이다.


서울과 거리가 떨어져 그나마 채산을 유지했던 대구와 광주의 작지 않던 병원들이 속속 문 닫았다는 소식은 이제 새롭지 않다. 전통을 이어왔던 종합대학교들이 신입생 모집에 애를 먹는다는 하소연이 커진다. 작은 대학은 문을 닫을 지경이라며 대책을 호소하는데, 듣자니 남감하다. KTX노선이 생긴 이후의 일이다.


인천에 KTX가 연결될 것이지만 그 노선은 서울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인천 기점으로 예정된 지역의 투기열풍이 걱정인데, 다른 지방을 직접 연결하기에 의미가 있다. 시간 단축보다 서울 의존도를 그만큼 낮추지 않은가. 그렇다고 반길 점만 있는 건 아니다. 3경인고속도로가 있기에 서울을 거치지 않고 인천공항으로 오는 지방의 시민들이 있지만 그들은 인천을 둘러보지 않는다. 그저 공항만 다녀갈 뿐, 둘러볼 시간도 의지도 없다. 인천의 KTX는 어떤 지방 시민들을 불러들일까?


인천의 전통과 문화,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시민들이 자랑스레 지키며 능동적으로 알리지 못한다면, 찾는 이에게 인천다움을 재미와 감동으로 전할 수 없다면, 업무 이외의 목적으로 인천을 찾는 이 드물 것이다. 선박을 이용한 중국 관광객이 인천의 저렴한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서울로 달려가듯, 추가될 KTX도 손님을 수북하게 풀지 않을 게 뻔하다.


인천시는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겠다고 나섰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응당 예산과 제도를 정비하며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정체성과 정주성을 생각하는 시민들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한 마당을 깔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불거지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 다시 말해 GTX는 생뚱맞다. 천문학적 비용과 공사의 어려움, 그리고 관리운영의 고비용이 아니다. 덮어놓고 접근성만 따지는 GTX는 서울 종속성만 높일 뿐이지 않은가. GTX 때문에 주민등록을 옮긴 시민은 인천다움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관성처럼 지속한 중앙 지향의 교통정책과 생활습관은 에너지 효율과 절약을 기반으로 펼칠 지방자치 시대에 가당치 않다. 천문학적 비용은 문제의 일부다. 경제적 편익만 고려대상일 수 없다. 자립과 정체성, 그리고 도시 백년대계를 약속하는 정주성까지 고려한다면, GTX는 인천시가 고민해야 할 대안일 수 없다. GTX는 인천의 가치를 결코 재창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복하겠지. (기호일보, 20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