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5. 9. 1. 14:49
 


조너던 와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2002), 『핀치의 부리』, 이끌이오.



품종개량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드는 개체끼리 교배시켜 많은 후손을 얻은 뒤, 원하는 특징을 가진 개체를 그 중에서 선택해 다시 교배를 시도한다. 물론 원치 않는 개체는 당장 도태, 즉 죽인다. 사람에 의한 선택은 이렇듯 빠른데 자연에 의한 선택은 어떨까. 다윈은 점진적으로 보았지만 《핀치의 부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핀치의 부리》의 저자는 과학자가 아니다. 과학잡지의 기자이자 저술가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쓰는 재주를 가진 저자는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20년 넘게 야생조류인 핀치를 연구하는 부부 과학자의 경험과 주장을 실감나게 담아내는데, 《핀치의 부리》는 눈으로 확인할 정도로 빨리 진행하는 진화를 정교하게 설명하고, 환경변화가 생물종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식은땀 나게 경고한다. 다윈을 포함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갈라파고스의 핀치들을 잠깐 조사하고 점진론을 지지했지만 20년 넘게 지켜본 부부 과학자의 견해는 달랐다. 혹독한 환경변화는 적응 가능한 일부 개체를 제외한 나머지를 무자비하게 도태시키며, 진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가뭄과 홍수, 태풍과 더위가 반복되는 갈라파고스의 핀치 종류만이 아니다. 과실 씨앗을 빼먹는 딱정벌레의 주둥이가 사람이 개간한 과수원에 들어가면서 길거나 짧아지는 현상은 점진적이지 않았다. 산사나무 열매에 알을 낳던 과실파리는 과수원의 사과와 블루베리에 알을 낳기 시작했고, 금방 3종으로 분화하더니 자연에서 만나도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진화한 것이다.

 

농약과 곤충의 관계는 어떤가. 농약을 살포하자 곤충은 두 세대 만에 저항성을 갖추고, 파리는 5년 만에 저항성을 100배로 확대시켰다. 농약을 뿌리자 내성이 생긴 게 아니다. 대부분은 죽었지만 저항성을 이미 가진 매우 적은 개체가 살아남아 증식한 것이다. 다른 가능성은 돌연변이다. 농약으로 유전자가 돌연변이된 곤충 대부분은 도태되었지만 일부 개체에서 농약 저항성이 우연히 발현됐고, 다시 확산된 것이다.

 

미생물은 그 정도가 훨씬 더하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얼마안가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는 어느덧 제4세대 항생제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장내 세균 상당수는 항생제가 몸을 빠져나가기 전에 내성을 강화한다고 밝히는 저자는 유전자조작 생물을 걱정한다. 35억년 지속되었던 생태계의 유전자 조화가 일순간 깨져, 걷잡을 수 없는 진화의 소용돌이로 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화는 살아남거나 새롭게 탄생한 생물종에게 천만다행일지 몰라도 환경변화에 이기지 못하고 도태되고 만 대부분의 개체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아닌가.

 

《핀치의 부리》는 생물종의 진화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들이여 제발 겸손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요즘 환경은 사람에게 태평성대가 아니라고, 전에 없이 파괴되는 생태계를 그대로 놔두면 머지않아 사람에게 자연선택이 실시간으로 적용될지 모른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이참에, 환경운동은 생명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핀치의 부리》를 권한다. 조금 까다롭더라도 끝까지 읽으면 ‘한계 환경이 빚어내는 진화의 역설’을 심각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으므로. (발간 예정 서평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