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5. 5. 23:58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선적한 배가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 시민단체의 불매운동과 관계없이 결국 식탁으로 올라올 것이다. 기업은 잠시 미안한 척하다 말 거고, 언론의 관심이 줄어들 때면 이미 가공돼 유통하고 있을 거다.

 

1990년대 초, 우리는 농약 오염이 심한 밀을 수입한 적 있다. 느슨하기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우리 기준치를 무려 130배 이상 오염된 밀이었다. 당시 언론은 돌려보내라고 아우성쳤으나 그 밀은 결국 수입되어 사료로 전용되었고, 그 사료를 먹인 가축은 우리 식탁으로 올라왔다. 검역을 마칠 때까지 부두에 하역된 밀은 모두 6차례나 조사를 거듭했다. 기준치 이하로 내려갈 때까지 눈물겹게.

 

왜 되돌려 보낼 수 없었을까. 배에 싣고 오래 운송하면 상할 테니 수출하는 밀에 농약을 뿌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정도가 문제인데, 우리의 수입 조건이 그 정도로 허술했을 것이다. 당시 정부는 까다롭게 굴면 그 수출업체가 다음부터 우리에게 수출을 꺼려할 것이라며 언론에 불평했다. 굴종이 빚은 결과였는데, 밀 수입국은 다 그럴까. 이후에도 당당한 수입국의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을 위해 아무런 노력이 없다.

 

유전자조작 옥수수는 시럽으로 변해 아이들이 먹는 과자에 넣을 것이다. 기업은 말할 것이다. 무설탕이라고. 정부는 말할 것이다. 옥수수 시럽에는 유전자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금까지 기업은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수입하지 않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사료와 식용유를 위한 옥수수는 유전자조작이었다. 정부는 말했다. 식용유에는 유전자가 포함돼지 않는다고. 기름을 짜고 남은 옥수수는 어떻게 했을까. 물론 사람이 먹지 않았다. 사료로 가공해 가축에게 주었다. 시럽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어떻게 할까. 군산 앞바다 250킬로미터 지점의 공해상에 버릴 가능성이 높다. 조작된 유전자가 포함될 그 찌꺼기를 먹은 물고기들은 우리 식탁에 오를 것이다.

 

30개월 넘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우리 정부가 미국과 협상한 이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서명운동이 인터넷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가 예고된 유통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예고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미 대통령의 별장을 방문하는 일정에 맞춰 미국 협상단에 굴복한 이번 결정은 한미FTA 협상 비준을 구걸하기 위한 조공이라고 세상은 혹평한다. 한미FTA가 우리 시민의 공감대를 구하지 않았음에도 아직 비준에 대한 논의조차 없는 미국 의회나 행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우리가 앞장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빗장을 푼 것이므로. 한데 정부는 미국 쇠고기 업체를 대변하며 선전한다. 미국인도 먹는 값 싸고 질 좋은 고기라고.

 

미국인들은 20개월 미만의 소를 주로 도축해 먹는다. 수입하는 모든 미국 소를 조사하는 일본인도 20개월 미만을 먹는다. 수출업자가 천 마리 중 한 마리만 조사한 결과를 믿기로 작정한 우리는 왜 30개월 이상도 괜찮을 예정이다. 왜 미국은 집요하게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우리에게 요구했을까. 자신들이 잘 먹지 않는 젖소, 그리고 송아지 낳는 수소와 암소를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농약에 절은 밀도 수입하는 한국이 아닌가. 광우병과 관계없이 뼈와 내장까지 발라먹을 거로 믿었을 거다. 숱한 경험상, 한국과 벌이는 협상에 자신이 있었을 거다. 미국산 쇠고기 거부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국가가 아닌가.

 

계엄령 발동하듯, 텔레비전에 나와 미국 쇠고기를 광고하던 우리 정부는 과학을 앞세운다. 과학이 육종한 미국산 쇠고기의 사육도 과학이 안내했다. 소의 본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수입한 유전자조작 옥수수도 과학이 발명했다. 옥수수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왜곡시켰다. 우리 과학자도 미국의 산업체를 두둔한다. 과학적으로 위험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단다. 그러면, 안전하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가.

 

과학을 내세우지만, 현재 과학은 정치적이다. 지금 과학은 새로운 주술이 되었다. 정치에 굴종하는 주술. 시방 식량 자급률이 곤두박질친 한국 사회는 미국 발 주술에 휩싸였다. 내일이 더 걱정이다. (요즘세상, 2008년 5월호)