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20. 2. 7. 12:11


지금은 초등학교가 자연스럽지만 50여 년 전 같은 국민학교를 졸업한 동기들과 인천에서 모처럼 모임을 가졌다. 다녔던 학교는 장소를 이전해 새로운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서울에 주소를 둔 동기들과 기억을 찾아 여기저기를 둘러볼 의향이었지만 이전한 초등학교를 방문하자는 친구는 없었다. 장소가 변하니 손때 묻었던 기억을 소환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기억하는 장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어릴 적 사생대회를 위해 모이던 공원을 거닐다 추억이 어린 음식점을 찾기 전에 중구에 흩어진 작은 박물관 몇 군데를 둘러보면서 자신의 기억이 스쳤던 문화와 역사의 흔적을 느끼며 잠시 푸근할 수 있었다. 장소가 품고 있는 뿌리의 느낌이 전달되었는지 모른다.


지금 연수구 어드메 아파트단지에 산다. 얼마 전까지 동인천에서 송도유원지를 잇던 시내버스들의 종점이 있던 곳이다. 주위가 깨끗해지고 전 아파트보다 조용해서 좋지만 낯설다. 반갑게 인사하는 이웃이 없다. 대부분의 아파트단지가 그렇다. 전 아파트단지에서 20년 살았어도 경비원 이외에 반갑게 인사한 이웃은 없었다. 역사와 문화를 남기지 못하는 철근콘크리트 일색의 회색 아파트와 상가에서 시민들은 삶의 뿌리가 내리는 장소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시민의 발길을 부르는 곳은 인천에서 어디일까?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이 머물던 공간은 사라지고 없다. 확장을 위한 개발 소용돌이에서 중학교가 있던 장소도 벌써 사라졌다.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할 장소가 없지만 그나마 다행인가? 청년 시절의 기억이 어린 장소는 온전하지 않아도 남았다. 신포동과 배다리가 그렇다. 배다리와 신포동을 잇는 싸리재도 남았다. 하지만 위태롭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생기면서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니 불안하다. 장소가 사라지면 그 지역에 뿌리내리는 시민은 드물어진다. 뜨내기만 허용할 따름인데, 싸리재에 주상복합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신포동에서 약속이 잡히면 일부러 싸리재를 걷는데, 싸리재를 온전히 기억해내는 찻집에 미리 앉아 책을 읽을 때가 많다. 마음이 안정되니 책 읽기 편안할 뿐 아니라 비슷한 생각으로 찾아오는 지인과 우연히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재미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약속 한두 시간 전에 찾을 때마다 악수 청하는 찻집 주인인 선배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때 주상복합건물들이 덕지덕지 오를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기억과 장소를 볼썽사납게 짓밟을지 모른다는 불길함으로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싸리재는 지금 인천의 장년층이 젊었을 적에 영화를 보려고 연인과 걷던 공간만이 아니다. 싸리재에 자리하는 양복점에서 정장을 맞추고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근처 양장점에서 예복을 맞춘 신부는 예비신랑과 신접살림을 장만하려 싸리재의 가구점들을 기웃거렸다.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면 싸리재의 병원을 찾았고 축하할 일로 모이는 친구들이 싸리재의 선술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인천사람 기억의 장소인 싸리재는 휘황찬란하게 꾸민 주상복합건물의 상가들로 곤두박질칠 뜨내기의 길이 아니다.


장소의 가치를 살아내려는 신포동, 역사성을 지우지 않으려는 배다리, 그 사이를 잇는 싸리재는 인천 근대 역사와 문화에서 지울 수 없는 길이요 장소다. 기억의 흐름을 잇는 장소에 어떻게 주상복합건물 따위를 구상할 수 있었을까? 젠트리피케이션을 활용해 돈벌이에 나서는 자본의 시도일까? 북성포구에 주상복합건물을 세우려는 자본을 인천 정서를 품는 시민들은 몸서리치며 거부하는데, 싸리재는 예외일 거라 허가관청을 판단한 걸까?


연수구에 머물며 싸리재 소식에 민감하지 못해 선배 앞에서 미안하기 짝이 없는데, 맥 빠지게 하는 건 인천시의 무력함이었다. 제도적으로 주상복합건물 계획을 반려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이어졌다는데, 장소를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는 제도로 인천시는 시민 앞에서 감히 인천을 말할 수 있을까? 싸리재만이 아니다. 인천의 장소가 번번이 허물어진다. 볼썽사나운 철근콘크리트로 참담해지기 전에 인천의 장소를 보전하도록 시민과 머리 맞댈 정책은 여전히 무력해야 하는가? 허탈하다. (기호일보, 2020.2.7)

 
 
 

도시·인천

디딤돌 2018. 9. 17. 16:19


1993년 출간돼 남도답사 열풍을 일으킨 어떤 책은 고즈넉했던 강진 무위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책을 쓸 당시 저자는 아늑했던 대밭을 몽땅 베어낸 능력 있는 스님의 호방함에 안타까움을 지우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때와 천양지차다. 증쇄를 거듭하던 책을 들여다보며 극락보전을 찾는 관광객 틈에 끼어 방문한 1990년대의 무위사는 지금 없다. 현재의 無爲寺는 차라리 有爲寺. 없는 듯 있지 않다. 요란스런 성형(중창)을 하고 나 여기 있다고 천지사방에 외친다. 199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거만한 호방함이 아닐 수 없다.


기억을 더듬어 작년에도 찾았던 무위사를 다시 방문할 생각은 버렸다. 오히려 찾겠다는 지인을 만류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건 최근에 변신한 하회마을도 비슷하다. 1990년대 일단의 대학생들과 조심스레 방문하던 전통마을이 아니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 먹고 마시는 시장판으로 떠들썩하게 변한 5년 전 이후 하회마을을 찾을 마음이 사라졌다. 무위사나 하회마을처럼 방문자의 호평이 늘어나 찾는 이가 증가하면 눈살 찌푸리게 변하는 명소는 한두 군데가 아닐 텐데, 전주의 한옥마을마저 그 대열에 포함되는 서글픈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사진: 전주 한옥마을 전경(출처: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83)


전주의 한옥마을은 주택업자가 획일적으로 만든 단지가 아니다. 전주시가 자랑하는 자료는 민족적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로 형성되었다고 강조한다. 전주읍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들이 강점기 이후 성곽을 철거하며 성 안으로 대거 모여들자 성문 밖의 자존심 높은 양반들이 자존심을 걸고 모였다는 게 아닌가. 그런 한옥마을은 시방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일제는 이미 떠났다. 일제보다 무서운 천박한 상업주의가 100년 넘은 자긍심을 비웃는 게 아닌가. 한옥보존지구에 관광을 도입하자 입소문을 타면서 한옥마을은 급격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한옥의 고즈넉한 여백을 느끼려던 관광객은 떠났다. 먹고 마시며 흐느적거리는 식당 사이에 공기총으로 풍선 터뜨리는 상가들이 번쩍이는데, 개량한복을 걸친 관광객 사이를 비집으며 전동스쿠터들이 속도를 견준다.


한옥마을의 정취와 자긍심을 지키려는 전주시민들은 지친다. 상업주의에 혀를 내두른다. 천만 관광객이 모여들고 유력 외국 언론에서 아시아 10대 명소로 지정하면서 유명세는 돛을 달았다. 그러자 외지 자본이 몰려들었고 한옥마을은 천박한 상업주의에 휩싸이고 말았다. 변질되는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전주시는 힘이 부친다. 사유재산권을 내세우는 상인들의 저항에 속수무책이다.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훼손하는 상가의 건물주는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한다던데, 그들의 천박한 욕심을 통제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젠트리피케이션은 홍대거리와 가로수길에서 머물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는 머지않아 명성을 잃고 낙엽만 뒹굴 텐데, 한옥마을의 내일이 걱정스럽다. 건강한 사유재산을 존중하면서도 합리적인 대안을 체계적으로 찾을 수 없을까? 건물주와 세입자의 이해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그 지역을 흔쾌히 찾았던 방문자들이 충분하게 포함되는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전통문화를 지키려 방문자를 제한하는 국가도 있던데, 현재의 이해당사자 뿐 아니라 다음세대의 방문객도 납득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한옥마을의 자긍심이 지속 가능하게 지켜질 방법이 거기에 있으리라.


소상공인의 눈물을 닦아줄 것으로 기대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가치의 지속 가능성을 포함해야 한다. 세입자가 장사할 권리를 10년 이상 보장하는 조항보다 근원적인 대책을 사회문화적 합의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유서 깊은 마을과 거리의 정체성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눈앞의 돈벌이보다 다음세대에 더욱 빛날 명소가 보존된다면, 나는 분명히, 먼 곳에서 스스로 찾아온 친구의 손을 이끌며 찾아가고 싶을 것이다. (지금여기, 2018.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