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1. 2. 25. 18:23

 

포격 사건이 벌어진지 3개월. 아직도 환청에 시달리고 냉장고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연평도 주민들이 임시 거처에서 고향으로 속속 돌아가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라 하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아직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터전으로 돌아가는 건 거기에 내 집과 익숙한 땅과 풍경, 이웃과 함께 지내는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34온이 실종된 맹추위 속에 2천만의 귀성객이 아스팔트를 메운 것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에 고향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곧 장소에 대한 깊은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천시 중구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며 민망해 하는 이가 있다. 개항의 역사를 품은 인천에 근현대 역사유물이 많아야 하는 건 당연한지만 실제 대부분 사라져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처지인데, 무슨 면목으로 지붕 없는 박물관 따위의 말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자조한 건데, 인천시는 중구 항동7가의 근대건축물 하나를 또 철거할 모양이다. 수인선 복선전철 공사 관계로 100년 관록의 인천세관 창고를 헐어내겠다고 밝힌 담당자는 등록문화제로 지정되지 않아 법적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지만 우리는 다시 기억 속의 장소를 하나 잃게 될 것이다.

 

한 전문가는 우리 건축물 찾아 볼 수 없는 벽돌식 건물로 당시 서양식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건축 양식과 디테일 등 외관이 잘 보존돼있는 인천세관 창고는 내부 구조가 잘 보존됐을 뿐 아니라 당시 인천세관 부속건물 사무실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돼 일제 강점기 인천세관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하는 한 전문가는 크게 아쉬워했는데, 시공회사는 새로 지을 수인선 역사에 그 창고의 외관을 재현하겠다고 제안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다른 곳에 재현을 위해 실측설계를 마치고 복원의 어려움을 토로한 다른 전문가는 가치가 인정되는 건축물을 허무는 몰 역사의식을 개탄했다고 언론은 덧붙였는데, 엉뚱한 위치에 복원된 건물에서 우린 문화재라는 기억이 희미해지고 말 게 틀림없다. 장소를 잃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철이 지나자마자 인천에서 서울대학교 입학생의 수가 크게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서울대학교가 그 이외 모든 대학보다 대부분의 학과가 우월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되다보니 서울대학교 입학이 전국 모든 고등학생의 로망이 되었는데, 대학의 권위와 개성이 다양한 다른 국가에서 보기 어려운 기현상이다. 문제는 서울대학교 입학생의 수로 고등학교를 평가한다는 데 있다. 동문의 사회와 문화적 기여, 과학과 경제적 성취, 그리고 개개인의 삶에서 찾는 행복보다 그저 서울대학교 입학생의 수로 명문 여부를 판가름하려는 풍토에서 우리나라 대학과 고등학교가 수직 계열화되었고, 그만 다양성마저 잃었다.

 

평준화가 되기 이전, 독보적으로 서울대학교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고등학교가 대도시마다 있었다. 서울에는 경기고등학교를 비롯해 여럿 있었고 인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데 지금 경기고등학교는 1976년 자신의 장소를 정독도서관에 넘기고 강남 삼성동으로 이전했다. 그 경기고등학교, 예전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을까. 이전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형편없게 서울대학교 입학생을 배출할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까. 그리 생각하는 동문도 틀림없이 있겠으나, 그 역시 자신이 다니던 모습과 달라진 교정에서 모교라는 느낌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명문 시절의 장소를 잃은 현 경기고등학교에서 예전의 분위기, 역사와 문화는 찾을 수 없지 않은가. 다시금 예전 같은 명문의 지위를 회복한다 해도 장소가 달라진 만큼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제 자리를 아직 지키는 경복고등학교는 그 점에서 경기고등학교와 분명히 다르다.

 

신포동에서 홍예문을 지나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다 우측을 내려다보면 늘 그 자리에 있는 제물포고등학교는 주말마다 숱한 동문들을 불러들인다. 아직 장소를 잃지 않고 있으므로 가족과 방문하는 선배들도 꽤 많다. 물론 제물포고등학교만이 아닐 것이다. 장소를 잃지 않는 고등학교들이 대개 그럴 텐데, 최근 인천시 중구에서 제물포고등학교가 연수구로 이전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자 과거의 명예를 기억하는 많은 동문들은 환영하지만 중구에서 자식을 키우는 민심은 흉흉해졌다. 험악한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걸릴 정도다.

 

학원이 많은 만큼 교육열이 높고 그에 상응하게 서울대학교를 상대적으로 많이 보내는 연수구의 다른 고등학교처럼 이전할 제물포고등학교도 부끄럽지 않은 입학 성적을 올릴 게 틀림없는데, 경기고등학교처럼 장소는 잃을 수밖에 없다. 동문들은 장소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을 새 교정에서 구할 수 없다. 공식적인 체육대회가 열리더라도 감회에 젖을 일은 없을 것이다. 모처럼 만난 동창과 모교를 찾아가고 싶던 마음도 퇴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처럼 서울대학교 입학생을 독차지하는 일이 생긴다 해도 그 명성은 새 교사에서 공부하는 동문에게 살가울 뿐 이전하기 전 교정에서 졸업한 동문에게 공감으로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다. 어색한 장소에 있는 모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명문이라 일컬어지는 학교를 다니고 싶지만 명문이 다른 학교를 차별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면 슬픈 일이다. 명문 출신은 우쭐해지고 이외 학교 출신은 의기소침해져야 한다면 사회적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어느 학교든 재학생과 동문의 행복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이제 명문 고등학교는 서울대학교 입학생의 수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명문으로 추앙받는 대학교의 입학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활동, 동문의 사회와 역사적 기여 정도, 그리고 본인의 행복에서 평가하는 방법도 있겠다.

 

동문의 사회활동으로 평가할 때, 제물포고등학교는 현재 명문인가. 충분히 그럴 거라 믿는다. 앞으로도 여전히 명문일 수 있다. 장소를 굳게 지키면서 가치를 개성 있게 창조하는 명문으로 우뚝 설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 이전을 지지하는 동문과 반대하는 중구의 시민까지 모여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을 텐데. 연평도 주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점에 제물포고등학교 이전 여부를 놓고 불거지는 인천 사회의 갈등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인천in, 2011.3.3)

학교이전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명문이라는 것이 아파트 많은 곳으로 가야 명문입니까?
명문을 생각한다면 어떤 전통을 물려줄까 고민해야 합니다.
2주전 1960년대에 내가 다니던 학교 엤터를 가보았지요 옆에 있던 여학교 터에는
분명 ㅇㅇ여학교 옛터라고 큰돌에 새겨있는데 내가 나니던 학교터에는 보성사라는 표지만 남아 있어 한참을 서성이다 왔지요.

저도 아직 노이로제로 남아있는 소리. 소위 일컬어 용역원들이란 자들이 1년을 두고 건물 때려 부순 소리때문에 아직도 무언가 굉음이 들리면 불안하기 그지 없지요. 개발.전통.명문 모두 시간과 인간이 만든것 같은데......

 
 
 

서평·추억

디딤돌 2008. 9. 16. 16:05

 

글은 늘 어렵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머리에 있지만 가닥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종잡는 일이 특히 그렇다. 그럴 때 잠시 머리를 비우는 게 좋다.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다고 실마리가 풀리는 게 아니다.

 

머리를 비우려면 걷는다. 간단한 복장에 작은 수첩을 호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선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걸으려면 되도록 소음이 작은 곳이 좋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적어야 편하다. 근린공원은 마다한다. 조용하지만 지나치게 씩씩하게 걷거나 뛰는 이웃이 많다. 그들을 피하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아무래도 가까운 숲을 찾는 편이 낫다. 새소리 벌레소리 들으며 천천히 걷다보면 마음이 어느새 안정되고, 불현듯 실마리가 잡히고 가닥이 풀린다. 이윽고 몸을 책상머리로 이끌 수 있다.

 

숲이 많은 곳에서 철학자가 많이 탄생한다던가. 시원한 숲속의 그루터기에 앉으면 사색이 편안할 듯하다. 외롭지 않은 고독 속에서 엉켰던 사유가 술술 풀릴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외곽은 물론 도심에도 숲이 우거진 독일에는 철학자가 많다. 요즘 도서관도 숲처럼 시원하다. 조용하기도 한 도서관은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데 틀림없지만 깨달음은 역시 숲에서 얻어질 것 같다. 광야의 예수도 보리수 아래 석가모니처럼 녹색공간에서 오래 걸었기에 깨달음을 얻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제물포고등학교 출신에 유난히 운동권과 교사가 많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과 무관하지 않을 거로 많은 동문들은 지적한다. 그 점에 공감한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학생이 교정에서 본 교훈은 은연중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교 3년 동안 선생님에 의해 끊임없이 주입되었을 뿐 아니라 졸업 후 만나는 선배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교훈에 대한 의미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신념과 확신으로 내면화되었을 것이다.

 

의미를 되새기며 받아들인 교훈이 자의식이 정착하려는 청소년의 인생 항로를 정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는 건 이해하면서, 그게 결정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성싶다. 수많은 학습과 번민이 자신의 항로를 이끌 게 틀림없다. 그 점에서 제물포고등학교의 도서관은 큰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학습만으로 부족하다. 편집된 지식을 연마해서는 자아가 완벽하게 형성되지 못한다. 사유가 깊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은 자아를 구축할 수 있다. 제물포고등학교에는 숲이 있다. 교훈이 자신의 인생 방향을 설정하게 하고 도서관이 신념을 연마하게 했다면 번민을 허락해준 숲이 있기에 많은 제물포고등학교 출신을 의식 있는 교사와 운동권으로 이끌었을지 모른다.

 

그렇다. 도서관은 자료를 찾아 과제를 완성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면 숲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다. 읽는 책도 같지 않을 것이다. 지식을 연마하기 위한 책이 어울리는 도서관과 달리 숲은 읽으며 깊은 생각에 젖는 책이 적당해 보인다. 도서관에서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건다면 귀찮아질 수 있지만 숲은 그렇지 않다. 책을 덮고 마주앉아 속 깊은 이야기 길게 나눌 수 있다. 그런 숲에서 낯모르는 이와 눈길이 마주쳐도 도시 뒷골목과 달리 두렵지 않다. 지리산 등산로를 생각해보자. 어려움을 처한 이를 만나면 선뜻 도와주게 되지 않던가.

 

시민운동 판에 제물포고등학교 출신 인사가 많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동문도 그렇지만 그런 단체와 관계하는 학자 중에도 꽤 많다. 사르트르가 격려한 이른바 ‘행동하는 지식인’이요 리영희 선생이 갈망한 ‘지성인’이다. 우연일까. 그런 역사가 이어진 데 교훈과 도서관과 숲이 일정 역할을 했을 것으로 주장한다면 지나칠까.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슬그머니 숲으로 나가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정신을 가다듬고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고등학교는 몇 안 된다. 자신의 신념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번민하며 다독거릴 수 있는 공간이 제물포고등학교에 있다.

 

입시를 앞두고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면서 친구보다 더 공부해야 실패하지 않는다며 다그치던 세간의 속설이 제물포고등학교에서 무색할 수 있었던 건 숲이 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지치거나 의기소침해질 때, 함께 밖으로 나가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며 우정을 확인할 수 있던 친구, 알기 쉽게 정리한 메모를 내어주며 격려하던 친구의 성원이 숲에서 진하게 전달되었다. 그런 성원이 이제까지 이어지기에 제물포고등학교 출신은 고단한 시민운동과 교사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지 모른다. 비록 가는 길은 다르지만 개성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숲은 다양한 동식물로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나무와 풀과 미생물과 곤충과 크고 작은 동물이 순환하는 생태계다. 순환과 다양성으로 보전되는 공간이 생태계라면 생태사회는 개성과 배려가 보전되는 공간이다. 생태사회는 눈길 마주치는 이웃에게 다정해지는 숲과 조응한다. 목표와 속도로 점철되는 회색도시와 달리 과정이 존중되는 숲은 너그러움으로 대화와 타협을 인도한다. 그래서 도시의 완성은 숲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번듯한 교사나 시설보다, 뜻이 그럴싸한 교훈이나 졸업생이 구축해온 사회적 지위보다 구성원의 개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전통과 문화가 자랑스러워야 한다면, 학교에 숲을 조성해야 한다. 도시든 학교든, 녹지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경쟁과 갈등은 어울리지 않는다.

 

휴일이면 숱한 졸업생이 모여 재학생과 체육대회를 여는 제물포고등학교는 웃터골에 아늑하게 자라잡고 있다. 억압받는 이웃의 개성을 존중하려는 운동가를 많이 낳은 곳이고, 그런 운동가를 키우는 교사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그 곳에는 열린 도서관과 훌륭한 교훈이 있다. 교훈을 학생의 가슴에 스스로 각인시키곤 하는 숲이 있다. 성덕당이 문화유산으로 보전된다니, 숲도 성덕당과 더불어 앞으로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경쟁과 갈등이 개성을 전복하는 요즘, 운동가와 운동가를 키우는 행동하는 교사가 절실한 까닭이다. (인중제고동창회보, 2008년 후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